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에 첫키스가 나를 찾아왔네 내 입술에 다른 입술이 달라붙은 것 같은 감촉이 꽤 오래 지속되었네 그날의 첫키스 잊을 수 없어 첫사랑 그 소녀를 평생 찾아다녔네 덧니 뽑고 나서는 입술도 무디어졌는지 다른 여자 만나도 무덤덤 아무 느낌이 없네
요즘도 가끔 작은 입술 내민 꽃잎을 보면 나비처럼 부드럽게 벌처럼 날카롭게 키스하고 싶네 첫키스의 아찔한 여운 느껴질 것 같은 잃어버린 나를 찾을 것 같은 꽃술에, 입맞추어도 첫사랑의 전율은 두번 다시 찾아오지 않았네
멀리 벨베데레 궁전까지 키스를 만나러 간적 있네 한번도 궁을 벗어난 적 없다는 황금빛 키스 절벽 낭떠러지 끝에 아슬아슬 서 있는 속내 알 수없는 여자의 입술이 순간에서 영원으로 가는 출구 같았네 빈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 찾을 줄 알았는데 날카로운 첫키스는 세상에 없는 영원한 신기루, 몽환(夢幻) 같은 것
세월이여, 갈수록 무디어지는 세월이여 한 해가 또 저물어 가네 느릿느릿 오는 해는 소의 해이라 시간도 더디게 가네
|산문|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
우리나라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첫키스를 경험하는 나이가 18세 무렵이라는 어느 통계를 본적이 있다. 그러니까 고2의 나이 때 대다수가 첫 키스라는 것을 해본다는 말인데 나의 첫키스도 그 나이 무렵에 찾아왔다.
키스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의 국어 교과서에서 만해(萬海)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이라는 대목을 보고 '키스'를 하면 날카로운 칼날에 베인 듯 입술이 몹시 아리고 알알할 것이라고 혼자 상상하며 빨리 그것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잘 아는 소녀와 첫키스를 나누는 기회를 갖게 됐다. 너무 떨려서 입술만 살짝 스치고 말았을 뿐인데 눈앞에 번갯불이 번쩍 하더니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 해대기 시작했다. 큰 죄를 지은 것 같아 황급히 그 자리를 벗어나 방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날부터 일주일이 넘도록 그 소녀의 입술이 내 입술에 붙은 것 같은 묘한 여운이 남아 있었다. 한동안은 누가 알아볼세라 고개를 숙이고 입을 손으로 가리고 다니기까지 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첫사랑은 한마디의 전언도 남겨놓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이사를 가버렸다. 그 소녀로 인하여 나는 사랑은 좋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고통을 주기도 하며 슬프게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날의 '첫키스의 추억'은 정말로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말았다. 그날부터 나는 사랑을 테마로 하는 영화와 소설 따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특히 키스신이 나오는 장면에 주목하였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을 잊을 수 없어 세상의 온갖 키스를 다 찾아다녔는데 앞 이빨을 뽑고 나서 입술 감각도 무디어졌는지 어떤 키스를 만나도 무덤덤 아무런 느낌이 없다. 첫키스의 전율은 두번 다시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나중에는 그림까지 설렵하다가 우연히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첫키스의 아찔한 여운 느껴질 것 같은 잃어버린 나를 찾을 것 같은 클림트의 그림에 빨려들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곧잘 혼자 기타를 두들기며 놀았다. 노래를 제법 잘 불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수업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수업 대신 내 리사이틀을 한적도 있다.심지어 대구 시내 음악감상실에서 주관하는 노래자랑 대회에 나가서 비록 선에 들지는 못했지만 박자가 틀린 줄도 모르고 신나게 끝까지 한곡조 하고 내려와 박수 갈채를 받기도 했다.
그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는 제법 인정받는 동네가수기도 했다. 대표곡으로는 김정호의 '하얀나비' 둘다섯의 '긴머리 소녀' 어니언스의 '편지' '작은새' 등등...을 즐겨 불렀다."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빗소리 들리면 떠오르는 모습 달처럼 탐스런 하얀 얼굴...."기타를 퉁기며 노래를 하면 어김없이 한호성과 박수 갈채가 터져나왔다.
