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뽑기 행운 하고는 별 인연이 없는 나에게 지난 4월초 일본 행 3박4일 크루즈 여행의 행운권 추첨에 당첨 통보를 받았다. 2900여명이 응모하여 200명의 여행객을 초대하는 행사에 덜컥 당첨되었다. 전화번호와 이름만 제출한 것인데, 내심으로는 여행 좋아하는 사람을 잘도 알아보는구나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마 3년전 천안함 부상자 하사관 지원 모금행사에 나 홀로 고군분투하여 백여명의 지인으로부터 3만-10만원씩 십시일반 모금운동을 전개하여 두 차례나 부상자 가족을 도운 일에 대한 보답일지도 모른다고 자위도 하면서 6/1-4 일 짧은 여행 일정을 기다렸다.
크루즈 여행은 20 여 년 전에 북유럽 여행시 핀란드-스웨덴-노르웨이 바다를 2박3일 짧은 구간 맛보기 여행을 한적이 있었던 이후로 처음이다. 가끔씩 나의 카톡으로 크루즈 여행객 모집 광고도 날라오고, 어느 크루즈 여행사는 6개월 세계일주 프로그램에 일인당 8천만원 요금 (베란다가 바다로 향한 특실)으로 주인을 잘못 찾아 나 같은 가난한 여행자에게 날라오곤 했지만, 크루즈는 항상 나 하고는 거리가 먼 여행 방식이고, 부부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간 잡비 포함 이억이니 한번 하고 집 팔아야 하는 구나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여하튼 기쁜 마음으로 최소경비 TAX 15만원과 승무원 팁 50불 정도를 부담하였는데, 부산까지 왕복 자동차 운전과 시간을 고려하여 앞뒤로 하루 식 더하여 영업 출장을 포함하여 동선을 짰지만, 불경기에 대부분 기업이 투자보류와 방문 사절에 직면하여 영업 겸업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불경기를 나타내듯 부산항에 봄비가 내린다.
지난 3년반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크루즈 운항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이태리선사가 주인이 Costa Serena호는 114,500톤으로 승객만 3,780명, 승무원이 1100명 근무하는 초대형 크루즈이다. 폭이 35메타에 길이가 290메타에 객실이 1500개, 층수가 14층, 대극장이 1350명 수용, 대형 레스트랑이 4개, 바 라운지 만 13개, 카지노, 수영장 4개, 마사지 등 없는 게 없는 호화판 시설을 자랑한다. 주로 부산을 베이스로 일본, 동남아, 알라스카, 지중해, 남태평양 등 다양한 코스를 연중 운행하고 있다. 크루즈의 길이는 대충 대형 항공모함의 길이가 300메타 전후이고, 폭이 70메타로 활주로를 확보해야 하니 폭은 넓으나. 톤수는 크루즈가 더 큰 편이다. 초대형 항공모함인 니미츠 급이 102,000톤에, 333 메타 이고, 엔터프라이즈 함이 93,500톤에 길이가 342메타 이니 대충 크루즈와 항공모함의 사이즈가 비슷한 반면 항공모함의 주업무가 전투인 만큼 승무원이 5-6000천명으로 훨씬 많다. 문득 50여년전 해군 중위 시절 부산항에 입항했던 엔트프라이즈(Enterprise)호 (지금은 퇴함)를 하루동안 견학하면서 각종 시설을 돌아보았던 생각이 난다.
