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스퍼스.
샌안토니오 구단에 있는 당신들이 이 편지를 눈으로 읽을 가능성이 일말의 여지도 없는 것을 알기에, 영어가 아닌 한글로 씁니다.
솔직히 영어로 쓸 수가 없구요.
원래 이 편지는 정규 시즌이 끝날 무렵에 작성하여 올리기로 마음 먹고 있었으나 ... 당신들이 알고나 있는지도 확신 못할 한국이란 이름의 우리나라에서 아주 가슴 아픈 정도를 벗어나 화까지 나는 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미루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자, 가슴 깊은 곳에서 고마움을 표합니다.
지금 시점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란 팀이 우승을 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설령 시간을 돌려 4 월말이었더라도 나는 당신들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NBA를 좋아하고 샌안토니오 스퍼스란 팀을 좋아한 이후로 4 월 무렵의 봄은 항상 설레였기 때문이죠.
연애에 별 관심 없는 솔로 종자가 4 월에 설레이는 변태가 된 이유는 당신들이 항상 봄 농구를 열어줬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뭔가 기대를 뽀송뽀송하게 품게 만드는 분위기로요. 심지어 2011 년의 4 월도 그랬다우.
이번 시즌을 한해 말하자면 이렇게 전반기와 후반기가 다를 수가 없더군요.
그리고 인지부조화인지 강팀자판기란 불명예에 가려서 그렇지 요 몇년간 최고의 득점 마진이라는 최강 팀의 모습을 가졌더라구요.
그리고 원정 성적은 프랜차이즈 기록은 뭔지 모르지만 2000 년 이후 최고인 30-11 (.732) 였더라구요. (그래서 파이널 동안 홈에서는 한 번 진 팀이 마이애미에서 두 번 다 이겼던거군요!)
전반기엔 진짜 풀 스쿼드 한 번 보는 것이 소원이었고, 우승 후보 급 팀만 만나면 완전 딴 팀인 양 어버버하던 기억이 어제와 같았는데 말이에요.
후반기에는 귀요미 레너드가 가까운 장래 6 월 자신의 위상을 알리는 전조를 울렸더랬죠.
틈틈히 생기는 부상들로 인해 나머지 선수들에 과부하가 걸리는 듯한 느낌도 나고 해서 안타까웠는데 알고보니 요즘들어 제일 잘하는 팀이었더란 말입니다.
그렇지만 또 플레이오프는 다른 세상이라 생각하여 기대 반 걱정 반이었지만 오히려 외부의 사람들이 스퍼스가 지구 최고의 팀이라 하더라구요. 그리고 마지막에 살아 남은 팀이 됐구요.
시즌 시작 전에 난 스퍼스가 이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미안해요. 내가 좀 이래요.
그런데 우리 젊은 친구들이 생각 이상의 선수가 돼 버린 거에요. 그런 김에 선수 한 명씩에게 한 마디 해 볼게요.
티미, 나와는 대략 7 개월 차이나는 사이로 우리나라에선 같은 해 태어나면 동갑이라고 해.
그런데 난 네가 동갑이 아닌 뭔가 우러러봐야 할 사람으로 보여.
한국 연예계에 김종국이라고 우리 동갑이 한 명 있는데 어느 티비 프로에 능력자라고 완전 실세야. 예능에서야 저런 친구도 허리를 맡는 실세지, 프로 농구에선 노땅 취급 안 당하면 다행인 나이잖아.
물론 너에겐 쉬운 매치업일 수 있겠지만 5 차전 2 쿼터에서 하슬렘 상대로 연속 득점 올릴 땐 정말 감동이었어. 그리고 컨파의 연장전에서 이바카 상대로도 아이솔로 연거푸 득점 올릴 때도 대감동이었지.
정말 넌 위대한 친구이자 형같은 친구야.
마누, 작년에 뭔가 쌓였던 응어리를 이번에 다 풀어서 정말 기뻐.
물론 내심으론 난 네가 파이널 MVP를 받았으면 했지만 그러기엔 더 튀는 녀석이 있어서 힘들더라.
그래도 적어도 넌 히어로야. 그 2 쿼터 덩크는 이 시리즈의 아이콘들 중 하나였고 그 장면에 소리 안 지른 스퍼스 팬은 없었을 것 같아.
