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현, 직장(상동스터디센터) 23-1, 내가 전화했는데요?
어제 정주현 씨와 카페에 들렀다. 올해부터 전담 직원이 되었으니 그 누구보다 당사자에게 예를 갖춰 나를 소개하고 싶었다. 카페에서 차와 음료를 대접하며 소개했고, 올해의 기대와 바람 같은 것들을 나눴다.
정주현 씨에게 직접 이번 한 주의 일정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고, 자세히 기록했다. 올해부터 바뀐 직원을 소개하고 새해 인사를 전하고 싶은 지인 목록, 1월에 챙겨야 할 건강 관련 일정(대구 안과 진료, 내과 철분제 복용 지속 관련), 올해부터 시작하는 컴퓨터 수업, 필요한 생필품과 장 목록, 그리고 매주 한 번씩 독서실 청소 일을 한다는 것.
기록에서 읽었던 정주현 씨의 지인과 직장, 전임자에게 인계받은 건강 관련 일정에 관해 정주현 씨도 이미 다 알고 있고, 직접 자신의 입에서 줄줄 나오는 것을 보면서 ‘삶이 여기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돕는 일을 하고 있지만 실제 그런 삶을 볼 때면 늘 놀랍고, 감동스럽다. 동료들에 대한 존경스런 마음도 들고 말이다.
독서실 청소는 정해진 요일과 시간이 있는 것은 아니고, 교대직으로 매일 바뀌는 직원의 출근 일정을 살펴서 매주 정주현 씨가 적당한 시간을 사장님과 전화해서 조율해 왔다고 한다. 주로는 목요일 오후에 청소하러 간다고 했다.
지인 인사 일정도, 직장 출근 일정도 정주현 씨가 직접 당사자와 통화하고 나에게 알려주겠다고 했다. 또 한 번 놀랐다. 그래서 직원과는 언제 인사드리고, 언제 직장 출근할 것인지에 관한 날짜 의논만 했다.
내일 독서실 출근을 앞두고, 그래도 사장님께 한 번 더 연락드려서 출근 일정을 확인하고 인사드린 후에 찾아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사장님께서 모르고 계시면 어쩌지, 갑작스럽게 찾아뵈어서 당황하시는 건 아닐까.’ 싶은 마음이었다.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다.
“정주현 씨, 내일 2시에 올해부터 바뀐 선생님이랑 같이 출근한다고
사장님께 한 번 더 연락드리면 어떨까 싶어요.
그래도 찾아뵙기 전에 미리 전화해서
목소리로라도 먼저 인사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내가 전화했는데? 새로운 선생님이랑 같이 간다고 했는데?”
의아한 듯 작은 소리로 혼잣말을 한다. 전임자가 이미 새로 바뀐 직원에 관해 소식을 전해서 사장님도 이미 알고 있다고 정주현 씨가 설명한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확인차 한 번 더 전화하기보다 정주현 씨가 약속한 그 시각에 찾아뵙고 인사드리기로 했다. 정주현 씨가 알아서 잘 연락했겠지 하고 믿기로 했다. 오랜 시간 독서실 사장님과 인연을 이어왔고, 계속해서 이렇게 직접 전화해서 출근 시간을 조율하며 일했다고 하니 그 뜻을 따라 돕고 싶었다.
“세상에! 그렇군요. 덕분에 인사도 수월하겠어요. 고마워요.”
“야.”
지난 1년 반 동안 당신의 생각을 말로 다 표현하기엔 어느 정도 어려움이 있는 입주자를 지원하다 보니 대신 통화를 돕는 게 익숙해져서 어느덧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내가 도와야 한다고, 내가 직접 입주자의 지인과 통화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나친 친절을 경계해야겠다. 생각 없이 미리 돕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아야겠다, 이 일은. ‘당사자의 몫은 당사자에게’라는 생각 또한 놓지 않아야 할 테고.
2023년 1월 4일 수요일, 서지연
서툴게 정리한 서랍장을 인정하는 것,
당사자의 삶을 인정하는 행위! 월평
첫댓글 '기록에서 읽었던 정주현 씨의 지인과 직장, 전임자에게 인계받은 건강 관련 일정에 관해 정주현 씨도 이미 다 알고 있고, 직접 자신의 입에서 줄줄 나오는 것을 보면서 ‘삶이 여기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돕는 일을 하고 있지만 실제 그런 삶을 볼 때면 늘 놀랍고, 감동스럽다. 동료들에 대한 존경스런 마음도 들고 말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전임자인 김수경 선생님이 성실하게 일을 잘했구나 싶었습니다. 전임자의 노력을 인정하는 서지연 선생님의 마음과 말이 참 예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