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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소울드레서 (SoulDresser) 원문보기 글쓴이: ⓧ당당하게살자
일제의 문화재 파괴 -- 한국의 상징적인 문화재들이 우선대상이었다.
조선총독부 /각 도 경찰부에 유림의 숙정 및 반시국적 고적의 철거 라는 명령을 내림.
일제는 조선의 5대 궁궐.200여기의 역대 왕릉. 수많은 지하 고분들을 파헤치고 가져갈수 없는것들은 모조리 파괴하였다.
초대통감 이등박문(이토히로부미)은 조선의 문화유물을 조사.수집 보존 한다는 명목으로 일본 헌병.경찰.도굴꾼등을 고용해 고려 공민왕의 왕릉을 폭발.도굴하고 왕릉내 보물들을 실어내갔으며 2천여기의 고분들도 대규모로 도굴약탈했다.
그때 반출된 5대 궁궐안 유물들은 아직도 도쿄 우에노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일대 고분들을 도굴했다. 이밖에도 조선의 서원,학교.개인집까지 수색하여 고서적들을 빼앗아 불태우고 이조실록,오대산본.일성록.승정원일기 의정부비변사등록 등 수만권의 국보적 서적들을 약탈해갔다. 일제는 유물의 소유자는 조선총독의 명령에 의해 그것을 공립박물관 미술관에 바쳐야한다는 법령을 선포하고 금관.고려상감자기,이조백자.불상등을 빼돌려 도쿄 우에노 박물관에 진열하고 일본의 국보로 세상에공개하였다. 일제는 길을 내거나 건물을 만든다,또는 복원한다는 핑계로 주로 궁궐이나 유적지등에 불을 지르고 뜯는 방법을 써서 한국의 문화재 유물들을 하나하나 철거하고 허물었다. 그리고 반출한 한국의 보물급 유물,서적들은 한국 문화를 연구하고 보존한다는 명목하에 빼돌리고 일본에 불리한 유적이나 사료는 지우거나 폭파 또는 뜯어내 소실시키고 보물급 유물들은 정치가나 왕족이나 다 같이 합심하에 일본으로 밀반출했다. 규모가 큰 궁궐이나 유적지도 뜯어갈수만 있으면 다 뜯어갈려고 할정도로 한국것에 대한 집착이 심했고 그 중 일일이 해체를 해서 일본으로 가져간 것들도 있다.
1.숭례문 담장 파괴 - 1907년 서울을 방문하는 일본 왕자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며 숭례문 주변 성곽을 헐고 도로를 냄.
2.서대문 돈의문(敦義門)-1915년 헐음.
3.경복궁 - 1915년 경복궁에서 조선물산공진회를 열면서 경복궁 내 전각 7200 칸중 4,000여 칸을 무단으로 해체 일본으로 반출. (창덕궁에 고의로 불을 질러 목재가 부족하다며 경복궁 교태전과 강녕전을 헐어가는등 뜯어서 여기저기 훼손.원래 궁궐의 10%만 남음)
4.자선당 - 조선시대 세자 내외의 생활 공간이었던 자선당 건물 통째로 뜯어 일본으로 무단 반출(오쿠라 기하치로) 관동 대지진으로 주춧돌만 남음.그 터에 오쿠라 호텔이 들어섬->1995년 경복궁으로 반환.
5. 흥례문(興禮門)- 헐고 1925년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음.
6. 광화문 - 1927년엔 총독부 건물의 앞을 가린다는 이유로 광화문을 해체해 건춘문(建春門) 옆으로 옮김.
7. 창경궁 - 순종을 위로한답시고 1907년 헐어서 놀이동산을 만들어 한나라의 궁궐에 오락시설을 만듬.
8. 창경궁의 보루각-일대의 전각을 무단으로 철거.궁에다 식물원.동물원을 만들고 창경원으로 명명.
(일인들이 좋아하는 벚꽃을 대량으로 심음)
9. 창덕궁 - 궁을 파괴하기 위한 일제에 계략에 의해 고의로 훼손되어 원래 규모에서 30% 가량만 남음.
1908년경 일본인들에 의해 궁전일부가 변형되어 서양식 형태를 갖추며 많은 전각들이 철거됨.
★ 창덕궁의 비원은 일제가 의도적으로 후원을 낮추어 부르기 위해 원래의 명칭인 금원.후원을 바꾸어 부른것이다.
10.창덕궁 대조전 - 1917년 일제의 고의적인 방화로 모두 불타고 경복궁 전각을 뜯어 초라하게 복원시킴.
