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문에 운신이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그 불만의 출구가 모두 입으로 옮겨갔나 봅니다.
우리 집만 보더라도 한 번 전화기를 잡았다 하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수다가 그것을 증명하는 것 같아서 그럴 때면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줍니다. 어디로든 배설을 해야 편해지는 생리현상을 막아서는 안되기 때문이지요.
카페만 해도 그렇습니다. 공식적인 모임이 없다 보니 그 무료함의 출구가 글방으로 옮겨져서 다른 곳은 몰라도
일부 글방은 호황을 누리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답답함을 줄일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되는데요,
나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무엇이든 해야 이 허전함을 채울 수 있으므로 시간이 날 때마다 카메라를 메고 이곳저곳 다니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그것 만으로는 부족한 면이 있어 이렇게 인터넷에 글이나 음악을 올리며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만 , 관에서 주도하는 집체교육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약 300여 명의 인원이 대강당에 모여
교육을 받는데 관에서 주도하는 교육이 거의 그렇듯이 딱딱한 주제에다 앵무새와도 같은 강사의 재미 없는 강의에
반은 졸고 반은 듣는 분위기가 이어지다가 순간 눈이 번쩍 뜨이는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다름이 아닌 여성 강사가 진행하는 가족계획 강의였는데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 강사는 풍부한 강의 이력을
과시라도 하듯이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민망하게 여기는 부분을 능수능란(能手能爛)한 말재주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갔고 그 덕분에 조는 수강생은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았는데 그 때, 뒷좌석으로부터 " 저 여자와 사흘만 살아봤으면
좋겠다 " 는 푸념 같은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그 강사에게 호감을 느꼈기로서니 석 달도 아니고
삼 년도 아닌 사흘만 살아보면 좋겠다는 이 말에 순간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나왔지만 모두들 그 말에 공감을 했는지는
몰라도 별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 후 영화 "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 를 보던 중 문득 교육장에서 들었던 "저 여자와
사흘만 살아보면 좋겠다 "던 어느 남자의 푸념이 생각나서 혼자 슬그머니 웃었습니다.
영화를 본 사람은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처음 만난 중년의 남자와 여자가 나흘동안 사랑에 빠진 기록을 정리한 영화였는데요,
영화가 어찌나 로맨틱한지 관객은 그게 불륜인줄도 모르고, 설사 알았다고 해도 무시하고 그 영화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도 저 영화처럼 사랑을 한 번 해 보면 좋겠다느니, 저런 상황이면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는 말로
이 불륜의 사랑을 미화 내지 동경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내곤 했는데 나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 저건 불륜이다,
아니,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에 외간남자를 끌어들여 4일 동안 바람을 피웠는데 그게 불륜이 아니면 뭐냐 " 라며 반박을 하는
우를 범하곤 했습니다. 내가 무슨 정의의 사도나 되는 것처럼 남들이 다 좋다는 것을 아니라고 했으니 스스로도 고리타분한
쫌생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그래서 그 후부터는 다중이 다 좋다는 것은 그냥 그렇거니 하고 넘어가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잠깐, 내 주장에 신빙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간략하게나마 소개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1995년에 개봉된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배우 메릴 스트립과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겸) 라는 헐리우드의 거물이
주연을 맡은 로맨스 드라마입니다. 이 영화는 미국 아이오와의 조용한 시골마을에 살고 있는 평범한 주부, 프란체스카 존슨이
남편과 아들이 소를 구입하기 위하여 출장을떠난 후. 우연히 한 남자와 만나게 되는데. 그 남자는 여자의 집 근처에 있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찍으러 온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 로버트입니다.
오로지 가정에 매여 살며 잃어버린 꿈을 곱씹던 프란체스카와 평생을 떠돌이로 살아오던 로버트는 서로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끼게 되고, 이윽고 둘은 짧은 시간 동안 깊은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엄마가 아닌 한 사람의 여성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 프란체스카. 하지만 둘에게 허락된 시간은 짧았고,
마을을 떠나야 하는 로버트는 프란체스카에게 함께 가자고 애원하는데, 꿈에 대한 갈망과 가족에 대한 의무감 사이, 프란체스카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지만 결국 프란체스카는 남편의 품으로 돌아옵니다. 여기서 마지막 날의 명장면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맨몸으로 맞으며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와 남편의 차에서 이 모습을 보며 눈물로 작별을 고하는 여자,
사람들은 아마도 이 장면을 보고 불륜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요, 호박에 줄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건 아니지요,
" 내로남불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은 어찌 보면 이 영화를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때로는 로맨스로 때로는 불륜으로 가치를 정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화가 개봉된 후 이 영화에 등장했던 주요 장소들에 대하여 불결한 정사의 흔적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광신도에 의해 불태워지기도 했답니다.
