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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餘白)
우리의 학창 시절은 미술이라는 과목은 전공한 사람이 아니면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세계사에서 서구의 역사와 동양의 역사를 배우면서 고대의 문명이 빚어냈던 건축과 조각상을 보고 균형과 조화의 미(美)를 느꼈던 지식이 그나마 우리의 안목을 넓혀 주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 후 고대의 인본주의로 돌아가자는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일련의 예술가와 저술들이 인쇄술의 발달로 대중들을 계몽하고, 그리고 항로 개척으로 이루어진 신대륙의 발견은 근대사회를 열면서 서구(西歐) 중심의 사회가 세계로 확대되었습니다.
자연히 우리의 미술교육도 서양의 조각과 회화가 주류가 되어 기초회화는 데생부터 시작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데생은 채색 없이 주로 연필이나 목탄으로 물체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으로 주로 인물화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후 서예와 묵화 일색인 동양화를 보면서 ‘사물을 보는 눈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하는 의문을 가졌기도 했습니다. 저 또한 박수근 화백이나 김환기 화백의 작
품에서 감동을 받은 기억은 있지만, 동양화에서는 뚜렷한 감동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마 이것은 전적으로 미(美)의 기준이 서양의 기준으로 교육받은 영향이 크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보면 절로 어릴 때의 고향과 어머니와 누나들이 생각이 나서 울컥하기도 합니다. 김환기의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작품은 무수한 점으로 표현된 작품으로 우연이 어떻게 필연적인 만남이 되는지 우리의 삶을 끝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거기에서 저는 절대적인 겸손을 배웁니다. 우리나라 1세대 추상화가인 유영국 화백의 ”산서(山西)“에서는 강렬한 생명력을 느껴 크레용으로 모사를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동양화의 사실성 부족에 대한 오해는 오래전에 우연히 정기적으로 보고 있었든 ‘월간 조선’에서 지금은 작고하신 우리 미술계의 1세대 평론가인 이일(李逸) 교수의 칼럼을 통하여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동양의 미학에 대한 일종의 개념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궁금했던 동양화의 본질을 알게 되었는데, ”여백(餘白)과 유현(幽玄)의 미(美)”는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거제서야 한시(漢詩) 가도(賈島)의 시가 감동으로 내게 다가왔습니다.
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
[은자로 살고있는 친구를 찾으러 갔으나 만나지 못하다]
松下問童子 (송하문동자,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어보니)
言師採藥去 (언사채약거, 스승님은 약초를 캐러 가셨다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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只在此山中 (지재차산중, 다만 이 산 중에 계시겠지만)
雲深不知處 (운심부지처, 구름이 깊어 어디 있는지를 알지 못하겠노라)
제가 이렇게 동양의 산수화에 배어 있는 여백(餘白)의 미에 공감하는 것은 현대의 디지털 시대에도 책을 매개로 한 독서의 중요성을 간파한 작가에게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책의 여백(餘白)은 상호 관계적 읽기의 실천이 가능해지는 중요한 지적 공간이다.”
—김지승의 ‘마지네일리아의 거주자’중에서—
여기서 ‘마지네일리아’라는 말은 여백에 있는 것들이란 뜻입니다.
저 또한 많지 않은 독서이지만 책을 읽을 때 제 코드와 맞는 글이 나오면 약간의 흥분을 느끼며 밑줄을 긋고 여백에다 주석이나 메모 같은 각주를 달기도 합니다. 그런 습관이 있다 보니 저의 책이 정결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읽은 책은 친구들에게 홍보는 하지만 빌려주거나 중고 서점에 팔지도 못합니다.
제가 자주 찾던 광화문 교보문고에는 계절마다 독서에 관한 글 판이 올라옵니다.
그중에서도 제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삶의 지침서 같은 글귀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 책이 없으면 신(神)도 침묵할 것이고, 정의는 잠자며, 자연과학은 정지되고, 철학과 문학은 말이 없을 것이다.” 또 무슨 비밀을 속삭이듯이 “있잖아, 모든 책에는 심장이 있는데 누군가가 그것을 읽어야 심장이 뛰기 시작해. 읽는 사람의 심장과 연결되기 때문이지.”라는 문장도 있습니다.
또는 형이상학적 이데아나 신(神)을 들먹이지 않고도 충분히 호소력 있는 문장도 있습니다.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 그 두 가지 선물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불인 동시에 우리를 태우는 불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는 책에 밑줄을 긋거나 한 사람의 미숙한 아마추어로서 글을 쓸 때면 나름대로 심장이 뛰곤 합니다. 그럴 때 저는 호흡 조절을 위해 담배를 하루 몇 가치 피우게 되는 습성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담배는 독서와 글쓰기를 위한 생산적 도구가 된 셈입니다.
김지승 작가 또한 자신의 책 여백에 빽빽이 메모하며 능동적으로 읽은 책 17권이 있는데 그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17명의 세계를 삼키고 빨아 드렸더니 가장 풍부해진 것은 김지승 자신이었습니다. 그의 문장 어딘가엔 빛과 어둠이 스며있고, 또 어딘가엔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문장은 모방하기 어려운데, 책 속에서 건져 올린 게 아니고 모두 변태 곧 탈피를 거쳐 삶이란 고치를 뚫고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기엔 사색이란 발효를 거쳐 지식이 지성이 된 게 아닐까 합니다. 저도 한때 책의 여백에 주석이나 메모를 달면서 내 나름의 암호를 적어둔 적도 있습니다.
인간의 기억은 과거에 일어난 일(말하자면 역사)을 통해서뿐 아니라 예전에 읽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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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통해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과거를 소환해 줄 텍스트가 많다는 것은 앨범이나 친구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제가 권장하고 싶은 것은, 책을 소유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고 그기에 메모를 해두자는 겁니다. 훗날 그 여백을 다시 보게 될 때, 거기 밴 시간과 냄새는 닳고 닳은 나에게 삶을 반추하게 해줄 것입니다.
그림이나 책에 여백이 없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듯, 유머는 경직된 상황을 부드럽게 만들고 우리의 삶에 여유와 위로를 전하는 창조적인 ‘숨’의 공간의 역할도 합니다.
여백과 유머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흔히 ‘상상할 틈’과 ‘긴장 해소’라는 메카니즘을 통해 상호작용합니다. 여백이 있는 곳에서 유머는 완성되고, 유머는 그 여백을 즐거운 상상으로 채웁니다. 그런고로 여백은 심리적 여유를 의미합니다. 꽉 찬 일상보다는 공간적·시간적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 유머가 발생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어떤 조직에서든 유머는 필요합니다.
경제적 이익집단인 기업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의 대표적 엘리트 집단인 행정, 사법, 입법기관에도 유머는 있어야 합니다. 유머가 있는 기관은 분위기와 효율성부터 다를 것입니다.
