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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서대장
오늘 주신 말씀 시9:10 말씀을 중심으로 [버리라 할 때 즉각 버림으로 더 큰 축복 받으라] 하나님이 버리라 하실 때 즉각 응답함이 축복의 첩경입니다 이러한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할 때 셩령님 의지하여 큰 은혜 받으시기 원합니다.
[버리다]는 말은 몇 가지 사전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절하다. 포기하다는 뜻인 [자나흐]는 강한 혐오나 거부의 뜻으로 쓰인다.
중지하다, 단념하다는 뜻인[하달]은 어떤 일 하는 것을 중지하는 뜻이다.
방임하다, 돌보지 않다 [나타쉬]는 상관하지 않고 내버려둔다는 뜻이다.
떠나다, 등지다[아자브]는 여호와와 언약을 버리고 배교하다는 뜻이다.
내던지다. 집어던지다[샬라크]는 사람이나 사물을 단념하고 거부하는 뜻이다.
취소하다, 포기하다[아피에미]는 모든 것 포기하고 곧 주를 좇으라는 뜻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버려야 할 것을 잘 버리고 버려야 할 때를 놓치지 않고 잘 버리는 것은 잘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붙잡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함으로 축복의 문턱에서 넘어지는 성도들을 볼 때 너무 안타깝습니다.
내 마음속의 더러운 생각, 언젠가 침투해온 더러운 영을 빨리 버리지 못하면 더러운 생각, 더러운 마음, 악한영의 영향 때문에 인생이 파멸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옛 사람의 습관을 잘 버리고 예수의 영 새사람의 마음으로 채워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하며 버려야 할 것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말씀을 통해 다음 세 멧세지를 주십니다.
첫째로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신다. (시9:10)
둘째로 죄악을 멀리 집어 던지고 스스로 돌이키고 살라(겔18:31-32)
셋째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더 큰 축복을 주기 위함입니다.(마4:20-22)
말씀을 따라가며 구체적으로 선포하시는 말씀 따라 주시는 은혜 받겠습니다.
첫째로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신다. (시9: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 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 하심이니이다.”
여기서 [주의 이름]은 그 이름으로 대변되는 존재의 전인격을 나타낸다.
즉 한 개인의 이름은 그 이름을 지닌 존재의 성품과 능력 , 인격 등을 함축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의로운 재판장으로서 의로운 자들을 위한 요새가 되시는 분이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달려가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과 더불어 친밀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가진 자들을 말한다.
이는 단순히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믿고, 삶의 현장 속에서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억울한 일, 불의한 자들로 인해 견딜 수 없는 고난을 당할 때에 그분에게 달려가서 의지하게 됩니다.
즉 주의 이름을 아는 자들은 고난의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나아가며 결국 그 거룩한 이름을 힘입어 도움과 안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를 찾는 자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는 주의 이름을 아는 자들이 왜 여호와께 달려가 의지 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그들은 주님이 어떤 분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기에 그분께 지체 없이 달려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여기서 [버리지; 아자브]는 목축업자가 짐승의 고삐를 늦추다. 짐승을 놓아주다 란 의미를 지닙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찾는 자들을 한 번도 그대로 방기한 적이 없음을 나타낸다 할 것입니다.
다윗은 목자일 때 선한 목자로써 양들의 필요를 채워주었을 뿐 아니라, 맹수로 인해 양이 위험에 처할 때에는 목숨을 걸고 양을 건져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선한 목자가 양을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애지중지하는 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선한 목자와 같이 하나님 품으로 찾아오는 양을 돌보시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만 확고한 안보를 보장 받으실 줄 믿으시기 원합니다.
