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壬寅年 *정착과 부흥의 해* 4月 ☞정직과 순종하는 습관☜ 4월은 시편 묵상과 성경적 성숙한 기도와 순종으로 응답받읍시다. 시57:1-11절) 새벽을 깨우리로다. 우리 속담에 *죄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절망 중에 있다 하더라도 사람이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인내하면, 언젠가는 새로운 기회를 만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말을 잘 믿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생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재기(再起)해서 훌륭한 뜻을 이루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마치 소설처럼 느껴지고, 실제로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말로 들리기 쉽습니다. 그래, *그 사람은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복이 오는 건 아니잖아?*라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그런 행운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내 자신이 그 사람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첫째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과소평가(過小評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자기가 갖고 있는 힘이 전부이기 때문에 나머지는 요행이나 운에 기대를 걸 뿐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자기의 능력은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승패는 하나님의 능력을 얼마나 끌어올 수 있느냐? 는데, 달려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 올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올 수 있습니다. 즉 믿음은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둘째는, 말씀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백지 위임장을 써주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면,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붙든 사람들에게 복(福)을 주시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확실한 힘입니다. 우리는 아주 절망적인 순간에도 말씀을 믿음으로 얼마든지 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시 재기(再起)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57편은 표제에 있는 것처럼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굴에 있을 때. 지은 시*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굴에 숨었을 때, 어떤 일들이 있었습니까? 바로 그 굴속으로 사울 왕이 찾아 들어왔습니다. 처음에 사울 왕이 다윗의 일행이 숨어 있는 그 굴속으로 들어왔을 때, 다윗은 몹시도 놀랐을 것입니다. 다윗은 아마 속으로 *이제는 다 틀렸다. 사울 왕이 하필이면 내가 숨어 있는 이 굴속으로 들어오다니!*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자칫 잘못했으면, 자포자기(自暴自棄)하는 마음으로 뛰어 나가서 싸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끝까지 기다렸을 때, 다윗은, 사울 왕이 자신을 잡으러 굴속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잠을 자러 들어온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정오(正午)가 되면, 너무나 덥기 때문에 잠을 자야 합니다. 사울 왕은 낮 잠을 자러 거기에 들어온 것인데, 실제로는 죽으러 들어온 것과 같았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너무나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한 순간에 입장이 뒤바뀌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다윗이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이미 나는 사울 왕을 이겼고, 전쟁은 끝났으며 이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라는 미래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미래를 확신할 수 있는 그런 미련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어려움이 계속되다가 그 어려움이 바닥을 치고, 회복기에 접어든 것을 느꼈을 때, 즉 계속 내리막길을 향하여 인생 곡선이 이제 더 이상 악화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Ⅰ.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피함 우리는 새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어려운 상황이 나를 꽁꽁 잡아매고 있을 때,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전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람에게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새가 될 순 없습니다. 새는 벌레만 잡아먹으면 되지만, 우리는 벌레만 가지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집이 있어야 하고, 또 돈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밀린 집세라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다윗이 새가 아니라, *병아리가 되어서 어미 닭의 날개 밑에 피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57:1절)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가기까지 피하리이다." (이런 말씀은 노트에 적어서 기도할 때 적절하게 사용하십시오. 우리는 적자인생입니다.)
이 세상에는 쫓기는 자에게 안전한 피난처라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자기 자신을 병아리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주위에 위험이 있을 때, 병아리는 어미 닭의 날개 아래로 피하기만 하면 안전합니다. 암 닭이 병아리를 돌보고 있을 때는 얼마나 사나운지 모릅니다. 병아리를 해치려고 하면, 날개 아래로 병아리를 품은 후에 깃털을 다 세우고, 공격 자세를 취합니다. 그러면 감히 개나 고양이도 덤벼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하나님 앞에서 투정을 부리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는 것일까? 즉 *하나님, 지금 여기까지 쫓기다보니까 너무나 지쳤습니다. 이제는 제발 좀 쉬게 해주십시오.*라는 뜻일까? 아니면 실제로 이 세상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날개가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어느 적(敵)에게도 발견되지 않고, 안전할 수 있다는 뜻일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다윗의 투정(妬情)이 아니라, 믿음의 표현인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너무나도 어려웠을 때, 마6:26절)공중의 새를 보라....”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공중에 나는 새를 보았을 때, *그래, 내 마음을 저 새처럼 단순하게 만들고 주님께 모두 맡기자*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제가 새입니까? 저는 인간이기 때문에 나무 위에서 잘 수도 없고, 벌레를 먹을 수도 없습니다* 라는 투정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믿음이 아주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날개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비에 젖지도 않고, 바람에 떨지도 않고, 적(敵)의 공격으로부터도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럼 그곳이 과연 어디일까? 다급하지만 기도할 수 있는 조용한 곳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할 수 있는 그곳이 곧 하나님의 날개 그늘 속*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면, 어떻게 될까? *불안하던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이 어려움이 어떻게 잘 해결될 것 같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면 꼭 어떻게든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하기 전과 기도한 후의 마음이 180도로 다를 때가 많습니다. 즉 기도하기 전에는 마음이 예민해져 있고,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데, 일단 기도하면, 그런 마음이 싹 변하면서 여유를 가지게 됩니다.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의 날개 그늘 밑으로 달아나기만 하면 됩니다. 즉 기도하는 자리로 달려가서 거기서 우리의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그곳이 따뜻한지 모릅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체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숨어 있는 동안 어려운 고비가 지나가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에게 중요한 것은 일단 고비를 넘기는 이것입니다. 