(궁궐에 불을 질러 훼손시킨뒤 또 다른 궁을 뜯어 복원시키는 방법을 써서 모든 궁궐을 파괴함)
11.덕수궁(경운궁)- 일제에 의해 3분의 1 규모로 줄어듬.덕수궁 돌담길도 궁궐안에 길을 낸다고 훼손하는 중에 생김.
(1904년 큰 화재가 일어나 대부분의 전각이 불타 없어짐.이 또한 고의적인 방화로 추정됨)
★ 경운궁이 덕수궁으로 불리운것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고종을 폐위시킨뒤 격을 낮추어 부른 말이다.
12. 경희궁 -1910년 일본 아이들이 다닐 학교를 세운다며 몽땅 헐어 학교를 세우고 관사를 짓고 길을 내어 파괴.
(다른 궁궐과 달리 100% 훼손되어 단 한채의 전각도 남기지 않고 파괴.현재 서울시 교육청.구세군 회관 자리)
13. 경희궁 지하벙커- 왕과 왕비의 침전인 융복전과 회상전 아래에 콘크리트로 벙커를 지음(기를 끊겠다고 침전아래 지었다는 설이 있음)
14.개성 경천사 10층석탑 - 일본 정부의 궁내대신 다나카 미스야키가 일왕에게 선물한다는 구실로 무력을 동원해 일본으로 밀반출, 이런저런 분란속에 돌아왔지만 복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서 되돌아옴,
17.서삼릉 - 소현 세자 소경원,인종의 효릉,조선조 역대왕 태실,왕자,후궁,공주의 묘소 등
총 100여기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옮겨서 훼손됨(태실비의 기록도 긁어내 지움)
18.경복궁 -1918년 교태전과 강녕전이 헐리고 창덕궁으로 옮겨감. 경복궁과 창덕궁의 훼손을 위한 일본의 고의적인 화재로 추정.
19.신무문 -1929년 경복궁 북쪽의 융무당과 융문당을 헐어 한강변의 용광사를 짓는데 사용.
20.선원전 - 조선 역대왕들의 어진을 모시던 곳, 1932년 이등박문을 추모하는 박문사로 팔아넘겨 창고로 사용.
21.경복궁 건춘문내 비현각 - 남산장 별장을 만드는데 사용 (전각들을 헐어 텅텅 빈 자리엔 잔디로 메꿈)
22.경복궁 경회루 - 물산공진회를 치룬다며 미술관과 휴게실을 만들고 기타 등등 유흥시설을 만들려고 계획.
23.경복궁 자경전 - 헐어 수족관.놀이터를 만들며 거의 대부분의 전각들이 소실됨.
24.경복궁 건청전 - 1935년 대한제국 병탄 박람회장을 만들고 일반인에 공개 시작(조선을 근대화시켰다고 홍보함)
25.부여 정림사지와 5층 석탑 -현재는 5층 석탑과 고려 시대의 석보불상만 남아 있음.
26.부여 쌍북리 가마 - 도로 건설과 함께 금성산의 혈맥을 절단해 조선의 기를 없애려는 일제에 의해 완전 파괴.
27.공주 반죽동석조(보물 제149호)- 반죽동 대통사지에서 일본군이 말 먹이통으로 쓰기 위해 가져감.
28.능산리 고분군 - 백제 사비 시대의 왕릉으로 총 14기가 있었지만 일제에 훼손되어 7기만 남아있음.
29. 미륵사지석탑 -백제 최대의 사찰 미륵사에 있는 석탑으로 일제시대에 콘크리트가 발라져 완벽한 복원 불가능.
30. 충남 아산의 이순신 신도비- 일본을 격파한 기록이라 고의로 파괴.
31. 한송사 석조보살좌상 -강릉 한송사 소재. 1912년 일본에 강제 반출. 1966년. 한일협정 문화재 반환 협약에 의해 돌아옴.
32. 불국사 다보탑 4개 돌사자상- 그중 3개를 일본인이 몰래 떼어내 달아남.
★ 일제는 조선이 일본을 격파한것을 기록한 격파 기념비 목록을 만들어 민족사적비를 싸그리 파괴할 계획을 세웠다.고양 행주전승비/청주 조헌전장기적비 /공주 명람방위종덕비/ 공주 명위관임제비/ 공주 망일사은비 /아산 이순신신도비
운봉 황산대첩비/여수 타루비/여수 이순신좌수영대첩비/해남 이순신명량대첩비 /남해 명장량상동정시비/ 합천 해인사 사명대사석장비
진주 김시민전성극적비/ 통영과 남해의 이순신충렬묘비/ 부산 정발전망유지비/고성 건봉사 사명대사기적비 /연암 연성대첩비
경흥 전보파호비/회령 고충사타/진주 촉석정충단비...등으로 거의 일제에 의해 폭파.파괴되거나 철거.행방불명.
