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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카이나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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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사(세계/한국) 일반역사 유아세례자에 대한 파문은 도나투스파가 아닌 펠라기우스자들에게 한 결정입니다.
25시 추천 0 조회 105 21.10.19 17:47 댓글 4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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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1.10.19 23:42

    첫댓글 카르타고 공의회가 여러번 있었습니다. 몇차 몇년도지요?
    원죄를 부정한 것에 대한 정죄는 펠라기우스가 맞습니다.
    카르타고는 도나티스트들의 아성이었습니다. 감독들도 대부분 도나티스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펠라기우스가 영국 웨일즈에서 튜니지아로 와서 유아침례를 행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 작성자 21.10.20 00:30

    위 내용은 님이 주신 419년 공의회 자료입니다.
    그리고 앞서 있었던 북아프리카 여러 공의회 결과를 정리한 결정판이라고 합니다.

    Councils were nowhere more frequently called in the Primitive Times than in Africa. In the year 418-19, all canons formerly made in sixteen councils held at Carthage, one at Milevis, one at Hippo, that were approved of, were read, and received a new sanction from a great number of bishops, then met in synod at Carthage. This Collection is the Code of the African Church, which was always in greatest repute in all Churches next after the Code of the Universal Church.

  • 작성자 21.10.20 00:38

    브리타니아 출생. 로마로 가서 수도사로서 엄격한 수도 생활에 솔선하면서 신앙생활의 지도와 저술에 종사했다. 410년 알라리크가 로마를 함락하자 아프리카로 건너가 사제가 되려고도 했으나 대부분 팔레스타인 에페소스 등지에서 사제로 지냈다. 고전과 신구약 성서에 대한 교양이 풍부하였고, 친구이며 협력자인 케레스티우스와 함께 이른바 ‘펠라기우스설(說)’을 제창하였다. 이것이 후에 펠라기우스파(派)를 이루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펠라기우스 [Pelagius] (두산백과)

  • 작성자 21.10.20 00:41

    @25시 유아침례를 행했다는 증거는 못보았습니다... 그가 유아세례를 행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그의 주장 자체는 유아세례를 부정하는 원죄가 없다는 주장을 했는데.

  • 21.10.20 03:21

    @25시 브리태니카 자료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Pelagius-Christian-theologian
    펠라기우스가 로마로 간때가 380AD 이고 로마를 비시고트족이 함락하여 초토화시켰을때 펠라기우스와셀레스티우스는 카르타고로 도망쳤습니다. 목적지는 예루살렘이었는데 잠깐 들른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2년이 못되어 412년에 이스라엘로 향했고, 그뒤 418년이후에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416년 밀레비 공의회와 418-9년 카르타고 공의회는 펠라기우스가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동안에 열렸던 것입니다.
    펠라기우스의 다른 자료에 보면, 그가 원죄를 부정했고 자유의지를 강조했지만, 유아세례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그것은 교회로 받아들이는 행사이기 때문에 등을 말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즉 칼빈이나 어거스틴이 주장하는 바에 근거하지 않고 그냥 유아세례를 할수도 있다는 정도였습니다.
    밀레비나 카르타고에 펠라기우스의 교파가 있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님이 부정하는 바, 어거스틴의 책 < 도나티스트에 대항하여> 라는 책에서 유아침례반대자들에게 저주 아나떼마를 말할때, 도나티스트라는 언급이 없다는 이유로 도나티스트가 유아침례를 반대했다는

  • 21.10.20 03:31

    @엘리야후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면 동일한 논증으로, 님이 가져온 글에서도 펠라기우스가 유아침례반대자로 언급되지 않았으므로, 그 공의회 선언은 펠라기우스의 유아침례반대에 대한 선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어거스틴 책의 서문에 있습니다.그 서문에는 도나티스트가 유아침례에 반대하기 때문에 그 책을 쓴다는 말이 들어있는데, 그 서문이 소실되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 카톨릭이든, 칼뱅이든, CCEL 이든 도나티스트가 유아침례에 반대했다는 것을 인정한 글이 나오면 님은 조용하실 것입니다. 필립 쉐프라는 역사학자 자료가 아주 긴데 지금 살피는 중입니다.