정치인의 유머 중에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 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과 윈스턴 처칠입니다.
그의 정치적 라이벌 후보였던 스티븐 더글라스가 링컨을 가리켜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라고 공격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이에 링컨은 당황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재치 있게 응수하여 오히려 더 많은 지지자를 이끌어 냈습다. “제가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면, 오늘같이 중요한 날에 왜 하필 이렇게 못생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습니까?”
사실 링컨은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링컨의 전기인 “권력의 조건”을 읽어보아도 대통령 후보 중에 키만 껑충 큰 제일 못생긴 후보였던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링컨의 인상도 독서와 시대를 대하는 진정성과 유머에 의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어떤 소녀의 조언대로 수염을 기르면서 많은 부분이 보완되어 현재의 초상이 보여주는 캐릭터로 자리 잡았습니다.
어느 날 처칠은 의회에서 국유화를 주장하는 노동당과 격렬한 토론할 때의 에피소드입니다. 쉬는 시간을 틈타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라이벌인 노동당 당수 클레멘트 에틀리가 볼일을 보고 있었고, 빈자리는 그의 옆자리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처칠은 그곳에서 볼일을 보지 않고 기다렸다가 다른 자리가 나자 비로소 볼일을 보았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에틀리가 물었습니다.
“내 옆자리가 비어있는데 왜 거긴 안 쓰는 거요? 나에게 불쾌한 감정이라도 있습니
까?” 처칠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천만에요, 단지 겁이 나서 그럽니다, 당신들은 큰 것만 보면 국유화하려 드는데 내 것이 국유화되면 큰일이잖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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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리는 폭소를 터뜨렸고, 이후 노동당은 국유화 주장을 철회했다고 합니다.
모든 위인의 뒤에는 그들을 위대하게 만들어준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를 여윈 링컨은 침울한 소년이었습니다. 가난했던 터라 남의 농가에 머슴처럼 생활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환경에 천사처럼 새어머니가 들어 왔습니다. 새어머니는 그렇게 방치되어 있던 링컨을 따뜻하게 보살폈을 뿐만 아니라 독서를 장려하여 링컨의 내면에 지성과 신앙이 깃들도록 인도하였습니다.
훗날 링컨은 새어머니를 회고하면서 “내게 처음으로 자존감을 느끼게 해준 분이며,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천사와 같은 어머니 덕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처칠 가문은 말버러 공작 집안이라는 귀족 집안이었으나 그의 어머니 제니는 뉴욕의 유복한 실업가의 딸로서 귀족 가문에 시집온 미국의 숙녀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제니는 미모가 출중한 숙녀로서 영국 귀족의 사교계에서도 인정할 만큼 개화된 여성이었습니다. 그 첫아들이 처칠이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처칠의 이미지는 히틀러의 나치 당에 의한 2차 대전으로 유럽 세계가 붕괴될 조짐에 처했을 때, 항상 시가를 물고 승리의 V자를 그리며 영국 국민에게 “저는 여러분에게 피와 땀과 눈물밖에 요구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나라가 나치의 손에 들어가더라도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용기를 북돋아 준 지도자였습니다.
이 용기와 자긍심은 “내가 뭔가 위대한 일을 했다면 그것은 모두 어머니의 덕이다.”라며 상당한 부분이 어머니로 물려받은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크게 조명은 되지 않았지만 훌륭한 어머니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어느 나라보다 전쟁과 환란이 많았던 조선 반도에도 그런 어머니들이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는 일가견을 이룬 여류는 아니었지만, 초계 변씨로 덕수 이씨 집안에 시집와 가세가 기울던 이씨 집안을 친정인 충남 아산으로 이주하여 자식들을 교육 시켰으며, 이순신이 무과에 급제했을 때 토지와 노비를 내려 축하했으며 왜란 중에도 여수 전라좌수영으로 이사를 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하며 아들이 나라의 난(亂)을 이겨낼 수 있도록 뒷바라지했습니다. 이순신은 강인한 여장부와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를 하늘을 뜻하는 ‘천지(天只)’라 부르며 극진히 모셨습니다.
조선의 천재인 율곡과 어머니 사임당 신 씨는 우리 국민이라면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여기선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율곡과 어머니 신사임당은 우리 화폐에 새겨질 정도로 아마 모자(母子)가 화폐에 새겨져 숭배하는 나라는 세계 유일한 국가가 아닌가 합니다.
위인들의 유머를 이야기하다 보니 위인들의 배경이 되는 세상의 어머니를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만, 어머니는 현실의 실용적인 면을 몸소 보여주면서 아이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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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아이들의 내면에 여백이 깃들도록 인도하였던 것인데 그것이 결과적으로 지도자로서 갈등을 해소하는 유머가 풍부한 인간으로 성장을 이끌었던 셈입니다.
사실 유머는 현실이 각박하고 갈등이 많은 사회일수록 여백이 없으므로 생겨나기 어
렵습니다. 특히 우리 사회와 같이 압축 성장을 하며 숨 가쁘게 달려온 사회일수록 그
런 여백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저희 세대는 개발 도상국일 때 일본의 전후세대가 이룩한 성공을 모델로 삼아 많은 부문에서 그들을 학습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한참 못 미치지만, 저희 동기 중에는 일본통이라고 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여러 분야에 포진하고 있음을 봅니다.
선진국이라 일컫는 나라들은 곳곳에 전문가들이 많으며 그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
작동하는 나라들 입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가장 먼저 선진국에 진입했으며 우리
는 개발 도상국으로서 열심히 추격해야 할 처지였습니다.
그렇다면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일본의 질서정연하고 청결한 사회를 그대로 따라가면 선진국에 이를까요? 선진화로 가려면 어느 정도는 그런 모델을 따라가야 하겠지만 일본 사회는 어느 때부터인가 다이내믹한 열정이 사라진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언젠가 일본의 정신과 의사인 구마시마 도루의 책에서 이런 구절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위험을 제거할수록 삶의 밀도도 함께 사라진다.”
거기에서 일본 사회를 무겁게 염려하는 한 사람의 지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린 자녀들을 둔 우리 학부모들이 자식의 안전을 위하여 수학여행이나 가을철 운동회 같은 활동을 자제하게 만드는 과도하게 치우친 개입이 학교와 선생님이 가진 교육의 본질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런 수학여행이나 어린이날 운동회도 자제시킨 유별난 우리 학부모들의 극성이 과유불급처럼 생각되는 것은 나만 아닐 것입니다. 우리 또한 곳곳에 불합리와 모순이 공존하는 위험사회입니다.
그렇지만 위험 요소를 100% 제거할 수 있는 사회는 없습니다. 완벽하게 제거할 수 없다면 어느 정도는 공존하며 근사치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병행하며 다이내믹한 정열을 제거해서는 아니 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많은 성취를 이루며 헝그리(hungry) 사회를 벗어났습니다.
