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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의 노래
이 문 열
또 그 소리 때문이다. 채 다섯 시도 못 된 새벽을 깨어 속절없는 적막감에 내가 이리 서성 이는 것은.
처음 그 소리는 색감으로 치면 그저 푸른색과 흰색의 미묘한 조화 같은 것이었다. 이를테면 어느 가을 산등성이에서 바람 없는 하늘로 곧게 솟아오르는 한 줄기 흰 연기를 바라보게 될 때나, 아무도 없는 실험실의 유리 용기 속에서 투명한 시액에 가라앉은 푸른 앙금을 바라보게 될 때와 같은, 일견 아름다우면서도 울적한 그런. 따라서 담배라도 한 대 피워 물면 대체로 마음이 가라앉고 어떤 때는 그 후의 한두 시간을 더 잘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래잖아 그 소리는 점차 복잡하고 자극적인 것으로 변해 갔다.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호소하는 것 같은 갈래가 있는가 하면 조소하는 것, 비난하는 것 같은 갈래가 있고, 심지어는 저주하는 것 같은 갈래도 있었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시간과 비례하는 끈끈한 강도로 이미 오래전에 잠든, 내 기억의 어떤 부분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깊이 가라앉은 의식들을 휘저어 대기 시작했다. 그쯤 되면 잠자기는 틀린 일이었다. 아니 그 이상으로 조용히 견뎌 낼 수도 없었다. 나는 물론 그 소리에 힘써 저항했다. 심지어는 빈속을 독한 술로 채워 가면서까지. 그러나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소리는 집요한 방문을 멈추지 않았다.
매몰차게 쓸어 내도 쓸어 내도 내 사유에는 길길이 번뇌의 먼지가 솟고, 내 흰 뼈에는 마디마디 푸른 금이 그어지는 것 같았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찬바람이 활짝 열린 내 모공(毛孔) 하나하나에 스며들었고, 불면에 지친 심장에는 수천수만의 검은 화살이 날아들었다. 내가 황량한 기분이 되어 어둡고 적막한 우주의 한끝에 홀로 누운 듯한 자신을 보며 까닭 모를 눈물을 짓게 될 때까지. 그러나 진실로 안타까운 일은 그러면서도 도무지 그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거의 한 달 가까이나 그것은 내가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할 새벽의 재난일 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어제, 또 새벽같이 독한 국산 양주에 취해 라디오를 한껏 크게 틀어 놓은 채 무리한 잠을 청하고 있던 내게 희미하나마 한 가닥 구원을 암시하는 빛이 찾아들었다. 그때 마침 라디오에서는 오래 들을 수 없었던 「비창」의 한 악장이 음울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문득 그중의 한 소절이 내 새벽의 소리들 중 한 갈래와 같다는 느낌이 든 게 그랬다.
그리고 그 최소의 발견과 함께 다시 내 새벽의 소리에서 돌연 구체적인 사람의 목소리 하나가 분간되었다. “껌 사세요.” 하논 술집이나 다방 같은 데 오래 앉았다 보면, 한 번쯤은 듣기 마련인 소리였다. 각각 다른 여러 사람의 성대를 울리고 나오지만 한결같이 엇비슷하게 들리는, 그리고 대부분은 우리가 별 감동 없이 묵살해 버리는.
사실 그런 발견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라 엉뚱한 데마저 있었다. 그러나 차츰 나는 침해받고 있는 내 새벽을 위해 중요한 착상에 접근하게 되었다. 즉 내 새벽의 소리는 바로 그와 같이 상이한 여러 요소로 이루어진 것이며, 만약 내가 그 하나하나를 분석해 낼 수만 있다면 내 새벽의 재난도 피할 길이 있으리란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지체 없이 그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나를 새벽 잠에서 불러낸 소리의 여운에 의지해서 기억은 과거를 소급하고 상념은 어지러이 현재를 배회했다. 해가 솟고, 내가 출근을 서둘러야 할 때까지. 그러나 그뿐이었다. 끝내 그 이상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성가신 일상에 휩쓸려 들어갔던 나는 이 새벽 다시 그 소리의 방문을 받을 것이다.
아아, 저 소리. 긴장으로 팽팽한 내 고막을 무슨 예리한 면도날처럼 찢어 와선 채 아물지 않은 어제의 상처에 새롭고 긴 발톱을 박아 놓는다. 도대체 저것은 어디로부터 온 것이며 내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이제 나는 다시 괴롭고 쓸쓸한 어제의 작업을 계속해야겠다. 무심하게 넘긴 일상의 장(章)을 넘기며 그 갈피 어디에선가 내가 진지하게 듣고 깊이 기억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외면해 버리고 만 여러 목소리를 다시 찾아내야겠다. 모든 선지자들이 사라져 버린 지 오래인 지금에까지 천상의 목소리가 미련하게 남아 이 땅을 떠돌리는 없으므로. 그리고 그것이 세사(世事)에 시달리느라 무딜 대로 무디어져 버린 우리의 영감을 자극할 리는 더욱 없으므로.
사실 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세계와 인생을 낙관하는 평범한 생활인이었다. 쇼펜하우어보다는 라이프니츠가 우주를 더 잘 이해했다고 믿었으며, 지는 노을에서조차 떠오르는 내일의 태양을 볼 수 있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거침이 있었으랴.
내 얼굴은 콧날이 선명하지 못하고 인중이 짧아 썩 눈에 띄는 것은 못 되지만 그래도 거울을 보면 언제나 즐거웠다. 키도 겨우 170을 턱걸이하지만 구두창 갈기를 서둘러 본 적이 없었고, 근육도 해수욕장 같은 데서 부끄럽지 않을 만은 했다.
지식이나 교양에 있어서도 딱히 비관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나는 꽤 알려진 대학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았고 전공 밖의 분야도 남들 만큼은 읽었다. 학생 때는 제법 슈베르트와 슈만의 가곡을 좋아했고, 고흐와 달리의 그림들을 마음에 들어 했다.
직업도 마찬가지 ― 나는 시내 사립 여중의 역사 선생에 불과하지만 그 또한 만족스러웠다. 물론 거기에 대해서는 비교적 일반적인 반대 의견이 있음을 나는 안다. 예를 들어 벌써 몇 달째 우리 학교 교문 앞에 손수레를 들이대고 버티는 쥐포 장수 같은 자는, 언젠가 주번인 내가 잡상 단속을 나갔을 때, 피하는 기색은커녕 오히려 손수레를 내게로 밀어붙이며 이렇게 씨부렁거렸다.
