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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협동조합 가톨릭 사회교리 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이기우
빈 무덤 위기와 발현에의 희망
사도 6,8-15; 요한 6,22-29
부활 제3주간 월요일; 2023.4.24.; 희망의 집; 이기우 신부
이스라엘 안에서 이름난 율법 교사였던 가말리엘에게서 율법을 배운 스테파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에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였는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사도 6,3) 신자가 되어 부제로까지 뽑혔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신자들에게 식량을 공정하게 배급하는 일은 물론 교회 바깥의 군중을 향해서도 복음 말씀을 선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므로, 성전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백성 위에 군림하고 있었던 사두가이들과의 일전(一戰)도 불사하려는 선명한 노선(사도 6,13)을 견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반면에 베드로와 그 동료 사도들은 유다교의 기도 시간에 맞추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는 등(사도 3,1) 마치 유다교의 신흥교파처럼 신중하게 처신하고 있었습니다.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부활한 그리스도의 몸”(요한 2,21-22)이라던 예수님의 가르침 정도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듯한 처신이었습니다.
결국 스테파노는 유다교 당국자들에게 미운 털이 박히고 괘씸죄에 걸려서 돌에 맞아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돌에 맞아 죽어가던 스테파노의 얼굴이 “천사처럼 빛났다”(사도 6,13)고 사도행전은 전합니다. 스테파노의 선명노선은 이후 사울에 의해서 계승되게 됩니다. 사울은 스테파노와 가말리엘 문하에서 함께 동문수학한 동창생이었으나, 이때까지만 해도 율법에 대한 견해 차이 때문에 스테파노에 반대하여 그를 처형하는 일에 찬동하였습니다. 차마 직접 돌을 던지지만 않았을 뿐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스테파노를 따르던 신자들이 북쪽으로 흩어지자 그들을 체포하러 영장을 발부받을 정도로 박해자로 나섰습니다. 그러다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벼락을 맞고서야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10여 년이 더 지난 후(갈라 2,1) 그는 예수님이 하느님이시오 그리스도이시라는 확신을 얻고 나서는 마치 죽은 스테파노가 부활한 것 같은 모습으로 초대교회의 향방을 아예 서쪽으로 바꾸어 장차 유럽과 서양을 그리스도교화시키게 되는 초대형 거사(巨事)를 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서양을 지배하게 된 사조인 그리스의 합리적 사유에 익숙한 이방인 신자들에게 선교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 사도신경이고 그 안에 담겨진 열두 가지 신앙조문입니다. 그 핵심은 예수님께서 참 하느님이시고 참 인간이시라는 고백이지요. 그런데 이 열두 신앙조문 가운데에서 ‘육신 부활’ 교리처럼 오해를 많이 받는 교리도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이미 생전에 호수 위를 걸어 오신다든가(요한 6,19), 노를 젓지 않았는데도 배가 필요한 곳에 와 닿는다든가(요한 6,21), 무엇보다도 빵을 많게 한다든가(요한 6,1-15) 하는 기적과 이적들은 물질계를 지배하는 영계의 차원과 기운의 존재를 드러내는 표징들입니다.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께서 발현하시면서 보여주신 사기지은(四奇之恩)의 특징들이 이미 공생활 중에 여러 번 숱한 기적들로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마귀를 쫓아내시고, 질병을 치유해 주시는가 하면 빵도 많게 하시고 물 위로도 걸으신 일들이 다 3차원을 넘어선 고차원의 존재가 3차원 이하에서 존재하는 물질들과 생명체들을 다스리는 빛나는 부활 은총이었습니다.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지금도 활약하고 있는 스테파노들의 얼굴은 여전히 천사의 얼굴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스테파노가 증언해 마지 않았던 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섬김의 리더십은 죽음의 처형장에서조차 빛났던 스테파노의 얼굴처럼 역사 안에서도 빛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한국 초대교회의 역사에서도 이벽 세례자 요한을 비롯하여 정씨 삼형제, 즉 약전 안드레아, 약종 아우구스티노, 약용 사도 요한 같은 선비들이 총기어린 지성과 예리한 종교적 감수성에 의해서 천주교 교리에 담긴 진리를 알아본 일이야말로 ‘빛남’의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민족에게 천주교 교리를 통해 그리스도 신앙의 진리를 전해준 책은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리치가 보유론적 관점에서 한문으로 저술한 ‘천주실의’입니다. 이 책이 조선의 선비들에게 전해진 근 2백여 년 동안 수많은 선비들에게 읽혀졌지만 그 누구도 이 책을 통해 신앙 진리를 발견하지 못했었는데, 오직 이벽만이 처음으로 진리를 깨달았고 또 이벽으로부터 이 진리를 전달받은 천진암 강학회에 모인 선비들 스무명 가량이 깨달아 천주교 신앙 공동체가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이 선비들 가운데에서도 이벽의 사후에 유독 정씨 삼형제만이 이 깨달음을 값진 저술로 남겨 놓았습니다.
