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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정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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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無)에서 1(有)을 만들어야만 창의적인 걸까요? 0.001만 달라도 창의적이에요. 창의성이란 점(点)이 아니라 선(線)입니다.
창의력은 새로운 걸 생각해내는 능력이다. 지금껏 없는 새로운 걸 제안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많은 사람이 창의적이길 바라지만, 정작 자신이 창의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이유다. 김세직(경제학) 서울대 교수는 “1이 돼야 비로소 창의적이라는 생각이 창의성을 키우는 데 방해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창의성은 이분법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정민 디자이너
손꼽히는 거시경제학자인 그가 창의성에 꽂힌 건 경제 때문이다. 그는 2016년 ‘장기경제성장률 5년 1% 하락의 법칙’을 발견했다. 한국의 장기경제성장률이 1990년대 이후 5년에 1%씩 하락 중이란 얘기다. 기준년으로부터 앞뒤로 5년, 총 11년의 경제성장률을 평균한 장기경제성장률은 한 나라 경제의 체력을 보여준다. 한국 경제의 체력이 떨어지는 건 기술 격차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선진국과 20년 이상 기술 격차가 있어 특허가 만료된 기술을 베껴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격차가 20년 안쪽으로 들어오자 더는 베낄 게 없었다. 새로운 걸 만드는 것 외엔 성장할 방법이 없다. 창의성이 중요한 이유다.
김 교수는 “0.1도, 0.4도, 0.8도 창의적”이라고 했다. 창의성은 1이라는 점이 아니라 0에서 1까지 무한대로 존재하는 선이라는 것이다. 창의성을 선으로 인식하면 누구나 창의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발 더 나아가 창의력은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어제 0.1이었던 창의력이 오늘은 0.2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어떻게 하면 창의성을 키울 수 있을까? 30일부터 ‘창의력을 키우는 7가지 방법’이라는 주제로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에 칼럼을 연재하는 김 교수를 만나 직접 물었다.
손꼽히는 거시경제학자인 김세직 교수가 창의성에 천착하는 건 경제 때문이다. 창의적인 인재 없이 경제 성장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제 남의 기술을 베껴 성장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전민규 기자
Intro. 창의성에 꽂힌 경제학자, 왜
Part1. AI는 창의적이지 않다?
Part2. 창의력을 키우는 일곱 가지 방법
Part3. 한국에선 창의적이 될 수 없는 이유
Part1. 인공지능(AI)은 창의적이지 않다?
김세직 교수는 “창의성은 누구나 가지고 있고, 얼마든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18년간 독특한 방식의 수업을 진행하며 이 사실을 절감했다. 그의 수업은 ‘열린 질문’으로 유명하다. 수업 일주일 전 학생들에게 정답이 없는 질문을 과제로 던진다. 시간을 그려 보라거나 불의 나라에서 얼음을 화폐를 쓰는 법을 묻는 식이다. 수업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답을 발표하고, 토론을 벌인다. 발표와 토론이 마무리되면 김 교수는 과제와 관련된 경제학 개념을 설명한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내고, 토론하게 하는 수업으로 창의력이 크나요?
정해진 답이 없으니 나만의 답을 낼 수밖에 없잖아요. 그 과정에서 새로운 걸 생각하고요. 그렇게 정리한 생각을 가지고 토론을 하면서 내 생각의 문제점을 발견합니다. 전혀 다른 관점을 접하기도 하죠. 그러면서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걸 연습해요. 그게 바로 창의성이죠.
창의력도 연습하면 커지나요?
운동하면 근력이 생기듯이 새로운 생각을 해내다 보면 창의력도 커져요. 학기가 끝나면 늘 학생들에게 창의력이 커졌는지 묻는 설문을 해요. 평균적으로 20명 중 19명은 그렇다고 답하죠. 매 학기요. 실제로 학기 초와 학기 후반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를 비교해 보면 확연히 차이가 나기도 하고요.
챗GPT가 소설과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요. 예술이야말로 가장 창의적인 영역이잖아요. 마지막까지 인간의 영역일 거라고 믿었던 예술이 오히려 먼저 무너졌어요. 창의성이 과연 인간의 전유물일까요?
우리가 쓰는 AI는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해 그 안에서 패턴을 찾아냅니다. 그 패턴을 적용해 답을 만들죠. 학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답할 수 있어요. 패턴에 기반해 추론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결정적인 약점이 있어요. 먼저 뭔가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인간이 요구해야만 그 대답으로 결과를 내놓죠.
그렇다면 챗GPT가 만들어낸 예술 작품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그걸 사용하는 사람이 뭘 요구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아요. 창의적으로 질문해서, AI를 이용해 누구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걸 만들어낼 수도 있어요. 그럼 창의적인 작품이 되겠죠. 하지만 사용하는 사람이 그렇지 못하다면 그 작품도 그렇지 못할 거예요. 피카소처럼 그려 달라는 식의 요구만 한다면 원작과 비슷한 작품을 내놓을 테니까요.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창의성은 더 가치가 빛날 겁니다. 창의적인 사람이 사용하면 AI도 창의적인 존재가 될 수 있으니까요.
