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쁘레시디움 주회합에 규칙적으로 정각에 출석해야 한다
(제11장 레지오의 기본 요소 참조)
(가) 이 의무는 몸이 편안할 때보다는 고단할 때, 날씨가 좋을 때보다는 나쁠 때, 그리고 흔히 어딘가 가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 지키기가 어렵다. 그러나 어려움이 없는 시련이 어디 있으며,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지 않고서 어떻게 참된 공로를 쌓을 수 있겠는가?
(나) 활동 보고를 하기 위해서 주회합에 참석하는 것보다는 활동을 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주회합에 참석하는 것이야말로 으뜸가는 의무이다. 주회합을 뿌리라고 한다면 활동은 꽃이다. 뿌리 없이 꽃이 필 수 없듯이 주회합 없는 활동은 있을 수 없다.
(다) 먼 길을 왕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출석의 의무를 충실하게 지키는 단원은 그가 영신적인 안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인간적인 상식으로 볼 때는 쁘레시디움의 주회합에 참석하기 위해 왕복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 시간을 더욱 가치 있는 다른 일에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낭비된 시간이 아니다. 주회합에 오고 가는 데 사용한 시간은 단원이 수행한 전체 활동의 일부분이며, 그것도 매우 가치 있는 일부분이 된다. 성모님의 엘리사벳을 만나려고 먼 길을 다녀오신 것을 시간 낭비였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성녀 소화 데레사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여러 덕성 외에도 굽힐 줄 모르는 용기의 덕도 지니고 있었다. 성녀는 '불평하기보다는 힘닿는 데까지 끝가지 전력을 다하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삼았었다. 현기증과 심한 두통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성녀는 아침 기도에 빠진 적이 거의 없었다. '저는 아직 걸을 수 있으니 마땅히 맡은 일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불굴의 용기의 덕으로 성녀는 영웅적인 일을 해냈던 것이다."(리지외의 성녀 소화 데레사 / St.Thérèse of Lisieux)
2. 주간 활동의 의무를 완수해야 한다
(가) 주간 활동은 '실질적'인 것이어야 한다. 즉, 레지오 단원은 한 주간에 두 시간을 실제로 활동에 바쳐야 한다. 물론 두 시간이라는 숫자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사실 많은 레지오 단원들이 이 최소한도의 활동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활동에 바치고 있고, 여러 날 또는 매일 활동하는 단원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이 주간 활동은 단원들이 개인의 기분에 따라 선택하거나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쁘레시디움으로부터 배당받은 활동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기도나 그 밖의 신심 행위를 아무리 많이 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활동의 의무를 채우지 못하며, 활동의 일부로도 인정하지 않는다.
(나) 활동은 형태를 달리한 기도이다. 그러므로 기도의 규칙이 활동에도 적용된다. 초자연적인 기도의 영성이 밑받침되지 않은 활동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배당받은 활동이 너무 쉬우면 곧 지루해질 것이고, 흥미를 끌 만한 일은 대개 어려워서 좌절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성공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단원들은 용기를 잃을 수도 있다. 그 어느 쪽이든 인간적인 사고방식으로 볼 때는 차라리 포기하고 손대지 않는 것이 편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레지오 단원은, 이렇게 활동의 의지를 흐려 놓는 인간적인 판단이라는 안개를 뚫고 초자연적인 활동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훈련을 쌓아야 한다. 그러므로 맡겨진 활동이 십자가처럼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가치는 더욱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다) 레지오 단원은 군인이다. 따라서 세속의 군인들 못지않게 레지오 단원이 지켜야 할 의무도 엄격하다. 숭고하고 자기 희생적이며 기사도 정신을 갖춘 강인함이 군인의 특성이듯이, 레지오 단원은 참된 성모님의 군인으로서 이러한 특성들을 최고의 수준으로 갖추어야 하며, 자신이 하는 활동을 통해 이러한 특성들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군인은 때때로 목숨을 바쳐야 하는 경우도 있으며, 지루한 보초 근무나 내무반 청소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의무는 한결같은 충성심으로 지켜야 하며, 성공이나 실패가 의무에 대한 단원의 자세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된다. 레지오 단원은 주어진 의무를 해내려는 정신이 확고부동해야 하며, 지키기 어려운 의무이든 쉬운 의무이든 모든 일에 철저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
