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18. 1. 14. 일요일.
중국발 미세먼지 주의하라고 충남 지방 농업기술센터에서 문자왔다.
어제 오늘 종일 서울 아파트 안에 머물면서 다가오는 음력설 차례와 어머니의 대상(3년상)에 관해서 제사문화를 파고 들었다.
조선시대(1392 ~1910년)는 제사(제례)에 미친 사회였다.
忠孝思想을 강조하기 위하여 제례문화에 바탕한 유교윤리를 엄청나게 강요했다.
내가 이틀간 설 차례를 지내려고 검색한 바로는 온통 한자 투성이의 제사절차였다.
한자를 모르고서는 이해불가능한 제례법도.
아래는 하나의 예다(4자성어)
고비합설(考妣合設) : 내외분일 경우 남자 조상과 여자 조상은 함께 차린다.
고서비동(考西妣東) : 두 분을 한상에 모실 경우 신위의 위치는 서쪽이 아버지, 동쪽이 어머니
시접거중 : 밥(메)는 서쪽이고 국(갱)은 동쪽이다(산 사람과 반대)
적접거중(炙楪居中) : 구이(적)는 중앙에 놓는다.
어동육서(魚東肉西) : 생선은 동쪽에, 고기는 서쪽에 놓는다.
동두서미(東頭西尾) : 대가리를 동쪽에 향하고, 꼬리는 서쪽을 향한다.
동미서동(東尾西頭) : 이렇게 하는 곳도 있다.
두동미서(頭東尾西) :
배복방향(背腹方向) : 닭구이나 생선포는 등이 위로 향한다.
면서병동(麵西餠東) : 국수는 서쪽에, 떡은 동쪽에 놓는다.
숙서생동(熟西生東) : 익힌 나물은 서쪽이고, 생김치는 동쪽에 놓는다.
생동숙서(生東熟西 : 김치는 동쪽, 나물은 서쪽
서포동해·혜(西脯東醢·醯) : 포는 서쪽이고. 생선젓과 식혜는 동쪽에 놓는다.
좌포우혜(左胞右醯)
홍동백서(紅東白西) : 붉은 색의 과실은 동쪽에 놓고, 흰색의 과실은 서쪽에 놓는다.
동조서율(東棗西栗) : 대추는 동쪽이고 밤은 서쪽에 놓는다.
조율시이(棗栗枾梨) : 대추, 밤, 감, 배(씨를 기준 1임금, 3정승, 6관직, 8관찰사)
조율이시 : 대추, 밤, 배, 감
좌반우갱(左飯右羹) :
주과포혜
남좌여부 : 左南右女
건좌습우(乾左濕右) : 마른 음식은 왼쪽에 물기 있는 음식은 오른쪽
접동잔서(接東盞西) : 접시는 동쪽, 잔은 서쪽
적전중앙(炙煎中央: 적과 전은 줄의 중심에 놓는다.
조선시대에서 한자를 알 수 있는 계급은 왕족, 양반, 선비 계급이었지 일반 백성은 한자를 배울 기회조차도 별로 없었다.
수십 년 전, 내가 서해안 벽촌에서 살았는데 그 당시에도 노인네들이 유식한 사람이 있었고,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무학의 사람들이 관청에 일을 보려면?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했고, 자기네 제사를 지내려고 해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도움을 받으면 당연히 어떤 댓가가 오고 갔을 터.
조선시대에 한자를 안다는 것은 지식의 독점이었다. 권력과 부(재산)을 가질 수 있는 도구였다.
이름하여 '지식의 독점'이었다.
지금은 2018년.
지식의 독점은 한자가 아닌 영어, 전문분야이다.
내 경우이다.
1975 ~77년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영어시험이었다. 한자시험은 없었다.
어떻게 해서 영어시험도 통과했고 직장생활했고, 나이 오십 살 가까이나 영어책을 손에 들었다.
그 퇴직을 앞두고는 도보여행, 등산 등을 즐겨했기에 자연지리에 관심을 가졌고, 영어는 잊었다. 취미와 실속이 있는 농업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실용적인 자연과학이다.
