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기 좋은 곳을 안다/이명수
―D 시인에게
울 만한 곳이 없어 울어보지 못한 적이 있나
울음도 나이테처럼 포개져 몸의 결이 되지
달빛 젖은 몸이 목숨을 빨아 당겨
관능으로 가득 부풀어 오르면
그녀는 감춰둔 울음의 성지를 순례하지
징개맹개 외배미들은 아시겠지
망해사 관음전에 마음 놓고 앉았다가
바다 끝이 뻘밭 지평선에 맞닿을 때
심포항 끼고 바삐 돌아 화포포구로 가지
갈대는 태어날 때부터 늙어 버려 이미 바람이고
노을이고 눈물이지
갯고랑이 물길을 여는 나문재 소금밭으로 가 봐
갯지렁이 몸을 밀면서 기어간 뻘밭의 자국들
그것이 고통스런 시쓰기의 흔적처럼 남아 있을 때
뒤돌아 봐, 울음이 절로 날 거야
갯고랑처럼 깊이 파인 가슴 한쪽이 보이지
그래도 울음이 솟지 않거든 한 번 더 뒤돌아 봐
녹슨 폐선 하나 몸을 누이다 뒤척이며 갈대숲 너머로 잠기고 있을 거야
거기 낡은 폐선 삐걱이는 갑판에 역광으로 꿇어앉아
울고 있는 여자 하나 보일 거야
깨진 유리창 틈으로 흔들림이 미세한
울음의 음파가 허공에 닿아
길 떠나는 도요새 무리들 울리고 있을 거야
울음도 감염되어 분열하고 성장해서
화포포구엔 울기 좋은 울음의 성지 오래된 소금창고가 남아 있는 거지
그곳 우주 가득한 관능을 빨아들이며
잠몰하고 있는 달빛 아래
바로 그녀가 울음의 찐드기야
―『현대시』 2008년 1월호
* 이 시에서 시인은 울기 좋은 곳과, 그곳에서 울고 있는 한 여자를 추적한다. 그녀는 “달빛 젖은 몸이” “관능으로 가득 부풀어 오르면” “감춰둔 울음의 성지를 순례하”는 습관이 있다. 따라서 “울음의 성지를 순례하”는 그녀를 만나려면 “바다 끝이 뻘밭 지평선에 맞닿을 때/심포항 끼고 바삐 돌아 화포 포구”의 “나문재 소금밭으로 가”야 한다. “거기 낡은 폐선 삐걱이는 갑판에 역광으로 꿇어앉아/울고 있는” 그녀가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갯고랑처럼 깊이 파인 가슴”을 지닌 여자, “울음의 음파가 허공에 닿아/길 떠나는 도요새 무리들 울리고 있을” 여자, 어쩌면 그녀는 거기 “울음의 성지 오래된 소금창고”에서 발견될는지도 모른다. “울음의 찐드기”인 그녀는 지금 “그곳 우주 가득한 관능을 빨아들이며/잠몰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이은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