저는 헝그리(hungry) 사회를 벗어나면 곧 관용과 포용의 사회가 올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우리에게 온 것은 앵그리(angry) 사회였습니다. 초기의 노동 집약 기업에서 중화학, 방위산업과 정밀화학산업으로 진화하면서 우리는 수출 주도국가가 되었습니다. 세계가 놀란 우리의 경제적 자립은 자연스럽게 민주화의 길로 접어 들었습 니다.
물론 그 도정에는 정치적 민주화를 위한 의식 있는 열정과 희생이 수반되었기에 가능
했던 점 부정할 수 없지만, 그에 따른 진영논리와 노동운동은 우리의 국가 체력을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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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하고 급기야는 분노 사회로(angry society) 만들어 갔던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
입니다. 현대사에서도 보듯이 제국주의 국가들이 무너지고 많은 신생 국가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났습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이 문장은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 기념관’에 새겨진 글입니다.
우리는 한국전쟁이라는 참혹한 경험을 하고 자유 민주주의국가로 들어선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민족의 끈질긴 근성은 가난과 전쟁 속에서도 교육은 끊임없이 해왔다는 것이며 우리의 의식 수준은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알아볼 정도로 향상되었습니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린다고 해서 민주국가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보고 있습니다. 의식의 각성이 없는 사회는 ‘재스민 혁명’을 통해서도 아랍의 봄은 오지 않았습니다. 루마니아 또한 독재정권을 무너뜨린다고 해서 민주화는 오지 않았습니다.체코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희생을 거쳐 결국 ‘벨벳 혁명’에 이르러서야 민주화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밑천을 까고 보니 우리 또한 ‘보수는 부패해서 망하고, 진보는 무식해서 망한다’라는 말은 허튼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권력이 부패하면 사회적 강자가 되어 갑질을 하며 악마화한다는 것입니다. 진보 또한 그들은 정의롭다고 했으나 그 밑바닥에는 위선이 똬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위선은 모든 생물에게 있는 속임수 작전입니다.
둘 다 호모사피엔스가 생존을 위하여 터득한 것이겠으나 공동체를 저해하는 중대한 약점입니다. 기득권 보수의 야만성은 IMF 시대를 맞이하여 외신들이 일제히 “한국은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다”고 조롱했을 때 여실히 드러났으며, 그 압권은 당시 강남의 졸부들이 고급 술집에서 “IMF 이대로”하며 술잔을 기울였다는 보도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앵그리 사회를 만드는 데에는 특히 진영논리로 인한 정치와 노동조합의 경제적 욕구가 정치와 맞물려 분노 사회를 증오 사회까지 끌어 올렸다는 점입니다.
우리 사회가 더 천박함으로 가라앉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여백을 찾아야 합니다.
왜냐면 여백은 우리에게 자정능력(自淨能力)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의 여백을 찾아야 할까요? 저의 노트에 누구의 글인지, 언제 적어두었는지 모르지만 이런 글이 메모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잔인한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천국을 엿볼 수 있는 유년 시절을 축복하라. 통계가 보여주듯이 매일 태어나는 약 8만 명(한국 7백 명)의 아기는 종(種)의 절멸을 막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타락과 죄악의 오염에 맞서는 순수함과 생기를 내뿜는다. 요람과 유년 시절 주변에서 피어나는 모든 선한 감정은 위대한 섭리의 비밀 중 하나다. 너희
가 이 회생의 이슬을 없앤다면 이기적 욕망의 바람은 불처럼 인간 사회를 불살라 버
릴 것이다.”
무슨 격문처럼 열정을 가지고 쓴 이 글을 보면 이 작가는 분명히 어린아이들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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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희망이며 전혀 오염되지 않은 여백을 가진 존재라는 걸 확신하면서 이 세상의 어른들에게 절실하게 알리고 싶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유소년을 비롯한 초등학생들의 마음과 두뇌는 감정과 지식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의 마음을 ‘타불라 라사(Tabula rasa)’ 즉 빈 서판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이 비유는 현대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철학적 이론을 제공한 영국의 경험론 철학자 존 로크가 말했지만, 이성과 지식의 모든 재료가 경험으로부터 온다는 이론입니다. 아이들의 정신과 두뇌가 빈 서판이라면 결국 교육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호모에렉투스에서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하면서 수백만 년의 수렵·채집 생활은 인간의 체격과 손과 두뇌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빈 서판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가정환경뿐만 아니라 유전자도 제공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인간은 어느 대륙, 어느 종족이건 간에 남녀 고하를 막론하고 인간 고유의 기본값은 같다는 것입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아이는 모방과 학습을 통하여 어른으로부터 지식을 획득합니다. 지식뿐만 아니라 기질도 획득하며, 자연선택이라는 프로세스에는 선택압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생물학적 유전뿐만 아니라 문화적 유전자인 밈(meme)도 전달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아이는 여전히 모든 사회, 모든 세대 중에서 여백이 가장 많은 존재임이 틀림없습니다. 저는 아직도 아이들의 ‘까르르’ 웃는 소리에 절로 영혼이 맑아지며, 오염된 마음이 정화되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톨스토이보다 도스토예프스키를 러시아 최고의 작가로 생각하고 있으며 깊은 고뇌에서 나온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영혼이 치유된다,” “아이들을 특별히 사랑하십시오. 그들은 천사처럼 죄가 없으며 우리의 거친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고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가진 여백의 시선으로 어른들의 오염된 세상을 동화적으로 표현한 책이 생 텍쥐베리의 책 “어린 왕자”입니다. 전세계 25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2억 부 이상 팔렸다고 합니다. 사실은 동화책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알고 보면 오히려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입니다. 거기에는 어른들의 굳어진 사고방식이라는 딱딱한 껍질을 깨트리는 아포리즘들이 나옵니다.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잘 볼 수 없어” 또는“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거기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어서 그래” “집이든, 별이든, 사막이든, 그것들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야.” 등입니다. 이 책은 전적으로 타락/순수성의 대립 구도로 이야기하고,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지만 사실 모든 작가는 여백의 철학을 알고 있
다고 생각하며 특히 동화작가들은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의 눈으로 작품의 여백을 활
용합니다.
또 우리 현대 미술 속에서도 여백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작가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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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 화백을 위시하여 우리가 잘 아는 김환기 화백과 박수근 화백은 점묘(點描) 화법으로 여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이 동심의 아름다움을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보고 여백을 추구했다고 봅니다.