33.전남 해남 이순신 명랑 대첩비- 일제는 조선이 일본을 이긴 전투를 기념하는 비를 주로 훼손 폭파하였다.34.북관 대첩비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 의병이 왜군을 무찌른 내용이 기록된 것을 러일전쟁시 일본군 소장이 도쿄로 반출.
★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되다 한국으로 반환되었지만 원래 있던 자리에 복원키위해 북한으로 돌려보냄.
35.전북 남원의 이성계 황산 대첩비-이두란 장군이 황산에서 왜적을 물리친것을 기념하는 비, 다이나마이트로 폭파.파편만 남음.
36.경기 고양의 행주대첩비- 조선이 일본에 승리한것을 기록한 글자를 통채로 파냄.....20점의 석비가 사라짐.
37.불국사 대웅전 뒤 석조사리탑 -1906년 불법반출되어 도쿄요리집에 팔려갔다 1933년 돌아옴.
38.평양 애련당 - 기형적 경인선 철도개설에 관련된 시부자와 에이이치가 평양의 명물 애련당을 뜯어 일본으로 밀반출함.
39.호국사찰의 상징 건봉사 -조선불교를 말살하기 위해 사찰령을 제정.건봉사를 일본풍의 절집으로 몽땅 바꿈.
40.문무대왕 비 경주 사천왕사 돌거북 - 한국 불교.문화 말살을 위해 일본쪽으로 향해 있는 거북을 돌려세우고 돌거북들의 머리를 잘라냄.
41.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충무공 기념 최대 규모 대첩비,일제에 의해 행방불명,광복이후 경복궁 근정전 앞뜰 땅속에 파묻힌걸 찾아냄.
42.묘당도 충무공 유적 - 일제강점기 충무공의 관왕상과 위패·각종 유물들을 바다에 버렸고 옥천사의 불상만이 옮겨져 겨우 보존(충무사)
43.전주 객사(외국 사신의 숙소)-전주 풍패지관.일제 강점기 남문,북문을 잇는 도로를 낸다고 동익사 일부를 파괴...1999년에 복원시킴.
★나주 금성관도 일제가 내부를 뜯어 훼손하였으나 1976년 원래 모습에 가깝게 복원하였다.
44.보은사 석조여래입상 -일제강점기 보은사에서 옮겨져 목과 허리 부분이 훼손되어 시멘트가 발라짐.
46.서울 선농단 - 농사와 관련된 제사를 지내던 제단.일제는 이곳에 고의로 공원과 학교를 세워 선농제의 역사 문화적 의미 말살 시도.
47.평양 단군릉 - 여러차례 도굴 되었고 단군릉도굴과정에서 단군을 묘사한 귀중한 벽화를 깡그리 없애고 부장품 약탈.
48.금강산 유점사 - 53부처를 약탈/대동군 절터에서 8각5층 석탑/ 황해도 귀진사에서 불교경전목판 약탈.
49.고구려시대 창광산 중성성벽.일대유적 - 성곽을 허물고 파괴하여 그 성돌을 건설자재로 이용.
50.평양성 - 신사를 세운다며 관풍정과 궁전터.정원,성곽까지 모조리 파괴.대동문과 보통문만 남음.
51.평양대성산성,개성 라성,봉산 휴류산성,구월산성- 일제에 의해 흔적을 알아볼수 없을정도로 파괴.
52.고구려 무덤벽화 미인도와 무용도- 벽채 뜯어내고 시멘트를 갖다바름.
53.단군 사당 삼성사 - 단군 관련 전국 각지의 사찰등을 모두 폐쇄.파괴.소각.약탈.
★ 한국의 고분 관련 발굴 비용의 절반은 일본 궁내성과 일본 학계에서 지원함-평양박물관 관장 고이즈미의 고백.
54. 궁궐망루 동십자각 서십자각 -조선총독부 건물과 도로를 만든다고 일제가 궁벽을 허물어 철거 또는 위치를 옮김.
55.환구단-임금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제단으로 일부구조물만 남기고 모조리 파괴.
56.동대문(흥인지문) - 1907년 동대문, 남대문(숭례문)의 좌우 성곽 각 8문을 헐어버림.
57.악랑유적 - 1925년 동경제국대에서 학술조사를 한다며 파헤친 유물들을 일본으로 반출.
58.경주 금관총 - 총독부 고적조사과에서 엄청난 양의 유물 발굴.
59.전라북도 충렬사.관왕묘 - 반일적 불온한 영향을 끼치며 조선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된다고 여기고 철거.
60.서울 한성부 관아 -일제의 문화재 파괴에 의해 흔적도 사라짐.