부산항을 떠날 때 내리던 보슬비가 나가사기에 도착해도 비가 내린다. 오랜만에 일본의 유명한 엔가 <나가사기와 교모 아메 닷다> 라는 애창곡이 생각난다. 비가 자주 오는 편이 아닌 나가사기가 오늘도 비가 오는구나 하는 이 노래를 친구 그룹 카톡에 올렸더니, 이내 유투브로 친한 후배가 가사를 전송해 준다. 참 빠르고 편리한 세상이다. 이 노래는 역시 <미조라 히바리>가 부른 것이 애절한 감정의 소리에 애간장을 태우는 감칠 맛이 있다. 고교 시절 이 노래를 접했으니 무려 60년 가까이 흘러 갔구나. 나가사기는 부산항과의 이미지도 비슷하고 하여 점감이 가는 도시인데, 일본을 업무 등으로 50여차례 들락거리면서도 여기는 처음이다. 나가사기의 대명사는 개화기 일본의 서양제국 특히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와 1500연대에 교류가 시작된 개항지여서 데지마라는 개화기의 유럽인 거주지가 유명하다. 또 하나의 상징은 이른바 히로시마에 이은 2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제2차 세계대전을 종료시킨 사건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당시 고꾸라에 투하 예정이었다가 안개와 구름으로 미국 전투기의 시야가 확보되지 못해 대타로 나가사기가 두 번 째 원자탄의 비극의 현장이 되었다. 도시 중심 곳곳이 원자폭탄 피폭 현장과 연결되어 지금은 원자탄이 관광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
원자탄 박물관과 평화공원 주변을 거닐어 과거의 사진과 온갖 잔해물을 구경한다. 당시의 사진 중에 얼굴에 피폭 상처가 있는 젊은 앳된 어머니가 역시 얼굴에 작은 부상을 입은 1-2살짜리 애기에 젖을 물리고 있는 시진이 특히 내 눈길을 끈다. 진한 모성애가 피폭현장에서 카메라 앵글에 잡혀 무한한 감동을 준다. 마침 수학여행 철인지, 오랜만에 코로나에서 해방되어서 인지 일본 소학교-중학교 학생이 많이 보이고, 묵념을 하고 있다. 과연 이 학생들이 현재 미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냥 옛 비극의 흔적에 대한 상념만 가지는 것인지 이방인인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나가사기 그리고 다음날 구마모토에 초대형 크루즈 선박이 입항하는 시간에 맞추어, 각 도시의 시민, 공무원 그리고 학생들의 여행객에 대한 환영이 대단하다. 코로나로 오랜만에 가지는 행사여서 인지, 나가사기에서는 가모노를 곱게 차려 입은 여학생 밴드가 트램펫 등을 신나게 연주해주고, 구마모토에서는 초등학교 애들 수십명이 고사리 손으로 환영 시그날을 보낸다. 저녁에 도시 관광을 마치고 귀함하는 시간에는 고교생 오케스트라가 50명이 부두에서 연주를 하면서 환송해주니 친일 여부와 관련 없이 가슴이 뭉클하게 한다. 마치 평창올림픽 유치나 부산 엑스포유치 판정 사절단이 시민 환영객의 열렬한 환영에 가장 감동하여 찬성표를 던지는 마음을 이해될 듯하다. 우리나라는 크루즈 입출항시 일본이나 다른 작은 나라처럼 신경을 써 환영행사와 국위선양을 해줄까?
나가사기 항구로 크루즈가 입항하는 부두 입구에 미쓰비시 조선소가 왼쪽으로 훤히 보인다. 아마도 이차대전 당시에 일본의 초대형 항공모함을 여기에서 건조하였겠구나 상념에 젖어 있는데, 크루즈 선상에서 훤히 보이는 1,2 도크에 초라한 일본 연안 경비정이 한 척씩 초라하게 도크에 보여서 마치 폐허가 된 조선소 풍경처럼 보인다. 아마도 한국과 중국 등에 조선 건조 기술을 다 전해주고, 이제는 앙상한 폐허만 남아 있는 게 일본의 조선산업의 현주소를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 같다. 부산이 350만 대도시로 발전한 반면에 비슷한 규모였던 나가사기는 그대로 130만 도시로 정체되어 있으나, 이방인 눈에는 동경 보다 살기 좋아 보이는 도시로 보인다. 옛 추억만 먹고 사는 도시인가? 주요 관광지 주변은 역시 나가사기 카스텔라, 나가사기 잠뽕 집이 자주 눈에 뛴다.
