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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호 6:1~3)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에게 축복하여 세상 나라의 표본으로 삼고자 하실 때에는 그들이 오직 하나님만 유일하신 주권자로 섬겨야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였습니다.
신명기 4장39-40절에 "그런즉 너는 오늘날 상천하지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맺은 그 언약을 저버렸습니다.
그 결과 모든 불행을 자초하여 멸망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항상 말씀에 순종치 않는 백성들이 망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능력이 자기 자신에게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야금야금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집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서 내리치시는데 한 순간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닥에 내리쳐버리십니다. 그때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이제 이스라엘도 끝났군’이라고 중얼거립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심하게 찢어지고 망가져서 도저히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놀라운 초청의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로 돌아간다'는 것은 마음의 상태를 바꾸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나는 나'라는 식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비참하게 된 것은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의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멸망 당하여 비참한 노예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면 망하고 비참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거역하여 진노가 임할 때 무엇보다 통회자복해야 합니다. 요엘 2장 13절은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환난을 당할 때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며 회개해야 합니다.
마음을 찢어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참된 회개를 하려면 입술로만 고백할 것이 아니라 행위에 있어서 변화를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용서하고 치료해 주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못하고, 죄를 짓더라도,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시자와 같이 임하여 우리를 완전히 찢으신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우리를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실 것입니다.
1.낫게하시고 싸매어 주십니다.(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외면하자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찢기고 얻어맞고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고치시고 싸매시며 치료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자식을 때리는 부모의 마음은, 맞는 아들보다 더 아픈 법입니다. 철모르던 사람도, 그가 어른이 되어 자식을 낳아 그 자식에게 매를 댈 때에야 비로소 부모의 그 아픔을 알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호세아가 음탕한 여인 고멜과 결혼함으로써 받은 고통을 통해,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느끼게 하셨습니다.
불행한 결혼 때문에 호세아 선지자는 고뇌하고 갈등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끝까지 용서하고,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치셨으나 싸매 주시고, 때리셨으나 낫게 해 주신다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자”라는 선포는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였던 자신들의 모습을 회개하는 목소리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겼던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가서 하나님만을 섬기자는 자성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돌아가면 비록 하나님께서 범죄한 자신들을 찢으시고 치셨지만 도로 낫게 하실 것이며 싸매어 주실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치셨지만 하나님께서 싸매어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빨리 잘못을 깨닫고 돌이켜 회개하면, 아버지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너희 모든 상처와 아픔을 싸매시고, 치료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이틀 후에 너희를 살려주고, 셋째 날에 다시 일으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셋째 날에 일으키시리니’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맥락으로 볼 때 빠른 시간 안에 내가 너희들을 회복시키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분입니다(출15:26).
이사야 55장7절에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맺힌 것을 풀고 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얽힌 문제도 순리대로 풀려지는 법입니다.
모두가 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공유하게 될 때 온 세상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나라도 새롭게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찢기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치시기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기 15장26절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 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 이니라”
여호와는 말씀을 청종하며, 의를 행하며, 계명과 규례를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을 치료하시는 여호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치심을 받은 질병이기에 여호와 하나님만이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는 것압나다. 앗수르의 야렙 왕이 고칠 수 있는 질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를 연단시키고 바로 잡기 위해서 고통으로 찢으실 때가 있지만 싸매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욥기5장18절에 “하나님은 아프시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우연이란 없습니다. 반드시 배후에 하나님의 채찍의 손길, 사랑의 손길이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잘못해서 죄 값으로 받는 고통이라도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섭리하십니다. 고통중에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엄위하신 공의의 심판자이시지만, 또한 긍휼로 자기 백성을 돌아보시고 싸매어 주시고 낫게 해 주시는 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불의를 미워하여 죽이십니다. 그러나 불의한 자라도 돌아오고, 회개하면 맞아서 상처가 난 곳을 치료해 주십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죄인들이 멸망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싸매주시고 치
료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도 죄인들을 여전히 부르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 니다. 실로 놀라운 사랑과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중요한 것은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자신은 죄가 없고 의롭다
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돌아올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도 받으시지 않습니다. 자신 이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돌아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은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오늘도 우리들이 죄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상처를 싸매주시고 건강하게 해주시고 번성하게 해 주십니다. 이를 믿고 믿음생활 바르게 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그의 앞에서 삽니다.(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때로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은 것처럼 고통이 엄습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채찍에 맞은 것처럼 깊은 상처로 인해 신음하며 살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못하고 우리의 욕심에 노예가 된 채 우리가 가고 싶은 길로 가고 우리가 하고 싶은 일들만 하며 살 때 하나님께로부터 징계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한이 없으십니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본 절은 이스라엘이 정치적 회복 뿐만 아니라 영적이고 도덕적인 회복이 신속하게 이루어 질것을 말씀합니다. 즉 회개하고 돌아오는 이스라엘을 여호와께서 소생시킬 뿐만 아니라, 장차 메시야를 다시 살리실 것을 약속하시고 부활하신 메시야를 믿는 자도 살게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틀 후에 살리시며 삼일 만에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이틀 후에 살리시며 제 삼 일에 일으키신다'는 것은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치료하시고 회복시킨다는 뜻입니다. '이틀 후에 살리시며 제 삼 일에 일으키신다'는 표현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그것도 아주 긴박하게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자들을 구원하셔서 다시 일으키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죄없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죽음을이기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 오른 쪽에 앉아서 죄많은 우리들편에서 변호하고 계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많은 능력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죽는 그 순간이 와도 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또 일으키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의 앞에 사는 은혜를 거절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는데 그들은 육신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를 거절하였습니다. 그 앞에서 살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우리는 셋째 날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우리는 셋째 날의 은혜인 부활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은혜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큼은 이제 우리에게는 그의 영으로 매일마다 그 앞에서 사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앞에서 살 뿐 아니라 우리의 연약을 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간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의 얼굴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코람 데오' 하나님 앞에서 살자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139편1절에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나의 생각과 나의 심혼 골수까지 찔러 쪼개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서 눈 가리고 아옹 하는 식은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것은 경건한 삶을 강조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의 은혜의 그늘 아래서 다시는 떠나지 말자는 간곡한 눈물의 호소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의 앞에서 “
그의 앞에서란 말은 그의 얼굴 앞에서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까닭은 그의 얼굴 앞에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우리가 사라지면 하나님은 불편해하십니다.
