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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눅 15:8-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누가복음 15장의 3가지 비유는 주님의 심장, 그 가장 깊은 곳에 멍울져 있는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애타는 사랑’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잃어버리며 살아갑니다. 소중하게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건강을 잃어버려 고통속에 밤을 지새우기도 하며, 때로는 일생의 기회를 잃어버려 가슴을 치며 눈물 흘리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우리 마음에 찾아오는 그 서늘한 상실감과 안타까움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아픔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 대한 비유를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한 영혼을 향해 지극한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선한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찾았다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잃은 양을 찾고 크게 기뻐하며 동네사람들을 다 불러모아 잃어렸던 양을 찾은 기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선한 목자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찾아내시는 하나님의 집요한 사랑과 지속적인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늘 문을 여시고 기뻐 춤추시는 목자장 되신 하나님의 위대한 기쁨의 잔치의 잔치에 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두 번째 비유인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입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집념을 점진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선포하셨던 배경은 본문 1절과 2절에 있습니다. 세상에서 손가락질받고 있던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라며 수군거리고 비난했습니다. 세상에서 거절당하고 상처입은 영혼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시는 예수님을 향해,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냉소와 정죄의 시선을 보낸 것입니다.
바로 그들의 굳어버린 심장을 깨뜨리기 위해, 그리고 오늘날 영적으로 무감각해져 있는 우리를 향해 예수님은 이 비유를 던지십니다. 8절,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여기서 ‘한 드라크마’는 당시 헬라의 은전으로, 일반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가치입니다.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하면 그렇게 큰 금액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 사회의 독특한 문화와 풍습속에서 이 ‘열 드라크마’는 단순한 화폐 가치 이상의, 아주 소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여인들은 결혼할 때 남편으로부터 사랑과 언약의 증표로 열 개의 드라크마를 은실이나 가죽끈으로 꿰어 만든 머리장식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결혼반지와 같은 것입니다. 이 장식은 여인에게 있어 “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는 아내입니다”라는 정체성과 명예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가난하여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러도 이 장식만큼은 절대로 팔거나 담보로 잡힐 수 없었습니다. 만약 이 열 드라크마 중 단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그것은 남편과의 언약에 흠집이 생기는 것이며, 사람들에게는 아내로서의 정절과 신실함을 의심받는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에게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는 단순한 ‘은전 한 푼’이 아닙니다.
자신의 전부이자 명예이며, 삶의 의미였기에, 반드시 찾아내야만 하는 절대적인 가치였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를 손바닥에 새기시고, 잃어버린 우리를 찾아내기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그 끈질기고 놀라운 사랑을 깊이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등불을 켜야 합니다(8).-말씀의 등불을 켜서 내 영혼의 어둠을 밝혀야 합니다.
여인은 자신의 머리 장식에서 드라크마 하나가 사라진 것을 발견한 순간, 가슴이 철꺽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즉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본문 8절은 그 첫번째 행동은 바로 “등불을 켜고”입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 이스라엘 서민들이 살던 집의 구조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 시절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집은 대개 창문이 아예 없거나, 바람만 겨우 통할 정도의 아주 작은 구멍이 뚫려있는 어두컴컴한 구조였습니다.
지붕은 짚과 진흙으로 덮여 있어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기에, 대낮이라 할지라도 집안에 들어가면 마치 깊은 동굴 속처럼 캄캄하여 앞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바닥은 고른 장판이 아니라 거친 돌이나 흙바닥 위에 보온을 위해 짚이나 거친 직물들을 깔아 두었습니다. 그 어둡고 컴컴한 방구석 어딘가에 떨어진 작고 얇은 은전을 맨눈으로 찾아낸다는 것은, 밤중에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인에게는 무엇보다 먼저 어둠을 밝힐 ‘등불’이 필요했습니다. 빛이 없으면 볼 수 없고, 어느 것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이 던지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입니까? 드라크마는 집 밖의 험한 길거리나 광야에서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집 안’에서 잃어버려졌습니다. 멀리 집을 떠나 방탕하게 살았던 탕자가 아니라,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공간에서, 매일 숨 쉬고 잠자던 익숙한 집 안의 어둠 속에 은전이 묻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에 적용해 보십시오. 우리는 교회 마당을 밟고 있고, 주일마다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으며, 직분을 맡아 봉사하고 있기에 내 영혼은 안전하다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익숙한 종교생활의 껍데기 속에서, 정작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구석에는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과 하나님과의 언약의 증표인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채 영적 흑암속에 헤메고 있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은 거룩한 성도라는 정체성을 상실한 채, 세상의 염려와 걱정이라는 먼지 더미 속에 짓밟혀 무기력하게 헤메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영적인 흑암과 침체를 거두어내기 위해 우리는 삶의 자리에 반드시 ‘등불’을 켜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영혼의 등불은 무엇입니까?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선포합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세상의 지식, 도덕적인 결단으로는 내 영혼의 어둠을 한 치도 밝힐 수 없습니다. 오직 내 영혼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비추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살리는 유일한 등불인 줄 믿습니다.
