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 발자취를 따라서
I. 첫째날
2012. 4. 25. 비행기가 바퀴를 내리고 있는 중국 장춘 공항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안중근 아카데미 2기생들과 함께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저격한 하얼빈을 찾아가는 이 시간. 하늘도 잠시 안의사를 추념(追念)하는 우리들의 생각과 조응하는 것일까? 장춘 시내의 한인식당 용수산에서 점심을 먹고 기차로 하얼빈으로 향한다. 서울에서 곧장 하얼빈으로 날아갈 것이지 왜 굳이 장춘에서 내려 기차로 향하는 것일까? 우리는 제일 먼저 안의사가 이등박문을 저격한 하얼빈역 구내 현장을 보고자 함이나, 중국 당국이 이를 허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장춘에서 하얼빈까지 기차 여행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하얼빈역에서 내려 이 역사적 현장을 보려는 것이다.
전에는 하얼빈역에서 입장권만 사서 들어가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저격 현장에서 기념식을 올린다 추모 행사를 올린다 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들여 이를 금지시켰다는 것이다. “뭐? 그럼 어때서? 안의사의 의거는 중국도 찬양했던 것인데, 한국인이 좀 그런 행사를 한다 한들 뭐 그리 신경 쓸 일인가?” 중국은 일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데, 중원을 호령한다는 대국이 마음 씀이 그리 용렬해서야...
기차 객실 안으로 들어선다. 객실은 우리나라 무궁화 열차 정도 수준인데, 꽉 찬 객실은 중국인들의 떠드는 소리, 여기 저기 흘린 쓰레기 등으로 시장통에 들어온 것 같기도 하다. 전에 일본에서도 기차를 타본 적이 있는데, 깨끗하고 조용하기만 한 일본 기차와는 대조적이다. 우리나라는 그 중간쯤이라 할까? 중국과 일본은 여러 가지로 대조적인데, 우리나라가 지리적으로도 그 가운데에 있을 뿐만 아니라, 이외에도 여러 가지로 중용이라 할 것이다.
기차는 2시간 동안 비 내리는 만주 벌판을 달려간다. 저번에 북경 갈 때 하늘에서 내려다본 중국 땅은 시멘트로 싹 밀어놓은 것처럼 밋밋하더니, 지금 기차로 달려가는 만주벌판도 도대체 산이라는 것은 볼 수가 없다. 저 만주벌판 어디에선가 우리의 독립군들도 때로는 뜨거운 태양볕 아래에서 때로는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가운데서도 독립군가를 부르며 행군하지 않았겠는가?
2시간 걸려 하얼빈역에 도착하였다. 기차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우루루 개찰구로 향하는데, 우리는 이들에 휩쓸리지 않고 역 구내의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잠시 이동한 곳에는 바닥에는 네모난 타일이 박혀있고 그로부터 5m 정도 떨어진 곳에 세모난 타일이 박혀있다. 우리를 인솔해온 박환 교수님이 설명을 시작한다. 이등박문이 저 네모난 타일 위를 걸어가고 있을 때에 안의사가 환영 관중을 헤치고 나와 이쪽 삼각형 타일 위에서 이등박문을 향하여 총을 쏘았다. 중국이 기념비는 못 세우게 하면서도 그나마 바닥에 이런 표시는 해주었구려.
일본의 대륙 침략을 꿈꾸며 하얼빈역을 밟았을 이등박문은 3발의 총탄을 맞고 역 구내도 벗어나보지 못하고 관에 누여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갔다. 안의사는 이 때 자기가 쏜 사람이 이등박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옆의 일본인을 향해서도 총을 쏘았었다. 당시 만주철도 상임이사였던 다나카 세이지로는 괜히 이등박문 옆에 있다가 중상을 입었으면서도 훗날 자기가 만난 사람 중 제일 훌륭한 사람은 안의사라고 단언하였다고 한다. 안의사를 변호하였던 변호사 미즈노 키치타로도 나중에 안의사를 생각하면 언제고 눈물짓는다고 하였다 하지 않는가? 잠시 눈을 지그시 감고 그날의 정경을 상상해본다. ‘탕! 탕!! 탕!!!’
박교수는 저쪽으로 역구내를 벗어난 곳에 철로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가리키며, 안의사는 거사 전에 저 채홍교 위에서 역구내를 살피며 어떻게 거사를 할 것인가를 구상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애초 걸어서 저 다리까지 가볼 생각이었으나, 비가 오고 있어 이렇게 바라보는 것으로만 만족하기로 하고 우리를 기다리는 버스로 향한다.
우리가 묵을 호텔은 소피텔 호텔. 외관을 유리로 두른 호텔은 번쩍번쩍 한다. ‘하얼빈’ 하면 언뜻 고층빌딩도 별로 없는 북만주의 어느 한 도시가 연상이 되나, 호텔까지 오는 동안 하얼빈 시내 곳곳에는 고층빌딩이 우뚝우뚝 올라가 있다. 답사나 학회로 하얼빈을 많이 드나든 박교수는 자기가 처음 하얼빈에 왔을 때를 생각하면 정말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한다. 수년 전에 연길시에 갔을 때에 연길시 여기저기서 건물이 올라가던 것이 기억난다. 연길시도 지금 가면 몰라보게 발전해있겠지?
며칠 동안 나와 동거할 동기생은 김종성 사장님이시다. 대구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김사장님은 안중근 아카데미 강의를 듣기위해 매번 대구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오는 열정이 있으신 분이다. 사업하는 분이라 사업하는 쪽으로만 촉각이 발달한 줄 알았으나 안의사를 배우려는 열정 뿐만 아니라 ‘태풍이 떠난 오후’라는 시집도 내신 분이다. 하긴 요즘 같이 이 만주벌판에서 목숨을 바쳐가며 싸운 독립투사들을 그저 흘려보내는 세대에 안의사를 배우겠다고 일부러 시간 내어 안중근 아카데미에 등록한 분들이라면 뭔가 남다른 열정이 있는 분들이 아니겠는가? 호텔 건너편에서는 중국 CCTV 방송국의 중계탑이 높게 솟아올라 비구름 속에서 깜빡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