“씨팔, 나도 팍 때려치우고 중학교 접장질이나 갈까 부다.”
그러고는 나를 힐끗거리며 이빨 새로 침까지 찌익 뱉고 지나갔다.
제철이 아니어서 가뜩이나 장사가 안 되는데 단속을 나오니 심통이 나긴 했겠지만 ― 하여튼 그 후에도 나와 마주칠 때마다 왼고개를 틀거나 어깨를 으쓱거리며 건들건들 지나가는 폼이 ‘그 말은 내 개인 감정에서 나온 것이 아닙네.’ 하는 투였다.
또 최근에는 주모(朱某)란 동료 하나가 어린 제자들을 상대로 못된 짓만 골고루 하다가 쇠고랑을 차, 우리 모두의 위신을 영 못쓰게 만든 적도 있다.
하나 무슨 상관이랴. 누가 뭐래도 나는 내 직업과 그것이 주는 응분의 대우에 만족해 왔다. 더구나 그 무렵 몇 개월째나 내가 누리고 있던 그 ‘행운’에 따르면 아무도 그런 나의 만족을 의심하지는 못하리라.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학급에는 김미애란 학생이 하나 있는데, 지난 학기 초부터 나는 부유한 미망인의 외딸인 그 애네 집에서 하숙을 하고 있다. 식모에게는 매달 꼬박꼬박 하숙비를 내고 있으니 겉으로 보아서는 크게 행운이랄 수도 없고, 또 내막으로는 그 애의 어머니가 그 돈에 덤까지 얹어 내 몫으로 적금을 붓고 있다는 것을 떠벌려 보았자 변칙 과외의 혐의밖에 더 받을 것도 없지만, 어쨌든 나는 그 일로 잡무 포함 하루 여덟 시간 이상을 혹사당한 대가로 받는 내 봉급을 고스란히 저축할 수 있게 되었다. 거기다가 그 뒤에는 바로 그 애의 어머니 ― 아직은 젊고 아름다운,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심에 대지 150평의 주택과 적잖은 유산을 가진 미망인 허(許) 여사의 존재가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막연한 기대로 허 여사를 대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내가 그녀의 집에 하숙을 정하게 된 석연찮은 경위 때문이었다. 그 전에 내가 그녀를 학교 밖에서 만난 것은 꼭 두 번으로, 한 번은 지난여름 서해안의 어떤 해수욕장에서였고, 한 번은 점잖은 사람들이 드나들어서는 안 된다는 골목길에서 술이 취한 채 나오던 중이었다. 해수욕장에서 그녀는 미애 때문에 마지못해 인사를 올린다는 식이었지만, 벗어부친 내 몸을 살피는 그 눈길에는 무언가 탐색과 갈망의 열기 같은 것이 어려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너무 취해 뚜렷한 기억이 없긴 해도, 그녀가 태워 주는 자가용 차 안에서 내가 사실은 여자를 사려고 했노란 말을 스스럼없이 털어놓은 것으로 보아 그녀의 말이나 행동 어느 쪽엔가 나를 충동질한 것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날 나는 쉽게 정직해질 수 있을 만큼은 취해있었으니까.
그러다가 내가 미애의 담임이 되면서부터 몇 번 의례적으로 학교를 찾아오더니, 학기가 시작되고 며칠 안 돼 지나가는 말처럼 제의해 왔다.
“아직 미혼이시니 하숙을 하고 계실 텐데 저희 집으로 하숙을 옮기시는 게 어떠세요? 과외가 금지되니 가정교사도 둘 수 없고, 그렇다고 집 구조가 세를 놓기에도 적당하지 않아 든든한 하숙생이나 하나 두려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나는 처음 그 제의에 좀 어리둥절했다. 자가용 기사 딸린 승용차까지 있는 미망인과 하숙집 안주인 사이에는 도무지 아무런 연관이 맺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긴가민가 하면서도 그것이 무언가 예기치 않은 행운의 실마리가 될 것 같은 예감으로 못 이기는 체 하숙을 옮긴 나는 며칠도 안 돼 그녀의 집에 내가 필요한 이유를 뚜렷이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해서 내가 허 여사의 집으로 하숙을 옮긴 지 사흘째 되던 날 밤이었다. 일찌감치 저녁 식사를 마친 나는 자못 심란한 기분으로 방에 틀어박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초저녁부터 거실에서 허 여사 특유의 냉랭한 목소리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웬 젊은 남자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딱히 먹은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정작 허 여사에게 따로 젊은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까닭 모르게 분하면서도 낭패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거실 쪽에서 허 여사의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유리나 도자기 따위가 요란하게 깨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나도 모르게 뛰어들어 보니 방 안에는 어떤 미남형의 청년 하나가 소파에서 발딱 일어난 자세로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 허 여사 앞에 무릎을 꿇고 무언가를 절망적인 표정으로 애원하고 있었다. 바닥에는 방금 부서진 듯한 도자기 조각이 어지러이 널린 채였다. 무슨 오만한 여왕처럼 그런 청년을 싸늘하게 내려보고 있는 허 여사의 모습이 적지 않이 위로가 되기는 했지만 내가 섣불리 개입할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잠시 그런 방 안의 광경을 멍하니 살피던 나는 약간 겸연쩍은 기분이 들어 돌아섰다. 바로 그때였다. 자기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주위를 분간하지 못하던 그 청년은 그제야 나를 알아보고 돌연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의 눈은 이미 슬픔과 절망의 눈이 아니라 분노와 증오로 흉포하게 타오르는 눈이었다. 그는 비명과도 흡사한 괴상한 부르짖음과 함께 거의 앞뒤 없이 나를 덮쳐 왔다.
우선은 그의 원인 모를 적의와 맹렬한 기세에 흠칫했지만 나는 곧 본능적인 정당방위에 들어갔다. 그리고 몇 차례 서로 간에 손발을 주고받게 되자 내 쪽에서도 이내 맹렬한 적의와 투지가 불타올랐다. 허 여사가 지켜보고 있음을 염두에 둔 18세기식의 정열과 이것이야말로 막연히 기대했던 어떤 행운의 실마리가 될지 모른다는 20세기의 타산이 묘하게 야합된 적의였다.
