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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오바상들은 진짜 대단한데스
여러모로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재미 없어졌지만 재미있게 봐주시는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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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항상 특별한 존재였다.
강인한 힘을 이용해 이웃들을 도와 수십 년간 마을을 발전시켜왔고, 명석한 두뇌로 위험한 것과 안전한 것을 구별해 동족들을 번영시켰다.
하지만 지금, 나는 동족들에게 배신당해 엉망진창으로 변해버렸다.
[오로롱..]
배신감, 후회, 성찰
다양한 감정들이 나를 덮치자 눈가에는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뭘 잘못한 것일까? 나는 그저 모두를 위했을 뿐이었는데.
그렇게 악몽과도 같은 성찰의 시간이 끝나기 시작한 이후, 나는 서서히 눈을떴다.
“눈을 떴네, 몸은 괜찮아?”
[....]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남자는 멋쩍었는지 가볍게 웃음을 뱉어내며 말을 이어갔다.
“진짜 당황스러웠다고, 에너지 음료를 먹여도 몸이 나아지지 않으니까. 재생능력이 없는거야?”
들은 적 있었다.
인간들이 마시는 특정 음료수라던가 영양제는 실장석들의 몸뚱이를 말끔하게 치유한다고. 하지만 나는 해당 사항이 없는 모양이었다.
두 손을 들어 눈앞에 가져다 놓았다.
새하얀 붕대로 칭칭 감겨 터져 나오던 피를 막아내고 있었다. 완전히 뒤틀려 박살 난 뼈는 수작업으로 맞춰준 것인지 저릿저릿하긴 하지만 움직일 수는 있었다.
나를 구해주었던 남자는 피어오르는 모닥불을 뒤적인다.
“내가 의사는 아니어서 대충 맞춰놨는데 잘 됐는지는 모르겠네.”
남자의 말에 나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보았다. 바위에 깔려 박살 났던 다리도 고쳐져 움직일 수 있었다. 파인 옆구리 탓인지 상체를 들어 올리자 창자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이 나를 덮쳐오기 시작했다.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남자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고쳐주셔서 감사한데스, 닌겐사마.]
남자는 한 손을 들어 대답을 받아주었다.
감사를 받아준 남자의 모습을 본 나는 지금 당장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다리를 움직였다. 팔을 움직이고, 다리를 움직이며, 골반을 틀 때마다 상처에서부터 시작된 고통의 뿌리가 전신을 옥죄이기 시작했다.
인간과 가까이해서 좋을 일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배신했던 그들에게 철저한 복수를 이뤄야 했다.
그러자 모닥불 앞에 앉아있던 남자는 나에게 조언하듯 말을 던져주었다.
“온종일 기절해 있었어. 벌써 밖은 깜깜해서 위험할 텐데 조금 더 쉬고 가. 수의사는 아니지만, 상처 역시 너무 깊고 말이지.”
[아닌데스. 와타시는 할 일이 있는데스.]
지금 당장 내가 쌓아온 것을 누리던 이웃들을 뭉개버리고 싶었다.
나의 얼굴을 볼 순 없지만, 복수심으로 인해 황금색 눈동자는 불타오르고 있을 것이었다. 다시 움직이는 손으로 그들을 지금 당장 부수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는 조금 크게 숨을 내뱉으며 조언해주었다.
“그럼 적어도, 날이 밝고 나서 떠나줄 수 있겠니? 앞으로 3시간 정도면 태양이 떠오를 테니까.”
3시간 정도라면 나의 복수심을 억누르는 것이 가능했다.
거기다가 카오스파워를 완전히 사용할 수 없으므로 저 남자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분명 곤죽이 되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나는 남자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모닥불 근처에 자리 잡고 앉았다.
바닥은 마른 나뭇잎으로 두툼하게 깔려있기 때문에 한기가 느껴지지 않았고, 타오르는 듯한 모닥불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10분정도 지났을 무렵 남자는 심심했던 것인지, 기다란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쑤시며 입을 열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말해줄 수 있겠니? 저렇게 커다란 바위에 깔려있는 실장석은 흔치 않으니깐 말이야.”
나는 고민했다.
