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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이 아닌 필수
신 25:17-18
(17)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18)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은 선택의 연속, 그리고 영적 싸움의 연속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끝없이 이어지는 선택의 갈림길들 위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선택을 할지,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할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나에게 가장 좋은 조건’이 무엇인지를 먼저 찾고,
육신을 위한 고민만 하면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고르겠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고 있는 사람들은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를 떠올리게 됩니다.
본능적으로 자기 생각이 앞서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훈련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뭔가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를 가장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그동안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던 사람이고,
하나님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떤 고민도 없이
본능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움켜잡는 사람은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고 있지 않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부족하거나 끊어진,
또한 (아직 자기를 부인하지 않은) 자아가 강한 자라는 증거를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뜻이 일치되고 있다면
선택하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고, 따라서 고민할 것도 없겠지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할 때,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는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하고 싶을 때면
망설이며 고민하다가 결국 자신의 뜻대로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시길 기도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귀는 십중팔구 접근하여 궤계를 부립니다.
하나님이나 천사를 흉내 내어 마치 하나님의 응답을 확실하게 받은 것처럼 속이기도 하고,
그럴듯한 정당화, 합리화, 변명, 궤변의 말들을 떠오르게 하면서
사람의 욕심을 따라 선택하도록 유도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과거 한국교회가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의 죄를 범했을 때에도
목사들이 나서서 “일단 우리가 살아있어야 복음을 전하는 것이니 이것은 죄가 아니다.
더 큰 뜻을 이루기 위함이다.”라는 궤변의 정당화로 성도들을 속여
집단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한 우상숭배의 큰 죄를 선택했던 것처럼
마귀는 매우 그럴듯한 변명을 사람들의 귀에 속삭이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은 마귀의 그 말들에 고개를 끄덕이며,
결국 마귀의 뜻에 순종합니다.
앞으로 있을 ‘짐승의 표’ 시행과 관련하여 성도들이 매우 주의해야 할 부분이며,
더불어 종교화합(종교통합)과 관련해서도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고후 11:14-15
(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엡 6:12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선택의 갈림길 앞에 있는 상황 외에도
마귀가 걸어오는 영적 싸움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싸움은 마귀와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옛 자아, 죄성와 싸우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떤 부분에서 아직) 자기를 부인하지 않은 고정된 관념, 아집과 욕심 등이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선택을 하도록 이끌기 때문입니다.
롬 7:18-24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 아래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가나안으로 향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 족속의 공격을 받았던 내용이 나옵니다.
아말렉 족속은 잔인한 무리로서 이스라엘이 피곤한 상태를 노려
행렬의 후미에 뒤쳐진 자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했습니다.
이처럼 아말렉 족속들이 망설임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만해보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담대한 모습으로 무장한 채
전방과 후방을 두루 경계하며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면
그들이 그렇게 쉽게 공격할 생각을 못했을 것이지만
피곤하여 뒤쳐진 자들이 있는 무방비한 상태였기에 쉽게 기습을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생활할 때는 비록 노예 신분이었지만
먹을 것과 마실 것, 입을 것, 주거의 걱정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광야로 나온 이후에는 그동안 누리던 모든 것들에 부족함을 느꼈고,
시간이 지날수록 불평이 많아지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들이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만나와 메추라기와 물을 공급해주셨지만
그들은 싫증을 내며(반찬투정을 하며), 차라리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불평을 늘어놓았고,
그 불평과 원망은 한 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감사가 사라진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의심의 마음으로,
하나님과의 교제인 기도를 통해 새 힘을 얻는 기쁨도 없이 억지로 나아가다보니
마치 패잔병들처럼 뒤쳐진 자들이 점점 늘어갔고, 결국 기습의 참사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반드시 경외하면서
그 분의 약속을 의심 없이 믿고,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진 않으며,
힘들 때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새 힘을 받아 거룩한 소망을 품고 인내하는 모습으로
가나안 땅에 당도할 그 날을 바라보며 끝까지 담대하게 힘을 잃지 않고 나아갔다면
아말렉의 기습과 살육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며,
무엇보다 모두가 광야에서 죽지 않고, 결국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불평했던 모든 자들은
전부 광야에서 죽어서 썩은 결말을 맞이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상 사람이 하는 모든 불평은 결국
모든 주권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동안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불평을 했던 적이 있는 사람들, 즉 우리 모두는
늦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존함으로 철저히 회개를 하고,
돌이켜 하나님과 다시 화평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둘째 사망을 피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출 17:8-16
(8)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16)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연약함이 피습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여호수아를 소환합니다.