내가 진작부터 몇 가지 투기(鬪技)를 익혀 둔 것은 잘한 일이었다. 두어 번 방바닥에 메어꽂고, 서너 번 힘 있게 쥐어박으니 의외로 허약한 상대는 볼품없이 나가떨어져 일어날 줄 몰랐다.
하지만 나이 지긋한 승용차 운전사가 동정에 가득 찬 눈길로 그 청년을 부축해 나가자 한순간의 승리감은 이내 알 수 없는 불쾌감으로 변했다. 운전사가 그를 ‘젊은 선생’이라고 익숙하게 부르고, 문 밖에 서 있던 미애가 흑 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는 것으로 보아, 한때 그 청년은 그들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던 사람이었던 듯했다. 거기다가 또 그는 내가 전력을 다해 때려누이기에는 너무 어리고 약했다.
심기가 상한 나는 거칠게 옷을 털고 인사도 없이 그 방을 나섰다. 그런데 미처 그 방을 벗어나기도 전에 나를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다. 이제껏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그 모든 광경을 말없이 보고만 있던 허 여사였다. 내 기분은 아랑곳 않고 그녀는 냉랭하게 말했다.
“집 안에 남자가 없으니 만만하게 본 거예요.”
그리고 이어 눈에 띌 듯 말 듯한 미소와 함께 정감 어린 목소리로 덧붙였다.
“설마 이런 일로 기분 상하지는 않으셨겠죠?”
어떻게 보면 그냥 해 본 소리와 다름없었지만 내게는 실로 뿌리칠 수 없는 유혹으로 들렸다. 그렇지만 그것이 바로 내가 허 여사와 무슨 특별한 관계에 들어간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 뒤로도 여전히 그녀와 나는 하루에 몇 번을 만나도 서로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는 교사와 학부모였으며 또한 서로 대하기에 어려운 하숙생과 안주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가 극히 담담한 목소리로, 남의 눈이 있으니까 하숙비를 받기는 하되, 그 돈을 선생님의 결혼 자금으로 이백만 원짜리 적금을 부어 주겠다고 말한 것도 그날로부터 거의 스무 날이나 뒤인 내 봉급날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를 해 나가다 보니 문득 내 의식에 강렬하게 떠오르는 게 하나 있다. 그것은 그 후 며칠 만인가 다시 찾아온 그 청년의 젖은 눈과 고뇌에 찬 목소리다. 그날 허 여사의 요청으로 그녀를 대신해 대문께로 나간 내게 그는 신파조이긴 해도 이상하게 감동적으로 들리는 어조로 말했다.
“이제 다 끝나 버린 겁니다. 청운의 뜻을 품고 서울로 올라왔던 시골 수재는 지난 3년, 그녀의 노리개로 모든 걸 탕진해 버린 겁니다. 나의 대학, 나의 젊음 나의 이상…… 아마는 목숨까지도. 하지만…… 부탁드립니다. 한 번만 더 그녀를 만나게 해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꼭 한 번만…….”
물론 나는 끝내 그를 집 안으로 들이지 않고 위협적인 침묵으로 내쫓고 말았지만, 단순한 창백함 이상 어떤 섬뜩함마저 느껴지던 그의 안색이나 애원하는 투의 목소리는 무슨 불쾌한 점액(粘液)의 감각처럼 내 기억에 눌어붙었다. 그리고 ― 이상도 하여라, 이제 그것들은 새벽의 고문자들 틈에 끼어 나를 찾고 있다. 도대체 그것들에게 셈해야 할 무엇이 내게 남았다는 것인지…….
하지만 더욱 아픔에 가까운 것은 마지 그 기억들을 옹호하듯이나 갑작스레 내 의식을 찔러 오는 또 하나의 목소리다. 날카롭고 쥐어짜는 듯한 혜영의 목소리.
혜영은 대학 상급반인 내가 오랜 가정교사 생활이 싫증 나서 땅콩 장사를 하던 시절에 만난 여자였다. 이제는 아니지만 그때는 피로한 직업여성으로, 주로 출판사와 출판사를 전전하며 병든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부양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난히 추운 그해 겨울 희미한 가스등 아래 연탄불을 쬐며 웅크리고 있던 나에게는 매일 저녁 어린 동생들을 위해 땅콩이며 귤 따위를 사 가는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워 보였던가.
그녀의 피로에 지친 핏기 없는 얼굴과 어두운 골목길로 비틀거리듯 사라지던 뒷모습은 얼마나 자주 내 가슴에 뜨거운 연민을 불러 일으켰던가.
자연 나의 땅콩 되질은 후해졌고, 어쩌다 그녀의 호주머니가 비어 그냥 지나쳐 가는 날은 내 쪽에서 자청하여 외상을 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녀 쪽에서도 나를 알아보게 되었고, 그녀의 출판사에서 새 책이라도 나오게 되면 한 권씩 갖다주게 됐으며…… 이윽고는 우리의 대화도 고객과 상인의 입장을 떠나 버렸다. 우리는 어느새 사랑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나머지 겨울은 따뜻하였다. 근처 포장마차의 우동 국물이 따뜻하였고, 늦은 겨울밤 찻집 아가씨가 졸린 눈으로 날라 주던 커피가 따뜻하였으며, 나의 연탄도 전보다 더 따뜻하게 타올랐고, 그리고 가끔씩 함께 읽던 해적판 『러브 스토리』도 따뜻하였다. 혜영이가 여덟 시에 퇴근한다면 나는 일곱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했고, 간간 휘날리는 눈송이나 도회의 옅고 흐린 노을을 바라보면 나는 어김없이 그녀의 창백한 볼과 핏기 잃은 입술을 떠올렸다.
그렇지만 파하지 않는 잔치가 어디 있고 다하지 않는 봄이 어디 있으랴. 대략 그 이듬해 봄, 내가 지금의 학교에서 탄 첫 봉급으로 두 사람이 사흘간의 여행을 하고 온 후부터 우리 사이는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여행 중에 그녀에게 결혼을 제의했던 것인데, 뜻밖에도 그녀는 어두운 얼굴로 거부해 왔다. 어린 동생들이 병든 어머니를 모실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요청과 함께였다. 그때 가장 큰 동생이랬자 겨우 공전 1년생이었다.
물론 그때만 해도 내게는 신선한 정열과 객기가 살아 있을 때였다. 나는 사심 없이 어린 처남들과 병든 장모를 돌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장한 내 결심은 혜영의 유달리 날카로운 자존심을 건드렸을 뿐이었다. 그녀는 단호한 거절을 반복했고, 내가 조금만 강경하게 나오면 한숨과 눈물로 응수했다.