닌겐은 모두 나쁜 사람이었고 무자비했다. 하지만 이 앞에 있는 닌겐은 나를 치료해주었고 나 역시 몇 시간을 앉아 기다리는 것은 지루한 일이었기 때문에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2
이야기는 대충 이러했다.
과거 평범한 자실장이었던 무렵, 어느 새하얀 벽으로 가득한 연구실에 갇혀있었고 그들은 실장인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자그마한 생물이 인간과 유사한 지능, 외모, 체격을 가지게 되는 것에 대해 호기심을 느낀 모양이었다.
나의 마마 역시 그 실험체중 하나였고 고통과 정신조작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참지 못하고 파킨해버렸다. 나의 이모우토챠들 모두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마마의 품으로 따라 떠나가버렸다.
슬픔, 고독함, 의문을 가슴속에 품어둔 채 실험당했고 결국 고치를 틀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장인이 아닌, 그저 평범한 친실장의 모습으로 바뀌었던 것이었다. 물론 평균보다 긴 팔다리와 황금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카오스파워의 각성, 평균 성인 남자 팔 힘 정도의 염동력을 구사했으며 어린아이나 유약한 사람까지 죽일 충분한 힘이 있었다.
“폐기 처분해. 실장석이 이런 힘을 지닌 건 절대 알려져서도, 존재해서도 안 돼.”
이런 위험한 생물을 살려 둘 수는 없으니 나에게 아픈 짓을 하려 했다. 회의감을 느끼며 파킨하려 했지만 소중한 돌씨는 카오스파워 탓인지 아니면 어중간한 실장인이 된 탓인지 사라진 상태였고.
난 살기 위해, 혹은 잘못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탈출했다.
[그러자 와타시는 하나 느낀데스. 와타시는 잘 못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선택받았던 데스.]
연구실에서 한참을 걸어 나와 숲에 도착했고, 카오스파워로 작은 동물들을 사냥해 먹어치웠다. 그리고 산실장 무리를 만나 도움을 주었고 결국 보스가 되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었다.
그렇게 늙어 죽지도 않은 체, 수많은 이웃의 장례를 치르며 나는 특별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하찮은 분충들이 나를 시기하고 질투해 죽이려 들었고 결국 지금 이 장소에 쓰러져 있던 것이었다.
나의 이야기가 끝나자 남자는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구나.”
[닌겐사마도 마찬가지인데스?]
“응?”
나의 질문에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기색을 보였다.
[그야 닌겐사마는 엄청나게 커다란 돌씨를 들어올렸던데스. 키도 크고 몸도 엄청 두꺼운데스. 닌겐사마도 특별한 닌겐이 아닌데스?]
남자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마 커다란 바위를 들어 올릴 때 내가 기절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어째서일까? 그렇게 강한 힘이 있으면서도 당황하고, 선의를 배풀고, 들키는 것을 싫어하는 걸까?
궁금해지기 시작할 때 고민하던 남자는 입을 열었다.
“난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뎃? 그게 무슨 소리인데스? 닌겐사마는..]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의 카오스파워가 하찮게 보일 정도의 능력을 선보인 닌겐이 특별하지 않다니? 그럼 다른 닌겐들 역시도 이 남자만큼 강인한 것일까?
내가 고민에 빠져있자 남자는 손사래를 치며 답해주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힘이 엄청 강해. 몸도 엄청나게 튼튼하고 키도 커. 늙지도 않는 데다가 한번 본 건 잘 잊지 않을 정도로 머리 역시 똑똑해.”
[기만인데샤..]
마치 자랑처럼 들리는 그의 말에 나는 중얼거린다.
남자는 빙그레 입꼬리를 올리며 나의 양쪽 볼에 손을 얹었다. 따스하고도 커다란 손에 감싸지자 묘한 아늑함이 고통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는 말했다.
“하지만 이런 건 특별하지 않아.”
[...]
이해할 수 없었다. 평범한 닌겐이 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아득히 초월한 이 남자가 특별하지 않다니? 그렇다면 나도 마찬가지로 특별하지 못하다는 건가?
혼란스러워하는 나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기대는 남자.
“이미 태어나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특별하다는 거야.”