(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어둠을 내어 쫓을 수도 이길 수도 없습니다.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역사속에서, 말씀의 등불을 꺼버려 영원한 파멸의 어둠 속으로 사라진 인생과 말씀의 등불 앞에 엎드려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 찬란하게 회복된 인생의 극명한 대조를 목격하게 됩니다. 요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사무엘상하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과 두 번째 왕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사울 왕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화려하게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생각과 탐욕에 갇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등불을 꺼버렸습니다.
사무엘상 15장에서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을 어기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 좋은 양과 소를 남겨두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말씀의 빛을 비추며 그 죄를 책망했을 때, 사울은 회개하기는커녕 (삼상 15:30)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라며 자신의 체면과 왕권이라는 권세속으로 숨어버렸습니다.
말씀의 등불이 꺼지자 그의 심령에는 악령이 틈탔고, 시기와 질투라는 흑암에 갇혀 평생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다가 결국 길보아 산에서 두 아들과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반면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그 역시 인생의 가장 어두운 영적 침체기를 겪었습니다. 충성스러운 신하 우리야의 아내를 범하고 그 죄를 감추기 위해 우리야를 전쟁터에 내보내 죽이는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은밀하게 숨기고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왕의 가운을 입고 어둠속에서 죄악의 노예가 되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하 12장인 어느 날, 나단선지자가 찾아와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며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의 등불을 그의 심령에 정면으로 비추었습니다. 그 순간 다윗은 왕의 권위 뒤에 숨지 않았습니다. 빛이 비추어지자마자 왕의 보좌에서 내려와 엎드러졌습니다.
(시편 51:3)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자신의 죄를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9,10절에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며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회개하였습니다. 말씀의 등불이 켜졌을 때, 그는 비로소 흑암 속에 감춰져 있던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회개함으로 죄에서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영적상태는 어떻습니까? 세상의 염려와 근심, 육신의 피곤함과 여러가지 염려하는 문제, 그리고 거듭되는 죄악의 먼지로 가득 차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 있지는 않습니까? 내 안에서 예배의 감격이 사라지고, 기도의 야성이 상실되었다면 지금 즉시 말씀의 등불을 켜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도 예배의 자리에서 선포되는 말씀의 빛을 통해, 여러분의 심령 가장 깊고 그늘진 구석을 비추고 계십니다.
“너는 내 소중한 언약의 일부다! 너는 내 가슴에 새겨진,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다!”라고 외치시는 주님의 빛앞으로 걸어 나오십시오. 그리하여 영적인 모든 어둠을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진정으로 회복되는 역사가 여러분의 심령가운데 일어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집을 쓸며 부지런히 찾아야 합니다(8)- 철저한 회개와 노력
여인은 단순히 등불을 켜서 방안을 두리번거리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기 위한 두 번째 단계로 나아갑니다. 본문 8절 중반부는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집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빗자루로 먼지를 살살 쓰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바닥에 깔린 모든 짚더미와 거친 직물들을 힘겹게 걷어내고, 구석진 곳의 무거운 가구들을 들어올리며 흙바닥의 패인 홈까지 샅샅이 찾았다는 의미입니다.