퇴직한 뒤로는 지식독점사회에서 벗어나서 '영혼이 자유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함께 살던 어머니가 고령으로 먼 여행을 떠난 뒤 어지간치 마음의 정리가 되었기에 지난해 봄부터 문학카페에 다시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문학카페라서 그럴까?
시, 소설, 평론이 주인가? 수필은 서자취급을 받는 것일까? 신변잡기, 신변잡문이나 쓰기에?
나는 수필도 아닌 산문 즉 잡문이나 긁적거린다.
나는 서울에서 머물기 시작하면서 다시 책벌레가 되기 시작했다.
최근에 서점에 가서 책을 보기 시작했다. 시보다는 수필이나 산문글이 훨씬 많다는 점을 부인하지 못한다.
서가에 꽂힌 책들이 문학인이 아닌 사람들이 쓴 산문글보다도 훨씬 재미나고, 지식과 정보가 들어서 실용적이라고 보았다. 서점에 가득 찬 책의 분량을 비교하면 말이다. 이 가운데 내가 관심을 갖는 우리 땅, 섬 여행, 갯벌 여행, 나무와 꽃 가꾸기, 산약초 발효학, 새, 토속문화 등이 다양했다.
과거시대, 조선시대, 구한말시대에는 한자을 많이 아는 계급이 지식을 독점했다는 증거일까?
예전 대전에서 시아버지가 오시면 서해안 시골집 안사랑방에는 시조꾼들이 와서 몇날 며칠을 시조 불렀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내가 대전으로 전학갔을 때 대전 할아버지 방에는 한학자들이 늘 꿰었다. 시조꾼도 벅실거렸다. 붓글씨 쓰는 노인네들은 상투 틀고, 갓 쓰고, 도포차림으로 들락거렸다.
할아버지는 1962년 12월에 돌아가셨고...
나는 1949년생이니 학교 다니면서 한자가 아닌 영어에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영어를 조금이라도 해야 했다. 직장 다니면서 영어로 된 서류를 보고, 더러는 외국인과 말을 해야 했기에.
퇴직한 뒤 10년째인 2018년 지금.
농사꾼인 내가 판단하기에는 '지식의 독점'은 영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문분야로 저변확대되었다.
소위 '지식의 민주화 시대'이다.
2.
나는 한글이 정말로 좋다.
한자는 지식을 독점했지만 한글은 지식을 공유하기에.
어제 오늘 차례, 제사 등에 관해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는 내가 미치는 줄 알았다.
관혼상제(冠婚喪祭), 가례(家禮)풍속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쓸모가 없는 것들이다.
한자를 아는 왕족, 양반, 선비계급이나 가지는 지식권력의 근간이기에.
이씨조선 왕조 교활했다.
관혼상제 등을 통해서 충효사상을 강요했고, 그것이 한 姓氏 519년이나 장기간 통치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사색당파 싸움이 왕가 제사에 근간을 두어쓰니...
귀신, 망령의 시대였다.
구역질 나는 옛 제례문화이다.
특히나 옛 제례법을 따지려면... 내 입에서는 '미친 놈들'이다.
이 따위로 이조 사회문화를 형성해서 왕족권력, 양반권력, 선비권력을 유지했다가 사색당파 원인이 되기도 하고...
조선시대는 미쳤다.
'조선시대 절사 연구' 이런 문구로 검색하면 조선시대 왕은 제사 지내려고 환장한 것들이다.
하나의 통치수단/지배으로써, 충효를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써 온 백성들까지도 제사를 지나치게 강조했다. 조선시대는 제사에 미쳐버린 왕조사이다.
내가 기억하는 1960년 할머니 제사, 1962년 할아버지 제사.... 그 괴상한 복장과 차례, 숱한 사람들이 오고 가고....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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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자가 낳은 병패...
조선시대에 왜 생활과학사가 뒤떨어졌는지를 이해할 것 같다.
구한말 외국인들이 찍은 조선인들의 사진, 1900년대 중반까지의 옛사진을 보면...
정말로 거렁뱅이 수준의 문화였다. 이해가 안 되는 사회현상이 이어진 근간에는 한자, 한문을 독점한 지식계급의
어리석음이었다.
