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후드 슬리브리스 티셔츠는 5만9천800원 카이아크만, 네이비 트레이닝 팬츠는 8만8천원 코데즈 컴바인 포맨, 블랙&화이트 깅엄체크 장갑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span>
그의 이름은 이필립이다. 여권 상의 이름은 필립 광훈 리(필립은 그의 가톨릭 세례명이다). 1981년생으로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교포 2세다. 1남 3녀 중 외아들. 2007년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처로’ 역할로 처음 얼굴을 드러낸 그는 청바지 브랜드 게스와 도미노피자의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매스컴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것도 아니고, 요란법석 광고를 해대는 것도 아닌데 요즘 그의 이름 석자는 인터넷에 심심찮게 오르내린다. 그를 찾는 것은 절대다수가 여자다. 조각처럼 섬세한 얼굴과 윤이 나는 검은 생머리, 우수에 찬 눈빛의 그가 <태왕사신기>에서 가면을 벗고 얼굴을 공개했을 때 떨어지던 시청률이 다시 올라갔다는 후문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 창에 이름을 눌러대도 속 시원한 정보 하나 없으니 애타는 여심의 깊은 한숨만큼 그의 신비감은 점점 증폭됐다. <맨즈헬스> 7월호 표지 모델로 이필립이 내정되었을 때 역시 반응을 보인 것은 여자 동료들이었다. 남자들의 반응? 글쎄. 솔직하게 말해 그를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관심을 가질 계획도 없어 보였다. 화보 촬영을 위해 그와 베이징 행 비행기에 오를 때의 마음은, 목마른 여성 팬들에게 착한 일 한번 하자는 정도였다.
시작 ‘Born in America’ 워싱턴 DC가 고향인 필립은 앞서 말한 대로 세계적인 IT 기업 STG 이수동 회장의 외아들이다. 이수동 회장은 ‘미국 정부를 지키는 사이버 보안관’이라 불릴 만큼 IT 보안과 관련해 미국 정부의 돈독한 신뢰를 얻고 있는, IT 업계의 거물로 맨주먹으로 도미해 굴지의 기업을 이뤄낸 입지전적 인물이다. 5살 때부터 아버지의 사업을 보며 성장한 그는 누구보다 아버지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자랐다. “아버지는 과묵하시고, 한 마디를 해도 쓸데없는 말은 안 하는 남자예요. 누나와 여동생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한데 유독 아들인 저에게만 엄격하셨죠.” 아들을 강하게 키우고 싶었던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필립을 혹독하게 다뤘다.
학창시절 내내 전과목 올 A를 받던 모범생인 그의 성적표에 B가 하나가 찍혔을 때, 아버지는 만사 제쳐두고 학교로 뛰어오실 정도로 그에게 열심이셨다. 뿐만 아니라 방학때는 50℃를 오르내리는 유럽 오지의 산에서 생활하는, 일종의 고행 프로그램에 그를 보내기도 했다. “돈 한 푼 없이 외국에 버려진 경험이 꽤 많아요.” 돌아보면 강경한 아버지 때문에 속상하고 힘든 적도 많았지만 아버지에게 남자의 마인드를 배웠다고 그는 말한다. “대학 졸업할 때쯤 아버지와 술친구가 됐는데 그때 그러시더라고요. 부드럽게 키우기 싫었다. 아들이 누구보다 강해지길 바랐다고.” 그는 아버지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 “아버지가 아니면 누가 제게 그런 일을 시키겠어요.”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아버지는 ‘배우는 데 늦은 나이는 없다’는 평소의 신념을 몸소 실천해 큰딸, 작은딸, 그리고 아들 필립과 함께 조지워싱턴 대학교에서 당시 최고령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일가족 4명이 동시에 학위를 받은 것은 조지워싱턴 대학교 역사상 최초의 케이스라 이 일은 현지에서도 크게 기사화가 되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혹독한 스승이었지만 후에 그가 배우가 되었을 때는 그의 첫번째 팬이 되었다.
