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재의 돌발史전 2.0]
박정희가 쿠데타로
대통령이 됐다고?
그렇다면 1963년 5대 대선은 뭔가
박정희의 대통령
당선은 국민의 직선제
선거를 통해서였다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박정희 민주공화당 후보의 신문 광고----
이 진술은 과연 사실에 부합하는 것인가.
“박정희는 5·16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됐다.”
‘쿠데타’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군사혁명’이나 ‘군사 정변’이나
‘쿠데타’는 그걸 주로 지칭하는
사람과 어감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은
같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서 이 문장은 큰 오해의
소지가 있다.
1961년 5월 16일 일어난 군사
정변은 분명 제2공화국 정부를
와해시켰다.
정변의 주역인 군인들은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수립했다.
이 기관은 1961년 5월 19일부터
1963년 12월 16일까지 존속했다.
초대 의장인 장도영은 1961년 7월
2일 반혁명 혐의로 체포돼
물러났고, 7월 3일부터는 박정희가
2대 의장을 맡아 기관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따라서
‘박정희가 5·16을 통해 집권했다’
고 할 때 그 ‘집권’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뜻하는 것이라면 말이 된다.
그렇다면 제5대 대통령
(1963.12~1967.6)과
제6대 대통령(1967.7~1971.6)의
경우는 어떤가?
역시 ‘쿠데타에 의한 집권’인가?
이런 경우가 수없이 많겠지만,
최근 나온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메이드 인 코리아’ 1회를 보면
1970년의 상황에서 이런 대사가
흘러나온다.
중앙정보부 요원인 주인공(현빈)의
독백이다.
“중앙정보부는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 정권이 군부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국가 정보기관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 정권’이라고?
당시는 제6대 대통령 박정희의
임기 중이었다.
쿠데타로 대통령이 됐다…
5·16이 아니었으면 박정희는
국민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테니
‘쿠데타가 대통령이 된 계기가 된 것’
이라고 볼 수는 있겠으나,
‘쿠데타를 통해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분명한 것은, 박정희가 대통령이 된
것은 1963년 10월 15일에 있었던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아니, 군사 정변을 일으킨
박정희가 이 선거를 군대식으로
억지로 치러서 이기기라도 했단
말인가?
3·15처럼 부정선거를 벌이기라도
했단 말인가?
----1967년 제6대 대통령 선거 당시
투표를 하는 박정희 대통령 부부-----
< 조선일보DB >
‘한국정당정치사’를 쓴 정치학자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에게 물어봤다.
-1963년 5대 대선은 혹시
부정선거였던가?
“그렇지 않다.
박정희는 2위 후보였던 윤보선보다
15만 표 이상을 더 얻어 당당히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렇다면 5·16과 그 이후 박정희의
행보가 오히려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볼 수 있다.”
-1972년 10월 유신 이후에 박정희는
초헌법적인 대통령이 되지 않는가?
“그것은 나중의 일이다. 1963년부터
1972년까지 제3공화국 시절에 세 번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분명 국민의
직선제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하지만 특히 젊은 층에선 박정희를
‘5·16 쿠데타로 대통령이 됐고,
유신으로 종신 집권을 기도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가?
“쉽고 편하게들 이해를 하려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혹시 당시 박정희는 ‘기호 1번’을
차지해서 아직 문맹자가 상당수
존재하던 시절 당선에 유리하게
활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럴 리가. 이때 기호 1번은
신흥당의 장이석 후보였고,
민주공화당 후보로 나온 박정희는
기호 3번이었다.
5대 대선에는 모두 7명의 후보가
등록했다.
심지연 교수는 ‘한국정당정치사’에서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가
국민의 신임을 받아 재집권에
성공하느냐, 아니면 군정 종식을
내건 구(舊)정치인이 집권해 진정한
의미의 민정 이양을 이루느냐 하는
점에서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고 했다.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박정희 민주공화당 후보의 신문 광고-----
당시 박정희는
“참신한 인사를 제외한 구정치인은
제2선으로 물러서게 하고,
새 역사의 창조에 원동력이 될
신세력 중간층의 등장을 지원한다”
고 강조했다.
