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이 드러나는 변모
영성 지도자는 내담자를 위해 정확하게 보는 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하느님께서 인도해 주심에서 오는 것이라고 알아차려야 한다.
빛이 생겨라'(창세 1.3)는 '사랑이 생겨라'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부활 성야미사에서 두 예식이 주요한데 하나는 빛의 예식이고 다른 하나는 세례 예식이다. 이것들은 '새로움'이라는 생명의 가치를 말하고 있다. 이것은 빛을 받아 새로워지고 세례는 새로움 곧 다시 태어나는 것, 새 생명을 말한다.
새 생명을 미리 보여주는 '변모는 바뀌는 것이 아니라 본질이 드러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취하신 거룩한 변모도 본래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내신 것이다.
한편 하느님은 영이시다. 하느님께서 내 마음 안에 들어오고 세상에 들어오는 순간 성령이 되는 것인데, 우리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하느님을 성령에 이끌리고 예수님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예언자, 사제, 왕이시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달하는 이고, 사제는 영에 이끌려 백성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이며, 왕은 백성을 잘 다스리고 결정적인 판단을 하는 심판자이다. 그 심판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을 하기 위함이다.
한편 인간의 감정적인 사랑이 하느님을 온전히 사랑할 수는 없다. 그것은 온전한 사랑으로 다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의 감정과 느낌 너머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만나야한다. 그것이 참된 사랑이며 영적 잠재력을 깨닫도록 나를 초대한다. 그렇게 하면 나만 바라보는 이기주의가 되지 않고 참 사랑을 만날 수 있다.
마음은 집이다.
빠른 성장 속에 요즘 한국사회에서는 자존감은 높아지나 서로에 대한 공감은 없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몸, 마음, 영혼이 분리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를 이겨내려면 영혼의 감각을 발견하는 것이 필요하다. 항상 참기만 하는 생활 안에서 아픈 이들이 많아진다. 그래서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내 마음과 영혼을 발견하고 만나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사람을 이해하고 동반하는 여정이 필요하다.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곳은 마음이고 인간 행동의 근원이기에 마음을 영으로 돌리면 영성 생활이고 마음을 육으로 돌리면 육신 생활이 되는 것이다. 마음은 영혼의 본질이고 인간의 모든 힘이 모이는 삶의 중심이고 뿌리이며, 영혼과 육신의 모든 힘의 에너지를 존재하게 한다. 이다
마음은 일치의 원리이고 통합의 원리이며 '결합의 신비로움'이다. 마음은 다면적이고 영혼은 입체적이다. 마음은 하느님을 보는 기관이다. 베네딕토 교황에 따르면, 마음이 깨끗하다는 것은 몸과 영혼이 잘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말하며 육체를 정신에 잘 따르도록 길들이고 육체와 정신을 풍요롭게 하도록 돕고 이성과 의지를 따로 고립 시키지 않는 것이다.
즉 베네딕토 교황께서는 '마음은 서로를 연결해 주는 소통의 원리이다'라고 말하셨다.
내 영혼과 내 몸을 잘 이루게 해주는 것이 마음이 고마음이 건강 할수록 영혼과 육체가 잘 조화를 이룬다. 마음은 나의 모든 내외적인 요소들이 함께 하는 집이다.
마음의 침묵
마음은 집이다. 마음에는 하느님, 성령이 함께 거처 하시고, 내 생각과 몸이 거처한다. 마음의 침묵을 통해서 마음이 건강하게 되고, 마음에 면역력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침묵은 자신의 내적 외적인 원강을 가능하게 한다.
소란스러운 곳에서는 성령을 느낄 수 없고 고요한 곳에서 성령을 만난다. 이것은 은혜롭고 고독한 침묵이다. 자신의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대화 상대가 없을 때 이른바 생각들이 자신의 마음을 흔들지 않을 때 그 사람은 홀로 있는 것이며 이것이 마음의 고독이다. 그러므로 가장 깊이 있는 고독은 마음의 고독이다. 시선역시 고요함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눈의 침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온전한 영적 지도의 수련을 받지 않고, 영적동반을 알지 못하는 사제, 또는 수도자는 영적 지도를 할 수 없다. 영적인 수련을 받지 않고 영적인 인도를 하는 것을 교회의 수도전승에서 영적 허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영적지도는 수련을 한 사람, 수련을 알고 있는 자의 의무이기도 하다.