(라) 레지오 활동은 성모님과 가장 가깝게 일치해서 수행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활동 대상자들에게 성모님과 성모님의 참된 사랑을 알려 주어, 그들 또한 어떠한 형태로든 성모님께 봉사하도록 인도하는 것을 본질적인 활동의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성모님을 알고 성모님께 신심을 바치는 일이야말로 영혼의 건강과 성장에 꼭 필요한 요소이다. "성모님은 하느님 신비의 협력자이며 그 수호자이시기 때문이다. 성모님은 예수님 다음으로 숭고한 신앙의 기틀이시므로, 온 세대의 믿음이 성모님께 그 기초를 두고 있다. ...... 존귀하신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한 영혼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면, 그때 비로소 그 영혼을 위해서 일하던 사람은 자신의 노력에 상응하는 덕성과 성화의 열매가 그 영혼 안에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성 비오 10세)
"여러분은 지금 우리 주님께서 갈바리아에서 하셨던 것처럼 승리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주님께서 날카롭게 날을 세워 놓은 무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주님께서 받으신 상처를 나누어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말라. 설사 승리가 우리 세대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서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가? 끈기 있게 수고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나머지 일은 주님께 맡겨라. 성부께서 당신의 권능으로 정하신 시간과 순간을 알아내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다. 여러분보다 앞서간 고귀한 영혼들이 지녔던 불굴의 용기로 무장하여, 기사로서의 임무를 완수하도록 하자."(가반 더피 : 동터오는 날의 대가 / T. Gavan Duffy : The Price of Dawning Day)
3. 회합에서 구두로 활동 보고를 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무이며, 단원들이 흥미를 가지고 자신의 활동을 지속시켜 나가는 데 도움을 주는 주요 실천 사항 중의 하나이다. 보고는 이처럼 활동에 대한 흥미를 지속시켜 주는 목적이 있지만, 동시에 회합에 정보를 제공하는 목적도 있다. 레지오 단원의 능력을 알아보려면, 보고를 제공하는 목적도 있다. 레지오 단원의 능력을 알아보려면, 보고를 준비하기 위해서 쏟는 정성과 보고하는 태도를 살펴보면 된다. 활동 보고는 그 하나하나각 주회합이라는 건물의 벽돌이다. 따라서 보고가 제대로 일루어지는 회합만이 레지오의 온전한 주회합이다. 보고가 부족하거나 잘못되어 있으면 레지오 조직의 생명의 원천인 주회합이 큰 타격을 입는다.
보고는 단원들을 훈련시키는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인데, 보고를 통해서 다른 단원들의 활동 방법을 배울 수 있고 또한 자신의 보고에 대해 경험 있는 단원들의 의견을 듣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고 내용이 불충분하면 보고를 하는 사람에게나 듣는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보고의 방법 등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제18장 [쁘레시디움 회합의 순서] 9절을 참조하기 바란다.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도와주고 마음을 쓰며 기도하라'고 하신 바오로 성인의 권고를 기억하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며 ......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자신을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바치셨기'(1티모 2,6) 때문이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St.John Chrysostom)도 인류 구원 사업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이 짊어져야 할 의무와 대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그리스도 신자들이여, 여러분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대해서도 답변해야 할 것이다.'"(그라트리 / Gratry : 원천)
4. 비밀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
레지오 단원은 회합에서 들었거나 활동 중에 알게 된 사실에 대해서 엄격히 비밀을 지켜야 한다. 그러한 사실은 레지오 단원이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누설하는 단원은 레지오에 대하여 용서받지 못할 배신행위를 하는 것이다. 물론 활동 보고는 반드시 쁘레시디움 회합에서 해야 하지만, 이때에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 문제는 제19장 [회합과 단원] 20절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그대가 맡은 것을 잘 간수하시오."(1티모 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