창문도 없는 어두운 방안에서 빗자루를 들고 사방을 거칠게 쓸어내기 시작할 때, 방안은 온통 수년 동안 묵혀있던 흙먼지와 짚부스러기로 가득 채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여인의 눈은 매워 눈물이 흘렀을 것이고, 사정없이 터져 나오는 기침 때문에 숨이 가빴을 것입니다. 온몸은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여인은 그 고통스러운 청소를 멈추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빗자루 끝에 단단한 은전이 걸려 ‘쨍그랑’하는 소리를 낼 때까지, 그 감추어진 언약의 증표를 내 손으로 반드시 찾기 전까지는 결코 이 수고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집을 쓸어내는 행위’는 우리 내면에 단단하게 굳어버린 죄악의 찌꺼기들과 숨겨진 더러움을 털어내는 ‘철저한 회개’를 상징합니다. 동시에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며 건져내기 위해 성도가 마땅히 지불해야 할 ‘눈물의 기도와 거룩한 노력’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은혜의 감격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 삶의 바닥을 정직하게 쓸어내야 합니다. 오랫동안 방치해 두어서 이제는 굳은 살처럼 박혀버린 죄악의 먼지,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과 같은 탐욕의 먼지, 게으름과 영적 교만의 오물들을 성령의 빗자루로 과감하게 쓸어내야 합니다. 회개의 과정을 통과할 때, 숨겨두었던 나의 부끄러운 죄와 허물이 빛 가운데 드러나므로 마음이 찢어지듯 아프고 수치스러울 수 있습니다.
마치 먼지가 격렬하게 일어나 눈을 뜰 수 없는 것처럼 영적인 고통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쓸어내야 드러납니다. 덮어두면 썩지만, 들추어내면 비로소 치유되고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40절에서 선지자는 낙심한 백성들을 향해 이같이 외칩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내 삶의 내면을 정직하게 청소하고 쓸어내는 영적 결단이 일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먼지 속에 덮혀있던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고 거룩한 교제를 시작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로 나를 비추어보면 내 진정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 때 잘못된 부분이 깨달아지면 머뭇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다윗처럼 인정하고 자백하는 것입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렇게 내 속에 있는 죄악을 다 씻어버리면 성령충만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우리를 찾아내실 때 결코 적당히, 대충 찾지 않으십니다. 본문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지난 주에도 잃어버린 양을 찾는 비유가운데 잃어버린 양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목자되신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찾으시는 하나님의 집념’입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이라는 잃어버린 은전 하나를 찾기 위해, 하늘의 영광스러운 보좌를 아낌없이 버리시고 이 낮고 천한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는 고통의 빗자루질로 인류의 죄악을 온몸으로 쓸어내셨습니다. 대못에 박히시고 창에 찔리시는 그 참혹한 고통과 희생을 통하여, 영원한 지옥의 먼지속에 묻혀 죽어가던 저와 여러분을 마침내 찾아내어 하나님의 거룩한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신 줄 믿습니다.
이제 그 피묻은 사랑을 대가없이 받았다면, 우리 역시 삶의 자리에서 기도의 빗자루를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먼저 우리가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를 회복하기위해 회개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1)죄를 깨닫고 인정, 2)죄를 통회하고 슬퍼하는 것, 3)하나님 앞에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고, 그 죄에서 돌아서겠다는 결단입니다. 4)삶의 돌이킴(행동의 변화): 죄의 길에서 완전히 돌아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삶의 걸음을 옮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이어서 우리가 할 일은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세상의 상처와 낙심으로 인해 실족하여 교회를 떠난 형제자매들, 가슴속에 깊은 어둠을 안은 채 방치된 영혼들이 우리 주변에 있지 않습니까? 찾아내기까지 포기하지 않는 주님의 끈질김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심령과 우리 교회안에 다시금 뜨겁게 회복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찾아낸즉 함께 즐거워합니다(9-10). -한 영혼이 돌아올 때 천국의 거룩한 잔치
오랜 고통스러운 수고와 땀방울 끝에, 여인의 빗자루 끝에 마침내 잃어버렸던 드라크마가 걸려 나옵니다. 흙먼지를 닦아내자, 남편과 맺었던 사랑의 언약의 증표가 다시금 찬란하게 빛을 발합니다. 이때 본문 9절과 10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가슴 벅찬 사랑을 그대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9-10절,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이 여인이 터뜨리는 기쁨의 함성을 들어보십시오.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은 기쁨이 얼마나 격정적이었던지, 혼자서 기뻐하는 것으로는 도저히 그 감격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 주에 살펴본 잃어버린 양을 찾은 목자와 똑같습니다.