토니, 이제 너의 앳되기만 했던 얼굴에 슬슬 아저씨가 보이려 해서 참 뭔가 그렇다.
사람들은 카와이에게 소리 없는 암살자라 그러는데 정말 이번 시리즈 사일런트 킬러는 너였어.
그만큼 에이스로서 튀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마지막 경기의 앞선 세 쿼터의 부진을 빼면 넌 정말 내실이 있었어.
삼십줄은 넘겼지만 경기 막판에 티미에 안기는 너의 모습은 형이 보기에 정말 이쁘더라.
보리스, 넌 정말 별종이야. 박스 스코어 스탯은 정말 미지근한데, 플러스/마이너스는 역대급의 선수지.
그러긴 힘들었겠지만 만약 네가 파이널 엠브이피였더라면, 가장 스탯이 초라한 파엠이었을 거야.
그래도 넌 정말 가장 소중한 선수였어.
누군가 농구 분석으로 논문을 쓰고자 한다면 너는 정말 좋은 주제가 될 것 같아.
맷, 위에 보리스와 마찬가지로 너도 재미있는 연구 대상이야.
물론 우리 팬들은 이번 시즌에 팝 영감님이 너를 많이 안 써서 좋아했지만, 넌 잘 받아들여줘서 고마워.
그리고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쪽으로 튄 것도 없지만 나쁜 쪽으로도 튀지 않아서 정말 좋았어.
너의 수비 재능이 정말 너무너무 아쉬울 따름이다. 네가 정말 좋은 직장 동료라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거든.
티아고, 시즌 들어올 무렵부터 난 널 믿었었고 그 믿었던 정도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고마워.
두 해 전인가 너에 대해 내가 적을 때 수비에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했었는데 내가 정말 바보였나봐.
너의 기럭지와 너의 팔팔한 다리를 못 본 내가 밉다 미워. 이제 서부의 꺽다리 빅맨들은 너에게 적합한 매치업 상대가 됐어.
그리고 너와 보리스가 보여준 패스 플레이는 이제 스퍼스의 아이콘이 된 것 같아.
마르코, 요 녀석 ~ ... 고생했어.
플레이오프에선 롤 플레이어들이 지워져 나가는 것이 관례라지만 난 네가 그 대상이 될 줄은 몰랐거든.
그래도 너 하나에서 끝난 것이 어쩌면 다행인 것 같기도 해.
손 기술은 정말 천재인데 볼 핸들링은 안 되니 이게 참 크다, 그치.
그래도 막판에 손맛 좀 봐서 좋았을 거야.
제프, 흐흐흐 응원하느라 수고했어.
네가 나와야 하는 막장극까지 안 간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성격 하나는 가장 활달하고 터프한 것 같은데, 너의 손이, 손이, 손이 참 아쉽다.
애런, 깜짝 활약 멋졌어.
거의 늘상 봐오던 우리도 놀랄 지경이었는데 듣보 상태였던 블레이져스의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은 어땠겠니.
사실 NBA 경력은 적어도 성장은 끝날 무렵인 나이라서 기대를 접었는데, 네 발이 의외로 빠르더라구.
다음에도 로스터에 네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대를 완전 접었던 내가 미안하다아!
오스틴, 솔직히 너에겐 할 말이 많이 없다. 정장빨 좋았다는 것 정도.
근데 내 짐작이건대, 아마도 연습 경기 듀랜트 역할을 네가 했을 것 같아.
그랬다면 정말 잘 해 준거야.
대니, 네가 성공하길 바라는 팬들이 정말 많다는 것 아니?
물론 네가 지금 거액을 버는 NBA 스타이지만 널 보면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로망이 담겨 있어.
지난 번 선수들 육성 보여주는 시간 너 정말 멋지더라.
그리고 일정치 못한 플레잉 타임에 상관 없이 활약하는 네 모습이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야.
패티, 네가 리그에서 가장 빨빨 움직인 선수였다지? (7.9 Km/h)
한편 너의 그 파닥파닥 수비가 상대방 입장에서 얼마나 짜증나는 행위인지 5 차전을 보면서 새삼 실감했어.