섭섭해 하십니다. 죽을 걸 살려줬더니 자기 욕심대로 사는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면 안됩니다. 죽을 걸 살려줬으면 그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자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일으킴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영원히 사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일으킴 받은 자의 자세입니다.
일으키면 하나님 앞에서 살고, 하나님 앞에서 살 때 가장 아름다워집니다.
여호와를 힘써 알 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됨을 믿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우리가 사라지면 하나님은 불안해하십니다. 불편해 하십니다. 섭섭해 하십니다.
하나님은 자녀를 사랑하시기에 징계를 오래 끌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빨리 깨닫기를 원하고, 빨리 돌아오기를 가절히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어쩔 수 없이 징계를 하시나, 우리가 깨닫고 여호와께 돌어오면 바로 이 후에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여호와께 돌아가면 우리가 하나님앞에서 살아갑니다.
3.여호와를 알아야 합니다.(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가 있습니다. 교만함과 음란한 마음이 그들을 지배하였기 때문에 여호와를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여호와를 멀리 떠나게 되었고 멸망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지자는 간곡하게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여기에서 '힘써'라는 말은 여호와를 아는데 최대의 정성과 힘을 기울여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안다는 것은 우리 믿음의 백성들에게 최대의 축복이며 은혜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체험하는데 가만히 앉아서 받을 수 있겠습니까? 최대한 힘써야 합니다.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는 말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라갔던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온 맘을 다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호세아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강조하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모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께 열심히 제사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알았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지식으로 머리로 교리적으로 알았지 인격적인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호세아는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선포합니다. 이것이 그의 믿음의 기초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 ‘알자’는 것은 바른 지식, 체험적 지식 등 전반적이고 종합적인 앎을 말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각을 가지고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하여, 성경에 대하여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인생을 바르고 참되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살이의 지침, 곧 메뉴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아는 믿음에서 튼튼한 기초를 세워 흔들림이 없는 신앙으로 세워지고 다져 갑니다.
사실 하나님을 아는 것만 해도 엄청난 복이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만 아닙니다. 실제적인 역사입니다. 힘써 여호와를 아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들에게 주시는 약속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이 나타나십니다. 새벽의 빛은 반드시 옵니다. 아무리 밤이 캄캄하다고 할지라도 새벽이 되면 동이 터옵니다. 하나님을 힘써 아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찾아오신다는 약속입니다. 아무리 어두워도 새벽이 오지 않는 날은 없습니다. 반드시 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반드시 만나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이스라엘의 현재의 상황이 아무리 어렵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만나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평안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이 땅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서 곤고한 중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찾는 자는 하나님께서 지체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만나 주신다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유대 백성의 고통과 문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데서 왔다고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와 그 말씀의 뜻을 알지 못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사랑을 알고, 그 은혜의 길을 알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를 안다고 할 때 오해를 합니다. 책을 통해서 읽고, 성경공부를 통해서 배우고 나서 여호와를 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신학자들이 여호와에 관해서 가장 많이 알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여호와에 관해서 객관적인 지식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인생 전체가 망가지고, 나라가 망가지고, 온 세상이 망가집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근원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은 심각하고 근본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길만이 살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똑바로 아는 지식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엔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때부터 믿음을 가집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어떻게 아느냐에 따라 믿음이 달라지게 되며, 점점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면서 그 사람의 믿음이 좋아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강하게 임재하십니다. 더 강하게 찾아오십니다. 우리와 동행하시고 함께 하십니다. 임하시는데 어떻게 임하시느냐?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임하십니다.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임하셔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서 자기의 위치를 지키므로 회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 배도의 길을 간 것이 혼란과 파멸을 가져온 불행의 원인이었다면 이제 다시 하나님의 주권앞에 승복하며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되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여호와를 알아야 여호와께 돌아갈 수 있습니다.
1.낫게하시고 싸매어 주십니다.(1)
2.그의 앞에서 삽니다.(2)
3.여호와를 알아야 합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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