물론 아이 중에는 영악한 기질을 가진 아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은 집단적 바름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진화적 관점의 사회심리학자 조나단 하이트는 그의 책 “바른 마음” “니쁜 교육”에서 인간의 본성과 함께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과정에 관한 통찰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교육을 통해서 성장하고 그들의 즐거움과 지능을 획득하는 것으로 알기 쉬운데, 사실은 아이들은 그들끼리의 자유로운 놀이에 더 심취하며 더 즐거움을 경험합니다. 조기교육, 지나친 안전 주의, 입시 경쟁, 과도한 SNS 사용이 민주주의 시민을 성숙하게 하는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아이들은 또래의 놀이에서 너무나 재미있어합니다. 그러면 안되는 줄 알지만, 그냥 모두 재미있어합니다. 오죽하면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김광규 시인은 “아이들의 팽팽한 마음, 튀어 오르는 몸, 그 샘솟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이냐.”라고 읊었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여백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무엇을 관찰한 후 확증한다는 것은,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는 과학적 사실이나 사건에 대한 검증된 사실에만 한정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런 확증편향은 우리 사회에 유해할 정도로 많이 산재해 있으며, 특히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는 지식인과 학력이 높은 계층에서도 이런 경향이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느낍니다. 제가 보건대 아무리 학식이 높고 지성을 가진 학자나 교수라 하더라도 정치판에만 들어가면 균형 잃은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주제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제부터 제기한 문제나 글이 사실 우리 홈페이지를 공유하는 동기들과 프레임이 다를 수도 있음을, 그리고 프레임이 다르더라도 글을 올릴 수 있다는 자유가 있다는 전제하에 올리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시쳇말로 제가 가방끈이 짧아서 그런지 높은 학력을 가진 사람이나 시대의 담론을 탁월한 논리와 문장으로 표현한 사람을 보면 저는 참으로 존경을 넘어 숭배의 감정까지도 느끼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세계를 해석하는 패러다임과 가치관을 나타내는 프레임은 차원이 다른 영역이므로 기본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우리 공동체의 문제에 접근하자는 것입니다. 왜냐면 패러다임이란 말이 식자층의 전유물인 양 너무 남발하여 프
레임과 구분하지도 않고 쓰는 사람이 많으며, 심지어 언론의 논객들까지 구분하지 않고 쓰고 있음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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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들어오면서 과학의 발전, 특히 물리학 이론은 우리가 세계를 해석하는 이론체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시간과 공간은 예전의 좁은 시각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확대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빛은 일직선으로 나아 간다.’는 것은 상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에 의해 ‘빛의 방향도 통과하는 중력의 크기에 따라 휘어 진다’라는 것은 하나의 과학혁명이었습니다.
이 가설은 영국의 천체물리학자인 아서 에딩턴에 의해 아프리카의 외딴섬에까지 가서
관찰하는 지난한 노력으로 증명되었습니다. 나중에 그 증명을 격찬한 아인슈타인이 에딩턴을 만나 감격의 포옹을 하는 장면이 영화로도 만들어져 과학자만의 이심전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패러다임의 변화는 세계를 해석하는 과학적 사실이나 역사적으로 검증된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갈등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지표면이 그렇게 많은 지구의 비밀과 정보를 가지고 있는 줄을 몰랐으며, 거기에는 엄청난 사간의 균열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괴테와 동시대 지식인인 알렉산더 훔볼트는 초인적인 남아메리카 탐험으로 『코스모스』라는 저서로 지리학과 조류(潮流)에 관한 저서를 남겼으며, 그의 지식은 다윈이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미쳤습니다. 왜냐면 진화의 메커니즘은 일반적인 시간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질학 기준의 시간상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종래의 시각으로는 세계를 해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세계를 새롭게 해석하는 이론이 나타나서 우리의 사고 체계를 바꾸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하며 토머스 쿤이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근대혁명을 일으킨 것은 과학혁명만이 아니었습니다.
역사에서 보듯이 봉건시대를 거쳐 근대에 다다르는 데에는 무수한 사회적 혁명들이 있었습니다. 그에 따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해지고 그에 따른 개념들이 사상(思想)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무수한 프레임들이 생겨나는 분기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저는 프레임은 패러다임의 하위개념이라고 생각하며 사실의 문제가 아닌 가치의 문제라고 봅니다. 그것은 패러다임에 과학적 혁명이라는 이름을 자연스럽게 붙일 수는 있어도 우리는 프레임에 혁명을 붙이지 않는 걸 보아도 알 수 있으며, 우리는 거기에 단지 프레임의 변화 혹은 전환이라는 말이 통용되는 걸 보면 쉽게 하위 개념 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분기된 관점을 확증편향으로 몰고 가면 소통 자체가 불가능하며, 급기야는 분노와 증오의 감정으로 갈 수 있습니다. 확증편향은 자신의 기존 신념이나 가치관에 부합하는 정보만 수용하고 반대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저평가하는 심리적 경향을 말합니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오만한 엘리트층이나 기득권 권력 계층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음을 봅니다. 그들의 오만은 유명한 일타강사의 말에서도 묻어나옵니다. “제일 강의하기 어려운 곳은 관료들 특히 엘리트 관료들이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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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부터가 다르다고 합니다. 비스듬히 앉아있는 것은 물론 심지어 팔짱까지 끼고 앉
아 ‘어디 한번 해볼 테면 해보라’라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재승덕박(才勝德薄)이라고 할까요. 그들이 대중 앞에 늘 내세우는 것이 국가와 국민입니다.
그러나 국가는 절대선(絶對善)이 아니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일본제국의 식민 국가를 경험한 우리는 국가가 없는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알기 때문에, 그 트라우마는 국가라는 정치 공동체 속의 개념이 던지는 함정에 과장된 피해의식을 드러냅니다. 국력이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졌으면 그런 피해의식은 벗어날 때도 된 것일 터인데 말입니다.
국가라는 상상 속의 집단은 일정부분 개인에게 소속감을 주어 공공선을 추구하는 긍정적인 면이 크다는 것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호모사피엔스가 살아남을 수 있는 네트워크의 수가 150여 명이었다는 로빈 던바의 수는 인간이 문명국가를 만들 수 있는 기본적인 상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집단의 힘이 너무 커서 집단을 통제할 수 없는 국가가 되면, 결국 나치 히틀러와 일본제국주의 그리고 공산주의 스탈린 같은 독재국가를 만들어 갑니다.
국가에 대한 절대적 충성은 위험하기도 하다는 말입니다.
미국의 명망 있는 대법관 에이미 배럿도 지나친 국가주의에 경고를 한 바 있습니다.