기술은 늘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했어요. 하지만 화이트칼라 지식 노동은 위협받지 않았죠. AI 등장으로 상황이 달라졌어요. 육체노동보다 오히려 지식 노동이 더 큰 위협에 직면해 있으니까요.
AI와 경쟁해선 안 됩니다. 기계와 대결해 이긴 인간은 인류 역사상 없었어요. 아무리 베를 잘 짜는 숙련공이라 해도 방직기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삽질을 잘해도 굴착기를 뛰어 넘을 수 없고요. 방직기·굴착기와 경쟁할 게 아니라 그걸 활용해야 해요. AI도 마찬가지예요. AI는 그 어떤 인간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학습했어요. 교수인 저보다 더 많은 논문을 읽었고요. 이렇게 똑똑한 AI를 쓸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생산성은 얼마나 크게 벌어질까요? 한발 더 나아가 AI를 창의적으로 쓸 수 있다면 생산성은 얼마나 향상될까요?
김세직 교수는 "AI의 등장으로 인간의 창의성은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AI와 경쟁해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며 "창의성을 활용해 AI를 이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민규 기자
Part2. 창의력을 키우는 일곱 가지 방법
특허가 만료된 기술은 이미 다 베꼈다. 특허가 만료되지 않은 기술을 베끼다 국제적인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2011년 시작된 애플과 삼성의 소송은 2018년까지 이어졌다). 이제 정말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AI까지 등장했다. 패턴을 깨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AI와 질 게 뻔한 경쟁을 해야 한다. 창의성은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 됐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창의력을 키울 수 있을까? 김세직 교수는 7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김세직 교수가 제안하는 창의력 훈련법
①비현실적인 상상하기
②논리적 가능성 생각하기
③다르게 생각하기
④의문 던지기
⑤파격적으로 상상하기
⑥창의적일 용기 내기
⑦끊임없이 연습하기
비현실적 상상하기와 논리적 가능성 생각하기는 한 묶음 같아요. 비현실적인 걸 상상한 뒤 그걸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논리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결국 비현실을 현실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애플의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 테슬라 창업가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렇게 했죠. 손에 들고 다니는 컴퓨터는 비현실적이었어요.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기 전까진 말이죠. 하지만 잡스는 ‘컴퓨터를 손에 들고 다닐 순 없을까’하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뭘 해야 할지 논리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생각했죠. 그 가능성을 하나하나 실행하면서 작동하는지 확인했고요. 그 덕에 전 세계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쓰게 됐죠.
비현실적인 상상을 해보자 마음먹어도 언뜻 떠오르지 않아요.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과제로 줄 열린 질문을 만드는 데 상당한 시간을 써요. 학생들이 답을 찾는 데 일주일이 걸리면, 제가 질문을 만드는 데도 일주일이 걸려요. 중요한 건 제가 늘 질문을 찾아낸다는 겁니다. 쉽게 떠올릴 순 없지만 생각하면 결국 떠올릴 수 있죠. 예술 작품 등에서 비현실적인 상황을 찾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저는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이란 작품을 좋아하는데요. 이 작품은 말이 안 되는 장면을 그렸어요. 하늘은 낮인데, 집 앞 가로등을 보면 밤이죠. 마그리트는 낮과 밤이 동시에 존재하는 비현실적인 생각을 하고, 그걸 가능하게 할 논리적 방법으로 작품을 만든 셈이죠.
비현실적인 상상을 하고 논리적 가능성을 생각하는 건 창업가나 예술가에겐 유효할 것 같아요.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그럴까요?
평범한 회사원에게도 필요해요. 지금 한국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팔리는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 같은 한 두 기업 외엔 떠오르는 기업이 없으실 거예요. 회사원들이 비현실적인 상상을 하고, 그걸 가능하게 할 논리적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hello! Parents가 돈을 주고 기사를 사 보는 비현실적인 상상을 하고, 그걸 가능하게 할 방법을 찾는 것처럼요.
일상적인 삶에서도 이런 창의력 훈련이 유용할까요?
해외여행을 갔어요. 컵라면 하나를 가방 깊숙이 챙겨 갔죠. 호텔 방에서 뜨겁게 끓인 물을 라면에 붓는 순간, 아뿔싸 나무젓가락을 안 챙겨 왔어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글쎄요. 마셔야겠네요. 라면을 포기할 순 없으니까요.(웃음)
라면을 버리진 않았네요!(웃음) 인생을 살다 보면 끊임없이 문제에 봉착합니다. 컵라면을 먹으려는 데 젓가락이 없는 상황 같이요. 그럴 때 창의력은 선택지를 넓혀줍니다. 관습적 사고에 갇혔다면 떠오르지 않았을 아이디어가 생각날 테니까요. 평소 창의력을 훈련해 두면 정말 풀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해결할 수 있다!”