영의 식별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고 따라서 식별의 은사는 하느님의 신비를 만나고 내 마음의 비밀을 만나는 것이다. 식별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중심이고 영적지도의 중심은 식별이다. 그러므로 영적 지도자는 구원을 갈망하는 영혼을 돌보는데서 비롯되는 어려움들을 가까이 떠맡으려는 자세이기에 일과 의무감이 아닌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한다.
영성 지도자들은 영들의 활동에 민감해야 한다. 영안에서 일어나는 선한 시선은 말할 수 없는 기쁨, 명랑함, 용기, 쇄신된 힘, 생각의 고요함, 대범함, 하느님의 사랑이다. 삶 안에서 불러 일으켜지는 악한 시선은 영혼의 염려, 생각의 혼돈, 무질서, 낙담, 수도자에 대한 증오, 영적 나태, 싸움, 가족에 대한 부정적 기억, 죽음에 대한 두려움, 믿음에 대한 모욕이다.
고요를 깨는 모든 것은 악마로 부터 온다. 그 순간 거짓 빛과 거짓 영이 움직이게 된다. 마음의 내고 따라서 식별의 은사는 하느님의 신비를 만나고 내 마음의 비밀을 만나는 것이다. 식별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중심이고 영적지도의 중심은 식별이다. 그러므로 영적 지도자는 구원을 갈망하는 영혼을 돌보는데서 비롯되는 어려움들을 가까이 떠맡으려는 자세이기에 일과 의무감이 아닌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한다.
영성 지도자들은 영들의 활동에 민감해야 한다. 영 안에서 일어나는 선한 시선은 말할 수 없는 기쁨, 명랑함, 용기, 쇄신된 힘, 생각의 고요함, 대범함, 하느님의 사랑이다. 삶 안에서 불러 일으켜지는 악한 시선은 영혼의 염려, 생각의 혼돈, 무질서, 낙담, 수도자에 대한 증오, 영적 나태, 싸움, 가족에 대한 부정적 기억, 죽음에 대한 두려움, 믿음에 대한 모욕이다.
고요를 깨는 모든 것은 악마로 부터 온다. 그 순간 거짓 빛과 거짓 영이 움직이게 된다. 마음의 내적 가치를 발견 하려면 모든 행동 이전의 정신에 지향을 두어야 한다. 그것이 영의 식별이다. 식별의 기준은 평화스러운 상태인지 혼란스러운 상태인지를 말한다. 그 지향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예수님의 마음에 우리 자신을 봉헌하는 것이다.
마음기도
우리는 기도하는 스승을 만나고 싶다. 스승은 우리 안에 있는 의식과 마음이다. 의식 기도는 생각으로 하고, 마음기도는 가슴으로 한다. 몇 년 전 인기 있는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 등장하는 베테랑 선배의사가 말을 잘하는 젊은 후배의사에게 "진료와 수술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훈련과 경힘을 한 손으로 하는 거야"라는 대사를 하였다. 이처럼 우리의 기도도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 마음, 의식으로 할 수 있다.
마음기도는 한국 신앙인들이 잘 하는 기도다. 성체조배를 긴 시간 잘하는 한국 신앙인들이기에 자신의 생각을 세밀하게 분석적으로 하는 의식 기도도 필요 하다. 이중적인 말의 표현(여닫이, 미닫이, 나들목, 갔다 올게 등)이 많은 한국인에게 생활화된 문화가 되었는데, 이는 마음기도와 의식기도 모두 잘할 수 있다는 표시라고 볼 수 있다.
기도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요함 속에서 머무는 침묵이다. 하느님과 일치 하도록 돕는 것이 침묵이라면, 소란스러움 속에서는 일치가 아니라 분열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묵주기도와 이콘기도는 문맹자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시편 기도는 무의식적으로 습관화된 욕정을 가라앉게 하고 무절제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의 탄원과 청원 기도인 시편 기도는 교회 역사에서 사제, 수도자들에게 기도의 표준이 되었다.
시편 기도와 묵주 기도도 의식 기도이지만, 한국신앙인들에게 묵주알을 많이 돌리는 그런 경우 로사리오의 기도가 마음기도로 변화된다. 마음기도는 깊은 침묵의 고요로 인도하고, 의식 기도는 깊은 성찰로 이루어진다.
