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마가복음 4장 26절에서 29절 말씀)
예수님께서는 4:1~9에 하신 씨뿌리는 비유와 연결하시면서 이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앞의 비유를 들었던 사람들은 어쩌면 낙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열매의 수확여부가 씨가 아닌 땅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면 우리는 낙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솔직히 우리 모두는 나쁜 땅의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는 땅과 관계없이 자라난다고 표현합니다. 앞의 비유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두 가지는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개념으로 보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 땅과 씨 모두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강조점에 따라 땅을 더욱 강조할 때가 있고 씨를 강조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도 낙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교만하고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합니다. 사랑과 공의 모두 동일하신 하나님의 성품이지만, 때에 따라서, 청중에 따라서 강조되는 것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씨와 땅의 비유에서 땅을 강조하셨을 때는 청중들의 각성을 촉구하신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을 대적하고 있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들으라고 말씀하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좋은 땅이 아니라고 낙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늘처럼 씨의 능력을 강조하는 것이 맞습니다. 스스로 돌아본다는 것은 이미 좋은 땅에 들어선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메시지에는 자체의 능력이 있습니다. 물론 땅에 따라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말씀에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너무도 존중하시는 하나님의 겸손과 인내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기본적으로 능력이 있어서 우리 안에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면서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덧 우리 안에 푸른 줄기가 나고 꽃봉오리가 나고 익은 곡식이 나고 그 곡식이 영글 것입니다.
아! 오늘 말씀이 있어서 참 위로가 됩니다.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