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신 / 조현미
밥을 기다리는 중이다. 한 그릇, 덥고 차진 고봉밥을. “밥 먹자.” 윤기가 잘잘 흐르는 한 마디를 기다린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한 그릇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푸수한 한 마디에 너무 오래 굶주렸다.
초가집이 오밀조밀 엎드려 있는 마을이 송이버섯의 군락 같았다. 키 작은 돌담과 빼뚤빼뚤 가르마를 탄 골목길, 투박한 토박이말이 영락없이 오래 묵은 된장 맛이었다. 고만고만한 집들을 둘러보던 중 그 집을 만났다. 누추하지만 살림만은 반들반들 빛이 나는 집이었다. 들기름을 먹여 윤이 자르르한 마루와 장판, 낡아서 더 정이 가는 세간. 옛집의 모습을 빼닮은 부엌을 보는 순간 나는 단박 그 집이 좋아졌다.
비좁고 오래되었지만 정갈한 부엌이다. 부뚜막에 세 개의 솥이 앉아 있고 귀퉁이엔 멀쑥한 살강이 서 있다. 시렁 위엔 소쿠리랑 함지가 엎드려 있고 키며 소반, 주걱이 바람벽에 어깨를 겯고 있다. 치열이 고른 서까래와 숯검정을 칠한 채 헤벌쭉 웃고 있는 아궁이, 벽 가운데 좌정한 조왕보시기*까지, 어디 하나 낯선 데가 없다.
집 안팎을 오래, 쓰다듬는 눈길이 주인 할머니 보시기에도 흡족했던 모양이다. 쏟아지는 질문이 귀찮을 만도 하련만 일일이 받아주신다. 날이 춥다고, 아궁이 앞에 자리까지 마련해 주시며. 앉은뱅이 의자에 앉으니 선반 위 조왕보시기에 절로 눈이 닿는다. 훈김 덕일까. 희푸른 사기그릇에 담긴 물도, 당신의 눈빛도 봄날의 무논처럼 촉촉하다. 아주 오랜만에 친정에 온 여식을 바라보듯, 손녀에게 그러하듯…. 엄동 같은 세상에 부엌만큼 따뜻한 공간이 있을까. 초면의 객쩍은 분위기를 눅이는 데 아궁이 앞만 곳이 없지 싶다.
문고리에 한기가 쩍쩍 들러붙을 무렵이면 아이들의 잠도 깊어졌다. 닭이 몇 홰나 울었을까? 문지방을 넘어온 햇살이 기침起寢을 재촉할 무렵, 부엌에선 하루를 여는 소리가 사뭇 정다웠다. 고무래가 그르렁거리며 재를 긁어낸 뒤 솔가리에 불을 댕기면, 아궁이에선 때 이른 진달래가 무더기로 피었다. 두런거리는 물소리와 달그락거리는 그릇들의 수다, 도마 위를 콩콩거리는 칼의 노래……. 때로 소리는 눈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진즉 잠에서 깼음에도 그것들의 감촉이 너무 감미로워 이불깃을 부여잡곤 했었다.
추운 날, 밖에서 돌아온 뒤 맨 먼저 찾는 곳이 부엌이었다. 아궁이든 부뚜막이든 솥뚜껑이든 손과 발을 데운 뒤에야 몸의 안쪽도 서서히 달아올랐다. 도심의, 얼붙은 골목에서 마주친 된장국 냄새는 또 얼마나 눈물겨웠던가. ‘가마솥은 뚝뚝 밥물을 흘리고 양은솥에선 국이 끓겠지. 살얼음이 동동 뜬 동치미랑 김장김치도 상에 오를 거야….’ 두리반에 낀 성에를 닦아내며, ‘밥상 들여가라.’는 어머니 말씀이 귀에 선한데…. 인기척에 정신을 차리면 몸은 찬 담벼락에, 마음은 먼 고향 집 아궁이 앞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런 날의 저녁이면 어김없이 폭식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먹어도 마음속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부엌은 몸이 기억하는 가장 따뜻한 처소였다. 사랑이 바깥주인의 단순한 침소가 아니었듯 부엌 또한 조리 공간의 차원을 넘어 존재했다. 여인들의 귀엣말이 술독의 밀주처럼 내밀하게 익었고, 이슥한 밤엔 아녀자들의 목욕간으로 변신했다. 그곳은 또한 온기의 발원지였다. 오랜 길의 날에 발바닥이 부르튼 나그네들이 아궁이 앞에서 노독을 풀곤 했다. 한 그릇 더운밥의 힘으로 남은 길을 가곤 했다.