‘성교요지’와 ‘천주공경가’를 남긴 이벽에 이어, 정약전은 ‘자산어보’를 남겼으며, 정약종은 ‘주교요지’를 남겼고, 정약용은 ‘목민심서’와 ‘경세유표’와 ‘흠흠신서’를 비롯한 여유당전서 5백여 권을 남겼으니, 이들이야말로 한국 초대교회의 예언자요 교부들이었으며 동시에 한국교회 최초의 평신도 신학자들이라 불러 모자람이 없습니다. 이들이 남겨 놓은 저술 속에는 민족역사 초창기부터 우리 민족이 믿어온 하느님 신앙이 녹아 있으며, 서양의 그리스도교 신학을 이 전통적 종교심성으로 해석한 토착화 신학이 담겨 있는데다가, 당시 후기 조선의 사회적 모순을 신앙 진리에 입각하여 해결하고자 혜안을 발휘한 선교적 지향이 들어있어서 빛나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빛남’의 은총은 진리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 힘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섬김의 리더십입니다.
이제 오늘 미사의 독서와 복음에 관한 위 강론을 바탕으로 해서, 희망의 집이 나아가야 할 진로에 대해서 묵상한 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한국 초대교회의 교부들이라 할 만한 이벽과 정씨 삼형제의 신앙적이고 학문적인 역할은 ‘빛남’의 은총에서 나온 것이고 이 은총으로 말미암아 한국교회는 선교사 없이 자발적으로 복음 진리를 들여와서 주체적으로 교회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백년 박해를 견디어내면서 교우촌을 세움으로써 사회적 모순이 가득 찬 당시 조선 사회와는 대조적인 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한글로 쓰여진 ‘천주공경가’는 최양업 신부로 하여금 수많은 한글로 된 ‘천주가사’들을 짓게 하였는데, ‘사향가(思鄕歌)’ ‘영세가(領洗歌)’ ‘천당가(天堂歌)’ ‘지옥가(地獄歌)’ ‘십계강론(十誡講論)’ ‘삼계대의(三戒大義)’ ‘견진가(堅振歌)’ ‘고해가(告解歌)’ ‘성체가(聖體歌)’ ‘종부가(終傅歌)’ ‘신품가(神品歌)’ ‘칠극가(七克歌)’ ‘혼배가(婚配歌)’ ‘제경가(諸經歌)’ ‘행선가(行善歌)’ ‘애덕가(愛德歌)’ ‘선종가(善終歌)’ ‘사심판가(私審判歌)’ ‘공심판가(公審判歌)’ 등 총 19편이나 됩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천주교 신앙교리를 주 내용으로 노래하고 있는 천주가사는 천주교 교리를 통해 신자들은 물론 비신자들에게 확고한 신앙심을 심어주고 신자로서 생애를 굳건히 할 수 있도록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또한 정약종이 펴낸 한글교리서 ‘주교요지’는 비록 그가 신유박해 때 치명하였어도 그 이후 전국에 세워진 교우촌에서 신자들의 손에서 손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게 됨으로써 체포되어 관헌들에게 문초를 당할 경우에 천주교 교리를 막힘없이 답변하게 해 주는 이념적 방패가 되어 주었으며, 평소에는 교우촌 신앙의 교과서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책이 한글로 쓰여졌을 뿐만 아니라 정약종과 막역한 교우로서 지냈던 천민 출신 황일광 시몬의 역할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는 비록 천민 출신으로서 백정 일을 하던 사람이었지만, 타고난 영리함과 명랑함에다가 교리를 배운 후 교우촌에서 양반 신자들이 신분을 차별하지 않고 믿음의 벗으로 대해주는 인간적 대우에 감격해서 정약종과 교류하면서 민중의 언어와 그에 담긴 종교적 감수성을 낱낱이 전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정약종은 “마테오리치가 한문으로 쓴 ‘천주실의’보다 더 뛰어난 책”이라는 평판을 주문모 신부로부터 듣기도 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한국교회 안에서 ‘빛남’의 은총은 심상태 신부가 신학자로서 수행한 저술활동과 사목자로서 수행한 ‘희망의 집’ 활동으로도 나타났습니다. 