제사문화를 며칠 간 공부하는 지금. 나는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다.
이해불능의 그 많은 규정들이 근거, 논리, 과학적인 바탕에 있는 것이 아니고, 몇몇의 머리에서 상상으로 그려낸 허위의 작태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쉽게 말한다. 명분이다. 일방적으로 정한 것들이다. 조선시대가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인 이유가 한자를 독점한 지식계급(왕족, 양반, 선비 등)의 병패라고 여긴다.
끔찍하다. 나는 1956년부터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2018년 1월인 지금까지도 책벌레이다. 하지만 한자로 된 책들은 모르는 채 살았다는 게 큰 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2018년 1월 15일인 오늘도.
겁이 난다.
비논리의 세상이... 내가 어렷을 적에 보았던 그 노인네들의 제사 방식이 왜 그렇게 요란했던지를 이제서야 이해한다. 통치, 통제의 수단으로 충효사상을 강요했다는 것을. 왕가의 법도, 군신간의 법도, 조상의 법도... 모두 허구로 작성한 올가미였다는 것을.
나는 지난해 고향 후배로부터 지역사에 관한 책을 얻었다.
세상에나... 1900년 경에도 그토록 5가작통법이 시행될 줄이야.
어디로 출타하려면 리장 등한테 신고하여 통행서를 작성 지참해야 되고,
조선시대는 백성, 마을사람을 철저히 옭아맨 계급들은 한자를 아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그게 하나의 밥벌이었다는 것을.
조선시대, 잘 거꾸러졌다.
지금은 한글세상, 영어를 비롯한 세계언어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1860년대 이후 1910년의 구한말, 1910년 이후의 최근사, 사회, 지리, 인문, 과학사 등이 어떻게 변천했는지를 다시 공부하고 싶다.
끔찍한 구시대의 망령이 아직도 내 의식 속에 남아 있기에...
수십 년 전, 시골마을의 무당, 미신, 노인들에 대한 극진한 대접, 이해불가능한 풍습들의 근간이 바로 조선왕조의 統治에 기인했다는 것을. 1950년대, 1960년대 초. 내가 보았던 할아버지의 위상은 절대적이었다. 2018년 1월잉 오늘, 예전의 할아버지 나이를 계산하니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훨씬 아래다.
조선시대가 푸닥거리, 미신과 잡신이 득실벅실거렸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지식의 독점이었다! 그것도 가상(상상)의 지식이었다.
그게 권력과 재산을 긁어모우는 수단이었기에.
나는 지식의 민주주의를 더 희망한다.
한글. 나한테는 정말로 고맙다.
과학과 논리, 다른 나라의 지리를 가르치는 학교교육이 정말로 필요하다.
다양한 과학지식이, 바깥세상의 경험지식이, 과학적이고 논리적이고,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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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0자의 한자 낱자.
이를 조립하면 단어는 몇 개가 가능할까?
우리나라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표제어(단어)500,00개. 대부분 한문어이다.
※ 한문어가 지나치게 많아서 비판받는 이유이기도 하고...
앞으로 남북한 합작으로 사전을 편찬하면 대략 750,000자가 표제어.
어쩌면 1,000,000개 단어 시대가 올 게다.
내가 도대체 아는 단어가 얼마쯤일까? 10,000개?
한자 숫자는 고작 1,000개를 알고는 잘 아는 것처럼 행세하면?
또 시작했다.
재취기, 콧물...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가 바염을 일으키고, 심하면 눈병까지도 생기겠다.
중국 황사가 발생하는 곳은 오죽이나 할까?
나는 지금 서울에 머무는데.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이 이 지경이면 서해안은 오죽이나 심할까?
서해안 중부 갯마을에서 얼마 안 떨어진 내 시골마을에는 엄청나겠다.
첫댓글 한자를 많이 알면 글이 훨씬 깊이가 있을듯 합니다
미세 먼지가 심각한가 봅니다
특히 요즘은 독감이 유행이지요
예. 조심하겠습니다.
목, 눈에... 증상이 나타나네요. 얼굴이 붓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