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생 찬양
특별한 느낌이었다. 1950년이면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해가 아닌가? 불행했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태어난 이들이다. 용케도 살아남았구나. 온통 폐허가 되었을 전후 시대에 한둘도 아니요 예닐곱은 족히 되었을 자녀를 굶기지 않고자 애썼을 부모들을 보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익혔을 이들이다. 당장 하루 먹고 사는 것이 버거웠을 시절이었지만 자녀들로 인해 소망을 가졌고 고생을 기뻐했던 부모를 두었기에 그들 역시도 오롯이 자녀를 위한 희생적인 부모로 한 평생을 살아 왔으리라. 가난의 밑바닥에서 났지만 선진국들이 100년 이상 걸려 이룩한 경제 부흥과 민주주의를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이뤄낸 조국 대한민국의 위대한 성장 물결 속에서 온 몸을 던져 함께 했던 신앙의 사람들이다.
내판교회에 1950년생이 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여섯 명이 헌금찬양을 하였다. 부부 가족 목장 세대 등 다양한 형태의 헌금찬양이 있었어도 동갑네의 이름으로 이뤄진 것은 처음이었다. 기쁘게도 자발적인 그들의 찬양이었다.
올해 나이 74세이다. 머리엔 백발이 성성하지만 그들에게도 황금기는 있었다. 별처럼 빛났던 때가 있었다. 삶의 무게를 견디며 허리 휘도록 열심히 살았던 각자의 세월은 추억이 되었고, 감사의 제목이 되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어쩜 선곡도 딱 맞게 잘 했구나. 연륜이 묻어 있는 구수한 음성으로 신앙고백처럼 부르는 찬양이 성도들 모두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아픔이 없는 인생은 없다. 소중한 만큼 아프고 아픔 때문에 성장하게 된다. 인생이 아름다운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