3
한참은 생각했다. 이미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특별하다고? 그럼 나를 배신한 이웃들 역시 모두가 특별한 존재라는 것인가? 특별하다는 것은 그리 가치가 없던 것이었나? 허무하고도 믿을 수 없었다.
나는 남자에게 다시 질문한다.
[그럼 어떤 닌겐이든.. 그리고 실장석이던 특별한데스?]
“맞아.”
[카오스파워를 사용하는 와타시도.. 엄청나게 강한 닌겐사마도 구더기와 똑같이 특별한데스?]
“그것 또한.”
의문 하나가 해결되니 더 많은 의문이 생겨났다.
남자는 나에게 확실한 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내가 스스로 생각해 답변하기를 원하는 듯 긍정만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믿기지 않았다. 그저 비상식에 불과한 구더기와 카오스파워를 사용하는 내가 동급이라니.
[그럼 평범하다는 것은 뭐인데스? 평범한 건 어디있는데스? 누구인데스?]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
닌겐들은 평범하다는 것과 특별하다는 것을 똑같이 생각하나? 특별하다의 반댓말이 평범하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아니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닌겐이라던가.
내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남자는 새로운 질문을 던져주었다.
“너는 우리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
[그런데스.]
“나는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
[와타시도 마찬가지인 데스.]
“다른 실장석들은? 인간들은?”
[.... 마찬가지인 데스.]
남자는 웃음을 보였다.
“맞아. 평범하게 혓바닥으로 맛을 느낄 수 있고, 귀로 소리를 들을 수 있고, 피부로 추위도 더위도 느낄 수 있어. 행복한 일이 있을 땐 웃을 수도, 슬픈 일이 있을 땐 엉엉 울 수도 있지.”
[... 평범한데스.]
너무나 당연한 사실들만 말하는 남자의 말에 무심코 대답이 흘러나왔다.
“맞아, 그래서 우리는 평범하다는거야.”
그래서 왜 특별한건데? 라는 의문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간 세상의 공원에는 학대를 잘하는 남자가 있어. 그 남자보다 우리가 더 특별하게 실장석을 죽이고 고문할 수 있을까?”
[할 수 없는데스.]
“우리보다 ‘더’ 그림을 잘 그리고, 글을 잘 쓰고, 먹이를 잘 찾아내고, 운치굴을 잘 파내는 실장, 인간은 없을까?”
남자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보스로서 커다란 마을을 관리했지만 모든 것을 통제하지는 못했다. 푸드를 모아두고 관리하는 이웃, 돌을 사용해 환상적으로 보검을 가는 실장석, 골판지 박스나 나무 밑 구덩이를 잘하는 친실장.
나는 마을을 수십 년간 살면서 다양한 재능을 지닌 실장석들과 마주했다.
“너가 생각한 그 실장석들은 너보다 특별해?”
[........]
말문이 막혔다.
내가 평범하다고, 그리고 실수하면 윽박지르던 이웃들 모두 나보다 뛰어난 분야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지도 못했기에, 그리고 그들이 나보다 특별하다고 선뜻 답할 수 없었기에.
난, 실장석들이 못 들어 올리는 무거운 돌씨를 들 수 있었다. 카오스 파워를 이용해서 귀긴긴씨와 도마뱀씨도 잡아 푸드를 충족시켰다. 특별하다는 건 내가 다른 실장석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인데.
“나 역시 마찬가지야. 나보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은 많지만, 그 사람들보다 힘이 강해. 하지만 난 그 사람들보다 그림을 못 그려. 난 특별한 걸까?”
[잘 모르겠는 데스. 그렇다면 와타시다치들은..]
“하지만 사람들, 그리고 실장석들 보다 큰 힘을 가진 것도 사실이야.”
혼란해하는 나를 보자 남자는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우린 강하고 큰 존재야, 그만큼 책임은 더욱 막중해.”
책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는 나의 힘을 믿고,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엄격히 행동했으며 나는 무엇하나 놓치지 않았다.
권력, 존경, 생활, 이웃, 자존감.
책임 하나 없이, 그리고 무엇하나 놓지 않으려 발버둥 쳤고 무엇 하나 놓치지 않은 것 역시 사실이었다. 아니, 적어도 사실이었다고 믿고 있었다.
남자의 눈은 나의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우린..”