신학 저술활동으로서 나타난 ‘빛남’의 은총은, 첫째 서구교회를 주도한 신학의 정통 흐름을 한국교회에 소개하는 일과 둘째 이에 그치지 않고 신앙 토착화를 모색하기 위한 신학 토착화 작업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사목적으로 나타난 ‘빛남’의 은총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쇄신 여정에 따라서 평신도 사도직을 앞세워 한국사회의 약자들을 돌보고 중산층 신자들이 이에 동참하게 하는 ‘희망의 집’ 활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신학적 활동도 현재까지 한국교회 안에서 독보적인 일이었거니와, 사목적 활동도 선구적인 일이었습니다. 변변한 신학교재도 없었던 형편에서 서구 정통신학을 소개한 업적도 그렇거니와 신학 토착화를 시도한 업적도 그러합니다. 40여 년 가까이 결핵환자들을 돌보아온 희망의 집 활동에서도 평신도들의 주도와 참여를 중시해온 현장 교회의 업적 역시 성직자와 수도자 위주로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교회 대다수 사회복지활동의 추세에 비추어 볼 때 그러합니다.
그런데 이 ‘희망의 집’ 활동이 최근의 사태로 말미암아 그간의 활동에 대한 명예를 훼손당하고 짓밟힐 뻔한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결핵환자의 감소 추세와 용문 희망의 집 활동의 침체, 팔순을 넘긴 심상태 신부의 노화 등을 구실로 삼아 일방적으로 서울 가톨릭 사회복지회에서 활동의 자율성을 박탈하려 했던 시도가 그 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 사태에 대해 지난 부활대축일의 복음 말씀이 큰 지침이 되어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제 그날 행한 강론을 잠시 소개하고 이번 사태에 대한 저의 묵상을 전해드리고 마치겠습니다.
빈 무덤의 충격을 딛고 부활의 기쁨과 희망에로 나아갑시다
사도 10, 34-43; 콜로 3,1-4; 요한 20,1-9
주님 부활 대축일; 2023.4.9.; 이기우 신부
1. 빈 무덤의 충격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때는 금요일 오후였는데, 숨을 거두신 후 아리마태아의 요셉이 내어준 돌무덤에 부랴부랴 모시고 난 시각이 이미 해가 기울어 질 무렵이었습니다. 해가 지고 나서부터는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율법 규정상 시신에 더 이상 손을 댈 수가 없는지라 돌무덤에 안치만 한 채로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안식일이 완전히 끝난 일요일 이른 아침에 그 돌무덤으로 갔던 사람들은 마리아 막달레나를 비롯해서 십자가 형장에 예수님께서 숨지시는 순간까지 남아 있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네들은 시신에 향료를 발라 드림으로써 염을 해 드리려던 것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무덤 입구를 막아놓았던 큰 돌이 치워져 있었습니다. 입구가 열린 무덤 안은 그 내부까지 바깥에서도 훤히 들여다보였는데, 시신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혼비백산한 막달레나는 한걸음에 제자들에게로 달려가 알렸습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 20,2ㄴ).
2. 사도들의 대응방식
막달레나의 이 외침을 듣고 두 제자가 움직였는데, 젊은 요한이 베드로보다 더 빨랐습니다. 그래서 돌무덤에 먼저 도착한 요한이 입구에 멈추어 서서 안을 들여다보니 과연 시신을 감쌌던 아마포만 놓여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뒤따라 도착한 베드로가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과연 시신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얼굴을 감쌌던 수건이 따로 한 곳에 개켜져 있었습니다. 이 사실이야말로 그분의 시신이 도난당한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었습니다.
이렇게 두 사도의 대응방식은 달랐습니다. 그래도 그들 모두는 시신이 도난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믿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 급한 전갈을 듣고도 나와 보지도 않은 나머지 제자들은 그저 자신들도 잡혀갈까봐 겁이 나서 다락방에 숨어 있었습니다.
