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권의 책에 도전하며
중학교 3학년 때 ‘죄와 벌’을 읽은 이래 그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강렬한 논리를 기억하며 언젠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다 읽으리라 하면서도 결국 60 중반의 나이를 넘기도록 실천하지 못했다.
이제사 버킷리스트의 하나로 정해놓고 도서관에서 세 권짜리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빌려왔다.
20세기 문학, 철학, 심리학의 지형도를 바꾸어 놓은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 그의 마지막 소설이자 최고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잔인한 천재’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정점으로, 신과 종교, 삶과 죽음, 사랑과 욕정, 인간 본성의 문제를 탐구해 낸 대서사시다.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지금까지 쓰인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 했고, 앙드레 지드는 “램브란트처럼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초상화는 더할 나위 없이 강렬하며 또한 완벽하다. 그는 모든 소설가 가운데 가장 위대하다.”고 했다. 또 제임스 조이스는 “도스토예프스키는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을 창조해 냈다. 사람들이 광기라 부르는 그 안에 그의 천재성의 비밀이 있다.”고 했으며, 커트 보네거트는 “인생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안에 있다.”고 했다.
언젠가 “인류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데, 이웃집 노파를 생각하면 구역질이 난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어록을 읽은 적이 있었다. 툭하면 거대담론을 들먹이는 직업 정치 종교꾼의 위선적인 행태보다 이웃과 더불어 알콩달콩 하루살이로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진실되지 않을까 하는 뜻으로 이해를 했다. 그 문장의 정확한 앞뒤 문맥을 기억할 수가 없었는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권을 읽으면서 무릎을 쳤다. 120~121쪽에서 조시마 장로는 실천적인 사랑에 대한 고뇌를 발작적으로 토로하는 부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건 이미 오래 전에 어느 의사가 저에게 해 준 얘기와 똑같군요,” 장로가 지적했다.
“그는 이미 나이가 꽤 지긋이 든, 이론의 여지가 없이 똑똑한 사람이었지요. 그도 부인처럼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했는데, 비록 농담이긴 했지만 서글픈 농담이었지요. 인류를 사랑하긴 하지만 스스로에게 놀라곤 한다고 말하더군요. 인류 전체를 더 많이 사랑하면 할수록, 개별적인 사람들, 즉 사람들 개개인은 점점 덜 사랑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몽상 속에서는 인류에 대한 열정적인 봉사를 생각하기에 이르고 갑자기 어떤 식으로든 요구가 있을 시엔 어쩌면 정말로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 행도 마다하지 않을 각오를 하게 되는 일이 드물지 않지만, 정작 고작 이틀도 누구와 한 방에서 지낼 수가 없다, 이건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하고 말하더군요. 상대방이 자기 곁에 있을라치면 곧 그라는 사람 자체가 자기의 자존심을 억누르고 자유를 밀어낸답니다. 꼬박 이십사 시간 동안이면 심지어 가장 훌륭한 사람도 증오하게 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누구는 너무 오랫동안 식사를 하니까, 다른 누구는 콧물감기에 걸려 끊임없이 코를 푸니까 말이죠. 사람들이 자기를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곧 그들의 적이 된답니다. 대신, 개별적인 사람들을 더 많이 증오하게 될수록 언제나 인류 전체에 대한 그의 사랑은 더욱 더 불타오르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문해력이 떨어진 탓인지, 도스토예프스키의 문장이 너무 심오한 탓인지 책 읽는데 속도가 붙지 않는다. 그래도 천천히 되씹으며 읽노라면 아, 정말 그는 인간의 심리를 처연하게 발가벗기는 ‘잔인한 천재’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산경 김향기 9.1
첫댓글 하하하하하하하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책을 읽은 기억도 가물가물합니다.
그러나 영화를 본 기억은 아주 희미하게 떠 오르네요.
지금 다시 도전하는 산경 김향기 선생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인간의 심리를 처연하게 발가벗기는 잔인한 천재'에 깊이 공감합니다.
산경 김향기 님의 독후감에 박수 칩니다.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