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거제고현중 3년 김현미
유난히 서늘한 일요일 저녁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 댄다
끊이지 않는 매미 울음소리에
텔레비전 소리가 묻혀 짜증이 치밀었다
참다 못 해 소리 나는 쪽으로 가보니
큰 방 방충막에 붙어있는 매미
서럽게도 울어 댄다
그 소리가 하도 애처로워
쫓아내지 못하고 서 있었다
아직 짝을 찾지 못한 매미가
가을바람을 느끼고
마지막으로 온힘을 다해 울고 있었다
(2006. 9. 25.)
바람
거제고현중 3년 김용호
하루 일과가 끝나는
학원차 안
가만히 눈을 감고
오늘 하루 돌아본다
창문 틈 새로
시원한 바람 스쳐간다
피곤한 심신도
근심 걱정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바람처럼
자유롭고 싶다(2006. 9. 21.)
할머니
거제고현중 3년 윤동수
주말에 할머니
아프시다는 전화 한 통
아프면 나중에 낫겠지 하는 생각에
놀아야 한다고 투정 부리는 나
"이번만은 꼭 할머니 뵈러 가야한다"
엄마의 잔소리가 유난히 무섭다
억지로 부산에 갔다
"할매, 여기 동수 왔네, 동수"
"으잉 그게 누고?"
"……"
몇 분 뒤 할머니 정신을 차리셨다.
"우리 동수…"
손을 잡아보니
다 시들시들해진 할머니 손
나도 모르게 조심스레 만진다.
다음날 학교
"너희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단다."
어제 본 할머니의 고통스러운 얼굴
계속 계속 눈을 스친다.
오늘밤
할머니 생각에
눈을 붙일 수 없었다.(2006. 9. 24.)
어두운 미래
거제고현중 3년 김유지
어릴 땐 꿈이 많았다
근데 나이가 차츰 한두 살 늘어가며
하고 싶은 건 많지만
할 수 없는 것은
늘어만 간다
‘지금 열심히 하면 돼'
근데 그 열심히란게
너무 힘이 든다
무작정 열심히란건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이니까
세상엔 내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2006. 9. 23.)
우리들의 일그러진 꿈
거제고현중 3년 윤준영
어른들이 말하는 인생의 황금과도 같은 시기
강이 될 것인가 바다가 될 것인가
우리들의 갈림길
‘느긋한 사람은 고인 물처럼 쉽게 썩어버린다.'
‘모모' 라는 책을 읽고 느낀
내가 가진 시간들
학교라는 잿빛 그늘
재미있는 지옥이라는 한국
명령으로 만 된 일방적 수업
너무나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무시만 하는 어른들
"너희들도 어른이 되면 후회한다 지금 잘해라."
"너희들은 서울 애들한테 지게 돼 있다."
"거제고 가면 너희들은 다 중간이다."
‘꿈을 가져라’, ‘인간이 먼저 되라’ 하는 말 뒤에는
무조건 공부해서 성적대로 직업 가져라
좋은 대학을 가야 인간이다는 뜻이 들어 있다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우리들이
하나의 평가기준을 받는 것
이것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꿈들 (2006. 9. 23.)
예전 학생
거제고현중 3년 배정기
초등학교 선생이 술을 마시고
욕을 하는 초등학생을 때렸다는
인터넷 기사가 떴다
국가가 체벌을 금지하고
학생들이 제멋대로 날뛴다는
리플들을 보면서
예전 학생들이 욕을 하지 않고
예전 학생들이 버릇이 있었을 때는
욕하고 싸우는 어른들도
돈을 주고 마음을 사는 어른들도
지금 보다 훨씬 적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변한 건
이유가 있어서가 아닐까 (2006. 9. 24.)
국사시간에
거제고현중 3년 김기연
어른들은 말한다.
"옛날 사람들은 모두 착했다.
요즘 애들은…"
너무 착해서 독도가 간당간당
너무 착하고 착해서 역사가 뒤죽박죽
어른들은 말한다.
"요즘 애들은 자기가 손해 보는 걸 못 봐…"
손해 볼 줄 모르는 우리는
되찾을 수 있을까?
여유로와서는 안 될 시험기간.
국사시간에
또,
딴 생각을 한다.
(2006. 9. 23.)
좀 더 오래
거제고현중 3년 최나리
집에 가면 맨날 동생만 있던 집
이제는 엄마가 있다
쉬고 싶어 쉬는 게 아니라
몸이 아파서 쉬고 있다는 거 알지만
맘 아픈 거 보다
집에 엄마가 있다는 게
너무 좋다
"머 쫌 챙기 주꼬?"
"오늘은 머 먹고 싶노?"
말하는 엄마 목소리
엄마가 아파서 쉬어도
이런저런 엄마 소리가
좀 더 오래 들렸으면 좋겠다 (2006. 9. 21.)
비 오는 소리
거제고현중 3년 천지윤
비 오는 소리에
비 오는 소리에
차분해지는
몸과 마음
그리고
머릿속
평소 같으면
평소 같으면
소리 지르고 화낼 일도
이 비 오는 소리에
묻어 보낸다
우는지
웃는지
모르는 비인 것처럼 (2006. 9. 21.)
죄수
거제고현중 3년 이제혁
학원차 안을 보면
교도소에 가는
죄수를 보는 것 같다
모두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피곤한 듯 차에 기대어 가고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집으로 가는 나
엘리베이터 안 거울 너머를 보면
무거운 가방에 짓눌려있는
어깨가 보인다
축 쳐져있는
어깨가 보인다
어느 샌가 나도
죄수가 된 거 같다 (2006. 9. 24.)
카페 게시글
나눔터(살아가는 이야기)
회보에 보낼 아이들 시 몇 마리
주중연
추천 0
조회 12
06.10.27 21:04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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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두 세 작품만 골라서 보낼라고 합니다. 뭘 보내면 좋을까요?
나는 초등3학년이 쓴줄알고 애들이 완전히 달라졌다! 깜짝 놀랬더니만, 주샘 아이들이네요. 할머니 손이 '시들시들'하단 말이 참~ 실감나요.
매미, 할머니, 바람, 어두운 미래, 우리들의 일그러진 꿈, 국사시간에.... 다 좋은 거 같아요. 세 편이 아니라도 조금 더 보내면 되지 싶어요. 그리고 <가을 >이란 시는 그 아이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읽으면 덜 절실할 거 같아요. 선생님이야기를 들은 나는 마음이 이리 찡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