그리고 너 스탯상으로 정말 재미있는 애더라. 2011-12 시즌 PER 21.60 그리고 이번 시즌 PER 18.80
PER을 까고자 마음 먹은 사람들에겐 네가 정말 좋은 증거 1호가 될 것 같아.
월드컵 때 또 보자구~
그리고 토니한테 한턱 거하게 쏘라고 해. 넌 그럴 자격이 있어.
코리, 계속 뒤쳐져 가는 너의 서열에 마음이 조급해졌을 듯 했는데 그래도 볼 때마다 방긋 웃는 네 모습이 좋다.
OKC 시리즈에서 비록 가비지 타임이었지만 너의 그 덩크는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이콘스러운 덩크였어.
너의 그 덩크는 '이바카가 뭔데?'라고 외쳤던 거지.
아직 22 세의 나이인 너에겐 아직 시간이 있으니 한 번 더 주욱 기다려 보는 시간을 가져 보련다.
카와이, 그래 22 세의 나이는 저런 말을 들을 만한 나이지. 그런데 넌 매직 존슨과 팀 던컨이라는 NBA의 아이콘들과 이름을 같이 했어.
너의 평소 모습을 보면 여기에 큰 부담을 갖진 않겠지만 앞으로 잘 해 주길 바랄 뿐이다.
넌 이제 기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아이야. 잘 이겨줘.
네가 틈틈이 흘려 놨던 스킬 스카우팅 단서들을 모아서 주욱 나열하면 넌 대단한 선수가 될 잠재력이 있을 듯 하단 말이지.
너에게 이제 필요한 것은 나설 줄 아는 모습이야. 그렇다고 넌 나댈 아이는 결코 아닐 것 같거든.
하여튼 네가 이 팀에 들어온 사실이 정말 고맙다.
이상 선수들에게 할 말이 끝났어요. 한 친구가 빠지긴 했는데 (D 제임스) 미안하게도 정말 할 말이 없군요.
오랜 시간 동안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이제 저물 일 밖에 없다고 말하던 시간을, 심지어 팬들마저도 항상 이번이 마지막이야라고 말하던 시간을 버티며 젊은 팀이 되려 노력한 당신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 당신들의 선전을 기원하며 갔던 설악산(SAS) 등산을 스마트폰 메모리 한 구석에 방치된 기억으로 만들지 않아줘서 고마워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정말 SAS 생각하고 간 것이었구요. 파이널 직전에 마음을 비우기 위해 갔는데 기대만 더 부풀리고 오고 말았네요.
결국 그 기대 채워줘서 고맙습니다!
5 를 만들기 위해 손가락을 저렇게 만들 때 쪽팔림이 몰려 오는 듯 했지만 (모르는 분에게 촬영 부탁), 선글래스의 힘이란 후훗.
첫댓글 오 우승기원등반!!! 대단하십니다 내년에 저도!!
가실 일이 있다면 시간과 기상 체크는 잘 하시길 바랍니다. 저 사진의 안개가 원래 저기가 안개가 잘 끼는 곳이기도 하지만 비오는 날이었어요. 버스 도착 때 비가 내려 마음이 철렁했지만 다행히 등산 시작 후에 그쳐들어 다행이었습니다. ㅎㅎ
가슴 절절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좋아하는 nba스타들과 같이 늙어가니... 뭔가 느낌이 쌔... 하던데 duncan&kidd님도 저와 비슷한 감정이 아니셨나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렇군요...
P.S.-데이가 듀란트 대용이었다면 데미언 제임스는 르브론 대용이었겠죠... 신체사이즈도 같고 운동눙력도 빵빵하니...
아 그렇겠군요. ㅎㅎ 이렇게 연습 시뮬레이션 때 대역들이 의외의 인물이 좀 있더라구요.
글 잘 읽었습니다^^ 진심이 느껴지는 편지네요ㅎ
네 다른 건 몰라도 진심은 담았습니다. ^_^
맷보너는 좀 민망하겠네요;;ㅎㅎㅎ
같은 팀 동료끼리 민망할 것이 있겠나요. 우리야 구박하지 자기네들 끼리는 정말 좋을 겁니다. ㅎㅎ
요즘 5를 만들려면 고승덕처럼 하셔야죠...ㅋㅋㅋ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그런 걸 하긴 제가 깡이 부족합니다. -.-
근데 샌안토니오는 다음시즌에도 멤버 변동 있나요??
