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에세이>
나의 문학적 가치관과 혼동의 방향성
崔 秉 昌
나에게 중요한 것은 빛과 그늘의 밸류(value)라는 현상 속의 가치형성
으로써 주지적(主知的)태도와 주의적(主義的) 감상성(感傷性)에 의한
주관적 당위성의 객관적 가치에 임하는 것이리라.
이른바 흄과 엘리어트의 고전적 전통성의 낭만주의를 전면적으로 수
용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엘리어트의 개성목각 이론에 대하여서는 시
인의 정서나 개성이 배제되어야함에는 다소 상이한 의견을 가진다.
즉, 엘리어트가 햄릿과 그에 관한 문제에서 표명한 이른바 객관적
상관물은 감정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이 특유한 정서에 상응하는 어
떤 사물이나 장면, 또는 일련의 시간들을 찾아서 조직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이론 (異論)을 갖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지즘과 맥을 같이 하는 주지주의적(主知主義的) 개념의 지
향성은 우선 나의 기본적 관성으로 임해두고자 한다.
여기에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배제될 수도 없는 큰 뿌리의 근간을 이
뤄온 모더니즘의 양면성(이성적 모더니즘과 주관에 기초한 디오니소스
적 모더니즘)은 아마도 배제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문학이 정착되는 단계를 벗어나 많은 문인들에 의한 사
조적(思潮的) 경향에서 우리는 충분하게 익숙 되어왔기 때문이다.
바로 말하면 모더니즘은 우리 문학의 역사 속에서 함께 숨쉬어 왔음을
지적함에 있음이다.
또한 나 스스로도 그러한 틀속에서 자신의 문학수업에 빛과 소금이
되어왔음을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문명의 자각과 언어의 감수성을 매개로 한 모더니즘의
청록파가 태어났고 따라서 낭만주의와 이데올로기라는 문학을 주축으로
새로운 모더니스트들은 단절의 미학을 추구해왔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것은 바로 초현실주의라는 개념의 도입으로 이해되는바,
이후 나타난 자발성, 개성, 자연성, 개방성의 특징이라는 지배이데올로
기를 단절, 또는 비판한다는 형식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구축하고 있
다.
그러나 나는 단적으로 현대문학이 갖는 갈등과 접근은 어떤 일방적
지향주의를 점유하지 않고, 이른바 혼유(混有)된 수용 속에서 비합리성
의 객관성에 기인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것은 이른바 객관성보다는 극한 주관성의 팽배가 가져온 극치가 아닐
까 생각된다.
고증적 문학사로 17- 18세기 프랑스, 영국, 독일 등에서 일어났던 고
전주의 문예운동(소위 르네상스)인 합리주의, 상업주의 지향에 따라 아
리스토텔레스의 명제를 이론적 배경으로 한 서사시의 비극을 우선하는
주제로 참 인간화를 추구한 교조주의적 (敎條主義的)이념에 따라 볼테르,
루소, 몽테스키, 홉스 등에 의해 시민정신에 의한 매개자의 역할로
계몽주의 문학이 태동되었고, 18세기말에 등장하여 19세기중엽까지 대중
들에게 친숙해지고 널리 퍼지게 된 낭만주의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
의 슬픔>을 낳게 되었으니,
이후 리얼리즘인 사실주의(寫實主義)는 발자크나 스땅달, 엘리어트,
톨스토이, 고리키, 도스토예프스키 등에서 무의식, 형이상학, 초자연,
초월성의 암시로 시의 언어에 이데아의 세계를 어렴풋이 흘려보내는
절차 속에서 언어가 그 자체로 상징적이며 동시에 의미를 내포하는
암시적 기호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상징주의, 즉, 보오들레르, 말라르메,
랭보 등 영원성, 절대성을 지향하는 플라톤의 이데아적 참다운 존재를
추구한 지고한 정신주의를 살펴볼 수 있으니,
뒤이어 이미지를 하나의 시로 생각하고 운율을 강조한 이미지즘
(1912~ 1917)은 비록 짧지만 현대시 이론의 모태를 마련하였다.
그 뒤 1990년 표현주의와 미래주의, 다다이즘, 러시아형식주의 , 구조
주의, 기호학 등을 포괄하는 감각적 추상적 초현실 경향을 가리키는
모더니즘은 세계 제 1차대전이후의 문학과 예술의 큰 변화로 지칭된다.
