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파출부 아줌마의 행복한 고백
가난해서 난 행복합니다 / 문보근
지금은 선진 2023년대를 달리고 있는데
나의 삶은 후진 70년대를 살고 있는
가난한 파출부 아줌마입니다
달랑 하나 있는 통장에 잔액이란
한 푼도 없기에 아파도 하루라도 쉴 수 없는
가련한 파출부 아줌마입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학비조차 마련할 수 없기에 배움에 꿈마저
일찍이 접어야 했던
그늘진 파출부 아줌마입니다
세상엔 행운이란 것도 있다고 들었는데
세상엔 고생 끝에 낙이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 그런 것들은 다 어디에 몰려가 있나요?
살다 보면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 하던데
나의 인생은 그런 거 기대하는 것도
사치였나요?
열심히 살아도,
죽기 살기로 열심히 살아도,
지금도 빈곤이란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참담한 파출부 아줌마입니다
내 인생에 뭐가 잘못된 것일까요?
남들보다 더 정직하게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나에겐 왜 행운은 비켜 가는 걸까요?
손등에 습진이 떠날새 없이 일을 하고
허리를 굽혀 받들며 살아왔는데
나의 삶은 왜 늘 허기져 있는 걸까요?
웃을 수 있는 입을 나도 가졌는데
남들처럼 시원스레 한번 웃어 보지도 못하고
느낄 수 있는 감정도 남들보다 더 많은데
나의 인생은 왜 감동이 없는 삶으로
채워져 있는 것일까요
못난 내 소견인지 모르지만
엎드려야 드나들 수 있는 반지하 내 집이
나는 이젠 정말 싫습니다
대궐 같은 집에서 일하고 돌아온 날에는
내 집과 그 집을 비교하느라
난 밤새도록 허무에 시달립니다
언제나 나의 삶이란
내 아래는 하나도 없고 윗분만 있습니다
그래서 내 앞에는 사모님만 있고
나는 한낱 파출부 아줌마일 뿐이었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 똑같은 여자로 태어나
누구는 나를 부리며 살고
나는 시녀처럼 받들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사람에게
운명이란 것과 숙명이란 것이 있다면
신은 참 잔인하십니다
나도 한 번만이라도
그 사모님들처럼 사모님 소릴 듣고 싶습니다
한 여자 욕심이 그러고 싶습니다
수영장이 달린 저택에서
나도 손끝 까닥 않고 찬모가 만들어준 음식을
공주처럼 먹어보고 싶습니다
기사가 데려다준 고급 카페로 가
VIP 대접받으며 한잔에 몇십만 원 하는
차도 부티 나게 마셔보고 싶습니다
여느 사모님 자식들처럼 내 자식들에게도
옷 한 벌에 수백만 원 하는옷을 입히고 싶고
책가방 하며 신발 하며 더 이상 없는
최고급으로 치장해 주고 싶습니다
나는 그러고 살면 왜 안 되는 겁니까
남들은 그러고 사는데
나는 왜 그러고 살면 안 되는 겁니까
분수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지 몰라도
나는 내 처지를 비관하며
남몰래 눈물을 참 많이도 흘렸습니다
남편을 보면 생각이 많아지고
자식을 보면 마음 복잡해지는 어느 날,
이례적인 파출부 콜을 받았습니다
이례적이라 함은 최상류 층에서는
우리 같은 파출부를 부르지 않습니다
그런 집에는 가사 도우미가 따로따로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집에서 콜을 받은 것입니다
대문을 열자마자 나는 집 규모에 놀라고
잘 다듬어진 정원에 또 한 번 더 놀라며
집안으로 들어 갔을 때
사모님으로 보이는 사십 대 후반의 여성이
의자에 앉은 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사모님 뒤에다 인사를 건네고
근무복으로 갈아입으려 할 때
사모님은 내게 말했습니다
"근무복은 갈아입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이리로 와 앉으세요"
나는 사모님이 가리키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사모님은 눈이 붉어져 있었습니다
사모님은 나를 보자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부탁은 있는데
나를 아줌마라고 한번 불러봐 주세요
꼭 그렇게 불러주세요, 꼭이요"
느닷없고 황당한 부탁에
나는 몹시 당혹스러웠지만 사모님 표정이
너무 진지해 나는 "아줌마" 하고 불렀습니다
내 말소리를 들은 사모님은
금방 얼굴이 환해지며 말했습니다
"고마워요
참 오래간만에 들어본 호칭이네요"
사모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어 갔습니다
"가난이 너무 싫었어요
철모를 때 전 남편을 만났지요
사랑 하나면 다인 줄 알았는데 살아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집을 나왔지요 어린 아들을 두고요"
사모님은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소원이었어요
돈 한번 원 없이 써 보는 게,
그래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지요
소원대로 원 없이 돈을 써 보았네요
그땐 어찌나 신이 났던지
세상 행복 다 가진 듯했답니다
지금 내 남편 나이는 팔십이예요
병원에 입원 중에 있지요"
사모님은 물 한 모금마시며
말을 어어갔습니다
"혹시 조가비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알맹이 없는 껍데기 조개란 뜻이지요
지금 내가 그런 모습이랍니다
난 사모님이 아녀요, 허울 좋은 사모지요"
사모님은 눈물을 훔치며 말했습니다
"살면서 가장 견디기 힘들 것이 뭔지 아세요
가난인가요? 아녀요,
그건 외로움이에요, 외로움,
최고의 행복은 뭔지 아세요?
명예? 아녀요 부유? 아녀요
그것은 건강이랍니다
실은 지금 난 시한부 인생이에요
첫눈을 볼 수 있을련지 모르겠네요,"
우수에 차있는 사모님의 말을 들으며
나는 우리 집을 떠올렸습니다
지금 내게는 사모님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지금 내게는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는가?
이곳처럼 커다란 집은 내게는 없지만
커다란 사랑이 내 집엔 있다
이곳처럼 커다란 재산은 내게는 없지만
커다란 웃음은 내 집엔 있다
이곳처럼 커다란 자동차는 내게는 없지만
튼튼한 남편이 내 집엔 있다
이곳처럼 귀여운 애견은 내게 없어도
마냥 사랑스러운 아들이 내 집엔 있다
이곳처럼 가사 도우미가 내게는 없지만
부지런한 내가 우리 집엔 있다
눈물이 납니다
눈물이 나는 것은
사모님에 대한 연민 때문이 아닙니다
그건 나는 그것을 왜 이제서야 알았을까요
진정한 행복이 뭔지를.....
그리고 보니
행복의 조건을 다 가진 사람이
바로 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납니다
대궐 같은 집을 나서면서
나는 발길이 바빠졌습니다
집에 빨리 가고 싶어졌습니다
남편이 빨리 보고 싶습니다
아들을 빨리 안아 보고 싶어졌습니다
가족을 위해
오늘 저녁은 어떤 만찬을 준비해야 하나
행복한 고민이 되는 순간입니다
저녁 노을이 참 아름답습니다
우리 막내가 치킨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 치킨을 사들고 집으로 가는 내내
행복해서 나는 눈물이 펑펑 납니다
가난해서 난 행복합니다
출처: 좋은글과 좋은음악이 있는곳 원문보기 글쓴이: 허리케인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