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 가치를 아는 자
마태복음 7:1-6
2023년9월24일 주일낮11시
인도,설교 선형수 목사
주은혜교회 진천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타인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가?" 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7:1에서 예수님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한다.
'비판하다'는 헬라어 '크리노(krino)'이다. 분리하다, 선택하다, 승인하다, 판단하다, 재판하다, 정죄하다 등의
의미이다(Literal Word app. 마 7:1).
예수님은 마태복음 5:20에서 제자들에게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모세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고 성취하려고 왔다"고 말씀하셨다. 서기관들은 구약 성경에 정통한 전문가들이었다.
바리새인들은 모세 율법을 지키는데 극히 세심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독사들의 자식"이라 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외적인 것에 신경을 썼지만, 그들의
마음은 죄로 부패했다.
하나님은 다른 이들이 어떻게 보는가 보다는 그 사람의 내면에 무엇이 있는가를 보신다. 예수님은 산상 수훈에서 그것을
강조하셨다(BibleRef.com app. 마 5:20).
사무엘이 이새 아들들 중에 기름을 부으려 하자 하나님은 인간의 중심을 보심을 강조하셨다.
참된 '의'는 종교적 위선자들이 보이는 썩은 것보다는 더 나은 어떤 것이다(BibleRef.com app. 마 5:20). 진정으로
완전하게 의로운 인간은 없다. 바울은 "모든 자가 죄를 범하여 하나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롬 3:23) 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로마서 3:24
KRV).
야고보서 3:1은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했다.
교회 안에서 선생의 할 일은 계시된 말씀, 즉 66권 신구약 성경을 사람들이 이해하고 따르게 하는 것이다
(BibleRef.com app. 약 3:1).
야고보서 4:11은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고 했다.
야고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과 관계에서, 그리고 서로의 관계에서 겸손하게 행하라고 권면한다. 우리 혹은 우리의 이웃을 재판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다.
(BibleRef.com app. 약 4:11).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7:2 KRV
어떤 사람은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고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행위이다(BibleRef.com app. 마 7:2).
예수님이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셨다(마태복음 26:6-13 KRV).
왜 이 여인은 귀하고 비싼 향유를 주님 머리에 부었을까? 제자들은 왜 그 여인의 행동을 분하게 여겼는가? 예수님의 반응은 무엇이었는가?
그 옥합은 목이 길고 가는 항아리 형태였고 깨뜨려야 내용물, 즉 향유를 부을 수 있었다. 이 여인의 이름은 요한복음 12장에 마리아로
기록되었다.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누이와 자매지간이다. 주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 마리아는 주님의 은혜를 알고 옥합을 깨뜨리고
주님께 부어드렸다.
그러나 일부 제자들은 그 행동을 낭비로 생각하고 분하게 여겼다. 요 12:5에 그 향유 옥합 가격은 삼백 데나리온이다. 노동자 1년
년봉이다. 지금으로 계산하면 최소 이천만원 이상의 가치를 갖는 것이다. 가룟 유다는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데 낭비를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요 12:5).
가난한 자들은 항상 사람들 중에 있지만 주님은 곧 떠나 가심을 암시하셨다. 그 여인이 향유 옥합을 깨뜨리고 주님 몸에 부어드린 것은 주님의
장례를 위한 헌신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6:11~12).
마리아의 행동에 대하여 제자들이 보는 판단과 주님이 내리신 판단은 달랐다. 누군가를 판단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인식의 틀에 갇혀서
잘못 보고 생각하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주님은 형제, 자매 눈 속의 티는 보는데 자기 눈속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것을 지적하셨다(마 7:3~5).
외식하는자 즉 위선자(헬, 히파크리트)는 연극 배우 같이 남에게 보여주기에 능한 자이다. 드라마 혹은 영화 혹은 티비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사생활이나 성품이 이중적이고 추한 자들이 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이중성을 지적하셨다. 또한 그런 이중성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종교 지도자들이 간음하던 여인을 붙들아서 주님께 데려왔다. 주님은 너희 중 죄없는 자가 먼저 그녀에게 돌을 던지라 하셨다(요 8:7). 그
여인이 간음 죄를 범했으나 그 종교 지도자들의 영적 육적 상태는 더욱 심각한 죄악 속에 있음을 주님은 보셨다(Enduring word app.
마 7:3~5).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죄를 비유를 통해 말했다. 어떤 부자가 가난한 이웃의 양을 빼앗아 잡았다는 말을 들은 다윗은 그 부자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반응했다. 그러자 나단이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오"라고 답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간음하고 그 남편을 사지로 몰아서 죽게
했다.
다윗은 다른 이의 잘못에 분노했지만 자신의 더 큰 죄를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이다.
주님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태복음 7:6 KRV) 말씀하셨다.
'거룩한 것'은 헬, 하기오스(hagios)이다. 거룩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영광, 순결, 위엄이 담긴 것이다. 하나님께 구별된 것,
존경심을 우러나게 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섬기도록 구별된 사람이다. 즉 그리스도 혹은 그리스도인들이다.
또한 도덕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순결을 공유하는 것이다.
또한 순결하고 깨끗한 제물과 예물이다(Literal Word app. 마 7:6).
주님은 아름답고 귀한 것을 경멸과 멸시로 받는 자에게 주지 않도록 분별할 것을 말씀하셨다. 가치를 알지 못하고 분노로 반응하는 이들에게
낭비하지 않도록 분별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전하셨다(마 4:17).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님을
이단과 참람죄로 몰아서 죽이고자 했다(막 14:61-65).
그리스도의 말씀은 참된 것이었다. 주님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주님을 통해서만 아버지께 올 수 있음을 말씀하셨다(요 14:6).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받으면 영원히 사는 것이고 아무도 주님 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수 없다(요 10:28). 주님의 말씀은 믿기지
않을만큼 놀랍고 가치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 서기관 등 종교지도자들 반응은 거부와 증오였다.
유대 문화에서 개는 애완동물이 아니었다. 개들은 떼를 지어서 먹이를 찾아 거리를 방황하고 더 약한 짐승을 공격했다. 지금도 그런 경우가
많다. 개들은 부도덕, 야만, 사나움, 무지의 상징이었다.
돼지는 모세 법에 불결한 짐승이었다(레 11:7).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레위기 11:7-8 KRV). 식용으로 금지되었다. 돼지는 게걸스런
폭식자요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돼지는 배가 고프면 공격적으로 변한다.
유대 문화에서 개와 돼지로 불리는 것은 큰 모욕이었다. 예수님은 주님을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그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개와 돼지로 비유하셨다. 주님의 목적은 누군가를 비하시키는 데 있지 않았다.
이것은 하나님 백성 혹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경고이다. 복음에 적대적인 자들에게 시간을 낭비하거나 조롱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이다(BibleRef app. 마 7:6).
오늘날도 복음에 적대적인 사람들을 분별하고 조심해야 한다. 그들에게 까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이유가 없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3:15-16 KRV
주님은 택한 영혼들에 관심을 두신다. 우리는 택한 영혼이 누군지 분별하는 지혜와 영적 능력을 길러야 한다. 말씀과 기도와 성찬과 세례를
통해 거룩한 성도로 변화되며, 항상 구원과 소망의 말씀을 준비하여 택한 영혼에게 다가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