끝으로 이 영화에 등장했던 명대사 한 마디를 소개합니다, 사랑이기 이전에 인생에 대하여 "누군가와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기로 결정한 순간 어떤 면에선 사랑이 시작된다고 믿지만 그건 사랑이 멈추는 때이기도 해요."
그런 이유인지는 몰라도 사랑이 멈춘 가정이 의외로 많은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사랑이 아니면 그럼 뭘까요, 의무일까요.
자식 때문에 산다는 그런 의무 말입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책임과 의무가 따르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믿는데요,
어떠세요, 설마 고루한 생각이라고 탓하지는 않으시겠지요 ?.
첫댓글 작년에 써놓은 이 긁을 올릴까 말까 하다가 나도 모르게 올라갔습니다. 행여 이 글이 수필방에 적절하지 않다면
내리셔도 좋습니다.
글, 참 재미있습니다.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마지막 장면, 여주인공이 사진작가를 따라나섰다면
영화는 별로이고 불륜이었을 겁니다.
결혼은 사랑이 멈추었다고 합니다.
의무와 책임이 사랑을 앞서거던요.
가정을 두고,
사랑만 찾아다닌 남녀라면 인생은 파멸이지요.
사랑은 소중한 것이지만,
요즘 코비드 팬데믹으로,
사람들은 평범했던 일상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를
새삼 깨닫는 순간입니다.
흥미로운 글,
올려주셔서 숨통이 터이네요.ㅎ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지요. 가고 안 가고를 떠나
윤리적 측면에서 볼 때 이 사랑은 불륜이 맞겠지요 .
배우자가 있는 여성이 외간남자와 깊은 관계를 맺었으니까요.
그런 관계가 아니더라도 마음을 주었다는 것 만으로도 불륜이라고 사전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을 겪어 봐야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 수 있는가 봅니다.
코로나 19가 그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날씨가 더워지니 마스크가 점점 답답해 지네요.
어서 이 마스크를 벗었으면 합니다. 콩꽃 위원님 감사합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매디슨 카운티스다리 라는 영화를 보고 아무리 로맨틱하다 할지라도 불륜은 불륜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내 속에 사랑이 너무 많이 있다 할지라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해서 불륜 자체를 해서는 되고 안 되고 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차피 인간이 만드는 것이 법이기 때문에..불륜은 불륜이라는 이야기이지요 오늘 쓰신 글. 의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네 맞습니다. 불륜 맞습니다. 그런데 그 불륜을 사랑으로 포장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착각을 한 것이지요. 의견 고맙습니다.
좋은 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수필방에 볕이 드는 느낌입니다.
사랑과 불륜의 경계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경계선이 참 애매하긴 합니다만 객관적인 면에서는 불륜이 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이나 판단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엄격한 잣대를 대기는 어렵습니디.
손수건 님 감사합니다.
비내리는 날에 영화가 펼쳐졌는데 바로 비오는 날에 글이 써졌네요.
비내리던 날 로버트는 기다렸지만 그순간 프란체스카는 돌아섰는데요 로맨스영화는 아슬아슬한경계선에 놓일때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거같습니다.다른 예술장르도 마찬가지고요.
예술은 다의적인 해석의 여지를 둬야 깊이가 있는거라 합니다.그런측면에서 원작이나 영화는 수작임에 틀림없지요.화엄님의 글도 다의적인 해석의 길을 열어놨다가 글쓴이의 생각을 살짝 피력했군요.
물론 프란체스카가 로버트를 따라갈순 없지요.다만 순간적으로 갈등하는 것뿐이지요.그러나 영화는 갈등의 순간까지만 보여줄뿐 그 이상은 언급하지않는데요 그 이상은 관객들이 생각해보라는 거지요.그건 영화의 의도도 화암님의 의도도 마찬가지일테고요.
그런데 사랑과 불륜을 이야기할때 각각의 개념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요.
사랑이란게 마주보고 다정하게 대화를 하는것까지냐,
손잡는것까지냐,
포옹하는 것까지냐,
키스하는것까지냐,
아니면 섹스하는 것까지냐,
그런 물음이 있을수 있고요
불륜이란것도 다른 이성과 그런것까지냐 하는 물음이 있을수 있어요.
물론 배우자의 입장에서야 그런것 모두 허용될수없다고 하겠지만
요즘엔 배우자가 있다 하더라도 이성친구를 두고 지내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걸 불륜이라 말하긴 지나치다는 생각입니다.
그렇더라도 위험성은 늘 존재하지요.
차 한잔이 두잔이 되고 석잔이 되고, 그러다가 살을 비벼대는 지경까지 가는경우도 있겠지요.
그런땐 결혼식때 서약한 내용을 떠올리며 자기억제를 하는 책임감과 신뢰를 생각해야겠지요.
그런데 왜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할까요?
그건 인간의 욕구 욕망이 무한대이기 때문일겁니다.
그래서 인륜이나 도덕이나 책임이나 신뢰를 들어 자기제어를 해보는거겠지요.