61.장춘단 - 명성황후를 호위하던 순국열사를 위한 공원. 일제는 여기에 일본식 공원을 조성.이등박문 신사.중일 전쟁 관련 동상등을 세움.
62.함춘원지 - 궁궐의 후원으로 왕들이 즐겨찾던 곳이며 사당이 있던곳.일제가 경성제국대를 세운다며 파괴함(서울대 의대안에 있음)
63.서울 남산 성곽- 이성계가 축조한 성곽.일제강점기 도시계획이라는 구실로 성문.성곽,봉수대가 거의 파괴되고 무너짐.현재 계속 복원중.
64.수원화성 팔달문 - 일제 강점기에 팔달문 좌우의 적대와 성벽을 헐어 길을 냄.
65.성주 보월동 삼층석탑 - 일제강점기 파괴되어 탑재가 땅속에 파묻혀 있던걸 1979년 찾아내 복원.
66.직지사 청풍료 삼층석탑 - 강락사지란 옛절터에 있던 탑으로 일제강점기 말에 도굴범에 의해 파괴됨.보물 제1186호로 지정.
67.철원 궁예도성(비무장지대에 있음) -후고구려의 도성으로 일제강점기 철도를 낸다고 북벽과 남벽을 파괴.석탑.석등은 현재 확인불가.
68.수원 화성행궁 - 사도세자의 현륭원 참배 목적,정조가 노후를 보낼 600칸 규모의 궁이었으나 일제에 의해 고의적으로 거의 파괴됨.
69.강원도 선림원지 승탑 - 일제강점기에 완전 파괴.부도몸돌은 훼손되고 현재 기단부만 남아있음.
★ 선림원은 9세기에 지어진 대규모 사찰이었으나 현재 터만 남아 있고, 문화재는 3층석탑,부도.석등,부도비 정도만 남아있다.
70.사직단 - 왕이 조상신들에게 나라.국민의 평안.풍년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던 제단.종묘는 남았지만 사직단은 파괴되어 흔적만 남음.
72.청주읍성 -1911년 일제의 도시정비 사업으로 철거,성벽을 헐어 축대를 만들고 도로를 냄(현재의 청주 성안길)
73.광주읍성 유허 - 고려때 축조.1907년 일제가 내린 읍성철거령으로 대부분 파괴,일본인 거주지가 됨(현재 터만 남아 복원중)
74.남한산성행궁- 유사시 임금이 거처하던곳.의병의 거점이 되면서 일제에 의해 파괴(현재 복원중)
75.문경 관산지관 -조선시대 객사.일제에 의해 개조되어 군청사로 사용,우익사는 철거.주관과 좌익사만 남아있다.
77.경주 능지탑 - 문무왕의 화장터로 추정.상단부를 헐어 철도공사 기초석재로 사용
78. 신라고분 서봉총 - 일제가 철도를 낸다고 고분을 헐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함.현재 비석만 남음.
출처-한류열풍 사랑
일본은 백제, 신라왕릉 도굴해가고, 북한에 있는 고구려왕릉도 도굴해가고 고려청자에 미쳐있어
많은 고려 왕릉도 도굴해감, 공민왕릉은 관도 열었는지 공민왕 뼈가 흩어져 있었다고 함
남은건 공민왕 시신과 머리위에 장식이 남았고, 머리카락은 썩지 않았다고...
이외에 많은 유물을 반출해감, 조선의 궁궐을 파괴할때 궁궐안에 있던 귀중한 도자기, 대대로 내려오던
왕들이 쓰던 물건들도 다 가져갔을거라 예상함, 약탈한 우리나라 문화재를 뻔뻔하게 자기 박물관에 전시함, 일제강점기만 없었어도,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가 수난을 겪지 않았을건데 일제강점기가 왔던것이
너무 열받아요...
첫댓글 아오 존나 싫다
이 때 저지랄 한걸 바로 해결해야 했는데 독재때문에 (특히 박정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함
되찾질 못하면 가만히 두기라도 해야하는데 박정희 저새낀 같이 파괴하고 지랄
지금 남은것도 몇없는데 사대강한다고 몇개 더 파괴돼서 짜증나죽겠네
ㅠㅠㅠㅠㅠㅠㅠ
근데 MB는 과거에 얽매이면안된다는 드립이나 치고있고 이런데 과걸 어케 용서하고 미래를 봐 병시나
.....딱 짜쯩난다
아진짜 너무 화난다;;;일본..너네 평생 증오한다 시발놈들아 진짜..개같은새끼들;;진짜 이렇게 악한 새끼들이 있을까...?이 일본은 진짜 민족성 자체가 무서운 나라인것같다. 진짜 이새끼들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발판 마련부터 진짜 혀가 내둘러진다.시발새끼들
아오 끝까지 다 못보겠다 혈압올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