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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원의 늙기의 기술] 한국인 건강 수명 73.1세… 우리의 노년은 건강해지고 있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입력 2023.04.26. 03:00업데이트 2023.04.26. 07:38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3/04/26/6VWIKFICCJBLPNET52EEFRCIW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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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고령화와 함께 노인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놓고 여기저기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요즈음이다. 이와 관련해 가장 큰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은퇴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상향하는 것과 관련된 법안을 둘러싸고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기도 한 프랑스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초연금,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중교통무임승차 등 다양한 복지제도가 현재 65세를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는 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라 기준 연령이 조정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될 정도로 이 문제는 민감한 주제로 간주된다. 1981년 이래로 현재까지 고정되어 있는 노인 기준 연령을 조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으로는 첫째, 현재의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며, 둘째, 기대수명은 늘고 있지만 그에 비해 건강수명이 늘고 있지 않아 아픈 노년을 오래 보내는 것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다.
흔히 우리나라에서 건강수명이 늘지 않고 있는 현상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자료는 통계청의 ‘유병기간 제외 기대수명’ 추이다. 사실 이 ‘유병기간 제외 기대수명’은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과 같은 만성질환을 재빠르게 잘 찾아내 의학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건강수명이 짧아지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만성 질환을 앓으며 약제를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건강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래픽=박상훈
실제로 ‘유병기간 제외 기대수명’ 방식으로 계산한 건강수명은 2012년 65.7년에서 2018년 64.4년으로 오히려 감소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2020년 66.3년으로 다시 약간 증가되었다. 참고로 2012년, 2018년, 2020년의 기대수명은 각각 80.9년, 82.7년, 83.5년이었다. 그런데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 질환에 대해 적절히 투약을 받으면서 젊었을 때와 다름없는 활동적인 일상생활을 유지하는데도 건강수명이 끝났다고 간주되는 것은 상당히 억울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노년내과에서 진료를 받고 계신 환자분의 사례를 들어보자. 90세 남자인 A씨는 만성 폐쇄성 폐 질환과 말초혈관질환, 만성콩팥병, 고혈압 등 10여 가지의 만성질환을 앓고, 7종의 약을 복용한다. 여러 질병으로 병원을 다니는 중에도 평소 여러 가지 운동을 꾸준히 챙기고 있는 그는 병원 진료를 포함한 일상적인 일들을 모두 스스로 처리할 수 있다. 보행속도나 근력은 젊은 성인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A씨는 사실 건강하지만 통계청 방식으로는 건강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국제 표준 건강수명 계산법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사용하는 건강수명 개념인 ‘건강보정기대수명’이다. 여러 보정 공식을 이용해서 질병, 사고 때문에 일상생활을 원활히 수행하지 못하는 시점을 추정하므로, 경증의 만성질환만 걸리더라도 건강치 않은 것으로 분류되는 억울함을 피할 수 있다. 지난 20년간 기대수명이 7.3년 늘었고, 그동안 이 방식대로 계산한 건강수명은 5.7년 늘었다. 통계청 방식과는 달리 상당히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
2019년 데이터에서는 73.1년으로 WHO 자료가 있는 나라들 중에서 일본(74.1년), 싱가포르(73.6년)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미국 66.1년, 영국 70.1년, 독일 70.9년, 프랑스 72.1년 등 여타 부유한 나라들과 비교해 보면 대한민국이 얼마나 건강하게 나이 들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노인병 의사들은 사람의 노년을 숫자 나이로 보기보다는 실제 기능 정도로 판단하는 훈련을 받는다. 병의 개수, 약의 개수가 늘며 스스로 걷기, 씻기 등 일상생활의 수행이 어려워지면 노쇠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코로나에 걸리거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는 등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숫자 나이는 같더라도 얼마나 노쇠한지가 이후의 사망 여부나, 기능 저하에 의한 요양병원 입소 등을 결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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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전남대학교병원 노년내과 강민구 교수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같은 노쇠 정도(노쇠지수 0.2)에 도달하는 연령 또한 증가 추세인데, 2010년 71.3세, 2019년 75.0세로 WHO 건강보정기대수명과 거의 비슷하게 따라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쇠지수 0.2면 노화와 만성질환이 어느 정도 겹쳐 있고 걷는 속도가 다소 느려지며, 허리가 약간 굽고 근육이 다소 빠진 상태로 지팡이를 사용해서 걷게 되는 정도이다. ‘노쇠 전 단계’라고 칭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노년의 몸’이라 할 수 있다. 근육 건강과 인지 건강에 특별히 신경 써 주어야 노쇠의 진행을 막을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현재의 우리나라 사람들 인식은 어떨까? 2022년 서울에 거주하는 1957년 이전 출생자 3010명을 대상으로 시행된 ‘서울시 노인실태조사’에 참여한 이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노인 기준 연령은 평균 72.6세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의 2020년 노인실태조사에서도 과반(52.7%)은 노인 기준 연령을 만 70~74세로 인식했다. 우리나라의 실질 은퇴 연령이 2018년 기준 72.3세인데(OECD), 신체적·인지적으로 성인기에서 노년기로 전환되는 시점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평균값은 수많은 사람들의 집단 지성이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어느 나이대가 되면 흔히 생각하는 ‘노년의 몸’을 보이기 시작하는지 관찰한 경험들을 모두 한데 모은 것인데, 그 결과가 WHO 방식의 ‘건강보정기대수명’이나 강민구 교수의 국민건강영양조사 분석 결과와 흡사한 것이 재미있다.
우리의 노년은 건강해지고 있었다. 좋은 소식이다. 골골거리며 오래 사는 노년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안타깝게도 불리한 계산 방식을 보여주면서 빈곤하며, 아픈 노년의 기간이 계속 늘어나고 있음을 겁주는 기사가 많다. 우리 나라의 미래가 급증하는 의료비용과 복지비용으로 우려된다는 통계 자료와 전문가의 의견들이 매일같이 지면을 가득 메운다. 하지만 ‘팩트풀니스’의 저자 한스 로즐링의 이야기처럼, 실제 데이터를 들여다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생각보다 더 좋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더 긴 청춘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