사람들은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며 죽어가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공허한 것으로 여길지라도 그것은 결코 공허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공허한 것 같은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기억하시는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양떼들 즉 성도들의 부르짖음을 기억하신다는 것은 신원하여 준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아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땅에서 부르짖는 아벨의 핏 소리를 들으시고 가인에게 갚아주셨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악인에게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며 죽어가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악인들에게 압제를 받고 고통을 당하며 심지어 생명까지도 잃을 수 있는 우리 성도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으로 우리의 원수를 갚아 주실 것이므로 우리는 위로를 얻고 소망을 가질 수 있으며 의의 싸움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고후1:3-4“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세상이 가진 자들이 횡포와 힘 있는 자들의 폭력으로 인하여 세상의 약자들은 신음과 탄식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일은 나으려니 하지만 그렇게 쉽게 우리 곁에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모든 것을 공의로 판단하실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잊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악인들의 횡포와 약자들의 신음소리를 결코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 여러분은 공의의 통치자로서 모든 것을 간과하지 않고 죄를 적발하시고 선을 갚아주시는 그분을 생각하며 위로와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시지 않고 끝까지 보호해주실 줄 믿습니다.
둘째로 죄악을 멀리 집어 던지고 스스로 돌이키고 살라(겔18:31-32)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 죽고자 하느냐 /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 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이스라엘의 최대의 죄는 우상을 부어 만들고 자기들을 사신 주를 등 뒤에 내던져버렸다는 것입니다.
왕상14:9“ 네 이전 사람들보다 더 악을 행하고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 만들어 나를 노엽게 하고 나를 네 등뒤에 버렸도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기만 하면 멸망의 심판에 이르지 않을 것이란 말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죄인은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기만 하면 멸망에 이르지 않고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멸망에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란 과연 무엇일까요?
32절에서 [돌이켜]란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는 것이라 합니다. 돌이키다 즉 회개란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회개에는 변화라는 본질이 수반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회개는 지금까지 행하던 모든 죄악을 버리는 것입니다.
회개를 나타내는 원문 [슈브]는 가던 길에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회개란 지금까지 걷고 있던 길에서 완전히 돌이키는 것입니다.
거짓말 하던 자는 거짓말을 그치고 , 도둑질하던 자는 도둑질을 그치고 , 토색하던 자는 토색을 그쳐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를 외치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합니다.
여기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바로 지금까지 행하던 죄악을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삭개오는 이러한 회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으며 만일 누구 것을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19:8) 이렇게 고백합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제는 토색하는 모든 것을 금할 뿐 아니라, 자기가 토색한 것의 4배나 갚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정한 회개는 외적 변화를 수반하는 것입니다.
곧 죄악의 길에서 떠나 전혀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 회개에는 내적인 변화가 수반되는 것입니다.
즉 마음과 영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음과 영은 사람의 전 인격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회개란 죄를 향하여 있던 인격이 완전히 새로운 인격으로 변화되어 죄를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렇게 말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바로 회개를 통하여 새롭게 된 인격을 말합니다.
회개란 단순히 죄악에 대해 후회하고 , 뉘우치는 것, 눈물 흘리고 비통해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룟 유다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후회하고 뉘우쳤지만, 회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룟 유다에게 감정적인 고통은 있었지만, 외적 내적 변화의 열매가 전혀 없었습니다.
만일 그가 참된 회개에 이르렀다면, 그는 자살을 택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무죄하심과 그의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복음]이란 책은 정경이 아닐 뿐만 아니라 외경도 아닌 600-700년경에 지은 픽션에 불과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반하는 것은 가룟 유다와 비슷하였지만, 후회나 뉘우침으로 그치지 않고 내, 외적으로 변화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헌신함으로 초대교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돌이켜 회개하기 위해 내적 외적 변화가 우리 삶의 현장에 나타내게 하기 위해서 , 죄악을 버리고 이를 혐오하며 선한 의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렘26:13“ 그런즉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언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마음과 영을 새롭게 돌이키게 하시므로 우리의 언행심사가 진정으로 달라지기를 축원합니다.