[특별하지만 평범한.. 데스.]
대답했다. 이 남자도, 나도 모두를 짓밟을 거대한 힘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른 동족들보다 모든 것이 우월하지 않았고 다른 실장석들과 인간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도, 이 남자도, 닌겐도, 실장석도 우리 모두가 특별하지만 평범할 뿐이었다.
나의 대답을 들은 남자는 놀라운 듯 주춤거리지만, 이내 행복한 듯 눈웃음을 지어 보인다. 해맑고 순수하며 아름다운 미소를.
“나보다 훨씬 낫구나. 아, 벌써 날이 밝아오네.”
[그런데스..]
남자의 말을 듣고 보니 어느새 해씨가 숲쪽 너머로 빼꼼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것을 알아차렸다. 아직 하늘은 짙은 바다와도 같았지만, 세상은 다시 빛을 되찾았고 모든 것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어 낙엽을 때어낸 남자는 말한다.
“이제 할 일 하러 떠나도 괜찮을 것 같은데?”
남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타오르듯이 뜨거운 내 분노는 이슬과 함께 가라앉은 모닥불의 재마냥 가라앉았다. 저릿한 통증이 사라진 팔다리와 함께 내 마음속 통증 역시 치유되었다.
난 남자에게 고개 숙이며 말했다.
[고쳐주셔서 감사한데스, 와타시는 할 일이 있는데스.]
4
아직 통증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마을로 찾아가는 길에 맡아지는 나의 피 냄새가 상처를 후볐지만 참았다. 나의 실수를,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완수하기 위해서.
20분 정도를 더 걸었을 무렵,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웃들은 내가 가르쳐주었던 대로 경계를 서는 실장, 물을 길어 오는 실장 등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데갸아악! 전 보스상이 다시 돌아온데스 -!!”
“비상, 비상인데스!!”
이런, 경계 보초를 서던 이웃들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분명 나를 배신했기에 카오스파워를 이용해 일가실각 시킬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물론, 그 남자와 이야기하기 전까지 같은 생각이기도 했고.
보검을 들고 이웃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나의 능력 한방이면 곧바로 걸래마냥 쥐어짤 수 있는 상황이었고 전멸도 충분히 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면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머리를 바닥에 가져다 대며 모두가 들릴 정도로 크게, 하지만 침착하게 말했다.
[다들 정말 미안했던데스.]
내 예상 외 행동에 이웃들은 멍한 표정을 지으며 본인들 끼리 수군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와타시는 와타시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던데스. 물론 와타시는 이웃상들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지만 이웃상들보다 특별하지 않은데스.
와타시 혼자선 물을 길어올 수도 없었고, 보검을 이용해서 고기만 발라낼 수도, 골판지 박스를 세레브하게 꾸밀 수도 없는데스.]
지면에 떨구었던 얼굴을 들어 이웃들을 바라보았다.
[와타시다치들 모두가 특별하면서도 평범하다는 사실을 몰랐었던데스. 와타시다치들이 모여 이런 세레브한 삶을 살거나 더 나아진다는 것을 몰랐던데스.
그것도 모르고 와타시는 와타시만 특별하다고 생각해 이웃상들에게 잘되라고 못된 말을 건방지게 해버린데스.]
나는 40년 정도 살았다. 그렇기에 다른 이웃들이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고 역시나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데프프.. 와타시들의 노예가 되려고 결정한 모양인데스.”
“와타시의 세레브함에 반해버린데스카? 독라달마 자판기로 봐주는데스.”
내 말은 아무도 듣지 않았다. 그저, 도게자 했다는 사실만을 보고 노예짓을 자청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러자 살짝 왜소한 크기의 친실장이 앞으로 나와 나의 몸을 일으켰다.
“오로롱.. 보스상 이러지 마는데스.”
이 왜소한 실장석은... 숫자를 아주 잘 센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푸드 저장고에 배치했던 이웃이었다.
왜소한 실장석이 나서자 반역이 일어났을 때 가담하지 않거나 몰랐던 실장석들이 나와 나를 부축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나에게 도움을 받았던가 혹은 꽤 나이를 먹은 이웃들이었다.
“보스상은 틀리지 않은데스. 그래도 와타시다치들을 이해한다니 정말로 고마운데스.”