“법관의 글(판결문)은 국가의 온도를 낮춰야 한다” 우리 헌재와 대법원은 이런 상식을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알다시피 영국의 대영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은 세계적인 지적 명소입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런던 왕립학회라는 학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런던 왕립학회는 450년이 넘은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처음에는 몇 명의 지식인이 모여 그냥 학회(society)로 출발했습니다. 이젠 학회의 역사가 과학의 역사가 된 세계적인 기관이 되었지만, “만약에 처음부터 이름을 영국왕립학회라고 영국의 국호를 내세웠다면 지금과 같은 자유로운 담론의 장(場)이 되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빌 브라이슨박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런던이라는 도시가 세계와 지적 교류를 할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해 준 것은 국가라는 온도를 낮추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국가에 대한 이러한 확증편향은 모든 국가 공동체가 극복해야 할 사회적 허물이며 뱀 껍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볼프강 괴테가 말한 명언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탈피하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라는 아포리즘입니다.
이러한 탈피를 주제로 한 문학작품으로는 헤르만 헤세의 성장소설 『데미안』과 전후세대 우리 문학가로 장용학의 『요한시집』등이 아주 깊이 있는 철학적 주제로 제기한 바도 있습니다.
20세기는 국가를 절대선(絶對善)으로 보는 서구를 위시한 여러 강대국과 일본의 제국주의가 횡행하던 시기로 세계의 약소국들은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민초(民草)들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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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든 타의든 새로운 삶을 찾아 조국을 버리고 낯선 땅으로 흩어지는 대규모의 디아스포라의 세기였습니다. 약소국들의 민중들이 겪은 고난은 강대국들의 나라에서 자행되
는 인권 유린과 삶의 박탈은 그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기억들을 소환하여 당시의 현실을 기록하는 사람을 우리는 역사가로 부르며 우리는 그것을 국가기록보관소(Archive)에 저장을 합니다. 그러나 기억을 보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기억을 생생하게 재현하며 인간성의 부활을 외치는 디아스포라 작가들도 있습니다.
최근에 그런 작가 중에 『파친코』라는 작품을 써 전미 도서상(圖書賞)과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에 선정된 이민진 작가도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읽고 감동을 받은 나머지 추천한 이 책은 아마 오바마 대통령도 그의 정체성 혼란을 이 책에서 공감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절대선으로 여긴 국가에 대한 확증편향을 집단광기로 몰고 간 대표적인 사람이 아돌프 히틀러와 그의 2 인자인 제국원수 헤르만 괴링과 국민계몽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이었습니다. 그들의 끔찍한 전쟁범죄는 역사가 유례없을 정도로 잔혹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후유증은, 유럽 전체가 실어증에 걸릴 정도로 정신적 탈진상태(Burn out)에 달했습니다.
오죽하면 피아니스트이자 사회학자인 문화비평가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쓴다는 것은 야만이다.”라고 했습니다. 아우슈비츠 가스실 등에서 학살당한 유대인이 백만 명을 포함 독일 곳곳 수용소에서 600만 명의 유대인이 인종청소를 당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홀로코스트(Holocaust)라고 부르며, 독일을 포함 전 인류가 그 잔혹함을 잊지 않도록 베를린에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세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조지 패튼 장군은 2차대전의 영웅으로 불도그 같은 이미지의 장군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그가 전쟁의 참혹함에 깊은 내면의 슬픔을 겪은 것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독일 본토 진격으로 전쟁이 절정에 달하면서 미국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쟁포로들이 늘어났습니다. 독일군 장군들을 포로로 잡았을 때의 일입니다.
나치의 장군들이 일반 병사와 같은 포로 대우에 제네바협약에 따른 장군 대우를 요구하자, 패튼 장군은 그들을 인근의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로 데려가 거기서 굶어 죽은 사체(死體) 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는 유대인과 전쟁포로들을 보여주며 너희들이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러며 대우받기를 원하느냐고 개탄하며 눈물을 삼켰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독일군이 퇴각한 도시의 중산층 시민들에게도 학살의 수용소를 보여주며 그들이 충성을 바쳤던 나치 정권이 얼마나 참혹한 일을 저질렀는지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전후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정권을 분석하면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패튼 장군은 직접 그것을 경험했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난세의 시대와 치세의 시대가 반복한다는 중국식의 편안한 순환논리에
빠져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엄밀히 말하면 인간의 전 역사는 전쟁과 피의 시대는 길었고 평화의 시대는 구름 속의 달처럼 잠깐 나타날 뿐입니다. 2차대전 종결 후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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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우리 자신의 나라가 정치적 이념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한국동란이라는 깊은 내상을 입었습니다. 그 후 국지전은 있었지만, 세계는 평화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그 거짓 평화는 인간의 야만을 숨기기에는 한계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우리 시대의 정의가 이것을 감당할 만큼 성숙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우리의 광장을 설익은 국뽕을 맞은 사람들이 점령하여 “작두 위에 춤추는 선무당들”이 합리적, 과학적 비판을 하는 사람들의 입을 봉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는 디지털과 인공지능으로 알고리즘의 주술에 마취되어 점점 사고 기능을 잃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빅 테크 업체들이 세계의 지식과 지성을 장악한 만큼 책임을 지고
있는지는 의문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속적 권력과 언론이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종교계에서만이라도 그들 규범의 양심을 걸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이 지점이 바로 우리의 스텝이 꼬이는 곳이며, 우리의 시대정신이 부활해야 할 곳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확증편향에 빠진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우리를 각성시킬 시대정신은 필요합니다.
시대정신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결국 시대정신은 강한 자기력을 가진 한 사람의 열정을 가진 사람이 역사적 역할을 하게 만들어 간다고 봅니다. 산업화와 국가의 기저(基底)를 추구하며 가난을 벗어나게 했던 박정희시대, 정치적 자유와 인권을 위해 싸웠던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시간이 지나고 보니 결국 시대가 간절히 염원했던 지도자였습니다.
부정적인 것은 그들의 후세들이 그들을 우상화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국가를 절대선(絶對善)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속물 정치인들의 전유물입니다. 그들은 시대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정치적 이해관계에만 매달리는 정치적 동물(Political animal)이라는 것입니다. 헤겔은 이 오염된 현실을 구원해줄 젊은이들이 계승해 주어야 할 정신을 시대정신(Zeitgeist)이라고 이름 지으며 역사의 동력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확증편향과 집단광기로 퇴락하고 있는 우리 기성세대에 제동을 걸어줄 시대정신을 구현할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마음이 간절하면 하늘도 감동한다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지도력은 여기서 나왔다고 보아야 합니다. 말 그대로 옮기면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하며, 난중일기(亂中日記) 곳곳에도 그런 정신이 흐르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시대에 얼마나 간절함을 가지고 있느냐.”라고 자문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태평양 전쟁의 영웅이면서 인천상륙작전(크로마이트 작전)의 성공으로 후에 군신(軍神)으로 추앙을 받는 맥아더가 1942년 3월 선전포고도 없이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필리핀을 탈출하며 필리핀 국민과 포로가 된 미군 1만 명에게 남긴 말이 있습니다.
“나는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 I shall return).”