나는 끝내 지치고 말았다. 나의 박봉과 가난한 처족의 연관도 차츰 내 의식 속에서 첨예한 대립을 시작했다. 풋내기 중등 교원의 봉급으로는 만성 간장병 환자와 전문 학생이 포함된 여섯 식구를 부양할 수 없다는 사실을 늦게서야 깨닫게 된 탓이었다.
혜영에 대한 정열도 전만 같지는 못하였다. 거의 매주 토요일을 우리는 변두리 여관방에서 밤늦도록 함께 보냈고 그간 두 번이나 나는 핼쑥한 그녀를 산부인과에서 부축해 나왔다. 정말이지 나는 그녀의 가장 은밀한 곳에 있는 점 하나까지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그녀에 대한 혈연적인 애착과 연민을 기르는 대신 신선한 정열을 빼앗아 갔고 끝내는 이래저래 내 쪽에서도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 봄 내가 허 여사 댁으로 하숙을 옮기게 되면서 그런 사태는 더욱 악화돼 갔다. 내가 무슨 대단한 배신을 계획해서가 아니라 허 여사 탓이었다. 그녀는 별로 잦은 것도 아닌 혜영의 전화를 이유 모를 신경질로 대했고, 때로는 내가 멀쩡하게 곁에 있는데도 없다고 잘라 버리기까지 했다.
그 때문에 나는 공연히 송구해져 혜영의 전화를 받는 내 목소리는 본의 아니게 딱딱한 것이 되고 말았는데, 그것이 점점 드물어지는 우리들의 밀회와 함께 적잖이 혜영을 괴롭히는 것 같았다. 나를 만나는 혜영의 얼굴은 점점 수심으로 어두워져 갔고, 두 번에 한 번쯤은 다방의 희미한 조명 아래서도 반짝이는 눈물을 볼 수 있었다. 나를 난처하게 하고 우리 사랑을 피곤하게 만드는 바로 그 눈물이었다. 그리고 때로 그것은 참을 수 없는 흐느낌으로까지 발전해 내 지친 사랑과 연민을 더욱 진력나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일요일의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조간신문을 뒤적이던 나는 뜻밖에도 혜영의 방문을 받았다. 그녀는 아주 멀리서부터 나를 향해 똑바로 달려온 것 같은 자세였다. 그리고 당황스레 응접실로 인도해 간 내가 미처 자리에 앉기도 전에 빠르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다 됐어요. 모두 준비됐어요. 우리 한 달 후에 결혼하는 거예요. 네? 아시겠죠?”
무슨 불안감에 쫓기듯 거의 숨 한 번 쉬지 않고 말하는 그녀의 상기된 얼굴에는 일종의 귀기(鬼氣)마저 번득이는 것 같았다. 나는 일순 섬뜩했으나 이내 내 주의는 다른 곳으로 쏠렸다. 직접 찻잔을 받쳐 들고 나온 허 여사 쪽이었다.
그런 허 여사의 출현은 그때 이미 희미하게 자리 잡고 있던 마음 속의 결정을 더욱 확고한 것으로 만들었다.
가엾은 것. 혜영은 그때껏 내가 변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수삼 년 세월에 부대끼며 식어 버린 정열을, 실리에 영악해진 내 서른두 살의 나이를.
그러나 마음속의 의사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만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한다는 게 겨우 히물히물 웃게 되었고, 가족 문제를 묻는다는 게 돈 많은 재미 동포 삼촌이라도 돌아왔느냐고 이죽거리게 돼 버렸으며, 오랫동안 나를 피로하게 만든 그녀의 자존심을 나무란다는 게 그만, 이제 다 늙어 가며 결혼은 뭘, 하며 다시 히물히물 웃게 되고 말았다.
그때였다. 언제나 온순하고 침착하던 혜영이 그 어디에 그런 격렬함이 숨어 있었던지. 히물거리던 내 입이 다물어지기도 전에 내 뺨에서는 화끈함과 함께 날카로운 소리가 났고, 갑자기 멍청해져 버린 내가 무슨 일이 났는가를 깨닫기도 전에 혜영은 내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내가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을 때 텅 빈 방 안을 떠돌고 있는 것은 그녀가 남긴 비통하고 절망적인 목소리의 여운뿐이었다
“나쁜 사람. 나쁜 사람. 비열한 남자…….”
그런데 무슨 까닭이었을까. 대체로 내 희망과 일치하게 결말이 났음에도 갑자기 콧마루가 시큰해 온 것은, 끌리듯 달려 나간 대문께에서 상처 입은 작은 새처럼 파들거리며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뒤쫓던 내 눈이 때아닌 눈물로 몽롱해진 것은.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골목길을 꺾어 가던 그녀의 뒷모습이 그처럼 내 눈시울에 와 박힌 것은. 그리고 그 짧은 한마디가 두 달이나 지난 지금 다시 내 새벽을 찾아들어 나를 가해(加害)하는 것은…….
그러고 보니 또 들린다. 그것은 혜영의 목소리와는 반대편에서 가늘게 떨리고 있는 조카 훈이 녀석의 목소리이다.
“안녕히 계셔요, 삼촌…….”
하지만 그 목소리를 얘기하기 전에 나는 먼저 그 애의 아버지인 형을 좀 얘기해야겠다.
나보다 꼭 열두 살이 위인 그 형은 일찍 부모를 여읜 내게는 유일한 혈육인 동시에 보호자였다. 실제로도 형은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비교적 충실하게 그 역할을 했다. 자기는 뒷골목에서 거칠고 불안한 생활을 해 가면서도 내가 겪는 결핍이나 불편은 안쓰럽게 여기고 못 견뎌 했다.
그런데 고교 3년 때를 전후하여 형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대략 형이 지금의 형수와 오랜 동거 생활을 청산하고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릴 무렵부터였다. 형은 점점 나를 위해 쓰는 것을 아깝게 여기더니 나중에는 몇 푼 버스비에조차 인색해졌다. 그러다가 내가 근근이 대학에 적을 두게 되고부터는 완전히 경제적인 지원을 중단해 버렸다. 견디다 못한 나는 결국 가정교사로 나서게 됐는데 내가 알기로 그때 형은 그 어느 때보다 여유가 있던 때였다. 자기 세계
에서는 나름대로 지위를 굳혀 아담한 주점도 경영하고 청부업에도 손을 대 상당한 재미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형의 변화에 대해 내가 몹시 궁할 때면 한 번씩 신세를 지는 고모님은 항상 형보다는 형수를 나무랐다. 거리에서 아무렇게나 만난 여자가 돼서 유별난 우리 형제의 우애를 갈라놓았다는 식이었다.