붓다가 설산에서 여염으로 돌아온 까닭도 실은 한 그릇의 밥 때문이었다. 나라님이 미복으로 잠행을 감행한 궁극의 이유 또한 ‘밥’에서 기인했다. 풍년이 든 해엔 인정도 도타워 밥그릇이 수북했을 게다. 기근이 심할 땐 밥그릇이 홀쭉해 민란이 잦았을 터, 밥은 곧 하늘이었다. 수자타**가 공양한 유미죽을 젓순 뒤 깨달음에 이른 붓다를 보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사철 밥을 해 식솔을 거두고 먼 길 가는 길손의 찬 속까지 헤아리던, 어머니들이야말로 신神이 아닌가.
따지고 보면 우리들의 옛집은 죄, 신들의 거주지였다. 부엌은 물론 집터나 장독간, 우물과 뒤꼍, 심지어 뒷간에도 신이 살았다. 뿐일까. 손마디가 문드러진 몽당비에도, 나이테 다 지워진 그루터기에도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시월상달이면, 어머닌 그 많은 신을 살뜰히 모셨다. 행여 부정이 탈까, 시룻번을 두르듯 입술을 꼭 다문 채 햅쌀을 담그고 떡을 쪘다. 애어른 할 것 없이 신들의 시식이 끝난 후에야 수저를 들 수 있었다. 고사란 단순한 제사가 아니라 신과 인간의 공동 축제였다. 신들도 밥을 먹고 살았다.
그 많던 신은 다 어디로 갔을까? 구들이 보일러로, 아궁이가 가스레인지로, 솥뚜껑이 프라이팬으로 바뀌면서 하나둘, 옛집이 사라졌다. 어쩌면 어머니도, 신도 그 뒤를 따라 산속 깊이, 먼 하늘로 거처를 옮겼는지 모른다. 그런 후 그들이 사라진 자리엔 결코 채울 수 없는 허기만이 남았는지도….
허기가 비단 식욕에서만 비롯되겠는가. 한 장, 나무이파리 같은 지폐 몇 잎이면 떡 벌어진 밥상을 살 수 있는 이즘이니. 그러나 억만금을 주어도 결코 채울 수 없는 영역이 있으니 그건 바로 ‘마음’이다. 쌀만 씻어 안치면 저절로 밥을 ‘만드는’, 압력솥의 밥은 밥이 아니다. 기꺼이 다비를 택한 나무들의 보시와 그 많은 자식을 씻기고 먹여 재우느라 노루잠이 일상이 된 어머니의 기여만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밥으로 화化한다. 먹어야 연명하는 서글픈 본능 앞에서 삶은 결국 밥을 얻기 위한 투쟁이다. 물어뜯고, 할퀴고, 먹고, 먹히는 ……, 아수라!
보다 못한 신이 한 사람을 지상으로 내려 보냈으니, 바로 어머니였다.
한 그릇, 더운밥 앞에서 사람들은 모두 순한 짐승이 된다. 야생의 습성이 아직 남아있는 남자들을 보아라. ‘밥’이라 말을 떼는 순간 그들의 언어는 한 톨 쌀알처럼 둥글어진다. 겹겹의 페르소나를 벗는다. 아버지로, 남편으로, 한 마리의 배가 고픈 인간으로 그제야 돌아온다. 그래서 밥을 잘 차려내는 집의 부부 사이는 늘 돈독하다.
뜨끈한 구들에 하룻밤을 지지고 거뜬히 몇 날을 살 밥심을 얻어 길을 나선다. 생의 반쯤 걸어왔을까? 아직은 먼 길. 시장기는 끼니처럼 찾아오고 끓는 밥물처럼 설움이 복받치는 날, 다시 이곳으로 흘러들 것이다. 객지를 에돌다, 에돌다 밤기차에 짐짝처럼 실려서는 명절을 쇠러 오던 피붙이처럼. 오래 볕을 쬐지 못해 해쓱한 그때 그 달의 얼굴로.
어미라는 이름을 부여받는 순간 불 지펴 밥을 짓는 소명이 주어졌으니, 찬 방에 불 넣으러 남은 길을 간다. 내 새끼 빈 속 채우러 집으로 돌아간다.
어서 가라는 듯, 다시 오라는 듯 손을 까부르는, 할머니의 부엌에 아직 신이 산다. 한평생 불씨를 지피느라 입 골짝이 다 해진, 어머니가 산다. *
*부뚜막에 물을 담은 종지를 놓아 조왕신을 모시는 풍습
**붓다가 설산의 6년 고행을 마치고 니련선하로 내려왔을 때 우유죽을 공양한 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