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다! 진짜 늑대가 나타났다! 위기에 처한 소년이 아무리 외쳐도 마을 사람들은 이번에는 절대 안 속는다며 들은 척도 안한다. 그 전에 했던 잘못된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결국 소중한 양들을 다 잃는다. 들판에서 혼자 울고 있는 소년의 모습은 무심코 호수에 던진 돌맹이의 동심원처럼, 심심풀이로 시작된 거짓의 파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절대 양치기소년처럼 되지는 말아야지’라며 다짐을 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얼마 전 그 소년을 영화 <라이어>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주인공은 순종적인 아내와 매력적인 정부 사이를 비밀스럽게 오가면서 인생을 즐기는 얼짱 택시기사이다. 그러나 갑자기 범인의 체포사건에 연루되면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게 되고 깜쪽 같았던 그동안의 이중생활이 탄로 날 위기에 이르자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으로 둘러댄다. 하지만 그 거짓말의 증거로 더 큰 거짓말이 필요하고 거짓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계속된다. 이제 사건은 손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굴러가는 실타래처럼 통제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등장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이며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은총 같았던 일 년 동안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만다.
궁지에 몰린 배우들의 변명은 어릿광대의 몸짓처럼 동정심을 불러일으켰고 말도 안되는 억지 행동은 폭소를 자아냈다. 거짓의 결말은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에게 불쌍한 사람에 대한 우월감을 가져다주기도 하는 파급 효과도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람이 평생 거짓말을 안 하고 살기란 힘들 것이다. 내가 당하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차마 솔직할 용기가 없어서 할 때도 있다. 어쩌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사건이 자꾸 커져서 나중에는 진짜 어쩔 수 없이 소설을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나도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거짓말에 얽힌 사건이 있다.
출근길에 지나가는 아이의 발꿈치를 살짝 건드린 적이 있었다. 뒷꿈치를 만지며 그 자리에 주저앉는 아이를 보며 당황했다. 난생 처음 당하는 사고인지라 서둘러 아이를 차에 태우고 아는 분께 의논을 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그 분은 교통사고라고 말하면 사건이 엄청 커지니까 절대 사실대로 말하지 말고 그냥 모서리에 부딪혔다고 말하라고 했다. 근처 병원에 가서 시키는 대로 말을 했지만 아무래도 내 말하는 것이 어눌해보였던지 꼬치고치 묻는 폼이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얼른 발길을 돌려 나오는데 등 뒤로 따갑게 꽂히는 욕을 들어야 했다. 얼굴이 벌겋게 되어 나왔던 참 부끄러운 기억이었다. 평소 거짓말을 할라치면 얼굴에 대번 표가 나는데 무슨 배포로 그런 소리를 했는지. 덕분에 나는 일주일 이상 바로 코앞의 병원을 두고 멀리 차로 20분이나 걸리는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는 댓가를 치러야만 했다. 진작에 솔직하지 못한 나의 비겁함에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런가하면 내가 당해서 분통을 터뜨렸던 기억도 있다. 2년 전 쯤의 일이다. 여섯 시가 채 안 되었지만 어둠은 벌써 거리로 비집고 들어와 해를 밀어내고 사납게 부는 겨울바람에 덜미라도 채일세라 귀갓길을 서두는 겨울날 트럭 하나가 옆으로 붙더니 길을 물었다. 이어서 공짜로 드릴테니 잠시만 차를 대라고 하더니 휴가 온 친구를 위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몇 상자의 생선을 빼돌렸다며 제발 그저 드릴테니 사달라는 통사정에 그만 마음이 흔들렸다. 현금서비스까지 받아서 거금을 주었다.
홀린듯이 다섯 상자 씩의 생선을 싣고 와서 자정이 넘도록 뒷 베란다에서 찬바람의 한기를 맞아가며 장만하느라고 씨름을 했지만 결국 다섯 상자의 생선들은 먹지도 못하고 죄다 쓰레기통으로 직행시켰고 몸은 지쳐갔고 배신감으로 자리에 쓰러졌던 기억이 있다. 공짜라는 말에 혹해서 깜쪽같이 당했던 씁쓸한 기억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기억은 많이 희미해져서 이젠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었다.
우리는 왜 거짓을 말하는 것일까? 최근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학력위조사건을 보면서 본인들에게는 잊고 싶은 악몽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솔직하지 못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끔씩 그럴듯하게 겉포장을 하기위해 과장된 제스처를 한 적은 없었는가? 은근슬쩍 다른 사람의 업적에 편승해서 나의 명예를 높이려 했던 기억과 더 똑똑하고 더 많이 가지지 못함에 억울하고 속상해 했던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래서 나 아닌 또 다른 멋진 나를 꿈꾸어 왔던 적이 많았기에 모두들 가슴이 뜨끔했을 법도 하다.
그 모두가 명예와 권력에 대한 끝없는 욕심 때문이리라. 금전이나 권력으로 안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누리는 자의 기쁨을 이미 맛보았기에 무슨 수를 써더라도 목적을 달성해야만 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래서 기본보다는 뒷거래가 더 횡행하고 줄을 대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겠지.
진리와 정의를 위해서 밤새워 토론하며 고민했던 대학시절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로움은 가난한 자를 생각하고 부정부패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던 시절의 그들이 노력했던 대가로 얻은 것이다. 눈물을 훔치며 잘못된 판단에 대해 후회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는 것과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가식의 가면으로는 누구의 허물을 가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하지만 항상 바른말만 하고 살 수는 없다. 목이 아프고 나른할 때 먹는 한 알의 캔디처럼 마음을 상쾌하게 해 주기도 하지만 거짓말도 때로는 일상의 청량제 역할처럼 필요할 때가 있다. 비록 근본적인 해결은 안 되지만 톡 쏘는 페파민트향이 일종의 마취제처럼 목의 긴장을 해소시켜주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보내는 한 마디의 립 서비스가 듣는 사람에게는 하루 종일 즐겁게 하는 촉진제가 된다. 참 멋지다. 젊어 보인다. 대단하다는 말은 부풀려서 말하지만 듣는 사람은 거짓인 줄 알지만 행복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삼십 년 가깝게 걸어온 선생의 길에서 아이들은 내 입을 통해 나가는 말 한 마디에 하루 종일의 기분이 달려있다. 어쩌면 그들의 미래가 달려있을 수도 있다. 도움은 못 될지언정 상처는 주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다짐하면서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도 나는 외면 받지 않고 환영 받는 양치기를 꿈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