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 노트
곽종희
삼십 년 늦은 공부 날마다 끙끙댄다
찰고무 지우갠지 외우면 지워지고
한 귀로 들어왔다가 다른 귀로 나가네
국어는 자신 있다 장담하고 치는 시험
여보가 감탄사네 대명사 아니었나
한글이 쉽다고 말한 세종대왕 탓만 했네
간밤에 자고 간 놈 평생 잊지 못한다는잡스런 글이라서 잡가라고 찍었더니어이쿠, 시조 쓴다며 사설시조 모르다니
곽종희 시집 『외로 선 작은 돌탑』 《책만드는집》에서
공
부라는 게 그렇다. 이 지구상에 내 몸의 부피만 빼고는 다 배워야 할 것들이다. 그러니 내 몸 부피의 수 억 배에 달하는 공간의 이치를 어떻게 다 꿰차고 살까 싶다. 공부는 그런 넓은 세상을 다 꿰차고 살 수가 없어 기본적인 것을 배우는 것이다. 전공을 배운다고 해서 전문가는 아니다. 전공은 그 분야의 가장 상식적인 절차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지도를 보는 요령쯤 배우는 것이지, 그 분야를 다 훤히 꿰차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곽종희 시인의 시조 「오답 노트」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제목이 제시하는 것을 보면 오답(誤答)은 한자어 발음이고 노트(note)는 영어의 발음이니 우리말이 이리 뒤죽박죽 사용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오답 노트를 바로잡으려면 '잘 못 쓴 답'으로 해야 할 것이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며 느낀 소감을 이야기 한 그런 시조 같다. 우리는 공부를 암기하여 머릿속에 집어넣고 살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해하고, 그것이 왜 그렇게 시작되었고 생성되고 사라지는 존재의 가치를 알아가는 것이 공부가 아닐까 싶다. 시인들의 시집을 읽어보면 그 사람의 삶이 궁극적으로 어떤 생활의 연속을 이어가고 있는지 가름할 수 있다. 앉아서 천리라는 말이 있다. 이는 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계절이 바뀌는 절기를 만들어 놓은 것도 다 옛 선조들의 삶의 지혜다. 오답을 더 많이 알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싶다. 모르는 것을 더 알아가는 것, 0.1%의 확률을 높여 단 1%라도 제대로 알고 산다면 그 삶은 성공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부란 그래서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