한편 형 측의 주장은 달랐다. 그는 내게 대한 태도를 바꾼 데에 뚜렷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그 하나는 온실 속의 꽃처럼 자란 나에게 험한 인생을 단련시키겠다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내가 그를 실망시켰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이유에서는 그 근거가 옳고 그름을 따질 마음이 없다. 그러나 두 번째에 대해서는 나도 좀 짚이는 게 있다. 형은 검사나 사장인 동생을 원했는데 나는 문리대를 택했고 또 대학 초기에는 멋모르고 연극을 합네 어쩌고 하며 술잔깨나 좋이 마시고 다녔다.
그렇지만 내 편에서 허심탄회하게 말한다면 고모님도 형도 정확한 이유를 댄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차라리 이 시대의 필연적인 추세였다. 내 생각에는 우리의 윤리가 그렇게나 오래도록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한 것은 원시적인 보험 심리 때문이 아니었던가 한다. 마치 부모가 다른 동물에 비해 유달리 긴 성장기를 가진 자식을 아무 불평 없이 기르는 것은 또한 그만큼이나 긴 자신의 생산능력 없는 노후의 보장인 것처럼…….
하지만 우리의 경험과 실례가 보여 주듯이 그런 종류의 보험은 끊임없는 주의와 성가신 배려를 요하면서도 결과는 매우 불확실하고 비경제적이다. 그래서 인간은 보다 간편하고 확실한 보험을 요구하게 되었고, 거기 따라 여러 가지 사회적 보험 제도가 발명되고 진보돼 왔다.
결국 형의 변화는 보험에 대한 선호(選好)의 변화에 불과하였다. 그는 나에게 상환이 불확실한 보험료를 불입하기를 거부한 대신 다른 수많은 증권과 보험증서를 사들였을 뿐이었다. 그러기에 나는 불신당한 것이 약간은 씁쓸하였지만 별 원망 없이 형을 떠났다.
그 후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얻을 때까지의 긴 세월은 참으로 고단하였다. 휴학은 나의 뺄 수 없는 연중 행사였고, 남이 4년 다니는 대학을 나는 군대 포함 꼬박 9년이 걸려 졸업했다.
내가 그 어려운 세월을 보내는 동안 간간 듣게 되는 소식은 형이 크게 번창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그만 간이주점은 맥주홀로 변했고, 몇 억짜리 공사 청부도 곧잘 따낸다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근년 들어 어두운 풍문이 들리더니 이 겨울 마침내 빈털터리가 돼 버렸다는 말을 고모님으로부터 들었다. 그 어떤 보험이나 저축도 그를 구하지는 못한 듯했다.
나는 형의 번창을 시기하거나 기뻐하지 않은 것처럼 그의 몰락 또한 특별히 고소해하거나 술퍼하지 않았다. 따라서 달포 전 형이 초췌한 모습으로 나를 찾아와 그의 곤궁을 호소할 때도 담담하게 외면할 수 있었다. 조카와 형수가 의지할 방 한 칸 없이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한들, ‘사람은 자기가 신뢰를 둔 곳에서 그 신뢰를 찾아야 한다.’ 형은 자기가 보험료를 낸 곳에서 보험을 구해야 할 것이었다. 거기다가 실제로도 그 무렵 내게는 여윳돈이 거의 없었다. 새로 넣은 백만 원짜리 적금은 겨우 절반 정도 차 있었고, 먼저 탄 것은 건설주를 사 두었는데 그 무렵엔 연일 폭락 중이었다.
그런데 그날 맥 풀린 표정으로 돌아간 형은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궁한 나머지 옛 동료들과 무슨 불법한 일을 꾸민 모양인데, 그 일이 돈이 되기 전에 구속부터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내가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보호실에 있는 그에게 돈 몇 천 원과 구내식당의 설렁탕 한 그릇을 들여보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일찍 고시에 합격해 마침 관할 검찰청에 검사로 있는 동창이 하나 있기는 했지만 사기 같은 죄명을 가진 형을 부탁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훈이 녀석이 학교로 찾아온 것은 바로 그 며칠 후였다. 핏덩이 같은 젖먹이 시절부터 대여섯 살 때까지 내가 안아 키우다시피 한 녀석이었다. 형의 집을 나온 후에 어쩌다 고모님 댁 같은 데서 만나면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어 댔다. 그런데 그 녀석이 중학생이 돼 찾아왔다.
반가웠다. 그러나 녀석이 울먹이며 전한 소식은 하나도 반가운 것이 못 됐다. 끝내 형은 법원으로 송치됐고 형수는 몸져누웠다는 내용이 그랬다. 다시 말하지만 그런들 내가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다만 굶주림의 기색이 보이는 녀석을 위해 이만 원을 가불했다.
녀석은 돈보다는 내가 함께 가 주기를 원했다. 피곤한 일, 거기다가 나의 하루는 정연한 톱니바퀴처럼 시간과 시간이 맞물리어 돌아가고 있었다. 결국 만 원권 두 장을 꼬깃꼬깃 접어 주머니에 넣은 녀석은 눈물이 흥건한 눈으로 돌아섰다.
“안녕히 계셔요. 삼촌…….”
울음 삼켜진 녀석의 목소리에는 할 일을 다 했다는 내 기분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원인 모를 울음을 강요하는 여운이 있었다.
그런데 이해 못 할 일도 있다. 지금까지 내가 찾아낸 목소리들은 일견 서로 다르면서도 어딘가 공통적인 데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방금 찾아낸 이 목소리들은 전혀 그들과 성질을 달리한다. 거칠고 공격적이며 알코올 냄새가 난다. 아, 이제 알 듯하다. 바로 그놈들이다. 그 난폭하고 무례한 주정뱅이 놈들이다.
그러니까 오늘이 꼭 한 달이 된다. 그날 밤도 꽤 깊은 열 시경에 나는 한 떼의 불청객을 맞았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동창 녀석 하나와 시원찮은 신문사에 기자로 나가는 동창 녀석이 웬 낯선 녀석 둘과 작당하여 내가 있는 허 여사의 집을 급습해 왔다. 모두 웬만큼 올라 있는데도 하나씩 술병을 꿰차고 있었다.
