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7월10일(토)
작은자형께서 올해 누님 칠순기념으로 뉴질랜드 남섬
부부 해외여행을 갈 것이라고 이야기 하며
우리 부부도 같이 가자고 하여... 갈수만 있다면
형제들과 같이 갔으면 더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카페에 올린 가족 해외여행의 배경과 제안에 대하여
모두가 좋아하여 가족 단체여행(안)을 만들어 의견을
교환한 후 가족의 건강과 일상을 감안하여 여행상품을
선택하고 전 가족이 처음으로 해외 여행을 갔다 왔습니다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가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만
그간 서로의 시간과 현실 문제로 미루어 왔던 가족여행이라
빨리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아
장마기간이라 어려움이 있어도 진행하였습니다
여행 갈 때 쯤이면 집사람도 걸을 수 있을 것 같이 보였고
작은 자형도 당일 여행도 갈 정도로 건강이 좋아지고 있어
일상의 일들과 건강 문제을 고려하여 여름 휴가전이
좋을 것 같아 여행 일자를 결정하고 여행사와 계약을 하였으나
작은자형 건강이 다시 악화되고 집사람도 생각대로
호전이 안되어 운동화를 신을 수 없어 걱정을 많이 하였으며
여행사에서도 처음에는 신청자기 많다고 두고 봅시다
(선편이 미확정)하여 사정하여 신청 하였는데
일기예보가 나오고 부터는 구두 예약한 사람들이 일정을 연기
하여 당일 두 배 운항 계획이 갑자기 한배로 줄여져
코스와 시간이 변경되어 서울 동생들 예약한 기차표 변경등
가는 날까지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리고 일기가 고르지 못한 장마기간이라 우산과 양산을
그리고 기온차에 대하여 별도로 긴옷을 준비하였고
무엇보다 돌아 올 때 변덕스런 일기로 대마도에서 출항이
안될까 걱정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행 당일에는 비가 개이고 날이 맑아 기분이 좋았으며
작은 누님은 아침 일어나 창문을 내다보고
날씨기 맑아 하느님이 도와 주셨다고 감사합니다 하며
인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모두가 여행의 설레임으로 잠을 설치고 여객 터미날에 먼저 온
부산가족들과 조금 늦게 서울에서 첫 기차로 온 동생부부 모두가
부산국제 여객 터미날에서 오래간 만에 만나니 말할수 없이
반가웠고 피로한 모습에 건강과 안부를 먼저 물으며...
아침식사를 못하여 김밥으로 터미날에서 해결하는 동안
여권을 받아 가이드에게 확인시키고 배표를 받아
부부별 출국수속을 마치고 09시 30분 대마도 이즈하라행
쌍동고속선에 승선했습니다
지정 좌석대로 앉고 보니 우리가족이 떨어져 앉게 되어 큰 누님은
가이드에게 올 때는 같이 앉을 수 있게 해달라고 특별히 부탁을 하고
미리 준비한 쌀 과자 간식을 나누어 주었고 여동생이 준비한 주먹밥
그리고 매점에서 산 초코 비스켇을 나누어 먹으면서 잠도 자고
가족간 정담을 나누다 배에서 나누어 주는 도시락을 먹고 나니
어느세 이즈하라항이 가까워 졌는지 하선 순서를 정하는 여행팀 별
제비 뽑기를 하여서 우리팀이 제일 마지막 순서를 뽑아
입국수속을 기다리는 동안 가이드의 관광 안내를 받았습니다
간혹 탱크처럼 밀어 부치는 승기동생은
개별로 맨 먼저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와 이즈하라항의 전경을
사진에 담고 여유를 가지고 휴식을 취하다
우리와 만나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여행가방은 호텔로 미리 보네고
이즈하라 시내 도보 관광을 하였습니다 배가 정박한 항구는 정적으로
보였고 바다와 접한 하천에는 가오리가 보이고 숭어등 물고기가 때를 지어
헤엄치고 있었으며 물이 너무나 맑아 바닥까지 보여 깨끗하고
조용한 도시의 첫 인상을 받았습니다
선두에 선 윤가이드를 따라가면서 제일먼저 우리나라 표류한 선박을
억류했다는 다리 건너 웅벽 같은 곳을 가르쳐주었고
좁은 도로를 따라가는 길에는 사람이 안보였으며 작은집들 창가에 핀
꽃들이 슬로우씨티 처럼 옛날 그대로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스넥이란 간판을 단 일본 술집거리를 지나 한국의 춘향전을 번역하여
일본에 전하였다는 나카라이토슈 문학관을 둘러보고
작은자형과 집사람은 걷기가 힘이 들어 골목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애국지사 최익현 순국비가 있는 수선사로 갔습니다
백제의 비구니인 법묘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수선사에는 이조말 대유학자이며 항일운동가인 최익현선생이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순창에서 의병을 일으켜 대항하다가 1906년
체포되어 징역형을 받고 대마도로 끌려와
고령에도 적이 주는 음식을 거절하며 단식하다가 이즈하라에서
순국하여 수선사에서 안치하였다가 부산으로 이송되었다고 합니다
1986년 한일 양국의 유지들이 힘을 모아 "大韓人崔益鉉先生殉國之碑
라고 순국비를 한국의 혼이 있는 이곳애 세웠다고 합니다 .