성체조배와 이콘기도는 마음기도이고 이것은 바라보는 기도다. 의식기도는 생각하는 기도 곧 성찰하는 기도인데, 생각을 바라보면서 행동을 해야 하는 기도다. 성찰이 없으면 행동으로만 생활하게 된다. 유럽 신앙인들은 의식기도를 하고 한국 신앙인 들은 마음기도를 하지만 무엇보다도 균형을 이루는게 중요하다.
내가 누구인지를 잘 바라보아야 하기에 식별은 중요하고 식별을 잘하게 되면 은사를 받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신비를 알고 내 마음안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콘기도는 문맹자들을 위해 성화를 그려서 관상을 하게 돕는 것으로써 바라보는 기도다. 이콘을 바라보며 기도하면 그 신비를 수락하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데 그 준비가 침묵 속에서 드리는 기도가 된다. 영혼과 정신과 육체의 일치를 위해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이므로 항상 마음을 든든히 하고 마음의 근육을 기르고 마음을 맑게 하고 정화를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빛으로 비추는 세상을 마음을 통해서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는 고요함 속에서 자신과 하느님의 관계를 파악한 후 관상에로 향하게 된다. 능동기도는 내가 하는 기도이고 묵주기도, 영적독서, 성무일도가 그 예(例)이다. 관상기도는 되는 기도이고 하느님이 해 주시는 것이며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이 두 기도의 중간이 되는 능동과 수동을 함께하는 기도는 묵상, 성찰, 마음기도다. 그래서 몸, 마음, 영혼이 응집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곧 마음을 든든히 하면 몸과 영혼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응집 기도
캐나다 에드먼튼 도시에 마리아 센터가 있다. 마리아 센터 곧 마돈나 하우스는 동방영성을 살아온 러시아 영성가 도로시 캐서린이 서방에서 살면서 동방영성과 서방영성의 통합영성을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1층은 몸 기도를 수련하는 곳으로 몸을 보호하고 노숙자들을 위한 사회복지를 하는 곳이다.
2층은 영의 식별을 수련하는 곳으로 영의 식별, 의식성찰, 의식기도, 영혼 동반과 영혼 돌봄을 하는 곳이다. 3층은 이콘을 그리며 기도를 하는 마음기도를 수련하는 곳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의 몸, 마음, 영혼을 돌보는 것이 한 장소에서 응집되어 어우러져 있다. 이곳 1층에 '나는 세 번째다'(I am third)라는 표지가 있다. 우리에게 '첫째는 하느님' 이고 '둘째는 이웃'이고 '셋째는 나'라는 영성을 드러 내는 마음을 움직이는 문구다. 관상을 하는 것은 마음으로 어떤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내려놓고 궁극적 진리 안에서 하느님과 관계 하는 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관상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고 그 마음은 하느님의 자비다. 마음은 집이다. 안방이 따뜻하고 온화할 때 식구 들이 다함께 모이듯이 내 마음의 방은 하느님이 거처 하시고 그 마음에 인간의 의식, 지성, 자유를 구비한 근본적인 인격의 원천을 만들어준 하느님께 신비하게 작용하는 장소, 마음이다.
마음기도는 생각과 관계된 모든 것을 내려놓는 기도이고 의식기도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하는 기도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가 하느님과 닮도록 인도하신다. 본래 인간은 완벽한 존재로 창조되었지만 하느님으로 부터 멀어진 것은 인간의 의지대로 살아서 멀어진 것이 죄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회복시켜 주셨기에 마음기도를 잘 하면 우리의 영혼은 구원된다.
기도는 대화이자 침묵이다. 침묵을 해야 하느님과 잘 대화 할 수 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하느님 앞에서 젖어들고 하느님이 주신 능력 또한 잘 써야 한다. 평화로운 마음상태를 방해하는 것을 제거하기 위해서 마음의 맑음에 주의를 기우려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과 마음 그리고 생각이 서로 응집된 모습으로 드리는 기도를 해야 한다. 몸으로는 봉사, 마음은 자유, 생각으로는 사랑을 하는 응집된 기도를 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몸과 마음 그리고 생각이 흩어져 파편처럼 나누어지면 우리는 온전한 기도를 할 수 없고, 병든 것처럼, 몸과 마음과 생각이 통하는 기도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