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30.월 새벽예배 설교
*본문; 욥 3:20~22
*제목; 죽음보다 더 큰 고통
“20 어찌하여 고난 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21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죽음을 구하는 것을 더하다가
22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 (욥 3:20~22)
사람은 참으로 연약합니다. 그리고 그 연약함은 죽음으로 완성됩니다.
살면서 인생이라는 파도에 이리 저리 치이면서 살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고통 중에 가장 큰 것을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 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죽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욥의 고백입니다.
욥이 얼마나 아프고 힘이 들면 이런 고백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의 아픔의 내용을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육체적 고통입니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아프고, 그 영혼까지 병들게 됩니다. 사탄이 그의 온 몸이 종기가 나게 하고 괴롭게 하자 이러 탄식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상실감입니다.
그가 누리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다 사라졌습니다. 재산도, 자식도, 심지어 그의 아내도 그를 버립니다.
그러나 욥이 가장 힘들었던 것은 세 번째, 하나님의 부재성을 느낀 것입니다.
그가 사랑하던 하나님, 그를 이토록 사랑하시던 하나님께서 이 고통 가운데 아무런 응답이나 역사가 없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육체적 고통과 상실감 그리고 죽음보다도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이 고통이 ‘욥 37장’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고통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 같은 답답한 아픔이 전해질 때가 있습니다. 죽기보다 더 힘든 상황도 아프지만, 하나님께서 전혀 응답이 없으신 부재성 때문에 더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욥기가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간에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계시며, 결국 그분의 역사를 나타내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욥 38장’부터가 그 증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 분이 반드시 역사하실 것입니다. 아멘.
첫댓글 우리가 이런 고통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 같은 답답한 아픔이 전해질 때가 있습니다. 죽기보다 더 힘든 상황도 아프지만, 하나님께서 전혀 응답이 없으신 부재성 때문에 더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욥기가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간에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계시며, 결국 그분의 역사를 나타내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 분이 반드시 역사하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