(왼쪽) 레드 바탕에 커다란 로고가 프린트된 후드 슬리브리스는 11만6천원 제너럴 아이디어 by 범석, 그레이 트레이닝 팬츠는 8만8천원 코데즈 컴바인 포맨, 화이트와 골드 깅엄체크의 스니커즈는 3만9천원 반스, 참 장식이 달린 블랙 체인은 20만원대 H.R, 블랙 글러브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방황 ‘Who am I?’ 아버지의 가르침 속에서, 바른 길을 걷던 그에게도 성장통은 찾아왔다. 고등학교 1학년, 석 달 만에 키가 16cm나 자라면서였다. 키만큼 늘어난 사춘기 호르몬 때문인지 이유 없는 충동과 반항심이 생겨났다. 게다가 어머니의 권유로 한인 성당 청년회를 나간 것이 오히려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 이어졌다. “그때 처음으로 한국 친구들을 만났어요. 그전까지 저는 철저하게 미국인이었어요. 한국 커뮤니티와 한국 문화,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정’에 눈뜨면서 가장 힘들었어요.” 학교 공부는 충실히 했지만 부모님 몰래 술과 담배에 손을 댔고, 인종차별 문제로 괜한 싸움질도 수차례, 한동안은 스피드 레이싱에 빠지기도 했다.
“큰 이유는 없었어요. 단지 혼란에 대한 나름의 돌파구가 필요했나봐요. 남자들 그땐 다 그렇잖아요.” 아버지는 모르는 일이라 기사를 읽으면 한 소리 하시겠다며 크게 웃는데, 그 웃음 속에서 남자다운 기운이 느껴졌다. 지금은 배우 이미지에 맞추기 위해 살을 많이 빼 분위기가 달라졌지만 미국에서 그는 짧은 머리에 운동을 좋아하는 건장한 청년이었다고 스스로를 말한다. “한국에 와보니 어린 학생들이 운동장 대신 학원에 있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미국에서는 방과 후에 동네에서 축구, 야구, 미식축구, 배구, 수영 등을 하며 크잖아요. 미국에서 운동은 생활인데 여기서는 시간과 돈을 들여 어렵게 하는 것이 너무 다른 것 같아요.” 그 역시 고등학교 때 배구와 골프 팀에서 운동했고, 대학시절 역시 친구들과 농구, 미식축구, 골프 등을 자주 즐겼다(특히 11살 때부터 배운 골프는 고교 시절 이미 싱글을 쳤다). 어렴풋이 찾아온 한국에 대한 그리움. 처음으로 부모님의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 무렵이었다.
결심 ‘Turning Point’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IT 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그는 자연스럽게 공과대학으로 진학했다. 대학원에 다닐 때는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배우면서 학업을 병행했다. 규칙적이고 빈틈없는 빡빡한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당연히 자신에게 주어진 길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에는 직접 경영을 해보고 싶어 IT 회사를 차렸다. 그는 그때를 ‘짧게 친 머리와 네이비 슈트’의 시기로 기억한다. “당시는 무척 냉정하고 무서운 사업가였어요. 완벽주의 성향에 독한 구석이 있어서 뭔가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거든요.” 젊고 유능한 CEO는 올바른 길을 걷고 있었지만 그의 가슴 한구석은 언제나 허전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는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어린시절부터 남 몰래 키워오던 배우에 대한 갈망이었다.