맥아더의 자긍심은 곧 미국의 자긍심이었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도 그것을 알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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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이 전열을 재정비하여 앞으로 전개될 일본 제국과의 일전을 준비시켰던 것입니다
이제 저의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저는 한 인물에 도취 되는 사람도 아니고 또 그런 열정을 가질 나이도 아니지만, 서론이 길었던 것은 제가 여태껏 보아왔던 인물과는 차원이 다른 한 인물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그가 정말 우리 공동체에 희망을 주며 국운을 부활시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당원 게시판 문제로 당에서 제명당했을 때 많은 지지자 앞에서 그가 국회를 떠나면서 한 말이 “보수 재건을 위해 저는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자긍심으로 따진다면 맥아더보다 못할 것도 없겠지요
그가 ‘반드시 돌아오겠다.’라는 결기는 맥아더가 한 말( I shall return )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엘리트 검사로서 분식회계를 일삼는 재벌회사와 론스타 주가조작과 관련 론스타의 유죄판결을 받아냈을 뿐만 아니라 론스타에 패소했던 국제분쟁을 ‘죄수의 딜레마’라는 진화심리학의 기술을 이용해 승소를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그가 제명당해 당에서 쫒겨 났을 때 그의 자존심으로 볼 때 얼마나 쪽팔렸겠습니까.
또 실제로 그는 북구 구포의 어린 학생에게서 “아저씨 무소속인데 쪽팔리지 않으세요.”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아저씨 쪽팔려도 괜찮아”하며 오히려 사진까지 찍으며, 어린 학생들을 배려하는 모습은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질문을 던진 어린 학생이, 어른도 하지 못할 질문을 당돌하게도 한 점이 귀엽기도 했고 또 그것을 받아 준 한동훈의 여백도 아름다웠다고 봅니다. 제가 한동훈 얘기를 하면서 이순신과 맥아더를 예로 들은 것은 세 사람이 공통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국가의 크기와 힘의 영향력은 비교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 모두가 쪽팔리고는 못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자긍심이 아주 강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무소속의 단기필마(單騎匹馬)로 출마해서 승리한 가장 큰 이유는 ‘쪽팔리고는 못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남자의 일생에서는 종종 승부를 걸어야 할 때가 있는 법입니다. 한동훈은 법무부 장관으로서 그 많은 여당 국회의원들과 싸우면서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습니다. 이어서 집권 여당의 비대위원장을 맡으면서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지휘했습니다. 그의 진가를 알아본 것은 아마 저도 그 시점부터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그 선거는 패했습니다. 아마 그의 인생에서 첫 패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패했지만 그의 진가는 드러났다고 보아야 합니다.
누가 그렇게 말했듯이 총선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고 증명하는 자리입니다. 그는 자기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그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패배가 그의 인물을 한층 더 크게 키웠다고 봅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언론은 그를 조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단기필마로 출전했을 때 국내 언론뿐만아니라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 그리고 미국의 CNN방송에서도 한동훈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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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한 것을 보았습니다만. 유능한 형사들이 범죄의 개연성이 있을 법한 현장의 냄새를 잘 맡듯이, 세계적인 저널리즘의 기자들은 사회적 이슈가 무엇인지, 대중의 관심이 어디로 집중되는지에 대한 후각이 잘 발달 되어 있습니다.
제도권 정당이 아닌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이렇게 조명을 받는다는 것이 기이할 따름입니다. 아마 한동훈이 가진 캐릭터에 대한 입체적인 자료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홀로그램이라는 입체 영상은 레이저 빛의 간섭 형상을 이용해 3차원 입체정보를 평면 위에 기록하고 재생하는 영상입니다. 조지 루카스 감독이 제작한 『스타워즈』라는 SF 영화에서 소개한 바 있는데, 참으로 경이적인 장면으로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홀로그램이 입체영상을 만들 듯이 한 인간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려면 결국 그와 가장 지근거리에 있었던 형제자매나 오랜 친구나 직장동료의 말을 들어 조합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동훈이라는 한 인물의 입체적 조망은 우선 어린 시절부터 더듬어 가보면, 아버지 어머니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생활에 경건함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가톨릭은 조선 말기 당쟁으로 인해 성리학의 정신세계가 붕괴하고 있을 때 주로 소외된 남인(南人)들과 여성에 의해 받아들여져 많은 박해와 순교자라는 희생을 겪으면서 성장한 종교로, 우리가 선교사도 없이 자생적으로 발생한 기독교의 구교(舊敎)에 해당됩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서 개신교가 주류를 이루면서 가톨릭은 비주류로 밀려났습니다만,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신앙의 밀도 면에서는 상당히 성숙한 신도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한동훈은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성당의 외방 선교사로 와 있던 외국인 주임신부의 미사 집전을 돕는 복사(服事)역할을 한 사진이 옛날 교우들에 의해 공개된 적이 있습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그의 주제곡으로 시작되는 ‘시네마 천국’이라는 영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인 토토가 어린 시절 신부님의 복사를 서다가 한눈파는 바람에 신부님의 꾸지람을 듣는 장면이 있는데, 복사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사는 신부님의 미사 집전을 돕는 어린 사제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한동훈도 어릴 때지만 종교적 경건함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느꼈으리라 봅니다.
어릴 때 외국인 주임신부의 미사 집전을 돕는다는 것은 어린아이의 자부심이며 그에게는 하나의 윤리기준이 심어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성장하면서 세속적인 경험과 면학으로 인해 그것은 퇴색되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지식과 감성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어릴 때의 경험은 그의 내면 한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다음 학창 시절의 면학 능력은 언론에 알려진 바와 같이 탁월하여 전교 수석을 놓
치지 않았으며 친구들과의 친화력도 좋아서 선생님과 친구 사이에 가교역할도 부지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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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했다고 합니다.
중학교 동창의 증언에 의하면 반장을 맡고 있을 때 학급 친구 두 명이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모범생 한 명과 문제아로 분류되던 학생 한 명이 비슷한 시기에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모범생 친구만을 위한 롤링페이퍼를 반 친구들에게 돌려 작성하라고 지시했던 모양입니다. 이를 본 한동훈은 선생님에게 “ 왜 그 친구만 해줘야 하느냐, 똑같이 전학을 가는데 한 명만 해주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라고 선생님을 설득했다고 합니다. 이 일화는 성적이나 평판에 구애받지 않고 친구들을 대하는 사례로 남아 친구들이 좋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친구들이 한동훈의 집에 가면 한동훈 어머니의 따뜻한 대접을 받은 연고로 자주 놀러 가게 된 것도, 아마 아들이 친구들로부터 인정을 얻고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또한 법무부 장관 시절부터 국회 청문회에 나오면 야당 의원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당하는 것을 익히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팩트에 기반한 순발력 있는 답변과 야당이 제기하는 의문에 주제 파악을 잘하고 논리적 설명에는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답변과 동시에 질문자의 과거 행적과 설화(舌禍)까지 이야기하며 역공격까지 하니 오히려 그들의 위상만 흔들릴 정도였습니다.