기자 녀석의 말로는 전화번호를 이용해서 찾아왔다고 말했지만, 나는 단박 이 침입의 주동자가 누군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녀석임에 틀림없었다. 녀석은 평소에도 나를 방앗간에 앉은 참새 정도로 여기며 곧잘 허 여사와 나의 관계를 심문하듯 캐묻곤 했다. 심할 때는 허 여사의 속살이 희더냐, 그 기술은 좋더냐 따위를 물어 대다가 제 홍에 겨워 킬킬거릴 때도 있었다.
그런 녀석의 안내를 받고 왔으니 다른 녀석들의 정신 상태도 알만했다. 그들은 내가 허 여사와 결혼이라도 한 것으로 착각하고 애초부터 도무지 거침없이 굴었다. 대문부터 내가 잠옷 바람으로 누운 내 방까지 녀석들의 노크는 한결같이 발을 사용한 요란스러운 것이었고 목소리도 평상시의 두 배는 높았다.
그들의 너무도 당당한 기세에 오히려 눌려 버린 것은 나였다. 2층 허 여사 방에 끊임없이 신경을 쓰면서도 나는 웃는 낯으로 그들을 맞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전혀 반갑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두 동창 녀석은 학교 시절에 제법 가까이 지낸 사이였고 술도 오랜만이었다. 이미 나의 머리는 술을 원하지 않았지만 위는 아직도 때때로 술을 원하고 있었다.
이래저래 오래잖아 술자리는 어우러졌다. 원체 어려워하는 나 때문에 잠시 멈칫하던 녀석들도 이내 왁자하게 나왔다. 그래서 처음에는 김치 접시나 튀김 조각으로 만족하던 녀석들이 제법 큰 소리로 가정부를 불러 찌개 냄비까지 부탁하게 됐을 때쯤 가져온 술은 동이 나고 말았다.
비록 몸은 다소 취해 올랐지만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고 있던 내 머리는 그쯤서 술자리가 끝나 주기를 바랐다. 시간도 어느새 열한 시가 넘어 있었다. 그러나 웬걸, 녀석들은 판은 이제부터라는 식으로 나왔다. 내 강경한 거부 사인에도 불구하고 한 녀석이 기세 좋게 밖으로 뛰쳐 나갔다. 오래잖아 녀석은 다시 보드칸지 뭔지 하는 놈을 두 병 들고 오고, 사양을 무시한 녀석들의 집중 공세 속에 드디어는 내 머리도 느슨해지고 말았다. 열두 시쯤 다시 술이 떨어지고, 또 한 녀석이 술을 안고 오고…… 점입가경, 술자리는 한 시를 넘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쯤 해서 돌연히 나의 긴장을 자극할 일이 생겼다. 그때껏 정체를 숨기고 있던 문제의 낯선 녀석이 술에 취하자 섬뜩한 자신들의 정체를 털어놓은 것이었다. 과가 달라서 얼른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녀석들도 나의 대학 입학 동기였다. 그리고 어떤 유명한 불온 단체에서 무엇인가 불온한 활동을 하다가 몇 년씩 교도소 신세를 진 경력이 있었다. 그 때문에 일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아 그 무렵엔 변두리 사설 학원에 강사로 나가는 모양인데도 기세는 여전했다. 그들은 온건한 중등 교사인 내가 거의 깜짝깜짝 놀랄 만큼 불온한 얘기들을 함부로 내뱉었고 몸에 난 끔찍한 흉터들을 무슨 대단한 훈장처럼 자랑하였다. 그러니 내가 무슨 간으로 취하겠는가. 오직 그들이 떠나 주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으로 나는 졸음을 위장했고, 그러다 결국은 정말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은 기어이 터지고 말았다. 두 시쯤 해서 다시 술이 떨어지자 이번에는 기자 녀석이 자청하여 술을 사러 나섰는데, 그사이 허 여사가 그만 대문 자물쇠를 채워 버린 것이었다. 맙소사, 그놈의 괴상한 문은 그 자물쇠만 채워 버리면 안팎 어디서도 허 여사 혼자 보관하는 그 열쇠가 아니면 열 수가 없는데……. 그 대수롭지 않은 자물쇠 소리에 나의 잠은 천리만리 달아나고 말았다. 그때 복도를 지나는 허 여사의 가벼운 실내화 끄는 소리는 또 어찌 그렇게
도 선명하고 날카롭게 청각에 감응돼 왔던지.
그러나 곤죽이 된 방 안의 두 녀석은 여전히 기고만장 떠들어 댔고, 술로 머리가 돈 국어 선생 놈도 엄청난 말로 맞장구를 쳐 댔다. 대체로 지각한 사회주의자와 신화가 된 4·19의 엉성한 합창이었으며, 가장 위험스럽고 저질한 술주정이었다.
그들이 떠드는바 그 대의(大義)란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 그것은 기껏해야 우리의 국민 형성 교육이 주입한 가변적인 관념이다. 그들이 대단하게 믿고 섬기는 민주란 것도 따지고 보면 저 국민학교의 사회 시간과 중학교의 공민 시간, 고등학교의 일반 사회 시간, 그리고 대학교에서의 몇몇 양물(洋物) 든 교수의 강의 시간에서 추출된 허구에 불과하다. 어떤 특정 집단의 주문에 따라 선택되고, 구성된, 설령 세월이 가면서 그 내용이 듣고 배운 것과 조금 달라졌다한들 그게 무슨 대순가. 만약 저들이 소련서 태어났다면 지금쯤은 공산(共産)을 떠들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더 이상 그런 한가한 생각에 잠겨 있을 틈이 없었다. 내가 아직 몽롱한 졸음으로 나를 위장한 채 녀석들의 주정을 불안하게 듣고 있을 때, 어디선가 용케 술을 구한 바깥의 기자 녀석이 대문을 두드려 대기 시작했다. 녀석의 취한 목소리가 온 동리 개를 다 깨워 놓은 뒤에야 알아들은 방 안의 녀석 하나가 비실거리며 대문께로 나갔다. 하지만 견고하게 잠긴 두께 5밀리의 철판 문을 제가 무슨 수로 열어.
