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화/김상옥
비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 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 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 주던
하얀 손 가략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 속에 보듯 힘줄만 서누나.
===[한국 대표 명시 1, (46쪽), 빛샘]===
김상옥(金相沃)
호는 초정(草丁). 아버지는 김덕홍(金德洪)이고, 어머니는 진수아(陣壽牙)이며 형제는 누이만 6명이다.
김상옥(金相沃)[1920~2004]은 1920년 5월 3일[음력 3월 15일] 경상남도 통영시 항남동 64번지에서 태어났다. 1926년 서당 송호재(松湖齋)에서 공부하였는데, 학생 중 가장 어렸지만 공부를 잘하여 시험 때마다 ‘괴(魁)’[으뜸의 성적]를 받았다. 1927년 통영공립보통학교[현 통영초등학교]에 입학하여서는 그림과 동시(童詩)에 소질을 보였다. 음악가 윤이상(尹伊桑)이 같은 학교 1년 선배, 시인 김춘수(金春洙)는 2년 후배다. 1933년 통영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통영의 남강인쇄소에 인쇄공으로 취직하였다. 1938년 『맥(貘)』 동인으로 시 「모래알」 등을 발표하였다. 1939년 『문장』에 시조 「봉선화」가 추천되었고, 1941년 『동아 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낙엽」이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시작 활동에 나섰다. 1947년 첫 시조집 『초적』을 발간하였다. 1954년 통영문인협회[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통영지부]를 재건하고, 동인지 『참새』를 타블로이드판으로 복간하였다.
1936년 송맹수(宋孟秀), 김기섭(金杞燮), 장응두(張應斗), 윤이상 등과 함께 일경에 체포되는 등 반일 사상을 갖고 있다는 혐의로 수차례 옥고를 치렀다. 삼천포, 통영, 마산에서 교편을 잡았고, 1959년 부산으로 옮겨 경남여자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1962년 4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산지부[1963년 한국문인협회 부산지부로 개칭]의 창립 회원이 되었다. 경상남도와 부산에서 활동하다가 1962년 서울로 이주하였다. 시서화(詩書畵)와 자기(磁器)에도 조예가 깊어 서울 인사동에서 골동품 상점 아자방(亞字房)을 운영하면서 『동아 일보』, 『중앙 일보』 등의 신춘문예 심사 위원을 지내기도 하였다. 2004년 10월 31일 85세로 세상을 떠났다.
<부산향토문화백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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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옥 시인은 누님만 6분을 두셨으니
봉선화꽃으로 손톱에 물을 들였던 모습을
시로 탄생시키셨나 봅니다.
세월은 흘러 손에 선 굵은 힘줄을 보며
그 시절 누님과 양지에 마주 앉아
봉선화 꽃물을 실로 매어 주던 생각을 하시면서....
고향은 언제나 포근하고 다정하며 그리운 곳입니다.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적토마 올림=
https://youtu.be/9rVnBELr8kM?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