수선사 계단을 올라가니 먼저온 관광객이
최익현 애국지사 순국비 앞에 술잔을 올리고 있었으며
역사를 간직한 수선사 경내에는 유산한
애기들의 넋을 기리는 턱받이 한 불상도 있었습니다
다음 코스를 가기위하여 골목길에서 기다리는 작은자형과 집사람을
마리아 신사 가는 길을 가르쳐 주고 일행과 같이
마리아 신사로 갔다가 다시 골목길로 가서 앉아있는 자형과
집사람을 안내하여 같이 마리아 신사앞으로 왔습니다
신사 입구에 세워진 도리이가 신사의 크기를
말해 주듯 대마도에서 대표적인 신사라 하였으며
년말에는 이즈하라 시민들이 이곳에 모여 송년행사를 하며
새해의 소원을 빈다고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1590년(대정18년) 크리스찬인 고니유키나가의 딸로
정략적으로 대마도 19대 지방영주와 결혼하였으나
일본 내전으로 부친이 살해당하자 대마도의 안녕을 위하여
마리아는 이혼을 당하고 나가사끼로 돌아 갔으나
훗날 마리아의 영혼이 두려워
대마도 주민들이 마리아의 아이와 함께
이마미야 와카미야 신사(마리아신사)에 합사하여
제를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다음 코스로 가는길에 있는 쇼핑센타에서 작은 자형과
집사람을 쉬게 하고 근처의 고려문과 조선통신사비가 있는
대마도 역사민속자료관과 덕해옹주비를 둘러보고 쇼핑센타로 돌아와
간단한 쇼핑을 한 후 다같이 온천에 갔습니다
전날 잠도 설치고 도보관광으로 모두가 피로 할때 온천은
새로운 활력을 주었으나 작은자형께서는 다리 상처로 온천을
할수 없다하여 안타까웠으며 그래도 휴식 할 수 있는 시설이
잘되어 있어서 조금이나마 피로를 풀수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온천을 하고 산뜻한 기분으로 호텔로 가는 도중 가이드는 저녘
식사를 안내하면서 부족한 것이 있으면 자기 자리에서 빈그릇을
들고 스미마생(미안합니다)하면 종업원이 와서 보충 해
준다고 하며 저녘 메뉴는 대마도식 BBQ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종업원을 부를때 우리와 다른 스미마생(미안합니다)은 화(和)를
중시하는 일본사람들의 삶의 지혜에서 나온 용어 같습니다
일본의 사회정서에는 1.오모이 야리(남의입장에 서보기) 2.키쿠바리
(배려하기)3.메이와쿠오가게루나(폐를 끼치지 말라)가 있습니다
일본의 주부는 어릴때 자식들이 몸에 베이도록 이것을 꼭 가르쳐
정직하고 신용을 중시하는 사회에 잘 적응 할수 있도록 한답니다
우리사회의 갈등비용이 많은 이유도 자기중심적이 생활 습관과
남을 배려하는 힘이 약한 것에 있는 것 같습니다
호텔에 도착하니 바로 식사 준비가 된 식당으로 안내 해 주었습니다
4인씩 앉아 얇게 쓰린 돼지고기와 해물 야체를 즉석에서 구워서
소스에 찍어 먹는 음식으로 모두가 맛있어 하였으며 스미마생을
여러번 하여 밥과 국을 더 먹었습니다
식사후 호텔 1층에 부부별로 방을 배정받아 옷을 갈아입고 초장과 술을
가져온 여동생 방으로 모였습니다 옆방 상을 가져와 상 2개를 펴고
여행사에서 특별히 준비한 생선회 2접시를 올려 놓고 모두가 둘러앉아
가족의 건강과 작은누님 칠순을 위한 건배를 하였습니다
우선 큰자형과 큰누님이 중앙자리에 앉아 이번 여행을 축하하는
말씀이 있은 후 차례대로 각자 1분 스핏치가 있었습니다
큰자형께서는 평소에도 가족의 화목에 대하여 자주 모였지만 오늘은
서울 가족들과 해외에서 만나게 되어 그의미가 크며
이런 기회가 자주 있기를 바란다 하였으며 큰 누님은 부모님의 바램은
형제간의 우애에 있는데 그래도 우리는 기금을 미리 준비하고
모두가 힘을 합하여 오늘 우리가 함께 할수 있으니 감사하고
기쁜일이라 강조한 후 정성들여 만든 손부채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다음은 작은자형과 누님이 중앙에 앉아 칠순 축하 자리를 가졌습니다
먼저 작은 자형께서는 지난날 집사람한테 어려운 일을 시켰다고 소회하며
건강하게 장수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앞으로 더 부드럽게 서로 위하는
삶을 살아 갈것이라 말 하였으며
작은누님은 지난날의 감성에 젖은 음성으로 젊은날 앞이 깜깜 할 때가
있었으나 엄마의 강인성을 생각하면서 힘을 얻어
자기는 없다고 생각하고 오로지 자식들을 위하여 살아오면서 언젠가는
자기를 알아 줄 날이 있을것이라 믿었다고 지난날을 회상하며
요사이 자식들이 부모를 걱정 해 주는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작은누님한테 오래오래 건강하십시요 하며 가족 모두
돌아가면서 칠순을 축하하는 메세지를 전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부부간 지난 삶에 감사와 앞날을 위한 덕담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으나 주제의 설명 부족과 범위가 넓어 토론 형식이 되어