“우리들은 인생을 마음껏 살지 못하잖아요. 연기를 통해서 다양한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늘 꾸어왔어요. 뒤늦게 배우가 되고 나니 드라마나 연극을 배우는 대학교를 다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해요.” 결국, 그는 사고를 쳤다. 9개월 만에 사업을 접고 한국행을 결심한 것이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미국도 아니고, 한국까지 나와서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 아닌가! 부모님, 특히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지만 그는 아버지를 설득했고, 아버지는 아들을 믿어주었다. “하나뿐인 인생인데, 후회 없이, 아쉬움 없이 살고 싶었어요. 사업은 나중에도 할 수 있지만 연기는 더이상 늦출 수가 없었어요.” 한국행을 택한 것은 부모님의 나라, 조국에 대한 이끌림도 있었지만 미국에서 뛰어넘을 수 없는 인종차별의 벽 때문이기도 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동양 남자는 언제나 소품처럼 등장해요. 그게 정말 싫었어요.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한국에서 좋은 배우로 성장한 뒤 할리우드로 가서 동양 남자가 갇혀 있는 박스를 깨뜨리고 싶어요. 미국에서 자란 동양인의 소망이랄까요?”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만류 속에 비행기에 오르면서 그는 ‘나에게 돌아갈 출구는 없다’는 말을 되뇌었다.
고난 ‘Struggle for life’ 꿈은 원대했지만, 한국은 그를 두 팔 벌려 맞이하지 않았다. 인턴 생활을 위해 두 달간 머물렀던 것이 전부였던 한국. 문화도 언어도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지인의 소개로, 때론 무작정, 6개월간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찾아다녔지만 소득은 없었다. 한국말도 서툰, 덩치 큰 남자가 설 자리는 별로 없었다. 영어를 쓰는 역할 몇 개를 제안받았지만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혼혈도 아닌데, 한국인인데, 외국어 쓰는 작품으로 데뷔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2005년 9월, 우연한 기회로 만난 김종학 감독에게 <태왕사신기>라는 드라마의 배역을 연습해보라는 말을 들은 것이 그에게 찾아온 첫번째 기회였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받고 눈앞이 깜깜했다. 부족, 말, 두루마리, 국내성 등 생전 처음 보는 단어 투성이었다. 전자 사전을 옆에 끼고 뜻을 적어가면서, 시나리오를 읽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다(그의 <태왕사신기>대본에는 대사보다 깨알 같은 메모로 가득하다).연기 수업과 별도로 개인 선생님을 두고 한국 문화와 한글을 공부했고 무엇보다 큰 덩치를 줄이기 위해 다이어트와 운동에 들어갔다.
“그때는 보디빌더 수준으로 몸통이 두꺼웠어요. 화면에 잘 받으려면 살을 빼야 된다고 해서 미친듯이 운동에 몰입했죠.” 목표는 86kg의 무게를 70kg대 초반으로 낮추고 근육량을 줄이는 것이었다. 기본 하루 6시간. 많게는 8시간을 운동에 투자했다. 닭 가슴살 10개를 구워 냉장고에 넣어 두는 것이 자기 전 마지막 일과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사과 반쪽을 먹고 아침 운동을 했어요. 아침으로 닭 가슴살 2개와 고구마를 먹고, 매 3시간마다 닭 가슴살 두 개씩을 먹었죠.” 닭 가슴살이 지겨워지면 식단에 달걀흰자를 추가했다. 탄수화물은 금했다. 물론 술은 입에 대지 않았고 대신 하루에 물을 8L씩 마셨다. 주중에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주말에는 양재천을 달렸다. 그러나 참을성의 한계는 4개월이었다. 아무리 정신력으로 버티려 해도 먹지 못하는 우울함은 생활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더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한두 달 다시 정상인처럼 먹어가며 운동하고 다시 2개월을 독하게 하는 식으로 1년 반 정도를 운동 했어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마른 듯 유연하고 섹시한 몸은 스스로의 투쟁으로 이룩한, 거룩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제작 사정상 드라마 촬영은 1년 이상 지연되었고, 촬영에 들어갈 즈음 그는 멋들어진 몸매와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오른쪽) 블루 컬러 슬리브리스는 가격 미정 엠비오, 안에 입은 스트라이프 슬리브리스는 3만8천원 코데즈 컴바인 포맨, 비닐과 면 소재로 된 이중 트레이닝 팬츠는 가격 미정 엠비오, 실버 팔찌는 19만9천원, 실버와 블랙 체인 팔찌는 15만8천원 모두 H.R, 목걸이와 블랙 글러브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성장 “Everyday is a New Day” 한국에 도착해 약 2년 동안, 그는 다채로운 고생을 경험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건 일종의 거래였다고 말한다. “나는 고통을 참았고 그 대가로 세상은 내게 꿈을 주었습니다.” 그의 현재는 3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져 있다. <태왕사신기>를 통해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이라는 호평을 얻었고 ‘이필립’이라는 이름 석자만으로 통하는 자리도 많아졌다. 드라마에서 만난 배용준과는 호형호제 하는 사이가 되었을 뿐 아니라 가족들 앞에도 당당하게 설 수 있게 되었다. 요즘 그 앞에는 많은 시나리오가 쏟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결정한 것은 없다. “무난한 캐릭터보다는 힘들더라도 진하고 선명한 역할을 하고 싶어요. 킬러나 사이코처럼 철저하게 인간의 심리를 파고드는 역할이나 진한 휴머니티가 느껴지는 인물에 매력이 느껴져요.”