아말렉에 대항해 싸울 사람들을 모집하여 출전시킨 후
모세는 아론, 훌과 함께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두 손을 들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우세했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우세해졌습니다.
모세가 팔을 계속 들고 있는 것이 힘들어지자
아론과 훌이 각각 모세의 한 팔씩을 잡고 도왔습니다.
그렇게 해가 지도록 모세는 두 팔을 들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으며,
결국 이스라엘은 아말렉을 무찌르고 승리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며 의지하는 기도의 중요성,
아무리 힘들다 해도 기도만큼은 멈추지 않고 꾸준히 이어가는 성실함의 중요성,
그리고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서게 될 때,
그 갈림길 앞에서 우리에게 속삭이는 마귀의 궤변을 대면할 때,
더불어 자신의 자아와 욕심과 야망이 고개를 들 때,
그 외에도 늘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기회만을 노리며 덤벼드는 마귀와 귀신들의 유혹 앞에서
우리가 늘 변함없이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적으로 따르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여 안전하게 구원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멈추지 않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만 육신적 문제해결을 위해 잠깐 기도하고,
마음이 편안할 때는 하나님을 찾지도 않다가
또 힘든 일이 생겼을 때만 다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의 뜻을 알기 어렵고, 마귀에게 속을 확률이 매우 높으며,
여전히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질 수밖에 없습니다.
매일, 매순간 하나님을 생각하며,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늘 하나님을 인식하며 살아가기에
계속해서 이어지는 선택 앞에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를 가장 먼저 살피는 사람,
자신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친밀한 교제를 매일 이어가고 있기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자신에게 말씀해주시는 방법에 익숙한 사람은
마귀의 속삭임을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고,
또한 자신의 질긴 자아와 욕심을 남보다 쉽게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마귀가 놓은 올무를 사전에 미리 간파하여 영적 싸움에서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 전체에서 하나님을 가장 중요한 분으로 모시고,
어떤 선택을 앞두고 있든지 항상 하나님의 뜻을 가장 먼저 생각하며,
늘 하나님과 내가 연결되어 있기를 소망하면서 매일 기도하는 신앙생활은
목사들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과업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는 것은 목회자들이 하는 거고,
나는 성도니까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않아도 돼.
우리 목사님이 나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주시니까 이대로도 괜찮겠지...‘,
‘나는 아직 어리니까, (혹은 할 일이 많으니까) 그렇게까지 열심을 내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어.
나중에 내 나이가 많아졌을 때 (혹은 나중에 한가해졌을 때) 나도 그렇게 되겠지 뭐.’하면서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거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차일피일 뒤로 미루는 자들은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 앞에서 후회할 선택, 죄로 연결될 선택을 하게 될 확률이 높고,
마귀의 속삭임에 속을 일이 많으며,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다가
모든 기회가 갑자기 사라지게 된 어느 날, 영원한 후회 속에서 절망하게 될 것입니다.
행 8:21-22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신앙생활의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죽은 신앙생활,
즉 하나님을 거부하는 불신자들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도는 하면 좋고, 안 해도 별일 없는’
그저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참된 기도를 하는 사람이 이토록 적고,
육신적인 문제가 있을 때만 기회주의적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또한 억지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끊어져 있거나 아예 전무하기 때문에
중요한 선택을 하는 것이 너무 어렵고, 그래서 성도들이 자꾸 누군가에게 물어보게 되니
무당과 다를 바 없는 미혹된 목사들이 늘어가며(수요에 따른 공급),
실제로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다니는 기독교인들의 수는 놀라울 정도로 많고,
그렇게 마귀에게 자꾸만 속아 넘어가며,
자기의 육신적 욕심을 따라 행하며 죄를 범하는 것을 반복하다가
점점 더 죄에 무뎌지면서 더 이상 죄를 죄로도 여기지 않는 양심에 화인 맞은 상태가 되고,
결국 영적으로(육신적으로도) 나태하고 게으른 모습이 되어 영적으로 점점 죽어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만 살 수 있습니다.
기도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이 숨을 쉬지 않고도 살 수 있다고 착각하는 어리석은 마음입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이 ‘나는 지금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생명이 육신에만 있다고 착각하는 우매한 생각입니다.
영혼은 점점 죽어가고 있는데, 파리하게 야위어가며 겨우 숨만 붙어 있는데
자신은 죽지 않았다고, 여전히 살아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매일 기도하지 않는데도, 자기가 필요할 때만 잠깐씩 하고 있는데도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고,
영혼은 파리하게 말라가고 있지만 그래도 숨이라도 쉬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히 여겨주심과 자비로우심에서 온 기회입니다.
더불어 그 사람의 주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하고 있는
중보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입니다.
