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부처를 만나려면 내가 아는 부처를 버려라. / 현웅 스님
정주영 씨가 전두환 정권이 끝난 뒤에 5공 청문회에 나온 것을 봤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장세동 씨한테 빌려준 돈 6억을 다시 받았습니까?”
묻자 “안 받았습니다.
저는 제 주머니에서 나간 돈은 더 이상 제 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돈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대신
다른 데서 60억을 벌 생각을 합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불교적인 생각입니다.
금강경에서는 “마음을 한 곳에 머물지 말고 새 마음을 내라.
부처님의 가르침으로도 새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정주영씨가 실천한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 보니
사업의 중용을 알고 나아가고 물러갈 데를 알아 그 길을 헤쳐나간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나라가 찢어지게 못살아서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할 때는
안 죽던 사람들이 요즘에 와서 왜 그렇게 죽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생의 방향을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미국에서도 골든게이트 다리에서 떨어져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미국인들 중에서 아무데서도 답을 찾지 못해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박사학위가 두 개나 되고 미국 최고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이
가장 높은 것, 최고로 즐거운 것만 생각하다 몸과 마음이 망가져서 찾아옵니다.
그것이 물질문명의 결과입니다.
불교에서 육도 중에 아귀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아귀의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눈에 좋고 보기에 좋은 것은 무조건 먹는 것.
그것이 바로 문명사회의 모습이요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특히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렇습니다.
그렇게 몸이 비대해져 균형을 잃어가다 보면 자연히 마음도 혼탁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헛것인지 모르고 자꾸 욕심을 내면 그게 바로 업이 됩니다.
업이 쌓이면 어리석음에 갇히고 자기 안의 지혜를 등지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안의 부처를 무시하게 되고 스스로를 천하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무시하고 사는 사람은 더욱 낮은 사람이 되는 반면
내 속에 부처가 있다고 믿는 사람은 남에게 존경받는 부처가 됩니다.
번뇌와 고통은 자아를 깨닫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내 지식을 보물단지처럼 꽉 붙들고 있으면 진리의 넓은 바다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잊어버려야할 불교를 왜 배워야 하느냐.
우리가 깨닫는 사람의 그림자라도 배워서 흉내라도 내다보면 내 안의 생각이 정제됩니다.
또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다보면 상식과 지식이 쉬워지면서
내 속에서 부처님의 싹이 나오게 됩니다. 그 경험이 바로 믿음이에요.
우리들의 어리석음이 믿음으로 변하게 되면서 신심도 생기고
부처님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상(상)을 내지 말고 항상 자신의 마음을 정제(精製)시키십시오.
108배, 1000배도 하고 불교대학에서 공부도 하시고, 주력도 열심히 하십시오.
열심히 기도하다 보면 내 마음이 정제되는 순간을 딱 만나게 됩니다.
정제라는 것은 영어로는 silence, 우리말로는 고요하다고 하는데,
그것을 고상하게 말하면 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이라는 것은 부처님 마음이 내 마음에 뿌리를 내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내 속의 세포가 깨어나고 내 안의 부처가 마음대로 작용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을 모르고 공부하면 어리석음만 늘어난다.”는
서산 스님의 말씀을 숙지하시고, 꼭 내 안에서 부처를 만나시길 바랍니다.
출처 : 전북불교대학 현웅 스님 법문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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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웅스님(육조사)
현웅스님 20세에 조계종 승보사찰인 전남 순천 송광사
구산 스님(1901∼1983) 문하로 출가,
구산 스님으로부터 수행의 기초를 닦았다.
71년 통도사 극락암에서 월하 스님을 은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인천 용화사 선원을 거쳐 대중 선방 생활을 뒤로하고
산중 토굴에 들어가 6년 동안 수행했다.
그는 토굴에서 솔잎과 콩만 먹으며 공부에 정진했다.
그러다 1984년 스위스 제네바 불승사의 초청을 받아
서양인에게 한국 선불교를 지도하기 시작했다.
1986년 캐나다로 건너갔고, 89년 미국으로 옮겨
시애틀 돈오선원과 버클리 육조사를 각각 창건했다.
2004년 5월 서울 가회동에 육조사 한국 분원을 개설,
2005년 7월 지금의 돈암동으로 이전했다.
스님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동서양을 아우르는 지혜로
참선을 지도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선문답집 ‘묻지 않는 질문’(민족사)이 있다.
서울 돈암동 언덕배기의 육조사 선원은 쇠락한 주택을 개조해
수행공간으로 꾸민, 아담하고 멋스러운 도심 속 참선도량이다.
스님은 “현실을 피하거나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내 안의 마음을 바꾸어 보라”고 권한다.
진정한 피서는 마음에 있다는 것.
“자본이 최고의 가치를 이루는 사회는 모든 것이 기계화되다 보니
‘나’를 소홀히 대한다”며 “우선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부터 가져야 한다”고 설파했다.
“명상과 참선을 통해 큰 깨달음은 아니더라도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는 가질 수 있다”며
“참선은 고향으로 가는 길이고,
그것은 마음속 진리 성품을 찾는 것으로
마음을 놓으면 번뇌·망상(밖의 것)이 들어와도 앉을 데가 없다.
그것들은 하릴없이 바람처럼 스쳐간다”고 전했다.
이어 “깨달음은 내 마음에 부처 마음, 곧 진리 성품이 있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그렇게 되면 자기 품격이 높아지고
진리의 향이 묻어난다.”고 했다.
때론 경전을 읽는 것도 중요하다.
흔히 참선을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자세만으로 안 된다. 힘든 자세로 인해
자칫 마음이 구속될 수 있다. 법문을 통해 믿음이 실리면
참선의 방향이 정해지고, 자세도 정돈된다.
참선 효과를 못 보는 것은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수행자들이 수행을 한다고 자신의 몸을 심하게 다치게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고행보다는 큰 스승을 만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했다.
미국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스님은 가끔 수행자들에게
이탈리아 가곡을 들려주기도 한다. 끝으로 스님은
“참선도 몸이 건강해야 할 수 있다”며
“평소 운동을 많이 해 건강한 몸을 유지하라,
운동을 하면 정신도 시원해진다.”고 전했다.
출처 : 불교공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