“와타시의 마마의 마마가 귀에 보검이 박히도록 이야기했던데스. 셀레네 보스상이 얼마나 대단했고 그 전에는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와타시는 셀레네 보스상을 믿는데숭.”
장로들이 나서서 나를 지지하자 다른 이웃들이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데샤아앗! 노예를 자청한 똥노예를 왜 따르는데샤앗!”
하지만 분충발언을 한 실장석들을 따르는 이는 거의 없었다.
나를 지지한 이웃들은 대부분 많은 산실장들에게 존경받은 노실장이었기에 덤빌 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세력이 크다는 것도 한몫했지만.
나를 믿어주는 이웃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복수심에 사로잡혀 분충들과 믿어주는 이웃들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유린할 뻔 했다. 비록 분충들이라고는 하나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벌어진 책임이기에 받아드릴 것이다.
5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나를 지지해주었던 노실장들은 생을 마감해 세상을 떠났고, 나에게 반항하던 이웃들은 오랫동안 나에게 존중받자, 그들도 보답으로 신뢰를 주었다. 물론 분충들도 있었지만 다른 이웃들이 솎아내주었다.
항상 우리 모두가 특별하지만 평범하다고 생각했기에, 재능을 찾는 일에 신경 썼고 우리 마을은 더욱 발전하였다.
골판지나 굴을 꾸며주는 실장석부터, 무기 같은 물품들을 만드는 실정석들 등등 말이다.
[나를 따라오는데스.]
“테치! 숲씨를 돌아다니는 건 처음인테치!”
나는 재능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카오스파워덕에 위험을 막아낼 수 있기에 어린 자실장들과 산책하러 다녔다.
숲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거나 아이디어를 내는 자실장도 있었고 거기서 재능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아니면 귀 긴긴씨나 도마뱀씨를 잡아 고기씨를 얻기 위해 해체하는 생존법을 가르칠 수도 있고.
많은 자실장들이 짝을 지켜 나를 따라 숲을 거닐고 있을 때였다.
-끼이익 쾅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굉음이 하늘에서 울려 퍼졌다. 붕붕씨들이 다니는 벼랑 위쪽에서 난 소리 같았기에 하늘을 바라보자 어린 닌겐이 떨어지고 있었다.
“빠-르다아아아!”
5살 정도의 매우 어린 여자닌겐임에도 불구하고 떨어지는 동안에 말괄량이처럼 웃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그저 보고 있을 수 없었기에 손을 뻗어 카오스파워를 사용했다.
[멈추는데스!]
내 말이 끝나자 하늘에서 떨어지던 여자닌겐은 공중에서 멈춘 뒤 천천히 지면으로 하강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좌우로 살펴 나를 발견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인간은 그리 달가운 존재가 아니었기에 호기심을 느끼던 어린 자실장들을 이끌며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처 도망가기도 전에 어린 여자닌겐은 엄청난 속도로 다가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와, 너 눈 엄청 예쁘다.”
[데에..]
칭찬은 고마웠지만, 혹여나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기에 매우 두려웠다. 어린닌겐들은 장난삼아 실장석을 뻥뻥차며 놀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어린 여자닌겐은 방긋 웃으며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당황스러웠지만 매우 따스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어린 닝겐에게서 5년 전 자신을 위로해준 남자와 비슷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이 사랑받으며 자란 어린 닌겐은 품에서 살짝 떨어뜨린 뒤 방긋 웃으며 말한다.
“우리 뭐하며 놀까?”
[뎃?]
어린 여자 닌겐은 재빠르고 강했다. 역시 그 남자의 자식이어서 그런지 커다란 나무를 가볍게 타고 올라가거나 나무와 나무 사이를 뛰어다녔다.
하지만 강한 만큼 매우 사랑스러운 것이 어린 자실장들과 이야기하고 사랑을 주고받았다. 부드럽게 잡아 터지지 않게 하고 꽃들을 이용해 머리띠를 만들어 장식품들을 능숙히 만들어주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온종일 놀아주며 날이 어두워질 때 어린 여자닌겐은 잠들었다. 그리고 그 옆, 함께 행복히 놀던 자실장들을 잔뜩 껴안고 말이다. 만약 천사가 있다면 이 어린닌겐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성격 좋은 건 파파나 어린 자나 똑같은데스..]