여전히 벽에 기대 눈을 감은 채 정세를 관망하고 있는 나에게 처음에는 안팎의 두 녀석이 히히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의 녀석은 밖의 녀석이 들어오지 못해 안달하는 것이 우스웠고, 바깥 녀석은 바깥 녀석대로 안의 녀석이 장난이라도 치는 줄 아는 듯했다. 그러나 장난도 유분수지, 그럭저럭 십 분 가까이나 대문 밖에 서 있게 된 바깥 녀석은 조금씩 화를 내기 시작해 드디어 대문에 쾅쾅 발길질을 해 댔다.
나는 이제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기분에 다급해지기 시작했지만 마음뿐 별다른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만큼 조금 전에 들은 허 여사의 방문 닫기는 소리는 거칠었고 그 자물쇠 소리도 단호했다. 도무지 내가 양해를 구해 볼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겠다는 투였다.
그래서 내가 망연해 있는 동안 다시 사건은 엉뚱하게 전개됐다. 바깥의 녀석이 무엇인가를 안으로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대문 안 녀석의 반응으로 보아 안주 봉지와 구두 한 짝인 것 같았다. 뒤이어 갑자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 조각이 깨져 흩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다시 날아온 구두 한 짝에 현관 외등이 박살난 것이었다.
그때 갑자기 2층 허 여사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이제 어떻게 일어나 볼까 하던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면 그렇지, 범 따로 포수 따로 있구나, 집이 부서질 판에 제가 대문을 열지 않고 배겨. 하지만 아니었다. 층계를 내려온 허 여사의 가벼운 실내화 끄는 소리는 곧장 대문께로 가지 않고 응접실 전화 있는 곳에서 멈췄다. 따르륵따르륵 다이얼은 꼭 세 번밖에 돌지 않았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한참 만에 알아차린 내가 그녀를 제지하려고 마음 먹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늦어 있었다.
“정동 ○○번진데요……. 괴한들이 침입해……네, 괴한 넷이…… 집을 부수고…….”
나는 뜨려던 눈을 도로 굳게 감았다.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난 뒤였다. 그때부터는 내가 깨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허 여사를 난처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짐작대로 멀리서 가까워 오는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올 무렵에는 아예 코를 골며 길게 누워버렸다.
응접실을 나가는 허 여사의 총총한 실내화 소리, 작은 철문을 따는 소리, 뒤이어 경찰과 방범대원들인 듯한 사내들의 낯설고 거친 소리, 그리고 취중이지만 아연해진 듯한 바깥 녀석의 더듬거리는 항의 소리, 나를 흔들어 대다 결국은 단념한 두 녀석은 내가 그들의 친구임을 누누히 강조했지만 야멸찬 허 여사의 목소리는 경찰을 재촉할 뿐이었다.
경찰은 완전히 홀로 사는 여인의 편이었다. 그들은 녀석들의 씨알도 안 먹히는 항의를 깨끗이 묵살하고 연행할 채비를 서둘렀다. 비록 그들이 정말 내 친구라 해도 흉기와 다를 바 없는 세 명의 주정꾼을 홀로 사는 미망인과 한 담 안에 둘 수 없다는 게 경찰의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조금 전까지도 대문 밖에서 악을 쓰던 기자녀석이 돌연 없어져 버린 일이었다.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에 놀라 달아나 버린 것일까 싶었으나 아니었다. 기다리다 못한 녀석은 좀 낮은 담을 이용, 허 여사 댁의 높은 담을 넘고 있는 중이었는데, 결국은 의기양양하게 화단 쪽 잔디 위로 뛰어내린 순간 마침 나머지 한 명을 찾고 있던 방범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그리고 거기서 녀석들과 경찰 간의 본격적 시비가 벌어졌다.
꼴에 기자라고 경찰에게 딱딱거리는 녀석 이 있는가 하면, 다급하게 내 이름을 불러 대는 녀석이 있었다. 뒤늦게서야 혀 꼬부라진 소리로 양해를 구하기도 하고 그 취중에도 경찰에게 잘해 보자고 수작을 건네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도 저도 다 잘 되지 않자 결국 다시 내 이름을 불러 대고, 대답 없는 내게 고래고래 욕설을 퍼붓고, 이윽고는 모두 끌려가 버렸다. 잠시 후 갑작스러운 정적 속에 들리는 것은 무슨 유령처럼 복도를 지나는 허 여사의 발자국 소리와 옷깃 스치는 소리뿐이었다. 이제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나는 그제야 맹렬하게 덮쳐 오는 취기 속에 멀어져 가는 그 소리를 들으며 아슴푸레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런데 그 밤 참으로 놀라운 꿈을 꾸었다. 허 여사와 내가 격렬한 성합을 나누는 꿈이었다. 그녀는 달아오른 혜영이보다 훨씬 뜨겁고 풍만했다. 그리하여 지루하리만큼 오래인 그 꿈은 먼동이 훤히 터 올 때쯤이야 끝이 났다. 그것도 내 방을 나가는 허 여사의 뒷모습을 본 것 같은 착각과 함께.
그 꿈의 기억이 어찌나 생생했던지 이튿날 아침 식탁에서 나는 몇 번이고 허 여사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그러나 약간 쌀쌀해 뵈는 그녀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동도 없었고, 결국 나는 그 밤 내 속옷을 버린 것은 망칙한 몽정에 지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에 이르렀다. 그 밤 일로 내게 남겨진 것은 다만 늦어 허둥지둥 달려간 교무실에서 비어 있는 동창 녀석의 자리를 발견했을 때의 철렁하던 가슴뿐이었다. 내가 별 가책 없이 들었던 녀석들의 욕설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더러운 놈, 약은 새끼, 가엾은 자식…….”
이해 못 할 전율을 강요하는 여운이었다. 아마도 이튿날 내가 다시 혜영의 집을 찾게 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혜영의 집 골목에 들어선 것은 마침 일요일 아침이어서 여기저기 나들이 옷차림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어디 가까운 교회라도 나가는 모양이었다. 따라서 혜영의 집 앞에 깨끗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몇 웅성거리고 있어도 나는 별로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왠지 쑥스럽고 죄 지은 듯한 기분으로 머뭇거리며 열린 문께로 다가가던 나는 돌연 그 좁은 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자동차 클랙슨 소리를 들었다. 돌아보니 웬 장의차 한 대가 좁은 골목길을 조심조심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묘하게 섬뜩한 기분으로 그 장의차가 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내 불길한 예감대로 그 차는 바로 혜영의 집 앞에 멈추었다. 그러자 집 안에서 몇몇 이웃이 기다렸다는 듯 관 하나를 들고 나왔다.
