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군사명저]
크레펠트의 『보급전의 역사』
 
보급·병참이 치밀하다고 반드시 승리하지는 않는다
 
현대전 보급 물자, 식량서 무기로 급격한 비중
이동차량·항공기 보편화됐지만 수상 운송 여전히 중요
전장은 인간의 계산 외의 변수·우연 작용하는 공간
풍부한 물자와 더 나은 운송수단도 승전 보장 못해
 
러시아에서 후퇴하는 나폴레옹 - 나폴레옹은 군대가 밥통으로 행군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는 20만 대육군을 유지하면서 처음으로 수레를 갖고 보급 임무를 담당하는 부대를 편성했다. 그 당시로는 혁명적이라고 할 만한 조치였다. 1812년 50만 대군을 동원한 러시아 원정은 실패로 끝났다. 진격로 상에 보급창을 설치하는 등 체계적인 원정 계획을 수립했지만 50만 명을 먹여야 하는 보급상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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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Van Creveld. 2004[1977]. Supplying War: Logistics from Wallerstein to Patton. London and New York: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우보형 옮김. 2010. 서울: 플래닛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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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중에 실탄이 바닥나면 어떻게 될까? 밥은 제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일까? ‘군대는 밥통으로 행군한다’는 말이 있듯이, 식량과 실탄의 보급 없이는 그 어떤 전투도 불가능하다. 인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으며, 차량과 항공 지원이 일반화된 현대전에서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보급이 전쟁을 어떻게 지배하는가
마르틴 반 크레펠트의 이 책은 나폴레옹의 아우스터리츠 전투(1805)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인류사의 결정적 전투 사례를 분석하며 보급과 병참이 실제 전투 전개와 승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실증적으로 살펴본 이 분야의 고전이다.
그러나 고전이라는 말에 겁먹을 건 없다. 실증적 자료를 갖고 기존 통념을 해체하는 저자의 주장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1812)이나 히틀러가 그것에 실패한 것은 진흙탕 길이나 겨울 혹한(동장군)이라는 주장은 틀린다는 지적이다. 전쟁에 투입된 수십만 대군을 먹일 식량 조달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미션 임파서블’이라는 설명이다. 구체적이고 치밀한 보급계획이 반드시 전투의 성공을 가져오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개전에서부터 종전 이후 열차 편에 이르기까지 세밀한 계획을 세웠지만 계획대로 된 건 하나도 없었다. 철도를 이용한 기동전을 기대했지만 참호전으로 변해버린 것이 이 전쟁의 운명이었다. 2년에 걸쳐 마련한 치밀한 작전계획으로 시작한 노르망디 상륙작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급물자의 우선순위까지 매기는 치밀함을 보여주었지만 시간만 잡아먹었다. 프랑스 진격은 오히려 계획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적이었다. 패튼의 탱크부대는 보급참모의 충고를 무시하고 진격함으로써 승리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바다는 여전히 중요하다
물론 차량과 항공기가 일반화되지 않은 시대의 이야기라 현대전에 걸맞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을 잘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역사상 대부분 기간 동안 수상 운송이 육상 운송에 비해 훨씬 저렴하고 손쉬웠다고 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던 시절에도 땅과 바다의 운송 비율은 1대50이었다. 항공기가 일반화된 오늘날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걸프전에서 전체 물류의 80%를 선박이 담당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감안할 때 수상 운송의 중요성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보급의 형태는 물자의 성격에 의해 규정된다는 주장도 흥미롭다. 보급에서 식량과 사료가 절대적 부분이었던 시절에는 대부분 현지 조달, 즉 징발이나 약탈에 의존했다. 대규모 군대가 상대방의 지역을 돌아다니며 약탈하고 황폐화하는 것이 전쟁의 목적인 시대도 있었다. 적어도 제1차 세계대전(1914) 이전까지도 그랬다. 20세기 들어 약탈이 없어진 것은 문명화됐기 때문이 아니다. 물류의 성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대포와 기관총이 주력 화기로 자리 잡았고,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양의 포탄을 쏟아부었다. 보급 물자에 있어 식량의 비율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현지에서 조달할 수 없는 대포의 포탄이나 무기의 부품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현대전의 경우 물자의 성격은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첨단무기일수록 부품도 많아지고 민감하다. 사소한 전자부품의 고장으로 첨단무기도 고철 덩어리가 될 수 있다. 그만큼 보급도 정교해지고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술적 발전이 보급체계의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지만 또 다른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철도의 이용은 대량 수송을 가능케 했지만 철도역에서 전장까지 물자를 옮기기 위해서는 인간의 근육과 수레가 필요했다. 자동차의 도입으로 이러한 문제는 어느 정도 극복했지만 그 자체를 위한 또 다른 물자를 요구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보급의 90%가 탄약과 차량 유지 물자였다. 항공기의 이용 역시 마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새로운 기계가 도입되고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엄청난 종류의 물자를 요구하게 된 것이다.
보급이 승리를 보장하는가
그렇다면 보급의 성공이 전쟁의 승리로 이어질까? 전쟁이 현대화하면 할수록 병참은 성공적인 전쟁 수행에 꼭 필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수한 병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베트남에서의 미군이나 체첸의 러시아군에 이르기까지 1945년 이후 크고 작은 전쟁에서 더욱 풍부한 물자와 더 나은 운송수단을 보유한 군대가 언제나 이기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철저한 계획에 따라 진행된 작전이 실패로 끝난 사례를 들면서 저자는 클라우제비츠가 언급했던 전투의 안개와 마찰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전장은 안개 속에서 움직이는 것같이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별일 아닐 것 같지만 막상 진행하게 되면 엄청난 마찰이 발생하는 저항의 공간이다. 적의 대응과 같이 통제되지 않는 변수와 우연이 작용하는 불확실성의 공간이기 때문에 완벽한 작전계획 자체가 불완전한 것이며 지휘관의 창의적 대응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저자는 결론에서 “모호한 사고를 피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하여 구체적인 수치와 계산에 노력을 집중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인간의 지성만이 전쟁을 수행하는 도구가 아닐뿐더러 전쟁을 이해하는 도구도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계획의 입안과 실행에 있어 인간의 계산적 능력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전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지성이라는 수단밖에 없다고 믿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지나친 오만일 뿐이다. 그가 “전쟁에서 사기와 물질의 관계는 3대1이라는 나폴레옹의 격언을 진리로 인정하는 것, 바로 그것이 기동전에 미치는 병참의 영향을 연구하는 데 있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전부일 것이다”라고 결론 내린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적 사례와 풍부한 실증적 자료가 잘 어우러진 책이기 때문에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또 다른 매력이다. 하루면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시간이 없다면 관심 있는 사례만 읽고 나머지는 각 장의 결론 부분을 참고하면 될 것 같다. 결론인 8장(‘병참의 전망’)과 후기(‘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는 꼭 읽기 바란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 교수>
즐겁고 행복한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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