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743
김영승
키 작은 선풍기 그 건반 같은 하얀 스위치를
나는 그냥 발로 눌러끈다
그러다 보니 어느날 문득
선풍기의 자존심을 무척 상하게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나는 선풍기한테 미안했고
괴로웠다
-너무나 착한 짐승의 앞이빨 같은
무릎 위에 놓인 가지런한 손 같은
형이 사다준
예쁜 소녀같은 선풍기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어린이 동화극에 나오는 착한소녀 인형처럼 촛점없는 눈으로
'아저씨 왜 그래요' '더우세요'
눈물겹도록 착하게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얼 도와줄 게 있다고 왼쪽엔
타임머까지 달고
좌우로 고래를 흔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더운 여름
반 지하의 내방
그 잠수함을 움직이는 스크류는
선풍기
신축 교회 현장 그 공사판에서 그 머리 기름 바른 목사는
우리들 코에다 대고
까만 구두코로 이것저것 가리키며
지시하고 있었다
선풍기를 발로 눌러 끄지 말자
공손하게 엎드려 두 손으로 끄자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을 닮았다
핵무기도 십자가도
콘돔도
이 비 오는 밤
열심히 공갈빵을 굽는 아저씨의
그 공갈빵 기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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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743
포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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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4
15.12.14 10:2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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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도 발로 막 껐는데?
혹 선풍기 발로 끄듯, 누군가에게 막 대하지 않았나?
내가 무슨 권력이 있어서 막 대했겠나....
잘 생각 해봐~
친하다고 그럴수도 있고 우습게 보여서 그럴수도 있었어.
조심해야지~~
인간이 만든것은 인간을 닮았다 핵무기도 십자가도 콘돔도 공갈빵 기계도 .....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를 닮은 욕망들을 낳고 낳으며 자연으로써의 인간의 본질을 잃어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