    카르타고 공의회를 열때에, 북아프리카의 도나티스트들의 감독들 수효가 400이 넘었다고 하며 그중의 일부만
    공의회에 참석하여 참석자 전원은 217명이었다고 합니다.
    펠라기우스가 카르타고에 체류하는 동안, 주로 저술활동을 했는데 2년 미만의 기간동안에 몇 교회를 개척했을까? 는 의문입니다.펠라기우스 자신이 유아침례에 반대하지 않았는데, 펠라기우스를 향하여 유아침례 반대자에게 저주가 있을지어다, 하고 말하였겠습니까?

  • 21.10.20 03:41

    https://www.gospeltruth.net/Wiggers/wiggerschap4.htm

    어거스틴 등은 유아들이 원죄를 씻기 위해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펠라기우스는 원죄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원죄때문에 유아들이 세례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교회로 영접되기 위해서 받는 것이 좋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펠라기우스가 유아세례 반대 때문에 정죄받았다고 말할 청도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펠라기우스와 어거스틴이 대립한 것은 원죄부정과 예정이냐, 자유의지냐? 등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아세례 반대자들을 향한 저주 아나떼마의 표적이 누구였을까요?

  • 작성자 21.10.20 08:14

    도나투스파가 유아세례를 반대해서 핍박받았다는 주장은 침례교와 그주장을 퍼나르는 사람들이 하고 있습니다.
    (님은 그런 이야기를 직접하지 않았지만, 님의 글에서 그런 뉘앙스가 읽혀지고, 님과 유사한 글들은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억울하게 죽은 침례교의 조상이다 하며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주장의 근거는 주장하는 사람들이 찾아서 증명해야 합니다.
    공의회 내용이 펠라기우스를 향한것도 증명할 수 없지 않는가, 그래서 그당시 도나투스 파의 교세가 크기 때문에 공의회의 아나떼마는 분명히 도나투스파를 향한 것이다 라는 것은 추론에 불과합니다.

    주장하는 사람이 주장의 근거를 찾아 증명해야 하는데,
    님의 주장은 정황 근거이지, 정확한 근거가 없습니다.

  • 작성자 21.10.20 08:39

    위 공의회의 결의문을 보면,

    Synod against the heresy of Pelagius and Celestius(펠라기우스의 추종자)

    펠라기우스의 문제는 도나투스파와 성격이 완전다릅니다.

    도나투스 파는 고대 카톨릭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갈라져 나온 분파로서 세력이 큽니다.
    그들의 주교들도 모두 고대 카톨릭 출신이고, 그들의 신앙과 신학고 같습니다..
    다만 배교자에 의한 세례가 유효하냐는 문제, 곧 배교자에 대한 처리 문제로 교회가 갈라져서 100여년을
    지속한 것으로서, 어거스틴은 그들을 이단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대 카톨릭은 도나투스 이단이 아닌, 도나티스트로 불렀습니다.


    펠라기우스파는 교회 세력 정도는 잘 모르겠지만,
    그의 글을 통해서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고대 카톨릭 내부 사람입니다.
    그의 사상이 이단으로 정죄된 것입니다.
    그 사상중에 유아세례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 사상의 영향을 받는 켈레시티우스는
    유아세례를 부정했다고 합니다.
    펠라기우스가 유아세례를 부정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 죄사함의 의미를 부정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 작성자 21.10.20 08:49

    그리고 위 공의회 결의문에 의하면.

    Synod against the heresy of Pelagius and Celestius
    synod of the Church of Carthage to define -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Canon 109. (Greek cxij. continued.)

    That Adam was not created by God subject to death - 109번 결의, 아담문제.