잠 27:22
(22)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겨지지 아니하느니라
“기도할 시간이 없다. 피곤해서 기도를 못하겠다.
지금도 할 게 많은데 기도까지 해야 하나?”하는 사람들도
밥은 꼭꼭 챙겨먹고, 잠도 매일 자며, 또한 스마트폰은 지치지도 않고 오래토록 들여다봅니다.
자신의 육신과 쾌락을 위해서는 반드시 많은 시간을 써야 하지만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는 시간을 조금도 할애하지 않겠다, 못하겠다는 질긴 고집,
그래도 나중에 천국에는 가고 싶어서 예배는 드리고 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진 않고, 사랑하지도 않기에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싶지도 않으며,
오로지 세상과 자신의 육신을 가장 사랑하는 타락의 길 위에 있으면서도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의 미련함은
절구에 넣고 찧어도 벗겨지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라지로 분류되어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고,
예수님의 말씀처럼 좁은 문에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을 것이기에
소수의 참된 그리스도인들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시 105:3
(3)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기도는 하면 할수록 피곤해지는 것이 아니라 힘과 활력이 생기며,
기쁨과 소망이 따르기에 행복한 인생의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기도가 있는 참된 신앙생활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에서 오는 진정한 희락은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가 없는 고귀한 것이며,
또한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알 수가 없는 숨겨진 천국의 기쁨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끔찍한 죽음, 순교 앞에서도 담대하게 끝까지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었던 힘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은,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멈추지 않는 기도를 하십시다.
요 10:27-30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참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있는
진정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현재 어떤 상황과 환경에 있든지 다 괜찮습니다.
반면, 현재 기도하지 않고 있거나
육신적인 것들이 필요할 때만 잠깐 하나님을 찾는 기도,
하나님께 뭔가를 얻어내기 위한 내용의 기도만을 하고 있다면
지금 괜찮아 보인다 해도 전혀 괜찮지가 않습니다.
우리의 영적 상태는 매일의 참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만나고 있는지, 아닌지에
전적으로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끊임없이 찾아오는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매일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참된 신앙생활을 반드시 이어가야만 합니다.
또한 선택 앞에서 고민하는 중에 찾아오는 마귀의 궤계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뿐만 아니라 수시로 접근하여 우리의 욕심을 자극하면서 죄로 끌어들이기 위해 미혹하는
마귀와의 영적싸움에서 승리하고, 쫓아내기 위해서는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영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여
하나님의 뜻과 마귀의 궤계를 분별할 줄 아는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구원에 이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기도는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이며,
우리를 죽기까지도 사랑해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토록 여러 차례 강조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제자라면
매일, 매순간 쉬지 말고, 어떻게든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십시다.
막 9:28-29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각자의 삶에 즉시 적용함으로
우리의 인생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과연 나는 하나님의 뜻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하나님은 떠올리지도 않은 채 그저 내 욕심대로 섣부르게 선택하고 있는 사람인지,
매일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나누는 추억을 쌓으면서
하나님의 뜻과 마귀의 궤계를 능히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인지
아니면 수시로 마귀의 올무에 빠져 이리저리 휘둘리며 온갖 죄를 범하거나
이단교리에 미혹된 채 악한 열매를 맺는 사람인지,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일, 매순간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힘든 일이 있을 때만 잠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인지 등을 고민해봄으로서
하나님께서 자비롭게 베풀어주신 이 은혜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반드시 잡아
영원한 생명으로 향하는 좁은 문을 꼭 통과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살전 5:16-18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골 4:2
(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눅 21:36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5.06.22. 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486장 주 예수여 은혜를
1. 주 예수여 은혜를 내려주사 곧 충만케 하옵소서
이 주리고 목마른 나의 맘에 주 성령을 부으소서
2. 주 예수여 죄에서 풀어주사 날 정결케 하옵소서
이 세상의 유혹이 나의 맘에 틈 못타게 하옵소서
3. 옛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던 그 믿음을 주옵소서
이 세상의 물결이 흉흉해도 날 평안케 하옵소서
4. 주 예수여 완전한 주의 사랑 나 받기를 원합니다
그 사랑이 내 맘에 충만하여 날 기쁘게 하옵소서
5. 내 마음에 임하신 주의 성령 늘 계실 줄 믿습니다
큰 은사를 나에게 부어 주사 주 섬기게 하옵소서
[후렴]
주 예수여 충만한 은혜 내 영혼에 부으소서
주 예수만 나의 힘 되고 내 만족함 됩니다
첫댓글 아멘..!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기도하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요......ㅠ 영적 호흡인 기도로 시들은 내 영혼에 생기를 불어 넣기를 소망하고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