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수첩에 K1, K2라 정리하는 항목이 있다. 취향 따라 넘겨짚으실 수 있겠다. 스포츠 좋아하면 이종격투기, 음악 애호가라면 모차르트 작품 번호, 등산에 관심 많으면 세계 제2 고봉(高峰) 등으로. 문화부 기자로서 K1과 K2로 암호화한 내용은 사진작가 강운구(75) 선생과 구본창(64) 씨다. 영어 머리글자를 따 지난 20여 년 두 작가의 작품 세계와 어록을 담아왔다. 두 분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사진계의 대표 노총각이다. 공식 총각 클럽은 아니지만 가끔 만나 점심을 먹고 뚝딱 마음 맞춰 여행도 떠난다. 언젠가 그 설렁탕 모임에 깍두기 국물이 부족하다며 동참을 권하기에 합석했고, 이후 준회원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한국 사진계의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는 강운구 선생과 ‘마당발’ 구본창 작가가 만나면 서너 시간이 후딱 흘러가 버린다. 여기에 국내 북 디자인의 선구자 정병규(71) 선생이 옵서버로 등판하면 그날은 만사 작파하고 K1, K2의 청산유수에 몸을 떠나보낸다. 며칠 전 정유년 송년회가 열렸다. 겨울 한복판이라 선주후면(先酒後麵)을 좇아 냉면집에서 시작한 모임은 커피집에서 막을 내렸는데,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지난 반세기가 도마 위에 올라 작렬했다. 최근 재출간된 무애(无涯) 양주동(1903~1977)의 『문주반생기』 얘기부터 시동이 걸렸다. “양주동 선생이 국보(國寶)라 자임하며 글을 참 많이 썼죠. 무애의 다양한 칼럼이 국내 신문 잡지를 도배하던 시절에는 기자들이 선생 댁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어요. 사람이 직접 원고를 받으러 다니던 때이니 도리가 없었죠. 일일이 응대하는 게 귀찮아진 선생은 아예 현관 입구 신발장에 ‘동아’ ‘조선’ 식으로 표식을 해놓고 거기에 원고를 넣어놨어요.” 1960년대에 동아일보 사진기자를 지낸 강운구 선생 말씀에 정병규 선생이 주를 단다. “당시 광화문 조선일보 뒷골목에 있던 아리스 다방이 문인들 사랑방이었는데 소설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이병주 선생은 거기에서 청탁도 받고 원고도 써주고 사람도 만났죠. 1966년 서울시장에 취임한 김현옥과 친했는데 선친과의 관계 때문이었어요. ‘도시는 선이다’ 같은 문학적 표어가 이병주 작품이었죠.” 나림(那林) 이병주는 자신의 장편소설 ‘산하’에 쓴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경구로 널리 회자된 인물이다. 작가이기 전에 언론계의 대선배라 그의 작품을 꽤 읽었는데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나의 문학은 골짜기를 기록한다”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러고 보니 지금 얼굴을 맞댄 K1, K2도 한국 문화계의 골짜기를 기록한 신화가 아닌가 싶었다. 지난달 끝난 강운구 선생의 전시회 제목은 ‘강운구/ 네모 그림자’였다. 2008년 연 ‘저녁에’ 이후 9년 만의 개인전이었는데, 필름 카메라로 흑백 사진만 찍으며 ‘막장(암실 인화 작업)’을 고집했던 강 선생이 폰카로 찍은 컬러를 선보여 화제가 됐다. 그는 “이제 나에겐 필카(필름 카메라)나 디카(디지털카메라) 또는 폰카(휴대폰 카메라)의 역할 구분은 의미가 없다. 다만 그것들로 한 ‘무엇’이 중요할 뿐”이라고 선언했다. 시간을 따라 달라지다 순간 사라져버리는 덧없는 그림자를 네모난 틀에 담으려고 분투해 얻은, ‘강운구 표 사진’을 선생은 “세상에 대한 경배”라 불렀다. 구본창 작가는 오래도록 조선백자에 매달려 왔다. 곱고 여린 것들 사이에 흐르는 한국의 시간을 그는 뽀얀 곰탕 국물 같은 색감으로 달여 왔다. 구 작가의 사진은 둥글둥글 보들보들하다. “계속 흐르는 시간 속에서 사진은 시간을 잘라내는 작업, 시간을 정지시키는 힘”이라고 정의하는 그에게 백자는 공명(共鳴)을 일으키는 되새김의 도구였다. 그날 취재 수첩에는 ‘K1 네모, K2 원’이란 한마디가 더해졌다. ‘네모는 고전, 원은 낭만이 아닐까’란 단상이 떠올랐다. 정유년은 한국 언론사에서 ‘급격한 종이신문의 영향력 쇠퇴’라는 한마디로 정리될 수 있는 해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먼저 사라질 법한 직업의 하나로 신문기자가 꼽힐 정도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전문기업이 증권로봇기자가 쓴 ‘로봇뉴스’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로봇 저널리즘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사람기자 뉴스보다 빠르고 정확하다는 평가다. 개인적으로는 인공지능이란 표현보다는 ‘기계지능’이란 용어를 쓰고 싶다. 그들은 인류가 처음 만나는 낯선 특수 지능이다. 예상외로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 날이 이르게 다가올지 모른다. 4차 산업혁명이란 개념 자체가 아직 불확실한 미래 전망의 하나이긴 하지만 ‘낯선’ 기계지능과 어떻게 공존해야 할 것인가는 생각해볼 문제다. 『승정원일기』를 인공지능을 활용한 고전문헌 자동번역기로 작업하고 있다는 뉴스가 떴다. 한국고전번역원이 1994년부터 시작하여 번역률이 21% 선이고, 이 속도라면 2062년 완료될 것으로 예상된다지만, AI 자동번역기술을 활용하면 27년 단축된 2035년에 마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기존 번역자들이 기계지능의 솜씨에 60점을 주었다지만 잘못 번역한 대목을 들어 역사 왜곡의 위험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병주 선생이 살아 있었다면 “인공지능은 산맥을 기록하고 인간지능은 골짜기를 기록한다”라 일갈했을까. 20여 년 좇아온 K1, K2의 이야기를 취재 수첩에 받아 적는 ‘볼펜 기자’로서 로봇 저널리즘과 대결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인간지능과 다르지만 나름 놀라운 ‘다른’ 지능을 지닌 것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 시대가 왔을 뿐이다. 인간지능은 이 우주에 존재하는 다양한 마음 중 하나다. 기계지능에 비추어 ‘나는 누구인가’에 더 천착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닌가. 무술년을 맞는 다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