    Canon 110. (Greek cxii. bis)

    That infants are baptized for the remission of sins - 110번 결의 , 유아세례

    109와 110번 결의문 모두가 펠라기우스파에 대한 결정입니다.




  • 작성자 21.10.20 08:47

    제가 굉장히 의심하는 부분은:

    The Council of Milevi in 416 A.D. passed the following edict against the Donatists: "Whosoever denies that newly-born infants are to be baptized...let him be accursed." This edict proves that the Donatists denied the practice of infant baptism.

    이 말도 존재하지 않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혹시 펠라기우스파의 논재에서 그에 대한 정죄로 했던 공의회 결의문 110번이 왜곡되지 않았나 의심됩니다.
    왜곡된 것이라면 ,왜곡한 자가 실수 보다는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으로 보이고요.

  • 작성자 21.10.20 08:46

    The Council of Milevi in 416 A.D. passed the following edict against the Donatists: "Whosoever denies that newly-born infants are to be baptized...let him be accursed." This edict proves that the Donatists denied the practice of infant baptism.

    만약 이 글에 대한 근거를 대지 못한다면,

    침례교에서 주장한 도나투스와 유아세례문제에 관한 아래 내용은 모두 거짓말이었다고 보여집니다.

    1, 도나티스트가 유아세례 반대하고 그로인해 핍박받았다.
    2, 고대 카톨릭에서 도나티스트를 유아세례를 부정하는 자로 저주했다.

  • 21.10.20 09:20

    펠라기우스는 유아세례에 반대하지 않았고, 일년에 3번씩 유아세례를 실행했다고 합니다.

    Pelagius did insist on baptism, but did not condemn the un-baptised to hell. Pelagius practised infant baptism three times a year by pouring.
    https://en.wikipedia.org/wiki/Talk:Pelagius

    펠라기우스가 반대한 것은 유아세례가 원죄를 씻어준다는 이론에 반대한 것입니다.
    펠라기우스는 원죄설을 반대했고,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어도 결국에는 죽었을 것이다.
    침례가 원죄를 씻어주는 것이 아니라, 침례로 교회안에 영접되어 교제될수 있기 때문에 유아침례를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입니다!~ 믿어집니까? 그런데 왜 유아침례를 반대한 사람이 펠라기우스였고 그러기에 밀레비 공의회가
    펠라기우스의 유아세례 반대를 정죄했다고 하십니까?
    다만, 펠라기우스 제자인 셀레스티우스는 유아세례를 반대했습니다. 그러므로 펠라기우스와 셀레스티우스간에는 이견들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펠라기우스는 카르타고에 일년여 밖에 안 있었고

  • 21.10.20 09:27

    @엘리야후 그가 떠난 뒤로 셀레스티우스는 조금 더 남아있다가 에베소로 떠났는데 에베소에서는 그를 비교적 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셀레스티우스가 카르타고에서 유아세례를 얼마나 방해 반대했는지는 몰라도 전체적으로는 미미한 수준이었을 입니다.
    고대 문장들에서는 어떤 제목이나 서문이 어느 문장에까지 걸리는가? 가 오늘날처럼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성경 번역할 때에 많은 이견들이 나오는 것인데, 하물며, 성경이 아닌 공의회 문서들은 잘못 편집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예컨대, 그 문장들에 번호가 처음부터 매겨진 것이 아니라 일렬로 이어진 문장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도 장과 절이 매겨진 것은 1550년 이후입니다), 라틴어 원문의 사진본을 보지 않는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만일 같은 논리를 적용하면, 도나티스트들에게, 라는 제목의 어거스틴의 책에서 유아침례를 장황하게 설명 변호한 다음에, 유아침례에 반대하는 자들에게 아나떼마 선포한 것이 왜 증거가 안됩니까?