동네에 있는 벗과 이웃들을 다 자기 집으로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잔치를 배설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흥미롭고 역설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웃들을 초청하여 성대하게 잔치를 베풀고 고기를 잡고 포도주를 대접할 때 들어가는 비용이, 정작 그녀가 그토록 고생하며 찾아낸 ‘한 드라크마’의 경제적 가치보다 훨씬 더 크다는 점입니다. 냉정한 세상의 계산법으로 따진다면, 이 여인의 행동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어리석고 비합리적인 행동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바로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영혼의 가치를 천하보다 더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렇치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6장 26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내 목숨을 무엇으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입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와 회개할 때, 온 천국에는 기쁨의 잔치가 벌어집니다. 잃어버린 자식, 잃어버린 내 신부를 되찾은 그 기쁨 앞에서는 그 어떤 우주적인 비용도, 그 어떤 독생자의 생명이라는 대가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교적 독선과 냉소주의에 빠져 죄인들을 인간 이하로 정죄하던 바리새인들을 향해 십자가의 눈빛으로 묻고 계신 것입니다.
“너희는 이 잔치의 기쁨을 아느냐? 저 소외되고 겉도는 죄인 한 사람이 눈물 흘리며 돌아왔을 때, 내 아버지가 느끼시는 그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환희를 너희가 단 한 번이라도 공감해 본 적이 있느냐?” 구원은 엄숙한 침묵이 아니라 터져 나오는 기쁨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억지 의무가 아니라 하늘의 잔치입니다. 우리가 믿는 천국은 거룩한 잔칫집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이 온 우주에서 가장 장엄하고 가슴 벅찬 천국 잔치의 주인공으로 입성했다는 뜻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이 주님 앞에 나와 겸손의 무릎을 꿇고 눈물 흘리며 회개할 때, 온 천사들과 함께 보좌에서 일어나 춤을 추며 기뻐하십니다. 스바냐 3장 17절의 위대한 선포를 기억하십시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이렇게 기뻐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아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불타는 심장입니다. 세상의 눈에는 가치 없어 보이고 비합리적으로 보일지라도, 잃어버린 자 한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온 천하를 얻는 것보다 큽니다. 주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쐐기를 박듯 말씀하십니다. (10절)“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님께서 온 가슴으로 쏟아내신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의 비유는,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죄의 캄캄한 어둠 속에 파묻혀, 먼지처럼 짓밟히며 내가 얼마나 존귀하고 가치있는 존재인지도 모른 채 영원한 파멸을 향해 가던 존재들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거룩한 언약의 머리 장식에서 떨어져 나가, 차가운 방구석 어딘가에서 뒹굴며 소망 없이 죽어가던 비참한 한 드라크마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가장 고귀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등불을 켜서 이 땅의 흑암을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라는 핏방울 젖은 보혈의 빗자루를 들고 우리의 허물 많고 더러운 심령을 구석구석 쓸어내시며 우리를 마침내 찾아내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주님을 알기도 전에,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기도 전에, 그분이 먼저 찾아내기까지 우리를 찾아 헤매셨습니다. 그 눈물겨운 집념의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 거룩한 예배의 자리에 앉아 감격 어린 눈물로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시간, 주님의 심장을 이식받은 우리는 이제 어떠한 삶의 결단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까?
말씀의 등불을 켜고 즉시 찾아내야 합니다. 양문교회 담임목사로서 여러분은 주변에 잃어버린 한 영혼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까? 그들을 위해 어떤 빛을 발하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얼마나 회개하며 그들을 위해 눈물을 쏟으셨습니까? 이제 우리는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헤매시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저들에게 나아가십시다.
진정한 사랑만이 저들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 속에, 직장 속에, 우리가 만나는 이 이웃들 중에 여전히 절망의 암흑 속에서 신음하며 잃어버린 바 된 영적 드라크마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들을 향해 “너는 결코 버려진 존재가 아니다. 온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이 지금도 너를 찾으시기 위해 등불을 켜고 계신다!”라고 외치며, 복음의 빛을 들고 달려갑시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를 통해 낙심한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고, 무너진 심령들이 기적처럼 회복되어, 매일의 삶속에서 하늘의 천군 천사들과 함께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며 춤추기 위해 찾아내기까지 찾으시는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나눔이야기-------------------------------------------------------
1. 내가 익숙한 신앙생활 속에서 나도 모르게 잃어버렸던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이나
은혜는 무엇입니까?
2. 내가 오랫동안 묵인해 온 죄악의 먼지나 교만의 오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다윗
처럼 하나님의 말씀앞에 정직하게 자백하고 거룩함을 회복해야하지 않겠습니까?
3. 우리 주변에 실족하거나 낙심하여 어둠 속에 방치된 영적 드라크마(이웃, 가족,
낙심자)는 누구입니까? 포기하지 않으시는 목자의 집념으로 구원하십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