3. 현장과 카리스마와 제도, 그 긴장과 조화
성서 주석의 최고 권위는 사도들의 제자인 교부들입니다. 교부들이 주해해 놓은 가르침을 근거로 성서를 해석하는 현대의 성서학자들은 이 본문이 후대의 교회를 위한 심오한 표지가 숨겨져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막달레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요, 요한은 이 현장 선교사들을 돕고 연대하는 사도직 교회의 카리스마를 대변하는 인물이고, 베드로는 이 현장교회들 모두를 아우르는 제도 교회의 권위를 대변하는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복음적 가치의 위기를 감지하는 현장의 복음 감각과 이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사도직 교회의 카리스마 그리고 이 모두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제도 교회의 권위와 역량 가운데에서, 이 세 가지 요소의 긴장과 조화를 통해서 교회가 일치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사실 현장을 지키는 사도직은 언제나 복음적 가치의 위기를 제일 먼저 감지하는 복음선포의 최일선이고 그래서 사회적 약자들의 울부짖음을 대변합니다. 이 외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체는 현장을 중시하는 카리스마를 지닌 사도직 교회입니다. 현장에서 복음 감각으로 알려준 빈 무덤의 위기 상황에서 언제나 발빠르게 대처하는 카리스마를 사도직 교회는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기의 원인과 대책을 수립하는 일에 있어서는 제도 교회를 기다려주는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제도 교회는 전체 상황을 아우르고 나서 종합적으로 판단한 다음 모두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책임감 있는 권위의 보유자입니다. 이렇게 해서 빈 무덤의 위기 체험은 제도 교회의 책임과 권위를 통해서 발현 체험이라는 기쁨과 희망의 체험으로 전환될 뿐만 아니라 이 체험이 교회 전체로 보편화되어 공유됩니다. 이 과정에서 현장과 사도직 교회, 그리고 제도 교회 사이에서 때로 긴장도 발생하지만 조화와 협력을 통해서 교회의 일치가 가능해집니다.
4.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움직이시는가?
부활은 새로운 탄생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살아나셨습니다. 하느님의 전능하신 권능으로 다시 원래대로 하느님의 자리와 지위에로 원대복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런 육신적 제약 없이 자유로워지셨을 뿐만 아니라 이미 지상 생활에서 인간생활을 경험하셨으므로 복음화에 꼭 필요한 역할을 세상 사정에 맞추어 하실 수도 있게 되셨습니다. 그래서 이미 타볼산에서 세 명의 제자가 경험한 것처럼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빛나는 모습으로 변하실 수도 있게 되셨습니다. 또 순식간에 이곳에서 저곳으로 빠르게 이동하실 수도 있는가 하면 공간의 제약 없이 들어가거나 한 번에 여러 곳에서 나타나실 수도 있고 현세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영적인 몸’을 지니시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은총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파견하신 당신의 사도들을 이끄시고 돕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시어 자유자재로 나타나시고 놀라운 기적을 통해 현존하시는 그분과 소통하도록, 그분의 부활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역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보여주신 이 영적인 몸을, 세례 때에 저마다의 혼에 부여받았습니다. 이 영적 생명 즉 영혼은 신앙생활로 성장하는 새로운 몸입니다. 이 몸이 성장하다가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면 마침내 온전한 모습의 영적인 몸으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몸이 우리가 신앙고백문에서 고백하는 ‘육신의 부활’이 보여줄 미래입니다. 이는 죽고 나서야 온전한 상태가 될 수 있지만, 세례 때부터 신앙의 수준에 맞추어 서서히 성장합니다. 그러다가 선행으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실천할 때마다 부쩍부쩍 큽니다. 이것이 교리 용어로는, 박해가 상하지 못함과 진리의 빛남과 사랑을 실천하는 데에 빠름과 온갖 장애를 뚫고 사무침을 뜻하는 네 가지 은총 즉 사기지은(四奇之恩)입니다.
5. 부활의 사기지은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몸이 지니는 네 가지 특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박해도 ‘상하지 못함’의 은총으로서, 영적인 몸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은 세례로 인해 다시 살아난 몸으로서 죽음의 위협을 당하지 않습니다(1코린 15,42). 세례 때에 영적인 몸을 받은 그리스도인도 온전하지는 않으나 죄로 인한 상처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용기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상하지 못함’의 은총은 사랑을 실천할 용기를 뜻합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이 로마의 박해에 굴하지 않고 끝내 로마로 하여금 신앙을 공인하게 만든 힘이 이것입니다.
