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3월30일. 박찬호는 이날 밤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아마 미국에 간 이후 가장 흥분속에서 보낸 하룻밤이었을 게다.
플로리다 베로비치에 있는 다저타운에서의 일이다. 토미 라소다감독이 박찬호를 자기 방으로 불렀다. 통역도 없는 채 였다. 가끔 라소다감독은 영어를 빨리 배워야 한다며 통역없이 박찬호를 부르곤 했다. 이날도 뭔가 열심히 설명을 하려고 했다.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몰랐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축하한다'는 말과 '메이저리그'라는 말이 섞여 있었다. 미국 생활 몇달만에 눈치만큼은 빤해진 박찬호였다.
라소다감독과 포옹을 한 뒤 숙소로 돌아왔다. 잠이 오지 않았다. 드디어 해낸 것이다. 미국선수들 중에서도 입단과 동시에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선수는 16명 밖에는 없다고 들었었다. 아, 내가 17번째 선수가 되다니.
다음날 뉴욕 양키스전에 선발로 등판하기에 앞서 라소다감독이 박찬호를 불렀다. 스티브 김, 프레드 클레어단장, 페로나스키 투수코치 등과의 미팅이었다. 여기서 라소다감독은 "마이너리그에서 선발로 뛰겠느냐, 아니면 메이저리그에서 가끔씩 뛰겠느냐"고 박찬호에게 물었다. 당연히 박찬호는 메이저리그라고 대답했다. 이로써 박찬호의 역사적인 메이저리그 직행이 결정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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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하나는 토미 라소다감독의 입김이다. 유난히 라소다감독은 박찬호를 좋아했다. 스프링캠프 때는 거의 매일 끼고 다니며 저녁을 사먹일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훗날 박찬호가 마이너리그로 내려 갈 때는 라소다감독의 부인이 나와 눈물을 흘리며 박찬호와 포옹까지 했을까. 여기에 오말리 역시 자신이 직접 스카우트했다는 점 때문에 많은 애정을 보여줬다. 이에 반해 프레드 클레어 단장은 냉정했다. 이때도 클레어 단장은 직행에 반대를 했다는 후문이다. 이후에도 클레어단장은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입성을 놓고 라소다와 자주 설전을 벌였다.
또하나 다저스 특유의 스타 키우기의 일환이었을 수도 있다. 일단 메이저리그의 단맛을 보게 한 뒤 마이너리그로 보내 고된 훈련을 시키자는 각본이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박찬호의 마이너리그 생활은 거의 매일 오말리구단주와 라소다감독에게 보고가 될 정도였다.
어쨌든 결코 달지만은 않은, 결코 쓰지만도 않았던 박찬호의 첫 메이저리그 생활은 단 17일로 막을 내렸다. 2경기에서 방어율 11. 25를 마크한 채로.
첫댓글 찬호형.....얼렁 힘내요....
내년에 힘낼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