그러나 야권은 허정과 송요찬
두 후보가 사퇴했음에도 대립과
갈등의 양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야권에서 가장 큰 지지를 받던
윤보선 후보는
‘박정희가 여순 사건에 관련이 있다’
는 사상 문제를 제기했고, 공화당은
‘과거 매카시즘 수법을 쓰고 있다’
고 반발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미국 정보기관은 ‘3·15 부정선거
같은 일이 또 다시 일어나면 한국은
정말 공산화될 것’이라 우려했지만,
선거는 공정하게 치러져 안심했다고
한다.
선거 결과는 박정희가 470만2640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득표율 46.64%였다.
2위인 윤보선 민정당 후보는
454만6614표를 얻어 45.09%에
그쳤다.
초반 개표에선 윤보선이 앞섰으나
박정희가 역전에 성공했다.
지금 같으면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호남 지역에서 얻은 지지가 박정희의
당선에 큰 도움이 됐다.
반면 정작 군 부재자투표에선 윤보선
지지가 더 많았다.
이것은 당시 대선의 공정성을 입증하는
증거 중의 하나다.
-----박정희의 제5대 대통령 당선을 보도한
조선일보 1963년 10월 18일자 1면----
정리하자면 이렇다.
‘박정희는 쿠데타로 집권했다’
고 한다면 이것은 1963년 12월까지
그가 맡았던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지칭하는 것에 한해 합당하다.
그러나
‘박정희는 쿠데타로 대통령이 됐다’
고 한다면 잘못된 진술이다.
여러 차례 말을 바꿔 논란이 됐지만,
그는 끝내 군복을 벗고 민간인
신분으로 공정한 대선 후보로 나서서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그리고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아무리 박정희와 제3공화국을
비판하고 싶더라도 이 부분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제3공화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박정희는 국민의 지지를 얻은 합법적인
대통령이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종종 너무 쉽게
잊어버리거나 무시하고 있다.
▶‘유석재의 돌발史전’
은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 줄기 역사의
단면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아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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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유석재 기자
[출처 : 조선일보]
[100자평]
회원39715212
어이가 없네.
쿠데타는 잘못인데 선거는 공정했다?
석열이는 반대로군....
선거는 공정했으나 쿠데타는 잘못되었다.
도찐 개찐이다.
긍심
우리가 어릴 때도 박정희 대통령의 인기가
최고였다.
육영수 여사도 최고로 인기가 높았다.
소록도의 한센인들을 사랑한 육영수 여사는
지금도 존경받는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최고의 역할을
수행하신 분이다.
감사드린다.
회원83181887
무슨 야그인지 박정희의 공과야 분명히 있지만,
그당시 선거가 관권과 불법이 판친 선거라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 아닌가?
물론 야당도 분열되어서 박정희 당선에 일조한 건
사실이지.
이런 논지가 중도 보수에게는 오히려 부정적
인식만 키운다.
5
유리아찡
朴에 대한 평가는 공과를 나눠 평가하면
수긍이 간다.
공만 내세우는 사람이 과를 주장하는 사람을
승복시키기 어렵고 그 반대 조건도 마찬가지다.
He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나아가 나 자신을
스스로 평가할 때도 이 방식을 적용하면
정확하다.
모-모
혁명이라는 의미가 뭔가?
기존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 체제를
만드는 거 아닌가?
5.16은 분명히 혁명이다.
김영삼과 김대중 좌파 패거리들이 박정희를
비하하기 위한 수단으로 교묘하게 구데타라는
말로 국민을 현혹해 왔다.
비록 구데타라고 해도 그 행위가 우리 국민을
잘 살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면 뭐가 문제인가?
작금 이재명 정부 패거리가 하는 짓이 과연
박수 받을 만 한가?