두 번째는 진리의 ‘빛남’ 은총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몸은 더 이상 육신의 본능에 지배당하지 않고 영혼이 이끌기 때문에 천하지 않고 오히려 그가 닦은 덕행과 실천한 선행 덕분에 빛납니다(1코린 15,43).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은총은 덕행과 선행의 품위를 말합니다. 로마가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게 된 비결이 이것으로서, 로마인들은 신자들이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면서 진정성 있게 실천하는 선행을 보고 감화를 받았습니다.
세 번째는 사랑 실천의 ‘빠름’ 은총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몸은 육신 본능의 한계에 굴복하는 미약한 모습을 지나 이를 넘어섭니다(1코린 15,43). 아무 수고나 피곤함을 모른 채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아주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은총은 성령의 이끄심으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조직력과 기동력을 뜻합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평소에는 애덕을 실천하고자 점 조직으로 민첩하게 움직이다가 체포되어 굶주린 사자의 먹이로 내던져지게 되면 장미 화관을 쓰고 원형경기장으로 나아갔으며, 남은 신자들은 같은 마음으로 그들의 피가 뿌려진 자국마다 성모송을 바치며 그들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감을 축하했으니, 이것이 묵주기도의 기원이며, 이를 로사리오(Rosario), 즉 장미의 기도라고 부르게 된 배경입니다.
네 번째는 온갖 장애를 ‘사무침’의 은총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몸은 시공의 제약에 갇혀있지 않고 이를 넘나드는 통공의 자유로움을 구사합니다. 무덤을 비워놓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문을 잠궈 놓은 방을 자유로이 드나드신 데에서 볼 수 있는 이 은총은(1코린 15,44)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은총은 시공을 넘어서는 통공과 연대의 힘을 뜻합니다. 그리하여 초대교회의 순교자들은 지금까지 2천 년이 흐르는 장구한 세월동안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6. 우리의 부활을 위하여
사기지은으로 나타나는 부활의 은총스런 현실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여인들에게 보여주신 바대로, 육신의 욕망과 죄로 인한 위협으로 자유로워진 영적인 몸의 현실을 겨냥하는 진리입니다. 믿는 이들은 모두 이 현실을 희망하기에 부활한 영적인 몸에 대한 희망은 빈 무덤의 충격과 좌절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전망으로 펼칠 새로운 사도직을 가능하게 합니다.
교우 여러분! 한류 현상이 세계적으로 대유행을 하는 최근의 추세에서 보듯이, 인류 문명의 선도역을 한민족이 담당하게 되는 새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이 절호의 기회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그 기운으로 그리스도의 파스카 과업에서 맡은 바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사도들이 부활을 체험하고 굳게 믿게 된 경위를 잘 알고 그 경로를 잘 따라가야 합니다. 새로운 탄생인 부활은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와 우리 사회를 새롭게 창조할 복음적 활력을 줄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부활의 기쁨과 희망을 지니고 나아갑시다!
희망의 집 운영위원 여러분!
이상 부활대축일 강론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가 박해스러운 상황에서 ‘빈 무덤 체험’을 하도록 강요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관심과 애덕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한국 사회의 약자들의 처지에 대해 위기를 감지하고 외치고 있는 ‘막달레나들’의 소리에 응답해야 할 카리스마적 공동체의 역할을 ‘희망의 집’이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도적 교회의 역할이 향후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는 우리가 이 ‘빈 무덤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도직 공동체를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제도교회가 일으킨 이번 사태에서 긴장이 이미 발생했지만, 현장의 외침을 듣고 응답하려는 사도직 교회로서의 대응 여하에 따라 조화와 협력이라는 교회 일치도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기지은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움직임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사실 백년 박해를 겪은 한국 초대교회에서도 부활의 사기지은은 뚜렷하게 나타난 바 있었습니다. 그렇듯이, 우리가 이 ‘빈 무덤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길에서도 부활의 사기지은은 얼마든지 상수로 작용할 것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우리의 발현체험도 생겨날 것이며, 따라서 우리의 부활 신앙이 더욱 생생해지리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