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6년 초가을 우즈벡 타쉬켄트를 방문하여 박실장의 안내로 타쉬켄트에서
450KM 떨어진 나만강에 갔다.길이 멀기도 하지만 워낙 차들이 빨리 달려 가는 시간 내내
조마조마했다.어렵사리 나만강에 도착한 우리는 잠시 여성들의 한국 입국을 위한
서류점검과 여권발급을 위해 경찰서를 들렀다.그리고나서 박실장이 꼭 가야할 곳이 있다 면서
한집을 안내했다.한 해전 부산의 천문대 직원과 결혼한 알리아씨 집이었다.
박실장과 알리아씨 부모님은 사전에 약속했지만 고사장이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이제야 말을 한 것이었다.나만강 알리아씨 집은 가까이 있었다.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방문케 되어 여간 겸언쩍었다.그러나.사려깊은 박실장은
미리 조그마한 선물을 준비했었다.
알리아씨집에 방문하자,그녀의 부모님은 먼 한국에서 온 손님을 너무도 반가게 환대했다.
집은 한국으로 말하면 6-7평이나 될까? 아래 1층에서 부모님들이 살고 2층 개조한 곳에서
알리아 자매가 뒤엉켜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구 소런 우크라이나에서 군인생활을 했고 상사로 제대해서
지금은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나는 그곳에서도 연금으로 생할한다는 데에
적잖이 놀랬다.
차려놓은 음식도 너무도 융숭했다.러시안아 산 보드카도 준비해두었다.
평소 술을 좋아하는 나는 인사치려도 할 것 없이 알리아씨 아버지와 주거니 받거니
두병을 마셨다.
거기서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알리아씨가 부산지역 인근으로 시집간 여성들에게 대모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문화가 다르고.언어가 안통하고 식생활도 다르고 그래서 부부간의 갈등이 생기면
알리아씨가 일일이 찾아가서 상담해주고,그래서 해결사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시집가는 그녀의 동생도 마음편하게 시집갈 수 있다고 했다.
솔직히 나는 부끄러웠다.
한국에 와서 나는 알리아씨에게 고맙다고 한 것이 전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