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어머니 아들인 것이 두고두고 자랑스러울 거예요.”
오늘 어머니를 나주 남평재림묘원에 모셨다. 어릴 때는 어머니로, 젊었을 때는 스승으로, 장년이 되어서는 멘토로, 정년퇴임 이후에는 친구로 어머니와 함께 한 긴 세월이 감사하고 감사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믿음의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도록 섭리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밖에 없다. 어머니는 내게 요새요 방패이며 축복이요 특권이었기 때문이다.
장례일정 내내 부활의 그 아침을 기대와 설레임으로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으며 앞날에도 어머니처럼 올곧게 다져 가리라 다짐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어머니께서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신 게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었다.
내가 어릴 적 기억에 네 형제가 자라나면서 사용한 방은 금요일에 한 번 정리하는 것 외에는 늘 모든 것이 어지러웠다. 가끔은 성경 책 위에 다른 물건이나 책이 올려 지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누가 이랬냐?”며 혼을 내셨다. ‘거룩한 하나님 말씀 위에 세상 것을 올려 놓지 말라’는 뜻이었다.
겨울이 되면 창호지 문에 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성경을 읽을 때면 아랫목 온기가 있는 곳에 엎드려 읽으면 그나마 추위를 피할 수 있었기에 자연히 이불을 덮어 쓰고 배를 바닥에 깔고 엎드려 읽었다. 그러다 어머니께 들키면 “누가 엎드려서 성경을 보냐…?” ‘아무리 추워도 거룩한 말씀을 바른 자세로 앉아 읽어야지…’라는 따가운 책망이 따랐다.
냉기를 느끼는 아침이면 불호령 같은 훈계를 받았음에도 자연스레 아랫목에 엎드려서 성경을 읽게 되고 어머니 인기척이 나면 얼른 일어나 바른 자세로 앉아 읽는 것처럼 자세를 취했던 기억이 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우리 형제들도 넉넉하게 자라지 못했다. 백운동 집 부엌 옆에는 감나무가 있어 9월쯤 어느때부터 인가 익어서가 아니라 벌레가 먹어 일찍 떨어지는 감은 떫은 맛이 적어 먹을 만 했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깨면 그 감나무 밑을 살피는 일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했다. 밤새 떨어진 감은 주은 사람이 임자이기 때문이다.
아침예배를 드리는 동안 떨어지는 감이 기와지붕에 맞고 양철 물받이에 튕기고 떨어지면 어디쯤 굴러 떨어졌다는 감이 잡힌다. “묵상으로 예배를 마치겠습니다”는 말이 떨어지자 마자 형제들이 감을 잡은 위치로 뛰쳐나간다. 그러다 더 빨리 가기 위해 성경책을 넘어가면 그 날은 감을 먹지 못한다. “너 이리와!” “아무리 바빠도 성경책을 발로 넘어가다니…” 그럴 때면 감을 먹지 못했다는 생각에 입이 오리주둥이처럼 나오곤 했다.
그 시절 저녁예배가 어린이반이 끝나고 나면 어른들의 예배가 시작되어 늘 어머니와 교대를 했다. 아버지께서는 세무공무원이셨고 신앙을 하지 않으셨기에 퇴근 후 어머니가 교회에 가고 없는 일로 불만이 많으셨다. 술을 좋아하셨기에 예배일 저녁에는 거의 술을 드시고 오셨다.
어느 날은 퇴근 후 어머니가 교회 간 것을 아시고 대문을 잠그시고 “엄마가 와도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마. 알았어!” 호통을 치셨다. 잠시 후 엄마가 대문을 두드리며 “학봉아, 엄마다 문 열어라!” 엄마 소리에 대문을 열려고 나가면 아버지는 다시 소리를 치셨다. “문 열어주지 마!” 난 그 때 ‘난 저 술은 절대 안 마실거야’ 다짐을 했고 정말 그 뒤로 술과 관계 없이 살았다.
한 번은 또 어머니께서 예배를 마치고 오시자 아버지께서 성경을 빼앗아 찢어 마당에 버리셨다. 어머니께서는 찢긴 성경을 모아 가슴에 품고는 “차라리 저를 죽이세요” 눈물을 흘리셨다. 그 많은 핍박을 받으시면서도 신앙만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다.
장성군 진원면 산정리에 농협 사택으로 지어 놓은 적산가옥이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퇴직 후 이를 구입 하셨고 평생 그곳에서 사셨다. 사택구조는 미닫이 문들과 다다미 방으로 구성되었는데 남향으로는 긴 마루가 있다. 어느 날 집에 갔는데 그 마루 한편에 문을 달아 놓은 것이 보였다. “어머니 여기에 왜 문을 다셨어요?” “응, 니 아버지 방에서 담배 피운께 성경 읽을라고…” 어머니는 담배연기 없는 곳에서 성경을 읽기 원하셨고 그 공간을 오랜 기간 개인 기도실로도 사용하셨다. 만약 누군가 어머니를 한 마디로 정의 하라면 "성경 한 권의 사람"이라 할 것이다.
취토를 하며 마음으로 “우리 어머니 최고…!”라고 두 손의 엄지를 하늘로 향해 내밀어 드렸다.
“어머니, 어머니 아들인 것이 두고두고 자랑스러울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