영화에선 프란체스카가 로버트를 따라나서기 전에 이미 이성간의 교감이 있었지요. 그걸 불륜이라 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입니다.물론 그 남편이 목격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겠지요.저라면 잘 견뎠다고 위로해주고 싶지요.
영화는 관객에게 과제를 안겨주었지만 결론은 명백합니다.
만약에 여주인공이 남편을 버리고 새 남자를 따라 나섰다면 예술이 아니라 막장 에로물 취급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감독은 다의적 해석에 선을 그은 것이라고 봅니다. 어쨌든 잘 만든 영화였습니다. 감독과 주연을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이라는 거물급 배우가 손발을 맞추었기에 더 돋보였나 봅니다.
사전에서는 불륜의 정의를 "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남 " 이라고 했으니 그렇게 보면 불륜이 틀림 없지만
어찌 보면 불륜의 사랑을 더 아름답고 진실하게 포장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착각을 일으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광수 교수는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고 말했지만요, 그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사랑에 관한한 선배님은 진보적 시각이신 것 같습니다 ㅎㅎ. 오랜만에 사랑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른 영화 한편이 떠오릅니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엄청 좋아한다는
잘생긴 알랭 드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
친구를 죽이고 그의 재산과 여자를 빼앗은 주인공이 너무
잘생긴 나머지 좁혀오는 수사망에 제발 걸려들지 않았으면 바랬다는..ㅎ
저도 그 영화 보았습니다만 그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들이 공범이었을 겁니다.
알랭 드롱의 범죄가 제발 드러나지 않기를 바랬으니까요 ㅎㅎ.
그래서 잘 생기고 볼 일인 것 같습니다. 하테스 님 감사합니다.
오래전에 감명 깊게 보았던 영화를 다시 한번 기억해내며,
본문과 또 댓글을 읽으며 안타까운 사랑의 인연을 다시 한번 새겨보았습니다.
수필방에 처음 오는데 제 정보를 열어놓지 않아 잠시 소개 드리면,
저는 50년생 여자이고 독일에 거주 하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외국에거주하는사람들에게 다음이 문을 열어놓지 않아
형님의 이름을 사용했기에 정보 자체가 잘못된정보여서 닫아놓았어요.
얼마전부터 제 이름으로도 가능해졌는데
그동안 제가 모아놓은 블로그의 정보가 너무 많아 이걸 다 옮기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독일에 사시는 회원님이시군요. 회원정보를 보니 성별과 연령을 공개하지 않으셨더군요.
공개하시는 것이 타 회원님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왕 수필방에 오신김에 블로그에 있는 보물을 공개하시면서 그곳의 생활이나
풍물을 소기해 주시면 타 회원님들이 좋아하실 겁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워터루 브리지를 배경으로 한 로버트 테일러,비비안 리의 애수처럼 메디슨 카운티도
다리를 매체로 한 ? 로맨스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영화중의 하나 이지요.
불륜이라도 헤어짐이 있기에 막장이 아닌 아름다운 로맨스로 각인되는 것 같습니다.ㅎ
남녀가 만날때는 사랑이지만 자식을 키우고 살아감은
사랑을 넘어선, 책임과 의무를 나누며, 같은 길을 걸어가는 숭고한 부부애?
박완서 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서로- 짐승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무언가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세요.
" 애수 "라는 흑백영화를 저는 50년 전에 동대문극장에서 보았습니다.
멋쟁이 미남 배우 로버트 테일러의 트렌치코트가 선풍을 일으켰던 영화였지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윤리적 가치를 존중하는 분위기 때문에 불륜을 합리화 하는 영화는
만들기 어렵습니다. 사랑을 하더라도 마지막에는 헤어지는 것으로 처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관례라고 할 수 있지요. 저도 사랑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고 박완서 작가의 그 어록은 저도 본 것 같습니다. 남편을 보내고도 끊을 수 없는 식욕을
짐승같다고 표현한 에세이가 있엇지요. 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한스 님 감사합니다.
대부분 책을 보고 영화를 보면
책에서 느끼던 상상력이 사라지고 시시해지는데
이 영화만은 책보다 더 멋지다 생각했어요
그건 배우들이 내면묘사를 잘해서...
그렇습니다. 소설의 방대한 내용을 영화로 담아내는 건 무리이기 때문에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면 대개는 실망을 하지요. 생략된 부분이 많으니까요. 그러나 그 뱐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잘 보셨습니다.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아름답다....고 생각하였습니다.
ㅎㅎ당연히 불륜도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영상의 마술이거나 착시현상일 겁니다. ㅎㅎ. 닥터 지바고를 보면 분명히 불륜인 데도
참 아름답게 보이지요. 유부남이라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영화를 감상하거든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도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참 기가 막힐 일일 겁니다 ㅎㅎ. 각자의 판단에 맡겨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