    이걸 보시면 아주 근접함을 느낄 것입니다.

    https://heidelblog.net/2018/07/augustine-infant-baptism-is-the-apostolic-and

  • 21.10.20 09:29

    @엘리야후

    https://heidelblog.net/2018/07/augustine-infant-baptism-is-the-apostolic-and-universal-practice-of-the-church/


    Augustine: Infant Baptism Is The Apostolic And Universal Practice Of The Church
    What the universal Church holds, not as instituted by councils but as something always held, is most correctly believed to have been handed down by apostolic authority. Since others respond for children, so that the celebration of the sacrament may be complete for them, it is certainly availing to them for their consecration, because they themselves are not able to respond

  • 21.10.20 09:28

    @엘리야후 Augustine: Infant Baptism Is The Apostolic And Universal Practice Of The Church
    What the universal Church holds, not as instituted by councils but as something always held, is most correctly believed to have been handed down by apostolic authority. Since others respond for children, so that the celebration of the sacrament may be complete for them, it is certainly availing to them for their consecration, because they themselves are not able to respond.

    AUGUSTINE ON BAPTISM, AGAINST THE DONATISTS (4.24.31)

  • 작성자 21.10.21 13:56

    @엘리야후 어거스틴의 도나투스에 대한 논박은 모두 7권으로 되어있고 님이 인용하신 구절은 4권24번 입니다..

    인용하신 구절은, 이단이나, 분리자들의 세례가 비록 회심이 없을지라라고(잘못된 신앙), 그들에게 이루어진 세례는 회심과 관계없이 성례 자체로 인정되나 그 효력은 카톨릭 교회로 들어올때 회심이 인정되어 세례의 효력이 발생한다는 증거를 대기 위해 22,23번의 십자가 강도, 24번의 유아의 세례를 근거로 설명하는 내용이지,

    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도나티스트가 유아세례를 반대해서 어거스틴이 그에 대한 근거로 유아세례가 사도전통을 따른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 작성자 21.10.21 00:01

    @25시 님은 도나투스파와 카톨릭 간의 갈등과 쟁론의 신학적 핵심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 21.10.21 15:10

    @25시 궁금한게 있는데요 로마 카톨릭은 그리스도인들을 거짓으로 이단을 만들어서 핍박하고 죽여온 단체가 아닌가요? 그런 단체를 편들어서 뭐하나요?

  • 작성자 21.10.21 17:12

    @피조물 1. 로마 카톨릭과 고대 카톨릭은 다릅니다. 어거스틴은 고대 카톨릭입니다.
    2. 중요한 것은 진실이지, 진영이나 편가르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진실을 속이고 진영논리로 편을 가르는 나쁜 사기꾼들에게 휘둘리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도나투스파가 유아세례를 반대했다는 주자은 근거가 없는 거짓말 혹은 썰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근거없는 내용을 가지고 어거스틴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짓입니다. 진실을 알아야 올바른 판단을 합니다.

  • 21.10.21 17:02

    @25시 오늘날의 로마 카톨릭과 고대 카톨릭이 다르다는 말씀 이신가요? 고대 카톨릭에서 현재의 카톨릭으로 이어져 온게 아니었나요? 그리고 유아세례는 물론이고 세례 자체가 성경에 없는거 아닌가요? 신약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도 침례 요한을 만났을때 물속에 잠기셨다가 올라 오셨잖아요. 그럼 고대 카톨릭에서는 침례를 행한건가요?

  • 작성자 21.10.21 17:10

    @피조물 1. 오늘날의 로마 카톨릭과 고대 카톨릭이 다르다는 말씀 이신가요?

    네 다릅니다.

    2. 고대 카톨릭에서 현재의 카톨릭으로 이어져 온게 아니었나요?

    그건 로마 카톨릭 주장입니다. ( 로마 카톨릭을 비판하는 분들이 로마카톨릭의 주장을 받아들여, 고대 카톨릭을 로마카톨릭을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고의라면 목적을 가진 거짓이고, 몰랐다면 무지입니다).