Everyday is a New Day! 이 말은 그의 아버지의 인생 모토다.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많아도 딱 그날까지만. 다음날은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인데, 지겹도록 듣던 이 말이 어느새 그의 인생의 모토로 자리 잡았다. “연기는 제 인생 그림의 한 부분이에요. 당분간은 훌륭한 배우가 되기 위해 몰입하겠지만, 제 그림에는 성공, 돈 같은 큰 조각뿐아니라 따뜻한 가정, 예쁜 아이들, 나눔과 실천 같은 작지만 소중한 조각들로 많이 채우고 싶어요. 이것이 제가 꿈꾸는 성공의 개념입니다.” 사흘 동안 옆에서 지켜본 그는 일에 관한 한 독사처럼 예민하고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모습이었지만 사석에서는 누구보다 따뜻하게 사람을 챙기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한 마디로 속정 깊은 사내였다. 그가 한번 웃으니 마음이 흐뭇해진다. 그가 두 번 웃으니 세상이 밝아진다. 그가 세 번 웃으면? 남자도, 여자도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어진다.
Life style Profile
이름 이필립 생년월일 1981년 5월 26일 혈액형 O형 키 188cm 몸무게 72kg 최종 학력 조지 워싱턴 대학교 공학 석사 좋아하는 패션 브랜드 돌체&가바나 좋아하는 운동 농구, 미식축구 좋아하는 배우 조지 클루니 이상형 꿈이 있는 여자 이상형에 가까운 배우 케이트 베킨세일 드림카 부가티 베이론 요즘 빠져 있는 것 사진 찍기 즐겨 쓰는 뷰티 브랜드 시슬리, 라프레리 멋진 남자 가정을 최고로 아끼는 남자 가족 계획 적어도 4명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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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립처럼 유연하고 섹시하게 살 빼는 방법 3가지!
1 살을 빼고 근육을 빼는 것은 85%가 식이요법에 달렸다. 운동은 10~15% 정도 좌우한다. 과도한 감량을 위해 운동에만 집중하면 살이 빠지고 난 뒤 근육의 탄력이 없어진다. 일단 살을 뺐다면 그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서 6개월은 그 몸 그대로 버텨야 한다. 그러면 몸 자체가 변하고 교정이 된다.
2 요요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평상시 작은 습관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식사를 해도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같이 먹으면 살이 덜 찐다. 메뉴를 고를 때 한 번만 더 생각하자. 무리한 다이어트는 컨디션을 급격히 악화시킨다. 신체적 스트레스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더 참기 힘들다. 가장 좋은 것은 충분한 수면. 내 경우는 술 한 잔 하면서 이야기로 푸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자주는 안한다.
3 복부 피하 지방이 많다면 승마를 권한다. 승마는 생각보다 운동량이 높다. 리듬만 잘 맞추면 금세 배울 수 있다. 살아 있는 동물과 함께 호흡하며 운동하는 기분은 트레드밀을 뛰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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