흔히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 세계 내지 꿈의 세계 표현을 지
향하는 쉬르레알리즘, 즉 1917년 아뽈리네르에 의한 초현실주의(1924
년 앙드레 브르통 선언)는 다다이즘에서 보듯 이성의 반대극점, 합리의
반대쪽의 세계를 초점으로 하는 이론과 미학적 가치를 논할 수 있으
며, 성별의 차이를 극복하려는 페미니즘(여성이라는 개념) 은 정신분석
학적페미니즘과 보봐르가 발전시킨 실존주의 페미니즘, 포스트모던 페
미니즘으로 이어지는 여성운동의 구체적 현실을 고려하는 계기를 만들
었다.
그러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유기적 통일성을 부정하는 포스트모더
니즘은 아직도 절대 이념이 없다. 오직 객체성만을 중요시하며 역사성
이나 당위성 등은 점점 배제되어 개성, 자율성, 다양성, 소위 인기라는
대중성만을 중시하는 사조(思潮)는 어쩌면 극한 실험적이면서도 긍정적
인 측면까지 무력하게 만들고 있지 않나 염려스럽기까지 하다.
단 하나의 절대체험을 거부하는 작품 속에서 인물의 독백이 사라지
고, 패러디와 뉴저널리즘, 미니멀리즘, 등만이 활개를 치며 개성이라는
포장으로 우리문화와 역사를 지배하고 있으니, 그 모든 것 역시 탈 이
념화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될 뿐이다. 역사를 모르고 사회와 문화를
논한다면 이는 참으로 역사에 대한 큰 모욕일 수밖에 없음에도 역사의
가치관이나 인식의 틀은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다.
이제 인간본연의 생존은 점점 객체화되고 극단화되고 있다.
그 앞에서 문학과 문화의 생존도 어쩔 수 없으니 본성의 목소리라는
이데아는 정말 사라지고 말 것인가.
이젠 어느 누구도 정통성이나 궁극적 공통의 발현에는 귀기울이지
않는다. 다만, 자기의 목소리와 자기도취의 변증적 종속성만을 가질 뿐
이다.
나는 특정다수의 집단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의 사고는 끝없이 분화하는 이데올로기적 집중화와 그리고 순수라
는 허구로 명분만을 앞세워 종국에는 이해관계만을 추구하고있기 때문
이다. 우리는 그것을 합리적 타협이나 적정한 협상이라고 분류하여 세
속적인 관례로 일관하고 있다.
과연 우리가 일그러진 포스트모던만을 추구한다면 한시적이나마 어
디에 머무르며 무엇에 의지할 것인가.
철학과 소신과 주관도 함몰되어버린 타의적 객관이라는 지칭대명사
로 그저 각자의 자기방어에만 급급한 우리 사조적 (思潮的) 문학적 현실
은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현실과 아름다운 미래를 정녕 보듬을 수 있
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
안타깝다느니 적절하지 않다느니 하는, 같아요란 부류의 미지근한
언어와 말재주나 글재주의 활용기법으로 정말 부적절한 이중성의 양면
적 합승이나 동승행위도 마다하지 않는, 그것은 어쩌면 단답형의 요구
에 앞서 양답형 위주의 그럴듯한 가식적, 이른바 보편이랄 수도 없는
명분 회피성의 합리주의란 과대포장의 팽배, 그러함으로 그런 상징적
이중성은 실체적 주정주의 (主情主義) (또는 정서주의)나 주의주의적(主義
主義的)이라고 감히 주장될 수는 없는 것이리라.
굳이 말하지면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그럴듯한 포장으로 수많은
충돌에 의해 태어난 시대적 무차별적인 언어야말로 가히 형이하학적으로
해석되는 아류화의 변응에 따른 실험적 텍스트로 자제되어야 마땅하다.
그것은 문학적 이성이 아닌 단순감성만으로는 역사의 연속성과 존
재성을 절대 긍정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범 아시아권에서 외세의 침략을 가장 많이 받아온 국가로서 비록 현
재의 역사가 혼란과 혼선인 작금의 모두는 아니겠지만, 이후 세월이
지나고 보면 우리 모두의 변할수 없는 역사가 되는 것이니, 지나치는
것 하나라도 소중하게 다루며 그에 순응하고 더불어 우리 문학도 모두
가 공생공영의 가치관이 되도록 더욱 노력해야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 끝-
<필자 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