나는 원인 모를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는 그 관의 임자가 틀림없이 혜영의 어머니, 혜영의 연약한 몸에 커다란 종기나 혹처럼 달려 있던 그 병든 노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측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약간 억울한 기분으로 그 관을 비켜서는데 갑자기 산발을 한 노파 하나가 사람들을 뿌리치고 달려 나왔다. 관을 부여잡고 몸부림치는 것은 바로 혜영의 어머니였다.
“혜영아, 못 간다. 못 가. 가면 내가 가야지……. 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
나는 순간 무슨 둔중한 흉기로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집칸 장만하고…… 이제 겨우 살아 볼까 했는데……. 아이고 하느님…….”
동네 아낙네 몇이 그런 그녀를 달래며 관에서 떼 내려고 애썼다. 그녀는 심하게 몸부림치며 통곡했다. 구경하던 몇몇 여자도 돌아서서 옷깃으로 눈물을 찍어 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들에게 다가갔다.
“참 착한 처녀였는데 그만 무리를 했나 봐요. 쯧쯧, 혼자 힘으로 그 많은 식구 다 거두고 점포까지 장만했으니…….”
“맞아. 요즘 들어 부쩍 심했지, 근래 몇 달은 잠도 제대로 자는 것 같지 않았어. 바로 그저께만 해도 새벽까지 그 처녀 방에서 찰카닥거리는 타이프 소리가 났지…….”
아아, 가엾은 것. 그것이었더냐. 너의 준비는. 그것을 위해 너는 생명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를 다 태워 버렸느냐……. 내 가슴에는 꼭 혜영의 파리한 심장만 한 구멍이 나고 끊임없이 찬바람이 불어가는 것 같았다.
그날 나는 진종일 술을 마시다 밤이 깊어서야 허 여사 댁으로 돌아갔다. 허 여사는 그때까지 자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응접실 소파에 꼿꼿이 앉은 그녀는 무슨 차가운 조각과도 같았다. 보통 때 같으면 상당히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내 방으로 갔을 테지만 그 밤은 달랐다. 술로 더욱 과장된 슬픔과 공허가 내게 일종의 도전적인 용기를 준 것이었다
나는 허 여사 맞은편에 털썩 기대앉으며 거침없이 술을 요구했다. 그녀는 일순 멈칫하더니 아무 말 없이 2층 거실로 올라갔다. 잠시 후 양주 한 병을 가져다 놓은 그녀는 이어 부엌으로 가 안주 한 접시와 얼음 채운 잔을 내왔다. 놀랍게도 잔이 둘이었다.
새로운 술기운이 내 몸을 한바퀴 돌 무렵 나는 비로소 혜영의 죽음을 얘기했다 계속해서 내 과장된 슬픔과 공허도 얘기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혜영의 죽음을 전하면서 무심코 허 여사의 표정을 살피던 나는 갑작스러운 혼란에 빠졌다. 취중의 기억이긴 하지만 그녀는 분명 반짝 눈에 띄는 미소를 보였다. 막연했던 내 기대를 강한 확신으로 바꿀 만한 것이었다. 거기서 내 감정은 역류를 시작했다.
나는 애써 그날 하루 나를 지배했던 기분을 감추고 대신 흔쾌하게 떠벌렸다. 이제 무거운 짐을 벗은 기분이라고, 나는 내 젊은 날의 감상에 너무 비싼 대가를 치러 왔노라고, 그리고 내가 두려워 스스로 피했던 혜영의 식구들을 마치 내게 부당한 폭행이라도 가한 것처럼 각색해 얘기했다. 전날 집을 소란스럽게 한 녀석들의 무례함과 어리석음을 열렬히 비난하기도 하고, 허 여사에게 앞뒤 없는 찬사를 바치기도 하였다. 그러다 한 시가 넘어서야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그날 밤 나는 또 놀라운 꿈을 꾸었다. 역시 허 여사와 성합을 나누는 꿈인데 그것도 두 번씩이나 반복되었다. 전보다 훨씬 현실감 있고 밀도 높은 그 꿈속에서 허 여사는 무슨 뜨거운 뱀처럼 집요하게 감겨 왔다. 새벽 으스름 속에 내 방을 나가는 허 여사의 뒷모습을 본 것 같은 느낌도 전보다 훨씬 선명했다.
뿐만 아니라 그 이튿날 아침부터는 모든 것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정부 아줌마는 전에 없이 인삼즙을 내왔고 식탁은 잔칫상처럼 풍부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내가 무거운 몸으로 출근을 서두르고 있을 때 바깥에서 들려온 허 여사의 목소리였다.
“선생님께선 편찮으셔서 오늘 출근 못 하신다고 말씀드려라.”
등교하는 미애에게 하는 말이었다. 결국 출근을 단념한 내가 허 여사의 권유로 느긋한 목욕을 마치고 나왔을 때는 거처하는 방조차 바뀌어 있었다. 미애의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썼다는 이 층의 넓은 서재였다. 그제야 나는 간밤이나 그 전날 밤 허 여사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이 꿈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성(城) 안으로 들어간 나무꾼의 아들은 마침내 귀부인을 손에 넣었다. ― 나는 새 방의 넓고 폭신한 침대에서 다시 혼곤한 잠에 빠져들며 난데없이 십여 년 전 대입 수험 준비 시절에 읽은 적이 있는 영문 한 구절을 떠올렸다. 날이 새는 대로 혜영의 무덤에 생전에 좋아하던 백합이라도 한 송이 바치자던 간밤 술집에서의 결심은 어느새 어리석기 짝이 없는 감상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쁜 것은 바로 그 이튿날 새벽이었다. 집안 사람들의 눈을 꺼린 탓인지 밤새도록 보채던 허 여사가 자기 방으로 돌아간 후, 아슴푸레 잠이 들려던 나는 최초로 그 새벽의 소리를 들었다. 이미 말한 대로 처음에는 그저 흰색과 푸른색의 울적한 조화처럼 느껴지다가 이윽고는 고문자들로 변해 버린 소리였다.
어떤 사람은 그 새벽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내 고통을, 마비된 양심과 잠든 의식이 마땅히 받아야 할 응보라고 말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런 해석에 승복할 수 없다. 그게 편의며 지혜이지 어째서 마비고 잠이란 말인가?
나는 억울하다, 억울하다, 다시 억울하다.
(1982 년)
2016년 11월 29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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