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지극한 정성으로 세상을 바꾼다.
- 영화 《역린》을 보고 -
글 -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 수도인 中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바뀐다. 온 정성을 다해, 하나씩 배워간다면 세상은 바뀐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정조가 광백(조재현)을 몸소 베고 그 불쌍하게 갇혀있던 아이들을 구해낸 후 너무도 멋진 표정으로 말을 타고 달리며 마음으로 외치는 말입니다.
영화 초반 정조가 대신들과의 경학 자리에서 이론만 반복하는 대신들에게 “학문은 실천하지 않으면 죽은 것이다.”란 생각을 표명하는데, 그래도 여전히 대신들은 이론이 기본이라고 하자 정조는 “그렇다면 대신들 중 『중용』 23장을 욀 수 있는 자가 있으면 나오라!”고 하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정조는 상책(정재영)에게 말합니다. “상책은 욀 수 있겠는가?”라고 하니 상책은 다음과 같이 『중용』 23장을 외웠습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서 베어 나오게 되고, 겉에 베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고전 글귀를 이렇게 감동적이고, 아름답고, 로맨틱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니… 영화를 같이 본 분이 이 『중용』 23장의 원문과 해설을 찾아 보내주셨습니다.
其次致曲(기차치곡)01 曲能有誠(곡능유성) 誠則形(성즉형)
그 다음(지성에 이르는 방법)은 자세함에 이르는 것이다.
곡은 능히 정성이 있고, 정성이 있으면 곧 형상이 있고,
形則著(형즉저) 著則明(저즉명) 明則動(명즉동)
형상이 있으면 곧 드러남(뚜렷함)이 있고, 드러남이 있으면 곧 밝아짐이 있고, 밝아지면 곧 움직이고,
動則變(동즉변) 變則化(변즉화) 唯天下至誠爲能化(유천하지성위능화)
움직이면 곧 변하게 되고, 변하면 곧 고쳐지니,
오직 천하의 지극한 정성만이 능히 새로워질 수 있다.
노비 등의 천민과 서얼도 섬세히 살피신 정조의 부드러우면서 강인한 면모를 훌륭히 연기한 배우(현빈)도 정말 멋졌습니다. 정조는 세종대왕 다음으로 정조대왕이라 할 만큼 남다른 백성 사랑, 혁신적 마인드, 실천적 자세, 뛰어난 머리를 가졌습니다. 또한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 안에서 손톱이 문드러지도록 벽을 긁다가 돌아가시는 걸 눈앞에서 목도해야 했던 비운을 겪었으며, 노론의 끊임없는 암살 위협에도 스스로를 지켜내며 싸워야 했습니다.
영화 《역린》은 정조가 세손에서 왕위에 오른 지 1년, 1777년 7월, 여름 어느 날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하루를 통해 우리는 왕 역할을 훌륭히 해낸 이산이란 한 사람,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사랑과 아픔을 그대로 경험합니다.
정조는 주로 학자 타입으로 많이 표현되어왔는데요, 여기선 조금 다릅니다. 엄청난 훈련으로 다져진 식스팩 근육에 강 건너 살수의 움직임도 포착해 정확히 활을 쏠 수 있는 무인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새벽 3시, 팔굽혀펴기 운동 후 내관 상책이 만들어준 모래주머니를 몸에 차고 옷을 입고 책을 읽습니다. 잠을 잘 수 없는 정조, 그의 투쟁 같은 삶을 봅니다.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이 영화가 눈물 나게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투쟁 같은 치열한 삶 속에서도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고, 살리려 하고, 지키려 하는 사람다움이 그 중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정조를 죽이기 위한 살수로 어린 시절부터 투입되었지만
어린 이산의 아픔을 보고 ‘죽이려는 자’에서 ‘살리려는 자’로 바뀌고,
그 끔찍한 살인병기 제조 막사에서 어린 ‘220번’ 아이를 살펴주고
을수란 이름을 지어준 갑수.
최고의 살수가 되었지만 아리따운 세답소 궁녀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왕을 죽이기로 하는 을수.
목숨을 걸고 왕의 옷에 ‘부디 위험에서 몸을 피하시고 세상을 바로 잡으소서’란
내용을 넣은 세답소 궁녀.
이 사람들의 운명적 만남 가운데 펼쳐지는 이러한 사랑의 마음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나게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에 앞장 선 철천지원수 구장군을 한순간에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 대왕대비의 역모 전말을 덮겠다고 말하는 정조의 그 마음의 크기를 헤아리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살인병기 제조 막사의 광백은 죽기 전에 “나 하나 죽는다고 세상이 바뀔까요?”라고 묻습니다. 그에 대한 답은 정조 대왕이 아끼신 저 『중용』의 글귀가 되겠습니다.
“분명히 바뀐다. 작은 것 하나 하나 정성을 들일 때, 그런 사람의 지극한 정성으로 세상은 바뀐다.”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은 저렇게 애써주신 선조들의 지극한 정성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세상을 바꿔 행복한 미래를 후대에 전해주기 위해 저 또한 작은 것부터 온 정성을 다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가 수많은 업적을 세우시고 가신 정조대왕을 이렇게 멋진 영화로 보게 해주신 영화 제작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01 致曲이라 함은 仁ㆍ義ㆍ禮ㆍ智 또는 孝ㆍ悌,ㆍ忠ㆍ信 등 어느 한 덕목을 극진히 실현하는 것이다. 이 세세한 덕목 하나하나에도 진실무망이 깃들어 있으니 이를 확충해 나가면 지성에 도달하게 된다고 했다. 즉 성인의 경지는 노력 여하에 따라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 대순회보 1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