부부간 소통하기로 하고 여행 첫날 행사를 전부 마치고 자기방으로
돌아가 비소리를 들으며 구혼여행 첫날밤을 맞이하였습니다
ㅇ.7월11일(일)
바닷가 언덕에 있는 View호텔은 한국에서 자재를 가지고 와서
특별히 만든 온돌방으로 되어 있어 간밤에 세찬 비바람 소리를
들어도 잠은 잘 잔것 같으며 작은자형도 온돌방이 따뜻하여 피로가
확 풀렸다고 하였습니다
아침식사 후 우리버스를 환송 해 주는 호텔 직원의 인사를 받으며
이즈하라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관광을 하였습니다
대마도 최초 운하인 대선월과 소선월을 차장으로 보고 러일전쟁
으로 유명한 만관교 주차장에서 내려 이시야네를 보았습니다
만관교는 210메다 철교로 그아래가 1886년부터 14년간 공사로
1900년에 완공한 인공 운하입니다 이운하의 개통으로 대마도는
상대마 하대마로 나뉘게 되고 일본 본토에서 대륙을 침략하기 위한
직항로가 되었으며 발틱 함대를 침몰시킨 전략적 운하의 다리입니다
러일전쟁에서 패배로 러시아는 왕조의 몰락과 볼세비키 혁명의 계기가
되었으며 동아시아에 있어서 열강들의 힘의 균횡이 무너지게 되어
일본은 이듬해(1905년)미국으로 부터 조선의 지배 승인을 받아내고
1906년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게 되는 우리에게는 통한의 다리인 셈입니다
만관교 입구에는 대마도 전통 곡식창고 형태인 돌지붕 건물(이시야네)
이 만들어 져 있었으며 관광객들이 휴식을 취할수 있게 하였습니다
부슬 부슬 비가 내리는 가운데 통한의 다리 만관교를 둘러보고
다음 코스인 에보시타게 전망대로 갔습니다
좁은 산길 도로를 올라 전망대 아래 주차장에서 내려 소로와 계단을
걸어서 전망대에 올라가니 비바람에 우산이 날릴 정도 였습니다
360도 시야에 겹겹이 이어지는 크고 작은 섬들이 해무에 흐러진 아소만을
수놓고 있었으며 날씨가 좋으면 거제도가 보인다고 하였습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와타즈미신사에서는 전망대에서와 마찬가지로
작은자형과 집사람은 버스에서 기다리고 모두 가이드를 따라 갔으나
저도 같이 버스에 남아 우리일행이 와타즈미 신사를 돌아보고 바다에
서 있는 도리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것을 보면서 기다렸습니다
용궁의 전설이 서리어 있는 와타즈미 신사에는 신사 정면에 5개
도리이가 있는데 3개는 바다에 있어 조수에 따라 물에 잠긴다고 하며
이 도리이가 북쪽인 가야국을 향하고 있어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과
연관성이 깊다는 이야기를 차간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간 원통사(엔쯔지)는 고려불상(약사여래)과 조선범종이 보관되어
있으며 이예선생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학성 이씨의 이예선생은
울산군수가 납치될때 같이 대마도에 왔는데 그 전력으로 조선 통신사 일행
으로 왕레하였으며 최근에 그 후손들이 절 입구에 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원통사는 이비루와의 싸움에서 이긴 종씨(宗氏)의 1대부터 덕해옹주의
부군이었던 소오다께유끼까지 35대가 이어지는데 그중 10대 소오쿠니가
지금의 이즈하라로 옮기기 전(15세기)까지는 이곳이 대마도 중심지였고
원통사는 종씨의 원찰이라고 합니다 구경을 마치고 다시 북쪽으로 갔습니다
북쪽 항구인 히타카츠항에 가까워 지니 가이드는 버스를 세우고 우리가
타고 갈 고속선사에 서류를 전달한 후 이팝나무 식당으로 안내하였습니다
미리 점심 준비를 해놓은 식당에서 김밥과 유부초밥 우동이 맛있었으며
양이 정해져 있었서 스미마생하고 더 먹을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식사후 인근에 있는 미우다하마 해수욕장에 갔습니다 조그만 해수욕장은
물이 맑고 모래가 보드롭고 빛갈이 좋아 일본의 100대 해수욕장이라고 하며
간혹 서울 사람들이 와서 피서를 즐긴다고 하였습니다 해수욕장 앞 물속에
잠겨있는 바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고 하여 섬이라고 하였습니다
해수욕장 정면을 을 감싸고 있는 반도같은 도노자키로 갔습니다 러일전쟁 시
발틱함대 38척중 35척이 격침되고 3대가 나포되어 물에서 살아 남은 병사들이
이곳으로 기어 올라와 물을 마셨다는 우물의 흔적과 최근 일본과 러시아의
평화 기념벽화가 있는곳으로 러시아 수병들의 한이 묻혀 있는듯 하였습니다