    3. 그리고 유아세례는 물론이고 세례 자체가 성경에 없는거 아닌가요?

    고대 카톨릭, 곧 사도이후 초대교회 시대에는 유아세례를 하는데도 , 하지 않은데도 있었지 그것때문에 여러분처럼 싸우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서. ( 제가 알고 있는 선에서)....

    4. 신약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도 침례 요한을 만났을때 물속에 잠기셨다가 올라 오셨잖아요. 그럼 고대 카톨릭에서는 침례를 행한건가요?

    침례를 행한 곳도 있고, 세례를 행한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문에 싸우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그런 유아세례와 세례를 강제로 규정한 것은 로마카톨릭이고 그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 21.10.21 17:54

    @25시 제가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에서 침례를 행한 구절은 있어도 세례를 행했다는 구절은 본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세례를 행했다는 것은 성경과는 무관한 것을 성경적이라고 믿고 행한 것은 명백하게 비성경적인 것이 아닌가요? 과거에 세례를 행했다고 해서 세려가 성경적이지는 아니지 않나요? 교회의 하나됨은 성경에 나온걸 행해야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게 아닌가요? 그럼 로마 카톨릭과도 하나가 될 수 있는 건가요?

  • 작성자 21.10.21 18:03

    @피조물 그럼 그 믿음대로 행하시면 됩니다..
    그런 믿음으로 세례를 행하는 자를 정죄하면,
    그게 로마 카톨릭이 하는 짓입니다..

  • 21.10.21 17:57

    @25시 로마 카톨릭은 세례를 행하고 있지 않나요? 성경과 무관한 것을 성경적이라고 거짓으로 가르쳐도 단지 믿기만 하면 성경적인 것이 되는 건가요?

  • 작성자 21.10.21 18:01

    @피조물 로마 카톨릭이 이단인 이유는 세례에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교황을 우두머리고 이미 종교화된 집단이로 봅니다.

  • 21.10.21 18:02

    @25시 로마카톨릭은 언제부터 나타난건가요? 고대 카톨릭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건가요?

  • 작성자 21.10.21 18:06

    @피조물 중세의 역사는 590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즉위로 시작되었다.
    교황 제도의 성서적 의미는 마태복음서 16장 18~19절에 근거하며 그리스도로부터 지상의 대리자로 임명을 받은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하자 훗날 교황으로 추대되면서 로마의 주교는 자연히 베드로의 뒤를 잇는 교황이 되었다.
    [출처] 중세의 역사는 590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즉위로 시작되었다|작성자 문화메신저

  • 작성자 21.10.21 18:07

    @25시 590년 교황이된 그레고리가 로마의 공공사업을 정리하고 군대를 조직하여 롬바르드족을 몰아냈다. 야만족이 침입한 시대에 교회는 침략을 완충해 주는 주된 역할을 하였고 동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더욱 발휘하여 야만족의 신앙을 바꾸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였다. 이로 인해 로마 교황청은 갈수록 이탈리아의 가장 강하고 유력한 권력기구가 되었다.
    [출처] 10.교황제도의 확립과 서로마제국|작성자 ptkl

  • 작성자 21.10.21 18:08

    @25시 로마카톨릭은 첫번째 교황으로 그레고리가 이탈리아 반도에서 군대도 조직하며 세상정권를 다스리게 되면서 시작되었고, 점점 확산된 것입니다.

  • 작성자 21.10.21 18:13

    @25시 고대 카톨릭에서는 지역교회의 주교(감독)를 중심으로 지역교회 위주였지, 로마 교황청의 지도를 받지 않았습니다.

  • 21.10.21 18:18

    @25시 그렇군요. 제가 몰랐던 역사를 배웁니다.

  • 21.10.21 18:26

    @피조물 갑자기 생각 난건데요. 신약성경을 읽어보면 교리적인 부분을 갖고 회의도 열고 싸우기도 하더라고요. 심지어는 같은 생각으로 뭉치지 못하면 떠나라고 까지 하던데 잘못된게 있어도 침묵 하고 하나가 되는 것이 마냥 좋은건 아닐수도 있는 것 같아요. 싸움이 안일어 나는건 불가능한 일 같아요.