구원은 진정 회개에 이른 사람 즉 죄를 들어 등 뒤로 멀리 던져버리고 새사람이 된 사람만이 받게 될 줄 믿습니다.
과거의 절망적인 기억들이나,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들에 연연하지 않고 더욱 자기를 채찍질 하는 자가 하나님의 뜻을 진정으로 아는 자입니다.
돌이켜 새로워지는 자는 과거보다 현재가 더 아름다우며 현재보다 미래가 더 복된 삶, 실로 영광스런 영원을 지향하며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셋째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더 큰 축복을 주기 위함입니다.(마4:20-22)
열심히 그물을 던지고 있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 명령
“ 나를 따라 오라”는 말이 있자마자 “저희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라고 말합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자마자 아무 거리낌 없이 자기들의 모든 그물, 즉 전 재산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좇았습니다.
이들의 결단은 위험한 모험으로 인간적으로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은 이렇다 할 배경도 지위도 재산도 권력도 없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들을 부르시면서 어떤 보상이나 지위를 약속도 않으셨습니다.
단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실제의 삶속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내 전 재산과 온전한 헌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부모 형제 재산을 버려두고 와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희생과 결단이 없이는 말만 무성하고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무능한 성도가 되어선 안 됩니다.
초대교회처럼 힘 있고 약동하는 성장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내 것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내어 놓아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가 되기 원한다면 모든 것을 내어 놓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할 때 교회가 변화되고 진정한 제자의 길을 걷게 될 줄 믿습니다.
본문 말씀으로 주님의 갑작스런 부름으로 인하여 안정된 세베대의 가정이 깨어지는 것은 물론 부자관계마저 해체되어 버리고 마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혁신하기 위해 창조적 파괴가 필수적입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기존의 낚은 것들을 깨는 작업이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변화하여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려면 먼저 낡은 틀을 부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재개발지역을 보면 잘 압니다. 아픔이 있습니다. 쫓겨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입자들의 입장은 더욱 딱합니다.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합니다.
그곳에서 쫓겨나 해체되는 교회도 있습니다. 성도들이 뿔뿔히 흩어집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인간의 죄로 인하여 망가져 버린 옛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 즉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성령과 진리의 새 공동체를 만들기 위하여 잠시 낡은 질서의 중심인 혈과 육의 공동체를 깨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새것을 위해 옛것을 부수라 , 버리라 하십니다.
사단은 빼앗고 파괴하기 위해 유혹할 뿐이지만, 주님은 새로운 생명을 더 풍성히 주시기 위해 우리의 낡은 것을 포기하라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배와 그물 을 버리고 아버지로부터 떠나라 하셨지만, 이를 통해서 더 큰 방주인 교회를 세우게 하셨고 , 잠시 부친을 떠나게 하심으로 더 많은 하늘 가족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순종하여 낡은 것을 버리고 하늘의 새로운 것들을 더 큰 축복으로 받으시는 주님의 복된 제자들이 되시기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까지 [버리라 할 때 즉각 버림으로 더 큰 축복 받으라]는 제목으로 세가지 멧세지를 선포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신다. (시9:10)
둘째로 죄악을 멀리 집어 던지고 스스로 돌이키고 살라(겔18:31-32)
셋째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더 큰 축복을 주기 위함입니다.(마4:20-22)
우리 주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나무에 달려 죽기까지 모든 지위와 권세를 버리셨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도 바울도 삭개오도 모든 것을 버림으로 더 귀하고 중요한 새 생명과 영생의 생명을 축복으로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가신 그 길을 따라가며 주님의 품성과 인격을 닮으므로 더 큰 축복 더 좋은 축복 받는 하나님을 웃게 하는 귀한 성도 여러분 되시길 축원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어 자녀 삼아 주심으로 구원의 백성 천국의 백성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부르시며 버리라 하신 모든 것을 버리고 포기하고 즉각 주님을 따를 때 더 좋은 것들로 풍성하게 축복해 주시는 지름길인 줄 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