제가 본 바로는 국회에 불려 나온 정부 측의 관료 중에는 발군이었습니다.
논리로 되지 않으면서 그들의 말이 점점 천박해지고 심지어 가짜뉴스까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운동권 진보 인사들이 무식하다는 말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들이 연출되었습니다. 정부 측 관료대표로 나온 법무부 장관에게 “왜 깐죽대나?” “아주까리기름을 먹어서 미꾸라지냐”등 모욕적인 횡포에 더하여 대표적인 가짜뉴스인 ‘이모 발언’부터 ‘청담동 술집 출입’ 문제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였습니다.
한동훈은 하도 기가 차니까 그러면 “그게 사실이라면 여기서 저는 모든 직(職)을 걸겠다. 당신은 무엇을 걸겠느냐”라고 하며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이 뻘쭘해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국민에게는 시정잡배처럼 보였습니다.
사람의 인격이 사고파는 재화의 시장은 아니지만, 기업이 인재를 고르듯이 결혼 시장엔 적령기의 남녀가 결혼을 앞두고 상품 흥정과 같은 시장이 형성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정치에도 국가의 존립과 민생을 위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치인들의 시장이 만들어집니다.
그 시장을 주도하는 대표기관이 정당(政黨)입니다.
일류 백화점이 소비자를 위하여 최고의 상품을 내어놓듯이 정당은 최고의 인재들을 구매자인 국민 앞에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정작 내어놓는 인재는 일부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잡배들을 내어놓습니다. 그들만의 권력을 위한 이익공동체인 카르텔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양당(兩黨)이 모두 도긴개긴입니다.
그런 인물들이 국정 질문을 하는 수준은 ‘안 보아도 비디오’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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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 이하의 대정부 질문에도 한동훈의 답변은 에둘러 말하거나 진부한 말로 중언부언하지 않고 대체로 담백하게 표현합니다. 오히려 질문자의 논제가 주제이탈을 하는 경우가 있어 바로 잡아주기까지 하는 웃지 못할 코미디같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우문현답(愚問賢答)이 연출되고 있는 모양새 같았습니다.
그의 언어가 담백하다는 것은 그의 영혼이 담백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보통 국회 상임위나 본회의장의 대정부 질문에서 “여론이 민주당으로 기울어지고 있는데도 수사를 하는 것이 옳으냐”라고 물으면 “수사는 팩트로 하는 것이지 여론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며 단호한 입장을 취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야당의 고위층이 “정부의 견해가 우리와 너무 다르고 오만하기까지 하다.”고 하면 “제가 굳이 의원님의 프레임에 맞게 답변할 의무는 없습니다.” 라고 칼로 자르듯이 대답하면 질문자가 머쓱해지기도 합니다. 상대하는 당에서도 ‘저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하며 의문을 가질 정도입니다.
이러한 자질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오랜 독서와 비판적 사고로 단련된 학습이 숙성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그의 입체적인 캐릭터의 모습을 아주 가까운 친구들의 말을 통하여 참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동훈의 뇌에는 아카이브(Archive. 국가기록보관소)같은 서류가 잘 정돈되어 있어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보고 다시 넣어 두는 메카니즘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일찍부터 전두엽이 발달하여(말하자면 철이 일찌감치 들어서) 합리적 판단이 별개로 작동되고 있다고 봅니다.”
어떤 집단이든 그 조직의 장(長)은 카리스마가 없으면 그 조직을 잘 이끌지 못합니다.
카리스마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들을 따르게 하는 능력으로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정치 지도자가 가지고 있어야 할 자질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카리스마가 너무 강한 사람은 주변에 살기까지 느껴진다고 하니 함부로 다루어서는 아니 되는 어떤 권위 같은 것입니다. 『로마인 이야기』라는 대작을 쓰면서 카이사르의 카리스마를 가장 매력적인 것으로 보았든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중세 이탈리아의 냉혹한 천재 체사레 보르자를 전형적인 카리스마형 정치가로 보았습니다.
그의 뛰어난 외모도 카리스마에 한몫했다고 합니다. 초인의 철학자 니체도 “초인이란 도덕적 성인군자가 아니다. 체사레 보르자 같은 사람이야말로 초인이다.”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러면 한동훈의 사람을 끌어모으는 카리스마는 어디에서 나올까요?
제가 부산 북구 화명동에 살다 보니 그것도 인연이라고 할지, 유심히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고 기대해왔던 한동훈이 6.3 지방선거에 부산 북구 갑, 정확히 말하면 구포· 덕천·만덕을 지역구로 하는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신도시도 아니고 오래된 구포시장을 비롯해 고루함이 배어 있는 후진 동네라고 할까요. 그 언덕길을 두달 전부터 골목 골목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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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공식 선거전이라 적극적인 선거유세는 허용이 되지 않았습니다만, 저는 처음부터 아무 조직도 없이 그리고 으레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도 없이 혼자 다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여 너무 안이한 자세가 아닐까 하고 근심스럽게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선거사무실 개소식 이전에는 공식 유세 활동이 금지되어 있어 마이크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장과 동네 골목을 돌며 지역 주민들과 대화하는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제명당했던 사람이라 당내분열 논란이나 징계 우려를 차단하기 위해 친한동훈계 현역의원들의 참석을 적극적 만류하고 조력을 사양하기까지 했습니다.
일찌감치 현지인 만덕의 아파트로 이사했다고 하면서 주민들과 인사하며 지역 현안을 경청하며 주로 듣는 위치에서 자신을 홍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도 워낙 중앙정치에서 알려지다 보니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사진을 찍기도 하며 특히 어린 초등학생과 중딩·고딩들과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담기기도 했습니다.
기억력이 얼마나 좋은지 두 번째 만나는 학생을 보고는 “저번에 견학갔다 온다고 했는데 잘 갔다 왔니?”하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 학생은 중앙 정치무대에서 내려온 사람이 자기를 기억해주는 게 고마워서 그랬는지 친구들과 함께 씩씩하게 “예, 잘 갔다
왔습니다.” 하며 뿌듯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진심이 담긴 교감은 홍보 효과도 큰 법입니다.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심지어는 유치원에 다닐 법한 어린아이들까지 사진 찍자고 다가서는 모습을 보며 또 그런 장면이 선거 기간 내내 계속되는 것을 볼 때 이러한 행위는 보여주기식의 쇼윈도 정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린이들과 어린 학생들이 뿜어내는 순수한 여백이며 한동훈은 그 여백과도 교감할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것입니다. 종래의 기성 정치에서는 볼 수 없는 참신한 품격이었습니다.