어떤 문제를 풀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할수록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해요. 사람마다 좋아하는 건 다 달라요. 뭔가를 좋아하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인 거죠. 그래서 창의적이려면 나 자신을 알아야 해요. 또 관습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따라야 하고요. 가장 창의적인 것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 사회에 살든 생긴 대로 살기란 쉽지 않아요. 사회적 동물로서 타인의 시선이나 관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잖아요.
그래서 창의성을 키우려면 두 가지 태도가 필요해요. 용기와 끈기죠. 누가 뭐라 해도 나 자신이 될 용기, 그리고 그걸 지속하는 끈기 말입니다. 가수 박진영씨가 자신의 끼를 억누르고, 공부 꽤나 하는 문과생이라면 다들 선호하는 변호사가 됐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시가총액 3조원 규모의 JYP엔터테인먼트란 회사는 없었겠죠. 노래를 좋아하면서 ‘가수 박진영’을 포기하고 ‘변호사 박진영’이 되지 마세요.
김세직 교수는 "창의성은 누구나 훈련하면 키울 수 있다"며 7가지 훈련법을 소개했다. "더불어 용기와 끈기를 가져야만 창의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민규 기자
Part3. 한국에선 창의적이 될 수 없는 이유
김세직 교수는 “창의성의 핵심은 주체성과 개인성”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개성을 펼치긴 쉽지 않다. 그러기엔 일찍부터 해야 할 공부가 너무 많다. 유치원 입학할 나이면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해야 하고, 초등학교 3학년이면 수학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 주요 과목은 예외 없이 제 학년보다 앞서 진도를 나가는 선행 학습이 기본이다. 대치동의 최상위권 아이들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의 정석’을 푼다는 말은 괴담이 아니다. 실제 일부 학원에선 그렇게 가르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제 학년보다 앞서 고3까지의 과정을 미리 끝내면 뭘 할까? 그때부터 자유롭게 하고 싶은 공부를 할까? 그렇지 않다. 이제부터 반복이다. 언제까지? 수능까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시대 변화를 파악하지 못한 어리석은 엄마들이 문제인 걸까? 김 교수는 “개인은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개인의 선의에 기대서는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이다.
선행 학습이 합리적 선택의 결과라고요?
시험에 나오는 내용은 정해져 있어요. 일정 범위 안에서 정답을 고르는 문제가 나오죠. 이 시험으로 대학 입학을 결정해야 하니, 변별력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꼬아 내는 어려운 문제가 나올 수밖에요. 이런 유형의 시험을 잘 보려면 결국 12년 동안 최대한 꼼꼼히 여러 번 반복해서 공부할 수밖에 없어요. 예전엔 중·고 6년 동안 그랬는데,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하는 느낌입니다.
그렇게 공부해서는 모방형 인재가 될 수밖에 없잖아요. 장기경제성장률이 제로 수준에 달한 지금 필요한 인재는 결코 아니죠. AI 시대에도 맞지 않고요.
시간은 정직해요. 정답을 잘 맞히기 위한 지식을 습득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면서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는 없어요. 문제는 AI 시대에 직업을 갖고 살아가기 위해선 창의력이 필요하지만, 그걸 키워선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는 겁니다. 교육 시스템 자체가 거대한 모순을 안고 있어요. 시대가, 산업이 원하는 인재가 아닌 인재를 기르고 뽑고 있으니까요. 이런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개인에게 다른 선택을 하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요?
결국 교육 개혁이 답인가요? 수십 년간 모든 사람이 부르짖었지만, 그 누구도 성공한 적이 없어요.
입시가 바뀌어야 해요. 그래야 교육도 바뀝니다. 창의적인 교육을 하겠다고 말하면서 5개의 선택지 중 정답을 고르는 시험으로 평가하면 소용없습니다.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게 입시를 바꾸지 않으면 결코 교육은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김세직 교수는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 얘기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 창의성에 대한 신념을 가져야 비로소 창의적이 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전민규 기자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 얘기를 꺼냈다. 영생을 준다는 성배를 찾아 나선 인디아나는 고생 끝에 성배가 보관된 사원에 이른다. 그를 기다리는 세 개의 관문 중 마지막은 아득한 낭떠러지가 있는 계곡을 건너는 것. 다리 없는 계곡 앞에서 인디아나는 주저한다.
한국에서 창의적으로 사는 건 낭떠러지 앞에 선 인디아나와 같아요. 발을 내디디면 떨어질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성배를 얻기 위해선 발을 떼야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결코 발을 뗄 수 없겠죠.
영화 속 인디아나는 결국 발을 뗐다. 그리고 그 순간, 착시 효과 때문에 보이지 않던 다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발을 떼기 전 인디아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믿어야 도약할 수 있다(the leap of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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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