  • 작성자 21.10.21 18:33

    @피조물 중요한 진리 외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게 초대교회입니다. 싸움이 있을 수도 있지만, 중요 진리와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면 정죄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 21.10.21 18:35

    @25시 비진리를 진리라고 하는게 큰 문제가 아닌 건가요? 이런걸 하나둘씩 허용해 주면 교회가 교회 다워질 수 있는 건가요?

  • 작성자 21.10.21 18:39

    @피조물 그래서 여기서는 유아세례와 세례를 반대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고대 카톨릭 교회사를 보면 그들은 그것 때문에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걸 로마 카톨릭이 세례와 유아세례를 겅제적으로 집행 한 다음부터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 21.10.21 18:43

    @25시 그럼 오늘날에 세례를 강제적으로 집행하는 교회는 전부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건가요?

  • 작성자 21.10.21 18:48

    @피조물 개인별이 아니라 교회별로 하면 됩니다... 그게 마음에 안들면 침례주는 교회 다니시면 됩니다.. 다만, 로마카톨릭은 당시 국교로서 지위를 가졌기에 국가적 폭력이 병행되어서 더 큰 문제가 된 것이고, 지금은 신앙의 자유로 원하는 것에서 신앙생활하시면 됩니다..

    역사는 그 당시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면, 지금 우리가 교훈을 얻으먄 되지, 자기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역사를 해석하면 왜곡되기 쉽고, 거짓말장이가 될 수 있습니다.

  • 21.10.21 18:48

    @25시 그냥 잘한건 잘한걸로 잘못한건 잘못한걸로 보면 되지 않나요?

  • 작성자 21.10.21 18:53

    @피조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이승만과 김구를 그 당시 입장에서 공과를 구분하면 되는데, 지금 좌파와 우파들은 자신의 정통성을 그들에서게 확보하고자 역사를 자기식으로 해석하며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역사도 그런것 같네요...

    "진실"은 기독인이 소중히 여기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진실은 진리나 정의와 같은 말이 아닙니다...

  • 작성자 21.10.21 18:57

    @25시 엘리야후님이, 게시판 글이나 댓글에 다른이의 글이 달리면 원래 글과 댓글을 수정하지 말라고 하시다라구요... 저는 이부분에서 공과를 분명히 남기고 진실을 대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 21.10.21 23:39

    님은 카톨릭에 대해서 큰 줄기를 잘못 파악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카톨릭이나 중근대 카톨릭이나 모두 어거스틴을 교부로 여기며 할아버지로 섬깁니다.
    예정론, 원죄론, 유아세례, 강제 강요(COERCION)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를 배척한다고 선언한적이 없습니다.
    고대 카톨릭부터 이미 그들은 잡신교로 빠져들어갔습니다. 나중에 마리아 숭배가 더해졌고 사제 독신제 등이 더해졌지만, 이미 성직자 제도, 등이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펠라기우스가 일년에 3번 유아침례를 실행했다고 근거를 가져왔습니다. 그렇다면 유아침례를 반대하는 자들에게 저주를 내릴때 그 반대자들은 누구였습니까?

  • 작성자 21.10.21 23:56

    오늘날 카톨릭이나 중근대 카톨릭이나 모두 어거스틴을 교부로 여기며 할아버지로 섬깁니다.

    제가 볼 때는 님의 이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제게 지적하신 것이 왜곡된 로마카톨릭의 자료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그런데 님은 님이 지적하는 로마카톨릭의 자료를 근거로, 어거스틴을 로마카톨릭의 할아버지로 이야기 합니다.
    그 점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아마 어거스틴이 지금의 카톨릭을 보면 개탄할 것입니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교황체계를 어거스틴은 반대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정론, 원죄론은 그걸 반대하는 사람보다 인정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또한 님이 주장하는 유아세례자 반대자를 저주한 내용의 근거를 제시하고 계시지 못하고 계십니다.

