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학기 수업진단평가서
수업 과목: 미학
수업 일자: 2012. 10. 4.
이 름: 송혜성
1. 오늘 공부한 학습 주제와 학습내용 중 학습주제를 설명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용어를 5개 쓰시오.
- 수행이론, 사실, 인정, 공표적 진술, 권위.
2. 위의 중요한 용어를 활용하여 학습주제를 200단어의 문장으로 논술하시오.
- 예술을 정의하려는 시도는 “예술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본질’은 하나의 범주로 묶인 대상들이 그 외형이 어떻든 간에 결코 잃어선 안 될, 또는 잃어버리지 못하고 지니고 있는 공통된 속성이다. 예술을 정의한다는 말은 이러한 것을 찾겠다는 것이다. 즉 고래로 예술이라 여겨왔던 모든 것들을 하나로 수렴시킬 수 있는 접합점을 찾아야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무엇인지 명료해지기는커녕 그것이 존재하는지조차 의심스러워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인류는 예술을 정의하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예술이란 개념이 상당히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계속 뭔가를 예술로 받아들여 끊임없이 창작하고 감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의 실존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명쾌한 해답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제도이론은 예술의 본질 찾기를 포기한다. 그 대신 예술이라 불리는 뭔가가 공인되고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공인은 그 대상이 제대로 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모종의 집단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 전 인류에게 인정받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공인한 집단 내부원들은 그것을 예술로 받아들였다. 이를 정의 개념으로 확대하기 위해 오스틴의 ‘수행이론’이 끼어든다. 수행이론은 인간의 언어활동이 참과 거짓으로 판별 가능한 진술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실제적으로 인간의 진술 영역에는 표현과 수행을 동반하는 진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수행적 진술은 표현과 동시에 수행이란 ‘사실’이 이뤄지기 때문에 참과 거짓 잣대를 들이밀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이론의 핵심이다. 대부분의 공표적 진술이 이에 속하는데, 어떤 공표적 진술이 수행언어의 범주에 포함되기 위해선 몇 가지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바로 의사소통 당사자 간의 ‘인정’이다. “미안해”라는 공표적 진술이 ‘사실’로서의 공신성을 얻기 위해선 당사자가 충분히 미안할 만하다는 상대의 ‘인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대의 인정이 사회 차원으로 확대되면, 그 대상의 공표적 발언은 그 사회 내부에서 ‘권위’를 가진다. 디키는 오스틴의 이러한 이론을 차용해서, 뭔가를 예술로 받아들일 만한 권위를 가진 최소한의 공인된 집단을 ‘예술계’라고 칭하며 이들이 예술을 규정한다고 말한다.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따지기 이전에, “이것은 예술이다.”라고 실제적으로 공표되는 대상들이 있고, 그것을 공표하는 주체가 소위 ‘예술계’라 칭해지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즉, 실제적으로 예술은 당대의 예술계란 집단에 의해 선언적으로 규정되고 있는 무엇이다. 제도이론은 이런 식으로 예술을 정의한다.
3. 오늘의 학습 내용 중 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질문 형식으로 쓰시오.
- 조지 디키는 예술계란 집단에 대해 적법한 원칙 아래 공식적으로 언명된 집단이 아니라, 관례에 의해 공인된 집단으로 표현합니다. 누구 말마따나 어겼다고 쇠고랑 차는 성문법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이러한 사람은 예술계의 일원으로 인정한다’는 관습적인 규범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권위를 존중해서, 이렇게 인정받은 대상들이 예술 작품으로 뭔가를 제시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예술이 아니겠느냐는 것이 제도이론의 요지입니다. 예술계의 경계선을 관습이나 관례가 규정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 말은 그 경계선이 상당히 두리뭉실하다는 말이 됩니다. 상당히 느슨한 맛이 있는 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관습이나 관례는 ‘절대성’이라는 개념과는 무관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즉, 모종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파괴나 변용의 여지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 모종의 조건이란 관습이 통용될 수 있는 사회 구성원 절대다수의 ‘인정’입니다. 수행이론의 말마따나 ‘권위’는 인정받았을 때 실효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관습은 어떤 민주적인 협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대다수의 동의로 폐기될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현 예술계는 민주사회의 대중과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 예술계가 아직 권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대중이 아직 그들의 관습적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입니다. 그러나 이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면, 언젠간 대중은 기존의 관습을 폐기할 것이고, 현 예술계는 그 선언자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제도이론이 옳다면 말이죠. 또한 민주제도의 중우성(衆愚性)이란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한다면, 제도이론 또한 그러한 수순을 밟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과연 이것이 엄밀하게 말해서 예술을 정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4. 오늘의 수업활동에서 재미있었거나 인상적인 것 또는 수업 방법 중 개선을 바라는 의견이 있으면 쓰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