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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중국은 왜 한국을 능멸하는가
조선일보
이용수 논설위원
입력 2023.04.26. 03:00업데이트 2023.04.26. 07:42
https://www.chosun.com/opinion/taepyeongro/2023/04/26/DDKSMJ5NX5AK7D6RWDUMAQOJ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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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국이 감히 대국에…” 안하무인 中에 항의 못 해
현대판 사대주의 척결 없인 하대와 수모 계속될 것
중국 외교부엔 대변인이 셋이다. 선임자는 국장인 화춘잉(華春瑩·53)이고 밑에 부국장이 둘 있다. 그중 하나가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의 대만 관련 발언을 겨냥해 “말참견을 용납하지 않겠다”(不容置喙·불용치훼)고 한 왕원빈(汪文斌·52)이다. 부국장이면 한국에서 3급 또는 2급 공무원이다. 외교 관례상 외국 정상을 꾸짖을 군번은 아니다.
불용치훼는 청나라 작가 포송령(蒲松齡·1640~1715)이 쓴 기담집 ‘요재지이’(聊齋志異) 중 ‘삼생’(三生)이란 단편에서 유래한 성어(成語)다. “말참견을 용납하지 않고 즉시 참수했다”(不容置喙, 立斬之)는 문장에서 따왔다. 훼(喙)는 짐승의 주둥이다. ‘말참견 말라’는 단순 경고가 아니라, ‘목이 잘리기 싫으면 주둥이 닥치라’는 협박에 가깝다. 우회적이고 유화적인 수사로 점잔을 빼는 외교에서 쓸 수 없는 거친 표현이다.
두 달 전 박진 외교부 장관이 CNN 인터뷰에서 대만 관련 발언을 했을 때도 중국 외교부 마오닝(毛寧·51) 대변인은 불용치훼를 언급했다. 인민해방군 강경파가 쓸 법한 비(非)외교적 언사가 외교부 브리핑에서 올해에만 두 번 나왔다. 모두 한국을 향해서였다. 서방 국가 대부분이 대만 문제를 거론한다. 한국보다 자주 한다. 그때마다 중국은 발끈하지만, 불용치훼라고 하진 않는다. 한국이 만만한 것이다.
편파 판정 논란으로 시끄럽던 베이징동계올림픽 당시 주한 중국 대사관은 “일부 한국 언론과 정치인이 반중 정서를 선동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주요국 언론 대부분이 편파 판정 논란을 다뤘는데 한국에만 눈을 부라렸다. 싱하이밍 대사는 대선 주자 시절 윤 대통령의 사드 관련 발언을 트집 잡아 국내 언론에 반박문을 냈다. 외국 대사가 외교 채널을 제쳐놓고 주재국 선거에 개입한 유일무이한 사례일 것이다.
중국의 안하무인은 ‘소국은 대국을 따라야 한다’는 시대착오적 중화주의에 기인한다. 한국을 동등한 주권국으로 보지 않으니 외교가 아니라 훈계를 하고 내정에 간섭한다. 중국이 사드 보복 조치를 퍼붓고 관제 혐한 시위가 봇물을 이룰 때 이걸 두둔·조장하던 중국 관영 매체들의 논리가 ‘소국이 대국의 이익을 침해한다’였다.
한국 지도층은 중국의 하대와 갑질에 순응해 왔다. 소국을 자처하며 중국에 아첨했다. 전 서울시장은 한국을 파리, 중국을 말에 빗대 “파리가 말 궁둥이에 딱 붙으면 만리를 간다”고 했다. 지난 정부 주중 대사는 시진핑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며 방명록에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 적었다. 조선 사대주의자들이 명 황제를 향한 충절을 맹세하며 쓰던 말이다.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 한국은 작은 나라”라고 하는 대통령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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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겁내는 공중증(恐中症)은 한국 외교의 고질병이다. 이것이 지난 정부를 거치며 악성이 됐다. ‘사드 3불’에 반대한 관료는 좌천되고 중국 심기를 중시하는 무리가 출세했다. 친중 엘리트 집단은 지금도 건재하다. 몇 달 전 유엔에서 자유민주 진영 50국이 중국의 위구르 인권 탄압을 규탄할 때 한국 혼자 발을 빼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건 우연이 아니다.
왕원빈의 막말이 나온 날 한국 외교부는 “국격을 의심케 하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라며 모처럼 항의했다. 당시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국가안보실에서 완전히 갈아엎은 입장”이라고 했다. 원래 외교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 유의 완곡한 내용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그날 외교부는 싱하이밍 대사 초치 사실도 한참 뒤 공개했다. 일본 외교관 초치 때마다 언론에 미리 알려 플래시 세례를 받게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대접이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현대판 사대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면 불용치훼보다 더한 수모를 당한대도 이상할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