가족이나 친지들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진짜 가수 못지않은 큰 인기도 누렸다. 고3 때는 대학가요제에 출전하겠다는 꿈을 안고 몇몇 친구와 그룹을 만들어 맹연습을 했는데 그룹멤버 모두가 그만 대학시험에 낙방하여 그룹은 해체되고 꿈은 무산됐다.
나중에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나는 직장의 대표 가수였다. 다니던 직장의 오너인 이사장은 내 노래가 듣고 싶다며 노래방 갈 때 같이 한번 가자고 졸라댔다. 그러더니 결국 사내로 아예 노래방 기기를 사들여서 노래를 마음껏 부르도록 해주었다. 사내 노래자랑 대회를 열기도 했다. 그때 나는 태진아의 '노란손수건'을 불러 폭발적인 박수갈채를 받았고 2위 상에 해당하는 인기상을 받기도 했다.
한번은 직장 연찬회 장기자랑 대회에 나가 그랑프리를 받기도 했다. 동료직원들과 6명이 출전했는데 나와 다른 한명이 싱어로 나섰고 나머지 4명은 백댄서를 했다. 노래는 공일오비의 '단발머리'를 불렀다. 내가 직장 사업의 특징을 반영한 내용으로 개사를 하여 부른 랩도 좋았지만 임원들이 나의 기막힌 춤 솜씨에 반해 점수가 높았다는 후문을 들었다.
부상으로 9박10일 간 유럽여행을 떠났다. 그때 오스트리아 빈의 벨베데레 궁전(Schloss Belvedere)을 찾아가 20대 초반부터 오매불망 그리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만났다. 기적같은 일이었다. 30년 간 오매불망 벼르고 별러온 꿈이 이루어지다니. 정말로 멀리 벨베데레 궁전까지 가서 '키스'를 만날 줄이야.
한번도 궁을 벗어난 적이 없다는 황금빛 키스를 만나는 그 순간 심장이 멎은 것 같았다. 때로는 심장박동이 멈추어도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약 90분 가량 문 닫을 때까지 키스만 바라봤다. 쪼그리고 앉아서 보고 비스듬히 서서 보고 등 돌리고 서서 뒤돌아 보고 주변을 서성거리면서 또 보고...절벽 낭떠러지 끝에 아슬아슬 서 있는 속내 알 수없는 표정과 입술이 순간에서 영원으로 들어가는 좁은문 같았다.
그렇게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만나고 왔다. 앞으로 만날 기회가 또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클림트의 '키스'를 훔치거나 가지고 오지 못한 것에 미련이 없다. 사랑은 그리움이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또 만날 수 있겠지 하는...기다리고 애태우며 그리워하는 마음. 그것이...그런 간절한 마음이 바로 '진정한 사랑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가수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가슴 깊이 간직한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에 대한 진짜 꿈이 이루어진 것에 만족한다. 프라하-빈-로마에 이르는 여정과 고풍의 건축물과 사진으로만 보던 그림 진품들과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 그리고 유럽 곳곳의 카페에서 마신 커피. 그 기막힌 향기와 맛은 클림트의 '키스'와 함께 내 문학에 새로운 자양분이 되었다.
당도와 과즙이 살아 있을 때 진정한 과일의 맛을 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당도가 높아야 그 달콤한 참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있다. 찢어지는 아픔은 사랑이 아니다. 슬픔도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기쁨이요. 충만한 것이다.
이인성의 '나부' 진품을 몇 해 전 서울 소공동 롯데갤러리에 가서 만났다. 그 역시 1시간 넘게 말없이 바라보기만 하다가 돌아왔다. 오래전. 스무살 무렵부터 짝사랑해 온 그림인데 그에 대한 사랑 고백은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다. 나의 사랑은 아직도 그냥 머뭇거리다가 그렇게 발길 돌릴 수밖에 없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