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8일 수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오늘은 수요일 계속 연이어 겨울비가 내리고 있으니 건강관리 잘 해야겠습니다
- 밝아온 신년에 미국과 이란전이 예견되고 있으니 남의 일이 아닌 우리에게 불똥이 뛸 수 있는 만큼 마음에 각오와 국제사회의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 오직 믿음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회복하게 되고 고난과 역경을 잘 이기는 힘을 주실 줄 믿습니다.
- 새 아침이 시작되었으니 분명한 목적 있는 삶이기에 감사함으로 최선을 다 해 봅시다.
- 아무리 현실이 캄캄하고 어두운 밤 같이 정의와 공의가 무너진 시대를 걸어가고 있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용서하시는 그 사랑에 감사와 찬송으로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욥기 27장 1- 12절 }
1. 욥이 또 풍자하여 이르되
2.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3.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이 아직도 내 코에 있느니라)
4.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5.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6.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
7. 나의 원수는 악인 같이 되고 일어나 나를 치는 자는 불의한 자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8. 불경건한 자가 이익을 얻었으나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거두실 때에는 무슨 희망이 있으랴
9. 환난이 그에게 닥칠 때에 하나님이 어찌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랴
10. 그가 어찌 전능자를 기뻐하겠느냐 항상 하나님께 부르짖겠느냐
11. 하나님의 솜씨를 내가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요 전능자에게 있는 것을 내가 숨기지 아니하리라
12. 너희가 다 이것을 보았거늘 어찌하여 그토록 무익한 사람이 되었는고!
◑◑◑◑ 제 목 ◑◑◑◑
◗◗ 친구들의 대한 욥의 마지막 답변
◑◑◑본문 이해와 요약 ◑◑◑
◗ 27장에서는 욥은 친구들에게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한다고 했는데, 욥의 이 맹세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자의 마지막 호소 수단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한편 욥은 지금까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공정한 판결을 받기 원했었는데, 그러나 욥의 생각에서 하나님은 소송의 기회를 본인에게 주지 아니하셨기에 마지막 단계로서 맹세하기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므로 결국 이 표현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역설적인 표현이라고 봅니다.
- 그리고 욥은 자신이 살아 있는 한 계속해서 자기의 순전함을 주장하겠다고 하였는데, 어느 누구보다도 순전하고 경건한 삶을 살았던 욥은 이에 대하여 맹세할 만큼 하나님 앞에 떳떳하였기 때문입니다.
- 순전함을 버리지 않겠다고 결심한 의지를 보였던 욥은 이어서 자기 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욥이 말한 의는 법정적, 도덕적 의미에서 의롭다, 정결하다, 라는 뜻인데, 욥 자신에 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이 살아가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 또한 자신의 의를 내세운 욥은 이제 자신의 대적 자들이 악인과 불의한 자같이 대접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뜻을 알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 여기서 대적자들은 물론 직접적으로는 친구들을 가리키지만, 바로 그 친구들을 저주하였다기보다는 그렇게 말한 사악한 자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욥은 사악한 자의 허망한 말에 대하여 언급하였는데, 8절에서 욥은 사곡한 자가 이 세상에서 많은 이익을 얻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취하시고자 하면, 아무 소망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사곡한 자들이 환난을 당하여 부르짖어도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 악인의 결국은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지 않는 운명에 처하게 될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은 오히려 그를 쏘십니다.
- 악인의 운명은 언젠가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그 동안 누렸던 부귀와 권세를 다 털리고 멀리 내 팽겨 침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 욥은 악인의 최후가 이렇게 하나님께 심판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세상 사람들에게도 버림받게 될 것을 추가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 악인에게 억눌렸던 사람들은 악인이 재난을 당할 때에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 결론적으로 친구들에 대한 욥의 마지막 응답이 본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27장에서부터 31장에 이르기까지 친구들에 대한 욥 자신의 마지막 변론을 마감하고 있는 것입니다.
- 욥은 결코 자신이 하나님 앞께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다면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겠다고 하였으나 친구들은 그의 말이 옳지 않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 친구들의 계속되는 비난 속에서도 욥은 자신의 결백을 끝까지 내세우는데, 욥의 이러한 태도는 그의 삶이 인간들 중에 누구보다 의로웠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악인의 후손은 희생되고 멸망하며, 악인의 재물은 결국 빼앗기고 없어지게 되며, 악인들은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됩니다.
-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날이 오면 그 어느 누구도 이 공의의 심판에서 제외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우리 성도들도 의로운 삶을 살아간다면, 대적 마귀가 끊임없이 유혹하고 정죄할지라도 담대할 수가 있기에, 우리 성도들도 진리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내야 의의 열매가 맺혀지고 영향력이 있는 것입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논쟁의 답은 예수님께 있다.(욥기27장7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지나친 논쟁과 변론은 미움과 다툼을 일으키는 무익한 것입니다.