    어거스틴이 유아세례자에게 저주를 선언하고, 유아세례를 강요하고 , 반대자들을 죽였다는
    침레교 학자들 주장이 아닌, 고대 자료를 근거로 대 주십시오..
    그러면, 저도 제 입장을 바꿔보겠습니다.

  • 작성자 21.10.22 00:09

    펠라기우스가 일년에 3번 유아침례를 실행했다고 근거를 가져왔습니다. 그렇다면 유아침례를 반대하는 자들에게 저주를 내릴때 그 반대자들은 누구였습니까?

    여기서 님의 착각!

    1. 공의회 결의문이 유아 세례 반대자를 저주한다는 내용입니까?

    제가 보니까 그 뜻이 아닙니다. 유아세례안의 원죄 문제를 반대하는 자를 저주하는 것으로, 이것은 펠라기우스와 Celestius를 이단으로 정죄하면서 한 이야기 입니다.

    2. 펠라기우스가 3번 세례해서, 공의회 결의문은 펠레기우스를 향한 것이 아니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이것은 유아세례 반대자에대한 저주가 아니라, 유아세례 속에 원죄 부정을 저주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펠라기우스와 Celestius 모두에게 하는 말입니다.

    3. 공의문 결의문 내용이 도나투스파를 저주하는 내용이다?

    도나투스파는 원죄 부정 없었고, 님은 아직도 도나투스파가 유아세례를 반대했다는 근거도 못 가지고 오셨습니다.
    설사 가지고 와도, 님이 근거로 삼은 공의회 결의문은 유아세례 반대자가 아니라, 유아세례 속의 원죄 문제입니다.

  • 작성자 21.10.22 00:11

    @25시 이렇게 님이 공의회 결의문을 해석하지 못하고, 그것을 유아세례 반대자에 대한 저주로 이해하시는 것은,

    님이 도나투스파의 사상과 그 당시의 신학적 문제에 대해 전혀 이해를 못하신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 작성자 21.10.22 00:21

    고대 카톨릭의 유아세례 강제 시행은 언제 부터 인가요?

    근거를 보여주십시요.

    제가 알기는 789년 사를마뉴가 유아세례 국법을 만들었습니다.

    고대 카톨릭은 결코 로마 카톨릭의 조상이 아닙니다.

    마친가지로 도나투스파도 침례교의 조상이 아닙니다.

  • 21.10.22 20:35

    강제시행이 중요한게 아니라 성경에서는 침례를 행하라고 하였는데 침례가 아닌 엉뚱한 세례를 시작한 것 부터가 이미 잘못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요? 성경에서 침례를 행하라고 했으면 침례를 행해야지 사람의 마음대로 침례가 아닌 세례를 행해도 괜찮다고 보시는 건가요? 누군가가 세례를 행하기 시작 하였고 그 이후의 사람들이 동조해서 세례를 따라 하기 시작 하였다면 분명히 잘못된 것이 아닌가요? 물 몇방울 뿌리는 세례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가르쳐 주기에는 어렵지 않을까요?

  • 작성자 21.10.25 14:04

    @피조물 저는 침례를 받았고, 침례를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침례가 성경적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세례가 비 성경적이라고 비판하고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한참 기독교가 핍받을 받을 때 초대교회에 세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다른 교회들이 세례를 비난하고 정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님은 하나님 앞에 100프로 성경에는 한번의 세례도 등장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그 말에 책임 질 수 있나요? 그러면, 사도 후에 세례를 받은 것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요? 왜 그당시 침례와 세례 때문에 싸우지 않았나요? 그럼 언제부터 침례와 세례 때문에 싸우기 시작한 것인가요? 저는 님이 무엇인가를 비판하려면 제대로 알고 공부하고 비판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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