저도 경험한 바이지만 저희 아파트가 신축 아파트여서 그런지 대체로 젊은 부부와 어린아이들이 많은 편입니다만 자신의 아이를 이뻐하고 칭찬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엄마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도 엘리트 검사 출신의 법무부 장관을 지낸 젊고 잘생긴 사람이라면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석 달배기 영아도 이쁘고 잘생긴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균제와 조화의 미를 알아보는 우리의 뇌는 선험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아이들과의 친화력을 누구는 “서동요 전략”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합니다. 신라의 향가인 ‘서동요’는 어릴 적 이름이 서동인 백제 무왕이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아이들이 자기가 지은 향가를 부르게 하여 소문이 나도록 했다는 일화입니다.
마케팅 이론에서는 이것을 바이럴마케팅 혹은 노이즈마케팅이라고도 합니다.
그렇다고 저는 한동훈이 그런 마케팅 의식을 가지고 선거운동을 했다고는 보지 않으며, 대부분 영상을 보면 엄마와 아이들이 먼저 다가가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것까지 조작된 것이라면 저는 정치에 환멸을 느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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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스스로 다가간다는 것은 한동훈에게 경계심은 없고 동네 아저씨같이 편안하게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앞으로 정치인이 될려면 어떻게 해야될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되는 지점이 아닐까 합니다. 그는 선거유세의 프레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정치는 이상이나 환상이 아니라 리얼한 현실입니다.
시장과 현실을 모르는 이론만의 정치인은 선거 시기에는 열광의 정치를 만들지 몰라도 그 시기가 지나면 현장에는 축제가 지나고 난 거리처럼 을씨년스러울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나오는지도 모릅니다.
압권은 노점상을 하는 일명 토마토 할머니였습니다.
80이 넘은 할머니가 구포시장 근처에서 야채 노점상을 하는데 한동훈이 지나가다 인사하며 토마토를 얻어먹은 적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할머니가 혼자 선거유세를 하고 다니니까 안쓰러워 “점심은 먹고 다니냐?”고 물었던 모양입니다. 한동훈이 바빠서 제때 못 먹고 다닌다고 했던가 봅니다.
그때부터 매일 찰밥과 반찬을 만들어 한동훈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합니다.
한동훈이 찾아와 그 사연을 듣고 감동을 받은 나머지 하는 말이 “할머니, 제가 오지 않으면 어떡할 뻔했어요.” 할머니 왈 “언젠가는 올 줄 알았어.”라고 당연한 듯이 태연히 말합니다. 그러면서 보따리를 풀어 헤쳐 찰밥과 반찬을 내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동훈이 눈물을 흘렸으면 신파극이 될 뻔했습니다.
그러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생전 처음으로 길바닥에 앉아 밥을 얻어먹었을 것입니다. 저는 문득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이야기하지 말라.”는 괴테의 말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만 참으로 이런 선거유세는 처음 보았습니다. 사뭇 감동적이었습니다.
이것이 신문 방송 매체에 실리면서 일명 찰밥 할머니는 구포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그 소문 덕에 저희 집사람도 호기심에 할머니에게 가서 이런저런 채소를 사게 되었습니다. 한동훈은 답례로 선거사무실 개소식에 할머니를 초청하며 “꼭 와주십시오.”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할머니 왈 “선거사무실 말고, 청와대 들어가면 꼭 초청해달라.”
할머니는 한동훈을 대통령이 될 사람이라고 예감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 예감이 맞는다면 할머니는 굉장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그 말에 한동훈도 사뭇 진지하게 “제가 약속드리죠. 만약에 청와대에 들어간다면 할머니를 제일 첫 번째로 모시겠습니다.” 할머니가 워낙 진지하게 말씀하니까 한동훈도 진지하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사를 예견하는 일은 심오한 철학에서만은 오지 않습니다.
절실한 간절함이 어느 임계점에 이르면, 이 세상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우연을 가장하여 필연처럼 시대의 방점을 찍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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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은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국민의 힘, 그리고 민주당 소속의 지도부에 의해 집중 견제를 받았습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한동훈을 기피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게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무소속을 상대하며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전례가 없던 일로 체면치레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한동훈은 무소속으로 1392란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습니다.
찰밥 할머니와 성사된 드라마로 아마 수천 표는 한동훈에게 돌아갔을 것입니다.
이것이 한동훈의 힘이며 카리스마였습니다.
그러나 한동훈은 기성 정치인에게는 기피 대상이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워낙 대중적인 인기몰이를 하니까, 일정부분 시샘하는 중진들이 있는 반면에 또 그의 프레임이 종래의 정치인과는 다르며, 그가 쓰는 언어는 그들이 쓰는 진부한 언어와도 달라서 여야를 막론하고 그와 벌이는 맞짱토론을 거부하는 편입니다.
들은 바로는 자신의 전공이 아닌 분야에도 많은 독서량이 있어 웬만한 지식은 교양으로 갖추어져 있다고 합니다. 저 또한 그런 면이 있지만 책 욕심이 많아 마음이 꽂히면 우선 사놓고 해서 읽지도 못한 책이 쌓여 있다고 합니다.
유세 기간 내내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보니 체력이 만만치 않음을 볼 수 있었으며 보통의 정신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겸손은 인사의 각도가 아니라 마음의 각도라 합니다. 곳곳에 한동훈의 진심이 묻어났습니다. 나도 그 진심을 믿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의 정통보수재건이라는 시대정신과 그리고 그의 충정이 권력의 힘이 닿지 않는 힘없는 국민의 자리에까지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찰밥 할머니의 상식에 웃음꽃이 피어나도록 전라도 할머니들이 잘하는 말도 있습니다.
“뭣이 중헌디, 아! 뭣이 중허냐고.”
그 가까운 상식이 저뿐만 아니라 사실 저보다 많이 배우고 독서량도 많은 엘리트층에서도 많은 지지자가 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조갑제 김종인 같은 책사에서부터 진중권 교수를 비롯해 이현종 신지호 정혁진 송영훈 김연주 그리고 친한동훈계 의원인 김예지 고동진 진종오 김형동 박정하 배현진 박정훈 정성국 한지아 조경태 같은 오피니언 리더들이 앞으로 보수 재건을 위한 강력한 지지층이 되리라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정치는 현실이지만 미래를 향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미래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번 선거유세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어린아이들과 중딩 고딩들과의 여백의 대화를 상기하며 그들을 시대정신으로 이끌어 가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미래는 그들의 시대이니까요. 한동훈은 그것이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갈 밝은 미래이며 이 땅의 정치에 보수 재건이 할 일이라고 생각하리라 믿습니다.
한동훈이 진정 여백의 정치인이라면 이러한 시대정신으로 채워 나가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2026년 8월 31일 김 정 율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