다음으로 간 한국전망대 입구의 기와문은 부산국제여객터미날 정문과
같이 만들었다고 하며 팔각정은 우리나라 팔각정 그대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전망대 뜰 앞에는 조선 역관사들의 위령비가 있었습니다
1703년 음력 2월5일 108명의 역관사들이 대마도 근처에서 해난사고로
전원이 사망하여 훗날 사고의 역사적 배경이 선린 우호를 바탕으로 한
국제교류에 있슴을 기념하여 1991년 3월 한국과 일본의 유지들이
힘을 모아 한국전망대 안에 위령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전망대에서는 밤에 찍은 부산의 야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대마도 북쪽 해안을 따라 백제국 왕인박사비와 임진왜란때 일본 배
600여척이 출항했다는 오오루라 포구와 일본판 나비론 요세(포대)가
있다는 해안을 차장으로 보면서 친절하고 화(和)를 중시하는 일본인의
이중적인 침략 근성을 생각하면서 다시 히타카즈항으로 돌아 왔습니다
히타카츠항에서 출국수속을 마치고 선창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승선하였습니다 오후 3시 45분에 출항하여 5시45분 부산항에 도착하기
까지 도중에 파도가 높아 약간의 배멀미를 하여서 걱정을 하였으나
모두 자기관리를 잘하여 무사히 부산항에 도착 할 수 있었습니다
부산항에서 하선부터 입국수속까지 제일 먼저 나와 터미날에서
기다리는 순환 버스로 중앙동 지하철 역에서 하차하여 남포동역에 있는
롯데백화점 광복동지점 식당가로 갔습니다 의견을 종합하여
전주 비빔밥과 파전으로 저녘을 하면서 여행의 즐거움을 마무리 하며
마지막 스케쥴인 백화점 옥상에 있는 부산항 전망대와 용두산 공원
전망대를 둘러보고 기념사진을 찍고 다같이 백화점 지하층과 연결된
지하철 남포동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 동생들은 부산역에서 먼저
내리고 부산팀은 시청역과 망미역에 내려 무사히 귀가 하였습니다
히타카츠항에서 승선하기 전 형제들 기념사진 (촬영 현배모)
여행의 마지막 스케쥴 롯데호텔 전망대에서
공(空) - 나훈아
살다보면 알게돼 일러주지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다 어리석다는 것을
살다 보면 알게돼 알면 웃음이 나지
우리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지
잠시 왔다 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 갈 세상
백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것처럼
살다 보면 알게돼 버린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부질 없다는 것-을
살다 보면 알게돼 알고 싶지 않아도
너나나나 모두다 미련 하다는 것을
살다보면 알게돼 알면 이미 늦어도
그런 대로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잠시스쳐가는 청춘 훌쩍 가버리는 세월
백년도 힘든것을 천년을 살것 처럼
살다보면 알게돼 비운 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꿈 이였다는 것-을
모두 꿈 이였다는 것-을
첫댓글 여행속에서 느끼는 것은 인생 여정과 같은 것 같습니다 배경음악이 가르쳐 주는것 같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1박2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여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여 기록한 아버지의 노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할아버지 슬하로 모인 저의 윗대 어르신들의 안녕을 확인 할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사진으로 보니 모두 건강해보여 참으로 다행입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모임을 이루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p.s)은진이가 아버지를 여행작가에 비유했다는 말인 빈말이 아닌것 같습니다. 가지 않아도 눈앞에 보는듯한 느낌이 좋았습니다.
아버지의 열정에 감동받았습니다. 그냥 스치고 지나가면 아무런 의미없이 흘러갈 수 있는 일들도 이렇게 글과 사진을 남기니 더욱 기억에 남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