나도 옆에 누워 잠들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혹여나 야옹씨라던가 여우씨가 온다면 자실장들은 물론이고 어린 여자닌겐까지도 실각할 수 있기에 주변을 경계했다.
2시간 쯤 지날 무렵이었다. 주변의 나무가 들썩이고 풀숲이 마구 파해져지는 소리에 경계를 시작하던 그때였다.
“다행이다.. 정말로.."
나를 위로해주었던.. 그리운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자를 안으며 진심으로 안도하고 있는 커다란 남자가 내 눈앞에 다시 있던 것이었다. 남자 역시도 내 황금 눈동자를 찾은 모양이었다.
동그래진 눈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그때..“
[오랜만인데스 닌겐사마.]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나와 남자는 한참은 이야기했다.
서로의 사소한 근황을 나누었다. 남자 쪽은 둘째가 하도 말괄량이라며 불평했지만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고, 나는 마을로 돌아가 복수가 아닌 평화와 화해를 선택했다는 것 등등.
이야기 한지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어느새 마을 이웃들이 찾아왔다.
”데에.. 왠 닌겐인데스?“
[예전에 와타시를 도와줬던 닌겐사마인데스.]
”그런데스..? 그나저나 마을이 발칵 뒤집힌데스. 셀레네 보스상과 자들이 하도 안돌아와가지고 모두 걱정한데스.“
아.. 하도 어린 여자닌겐에게 시달린 탓에 자들을 걱정하는 친실장들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코츙코츙 자고 있는 자실장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착한 자들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인데스요.]
”그러네, 나도 슬슬 집에 돌아가 볼게.“
남자는 꿈나라로 떠난 자신의 딸을 품에 안은 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역시 자리에서 따라 일어나 하품하며 친실장들을 따라가는 자실장들 행렬 마지막에 따라갔다. 하지만 따라가기 전 오랜만에 만난 남자를 돌아보았다.
[닌겐상.]
”응?“
[혹시 닌겐상들의 인사를 알려주실 수 있는데스?]
진심으로 이 남자에게 감사하고 있기에 예우를 담은 인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닌겐의 예의 있는 인사법을 알 도리가 없었다.
남자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알려주었다.
”치마 양쪽 끝을 꼬집어 올리면서 고개를 살짝 숙여봐.“
난 그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실행했다.
양쪽 치마를 두툼한 손과 엄지로 잡아 살짝 잡아 올렸고 지난날의 과오를 붙잡아준 남자에게 예우를 담아 머리를 살짝 숙여보았다.
남자는 가벼운 미소와 함께 한 손을 들어 답해주었다.
6
달빛이 내려다보는 아스팔트 도로 위, 나는 딸을 업은 체 자리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벼랑 밑에서 나를 바라보는 황금색으로 이글거리는 한 쌍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실로 오랜만에 만난 실장석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실장석은 나를 바라보며 치마 양쪽 끝을 살짝 꼬집어 올린 뒤, 고개를 살짝 숙여 예우를 갖춰주었다.
나 역시 가볍게 손을 들어 실장석에게 답해주었다. 그러자 딸은 나의 목덜미를 앙 깨물며 애교 섞인 앙탈 부리기 시작했다.
”심심해!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해줘!“
”갑자기? 음.. 뭐가 좋을까..“
딸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랐지만 나는 미소를 지어 이야기를 생각했다. 교훈 넘치는 이솝우화가 좋으려나? 아니면 환상적인 상상력이 가득한 신화 이야기? 아니.. 혹시 내가 겪었던 이야기를 해볼까?
나는 이야기를 조금 다듬고는 천천히 입을 때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조금 특별하지만 평범한 실장석과 남자의 이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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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특별하다.
영웅같은 사람들 역시도 결점이 있다.
복수 보다는 평화와 화합
3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써봤는데 너무 어려운데스..
글쓰기 잘쓰는 단프라 오바상이나 탈락빌런상 등등 너무 대단한데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완결 내는게 힘든건데 고생한데스
스크도 엄청 재미있네요!
오바상 글솜씨도 대단한데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