크루즈는 초대형이라서 저녁 무렵에 항구를 떠나 다음날 아침까지 다른 도시로 항해를 하는데, 침실이나, 식당 기타 여러 유흥장에서 전혀 미동도 느끼지 못한다. 태풍이 심할 경우는 군함이나 일반 여객선처럼 좌우, 전후 흔들림이 어떨까 궁금해진다. 레스트랑에서 식사를 마친 후에는 대형극장에서 현란한 쇼 공연과 뮤지컬 공연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여러 바나 라운지에는 댄스파티나 춤 공연이 다양하다. 한국 중년 여인들의 춤 솜씨와 용감성은 세계적 수준이다. 노래방에서 몰래닦은 송씨를 여지없이 발휘한다. 또 다른 홀에서는 사교 댄스가 한창이다 한 10여명의 춤꾼 카플이 그간 갈고 닦은 사교 댄스의 실력을 보여 준다. 화려한 드레스와 반짝이는 양복 정장인 춤 꾼 카플이 전국 여러 지방의 대표선수처럼 지르박, 왈츠, 삼바, 등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무대에서 실력을 뽐낸다 마침 이날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 50여년전에 한달 사교춤을 배우다 그만둔 게 후회된다. 레스트랑에 갈 때 마다 지나치는 카지노는 가난뱅이 여행자에게는 그냥 그림의 떡일 뿐이다. 선상의 외부 데크에서 마주치는 섬들과 시원한 바닷바람이 얼굴에 와닷는 느낌이 참 좋다. 3,4,5층의 복합적 극장에서는 쇼와 뮤지컬 공연 이외에도, 크루즈 근무 직원을 일일이 소개하면서 친교를 다지는 행사도 있다. Eco friendly처럼 human friendly하게 고객과 승무원을 인간 대 인간으로 상하관계 없이 교류하는 HR (human relationship) 정책이 돋 보인다. 이태리 선적이라 사교성도 좋고, 칸소네나 귀에 익은 팝송도 자주 들리고, 쇼를 담당하는 entertainer 들도 프로 정신으로 무장되어 최선을 다하는 것 같다. 배가 바로 그네들의 직장이고, 여행객이 고객이니 회사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젊은 시절 우리네들 삶의 태도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문득 코로나 3년간 이들 종업원들은 직장 없는 고통의 기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회상된다. 그래서 이번 항해에 그네들이 더욱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두번 째 귀항지 구마모토는 외곽에 아소산 화산으로 유명한 작은 도시이다. 버스로 두 시간여를 달려 작은 신사를 탐방하고, 아소산 정상 부근에서 화산박물관을 관람한다. 크루즈 부페 식사에 좀 식상한 입맛을 일본 정식으로 달래어준다. 점심 후 화산에서 분화구에서 나는 연기가 보이는 정상 주변으로 최대한 허용된 거리까지 가벼운 트레킹을 한다. 정상 주변에 한라산 백록담 크기의 두개의 호수와 초원을 거니는 맛도 상쾌하다. 귀함 길에 들른 이마트 같은 대형 슈퍼 백화점에서 좋아하는 일본식품 우메보시, 가마보꾸, 우니 기타 반찬거리를 싼 값에 잔뜩 샀다. 나의 일본 여행은 어김없이 또 반찬거리 장보러 일본 간 셈이 된다. 구마모토를 저녁에 떠나 부산항으로 귀항하는데 약 15시간 정도 걸리는 듯하다. 부산항 북항 부두에 입항할 때 보이는 오륙도와 신선대와 해운대 초고층 아파트의 경치는 우리나라가 어느덧 선진국이 되었구나 하는 느낌을 준다. 조용필이 돌아와요 부산항에 라는 노래를 크루즈를 타보고 느낀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크루즈 여행은 나 하고는 취향이 먼 여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이번 여행으로 좀 없어 지는 느낌도 든다. 언젠가 속초-우라디보스톡- 일본 북해도- 아오모리- 부산을 일주일간 여행하는 코스를 희망해 본 적도 있고, 시아틀(Seatle)로 날라가서 알라스카의 빙하 투어를 한번 해보았으면 한 적도 있지만, 이후 또 다시 Costa Serena에 다시 오를 기회가 있을지 나 자신도 궁금하다. 맛보기는 결국 구매로 이어지게 만든다는 영업철학이 생각난다. 나흘간 홀로 배 구석 구석과 긴 갑판을 다니면서 걷기 운동도 하면서, 대형 선박의 구조를 세세히 관철해 보았다. 우리나라가 LNG나 Offshore기술선박은 만들면서도 세심한 디자인을 요하는 크루즈는 도저히 만들 수 없을 거 같은 생각도 든다. 생활화된 entertainment 산업이 수반되어야 하고, Total technology integration 능력이 필수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흘간의 맛보기 크루즈 여행이 어느덧 상상속의 6개월간 세계일주 순방 여행 프로그램에 유혹시키는 나비효과를 가져옴을 느껴 본다. 꿈이지만 상상은 자유다.
(202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