바꿔야 할 대상은 아닌가?
청색의간달프
쿠데타와 군사혁명이 같은 의마라는 유석재
기자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쿠데타는 불법성을 혁명은 정당성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5.16군사혁명이 쿠데타가 아닌
것은 그 혁명이 우리나라의 의식구조 및
사회상을 일대 변혁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쿠데타는 그냥 권력을 잡고 소수가 해처먹는
것이다.
그래서, 단군 이래 최대의 부와 번영을 가져온
박정희 대통령의 5.16혁명을 함부로 쿠데타라고
부르면 안되는 것이다.
쿠데타와 혁명이 같은 말이라면, 왜 굳이 좌파들이
원래 5.16혁명이었던 것을 쿠데타라고
바꾸었겠는가!
6.25사변을 한국전쟁이라고 부르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잘못되었다.
가을 전어
굳이 여러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집권의 정당성으로 따지면 비판하는게 맞고
업적으로 따지면 칭찬하는게 맞다.
개인적으로 학창시절 유신반대 데모를 했지만
그의 업적에 대해서는 부정한적이 없다.
그가 맨땅에 헤딩하며 만든 산업 인프라로
경제가 일어섰고 그 덕분에 결국 민주화도
성공한 건 팩트이기 때문이다.
이제와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면
주객이 전도된거다.
인도는 초대수상인 네루가 민주주의를 실시하고
개인적으로 존경 받았지만 그냥 그것으로 끝났다.
독립초기의 가장 중요한 골든 타임을 놓쳤기
때문이다.
2차대전후 독립한 나라중에서 그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고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나라는 한국과 대만뿐이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그가 심은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부정하겠는가
말이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당시는 누군가 욕먹을 각오를
하며 밀어 부쳐야 할 시기였다.
그는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외쳤고
결국 그의 말대로 되었다.
홍길동
진짜 쿠데타는 문재인과 이재명이 아닐까?
현직 대통령을 끌어 내리고 깜빵 보낸 극악무도한들
그것도 모자라 대통령 주변의 모든 인간들 까지
모조리 처리하거나 하고 있는 중.
신문맨
정치적으로ㅡ몇몇 오류는 있었지만 가난과
배고픔을 해결해주시고 산업 근간의 기초를
닦으시고 국민들한테 일자리 만들어주시고 등등
대한민국 5000년 역사에서 가장 위대 하신
분이네요.
이모난
박정희는 독재자지만 경제발전 초석이 됐다.
이에 비하면 괴물 윤석열은 왕이 되기 위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반역자다.
닭대가리들아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왜곡하는 대한민국.
역사학자들 다 뒈져야 한다.
역사학자 자격도 없다.
역사가 정치하는 나라는 소멸한다.
조선시대에도 사관은 임금도 인정 했다.
다우네
박 정희 이후 지금까지 업적이나 애국심 면에서
박 정희 한 분 빼고 다 그놈이 그놈이다!
플리트
이렇게 억지를 부리면 앞으로 판판이 질 수밖에
없다.
박정희의 경제적 성과는 높이 칭송하되 독재,
부정선거, 유정회, 요정정치 등 정치적인 부분은
좀 달리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수의 영역은 갈수록 좁아질
것이다.
모든 게 과유불급 아닌가?
blessyc
박정희 대통령의 과거 연설을 지금 들어보면
참 맞는 말이고, 미래를 제대로 내다보는
지도자의 식견이 보인다.
만약 지금 박정희가 환생 한다면 과거 같은
수단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수단을 쓰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당시는 국민의 전체 수준에 맞는 수단을
택했던 것이다.
광민이 47090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기초를 가장 큰 공으로
치부해야 합니다.
물론 과정에 피해를 입은 분들이나 반대하는
위정자들의 야당 인사들의 탄압도 있었지만 박통의
결단성과 추진력이 오늘의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잘살고 있지요.
힘든 일은 외국인 노동자가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