밀스와 디아우가 FA 신분이 돼서 여기가 변수가 될 듯 합니다.
정말 감동적인 편지네요^^ 글이란 어휘와 문장의 화력함의 구사가 아닌 진심이 담길때 읽는 이를 감동시킬수 있단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편지입니다.한때 블로그까지 꼬박꼬박 찾아뵙던 던컨&키드님의 열혈팬이었는데 잠시 알럽을 떠니계시다 다시 돌아와 주시고 항상 좋은 글들을 포스팅 해주셔서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입니다. 앞으로는 절대 떠나지 마시고 항상 스퍼스포럼과 알럽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
제가 뭐라구요. ㅎㅎ 저도 여기에서 많은 분들과 좋은 시간 계속 함께 하길 바랄 뿐입니다.
고맙습니다. 스퍼스~22222
Duncan&Kidd홧팅님의 진심이 팍팍 느껴지네요.^^
그동안 TP9님이 포스팅하셨던 글들에서도 진심이 잔뜩 배어 흘러나왔었습니다. ^^
마치 연애편지를 보는것처럼 진심이 느껴지네요 ㅎㅎ 하아...그깟 공농이가 뭐라고 사람을 이렇게 감성적으로 만드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축구엔 별 관심 없어서 월드컵에 시큰둥하기까지 한 저인데, 여기엔 정말 왜 이리 오글거릴 정도로 감성적이 되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명문이네요 ㄷㄷ
뭐 솔직히 스스로도 오글거리는데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모든 팬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신거 처럼 진심과 격려가 느껴지네요 ^^ 설악산의 정기가 저먼 땅의 선수들에게 확실히 전해 진듯하네요 ~^^
당일에 안개 잔뜩이라 정기가 흘러 갔을지는 모르겠군요. ㅎㅎ
스포츠를 좋아하고 응원하기 시작한 이후, 슬프거나 안좋은 감정을 느낄때마다 "이건 그냥 즐거움이 목적인 공놀이다, 너무 감정이입하지말자" 고 다짐했지만 작년과 올해 파이널은 정말 감상적으로 대할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승직후 "고맙다, 스퍼스" 라는 말을 속으로 계속 했는데, 아마 10년넘게 이팀을 응원해오신 분들이라면 다들 비슷한 감정을 느끼실거같아요.^_^
그동안 제가 뜸했던 것도 있고 해서 오랜만이지만 이래 또 기쁜 일을 계기로 다시 피드백을 드리게 되어 좋군요. 오랜 팬으로서 기억되는 분들 중 한 분으로 우승 당시에도 생각났구요. ㅎㅎ 우리가 정말 좋은 팀을 고른 것 같아요.
저도 던컨이랑 동갑인데 ㅎㅎㅎ 살짝이 친구 추가 해도 되나요 ?? ㅎㅎ
ㅎㅎ 그럼요. 여기에도 몇분 꽤 되시는 걸로 알아요.
뭔가 지금까지쓰셨던 대단하고 고마웠던 정성스런 글로만 봐선 날카롭고 예리한 어딘가 외로워보이는 차도남을 예상했었습니다. 만 사진을보니 너무친근해서 어제도보고 오늘도봤던 옆자리 동료같고 막 그래서 신비감이 싹 사라지네요 ㅎ 그리고 칼럼번역이 아니라 직접쓰신 이 글은 어느 농구잡지 한코너에 기고해도될만큼 신선하고 재밌네요 올한해동안 양질의글 감사하고고 제 일생의 페이보릿팀을 던키님과같은분과 함께응원한다니 참좋네요
컬럼 옮길 때는 글쓴 사람의 어조를 이어가려니 어쩔 수 없이 딱딱할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통계 관련 글들이 대다수라서 건조하기 이를 데 없겠죠. ㅎㅎ 그래도 혼자 쓰는 글들은 따뜻한 문체를 좋아한답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