- 7절을 살펴보면 욥은 “나의 대적(원수)은 악인같이 되고 일어나 나를 치는 자는 불의한 자같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여기서 욥이 말하는 ‘대적’이란 불특정 대상으로서의 악인이 아니라 그를 악하다고 비난하는 그의 친구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 자신이 고난당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악인과 불의한자로 규정하고 비난하는 친구들에 대하여 욥은 서운함과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그의 믿음을 호소하는 형식을 빌어 친구들을 향해 저주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 욥은 지금까지는 친구들의 일방적인 비난과 모함, 정죄에도 불구하고 잘 참아왔습니다.
- 과연 동방의 의인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 그러나 친구들과의 거듭 된 논쟁 과정에서 극심한 마음의 상처와 정신적 고통을 당한 그는 더 이상 인내하지 못하고 마침내 친구들을 향해 저주의 말을 쏟아놓기에 이른 것입니다.
- 이처럼 친구들을 향해 저주하는 욥의 태도는 그가 친구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비난과 모함을 생각한다면 과하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성도로서는 합당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 그는 지금까지 잘 참아왔던 것처럼 끝까지 참으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뢰해야 옳았습니다.
- 욥의 상황에 처해 보지 않은 사람이 ‘그래도 인내해야 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너무 상투적이고 욥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그의 친구들이 범했던 것과 같은 잘못을 범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욥이 친구들을 향해 저주한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 그러나 오늘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욥의 태도의 잘 잘못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 여기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지나친 논쟁과 변론은 어리석은 것이며, 무익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 주지하다시피 욥과 친구들 간의 논쟁은 거듭하여 반복되었지만, 그러한 논쟁을 통하여 그들이 얻은 결론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 고난당하는 욥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다만 그러한 논쟁이 지닌 의의라면, 인간은 하나님의 초월적 섭리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그것을 이해하려 하기 전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한다는 것뿐입니다.
- 사실 욥기의 저자가 욥과 친구들의 지루한 논쟁을 본서의 핵심 내용으로 길게 기록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교훈을 독자들에게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하지만 욥과 친구들의 논쟁이 비록 우리에게는 유익한 교훈을 주고 있다 해도 논쟁의 당사자들인 욥과 친구들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 그들의 지나친 논쟁은 오히려 그들의 감정만 상하게 하고 대립하게 하였으며, 그로 말미암아 절친하였던 그들 사이에 저주의 말이 오가게 하고 말았습니다.
- 이러한 사실이 보여주듯이 지나친 논쟁과 변론은 유익보다는 해를 불러오는 무익함도 어리석은 일인 것입니다.
- 그러므로 성경은 지나친 논쟁과 변론을 피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 디모데후서 2:23을 보면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이러한 성경의 권면이 시사하는 것처럼 사람의 논쟁과 변론은 그것이 아무리 고상한 주제라 할지라도 결국 서로에게 좋을 것이 없습니다.
- 물론 서로 다른 생각들을 대화를 통해 나누고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여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 가는 일은 필요합니다.
- 문제는 대화가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쪽으로 흘러가 버릴 때입니다.
- 이러한 경우 대화는 논쟁이 되고 결국 아무런 결론이 없는 무익한 것이 되고 맙니다.
- 이러한 경우에는 더 이상의 대화를 중단하는 것이 옳습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현 사회가 분쟁과 초 갈등 시대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결론과 해답을 찾지 못하고 실타래처럼 자꾸만 꼬여가는 현실을 보면서 문제점과 해결점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지? 특히 진리와 비진리 속에서 무엇이 우선인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모든 문제의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진리는 논쟁이 아니라 말씀이 선포됨에 있습니다.
- 논쟁을 좋아하든 바리세인과 서기관과 율법사들이 예수님께 풀지 못하는 논쟁을 들고 왔지만, 그들은 예수님 앞에서 한마디도 못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 그러므로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지나친 논쟁을 삼가야 합시다. 그것이 어리석음을 피하는 일입니다.
- 성도들은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진리의 말씀을 두고 무익한 논쟁과 변론을 이제 그칩시다.
- 섬기는 신앙 공동체를 아름답게 지키기 위해서는 논쟁을 삼가 하는 모든 형제와 자매들과 화평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합시다.
- 사도바울이 고기를 먹는 문제를 가지고 논쟁하는 그들에게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연약한 성도들에게 덕을 세우기 위해서는 평생을 두고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을 봅니다.
- 하나님의 나라의 진리를 세우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아니라면, 땅에 것에 집착하지 맙시다.
-디모데후서2장 14절에서 “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라고 하였습니다.
- 특히 오늘 현시대에 세대관의 갈등과 이념관의 갈등 그리고 가진 자와 못가진자의 갈등과 진보와 보수의 갈등 노사정의 갈등 등으로 많이 힘들어 하는데, 여기에 같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땅에 정치를 가지고 목숨 걸고 미묘한 갈등에 저는 개인적으로 한마디도 끼어들고 싶지 않습니다.
- 디도서3장 9절에서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그러므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나의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해 논쟁하고 다투기를 즐기는 성도들이 아니라 위로부터 주시는 지혜를 구함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온유하며 관용함으로 형제들을 품어주고, 주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겸손히 순종하여 받아주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