고비가 넘어갔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간섭하고 계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서 무엇을 생각합니까? 다윗은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57:2절)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어려운 중에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은 매우 기쁜 일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으로서 한평생에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올바로 알지 못하고, 어둠 중에서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 세상에서 사는 본전을 뽑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딱 하나, 하나님만 올바로 믿어도 더 이상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이것만 해도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으며, 영원히 가치 있는 것을 붙든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지금 자기의 고생이 하나님의 일로 인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만일 다윗이 사울 왕이 시키는 대로만 했다면, 이런 고생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즉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맹목적인 열심만 냈더라면, 이런 쫓기는 생활을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렇게 쫓기고, 고생하는 것은 오직 올바른 신앙 한 가지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이 고생이 귀한 고생입니까? 중국의 모택동은 장개석 군대의 북벌(北伐)에 쫓겨서 대장정을 떠납니다. 떠날 때, 십만이 넘던 군인들이 그 먼 거리를 도망치면서 거의 다 죽고.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시 일어나서 중국을 모두 차지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어서 쫓긴다면, 참으로 처량한 일이지만, 의(義)를 위하여 쫓기는 것은 미래가 보장된 복(福)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비굴하게 살지는 않는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결코 자기를 버리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다는 점입니다. 어려운 문제에서 푸는 과정은 잘 모르지만, 일단 답은 알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 답이 무엇인가 하면, 다윗은 반드시 살아서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미 답은 다 나와 있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쉬운 일이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할 때, 이미 결론은 나 있는 것입니다. 즉 이미 우리는 복(福)받게 되어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아직 그 과정과 시기를 잘 모를 뿐입니다. 57:3절)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셀라)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무엇을 보내십니까? *나를 지키는 자*를 보내주십니다. 무엇을 지켜주십니까? 다윗을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그를 지켜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어려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이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악한말로 비방하면, 마음이 상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소중한 부분이 곧 마음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상하면,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상하면, 사람이 흥분이 되기 때문에 정확한 행동이 나오지 않습니다. 운동을 하신 분들은 잘 알 것입니다. 선수들이 흥분하면, 절대로 게임을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우리 생각에 흥분하면, 운동이 더 잘될 것 같은데, 실제로는 범실이 잦아서 결국 경기를 자기 손으로 망치게 됩니다. 이것은 자기 손으로 게임을 상대방에게 헌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결정적인 실수만 막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부자 몸조심을 한다*라고들 말하는데,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다면, 죄만 짓지 않으면 됩니다.
즉 우리가 죄만 짓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기만 하면, 결국 하나님의 복(福)을 차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서는 지키는 자를 보내어 우리의 믿음과 마음을 지켜주셔서 자포자기(自暴自棄)하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신다.*고 했는데, 이‘인자와 진리’는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성품입니다. 즉 ‘인자(仁慈)’ 는 죄인에 대한 한없는 자비하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지 않는 한,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들에 대하여 진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속이거나, 기만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기도하면 도와주겠다*고 해놓고, 나중에 가서 *모르겠다*는 식으로 하시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잔뜩 기대하게 하시고는 *왜 기대했느냐*는 식으로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하여 진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 더욱 좋은 것을 주시면 주셨지, 절대로 나쁜 것은 주시지 않습니다. Ⅱ.현재의 어려운 형편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는 마음이 그렇게 든든하고, 하나님의 품이 그렇게 아늑하게 느껴질 수 없지만, 또 현실을 보면, 낙심이 되고, 불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연약한 모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늘 왔다 갔다 하면서 기뻐하기도 하고, 침체되기도 합니다.
57:4절)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여기서 다윗은 마음이 둘로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한쪽 마음은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쉬고 있는 편안한 마음인데, 다른 한쪽 마음은 사자들 속에 던져져 있는 듯 불안한 마음입니다. 물론 우리의 영과 혼을 분리시켜서는 안 되지만, 지금 다윗의 상태는 영(靈)이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있다면, 혼(魂)은 사자 굴속에 던져져 있는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데, 당장 닥친 현실은 최악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둘 중에서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느냐? 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게 됩니다. 즉 믿음이 이기면, 천국에 있는 것이 되고, 두려움이 이기면, 한순간에 지옥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만약 이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 하루에도 열두 번 천국과 지옥 사이를 왔다 갔다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 없는 사람들이 보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정신병자같이 보입니다. 한순간에는 너무 좋아서 키득키득 웃어대다가. 그 다음 순간에 불안에 사로잡히면서 벌벌 떱니다. 그러니까 옆에 있는 사람도 불안해서 견디지 못합니다. 다윗은‘내가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불사르는 자’는 누구일까? 사람을 산 채로 태워버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혈질적 사람을 보면,‘저 사람은 성질이 불이야’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있는 이 악한 사람들은 얼마나 화가나 있는지, 자기만 타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까지 모두 불태워버리고 맙니다. 이런 사람은 대개 자학적(自虐的)인 사람입니다. 사울 왕은 성령께서 떠나신 후에 정말 파괴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극단적인 히스테리 성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혀와 이를 칼과 활로 만들어서 주위 사람을 많이 공격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면서 상대방을 달달 볶는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사람에게 당하는 고통’입니다. 즉 가난이라든지, 질병은 인격적으로 모욕을 당하는 것은 아니니까 참으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란 존재는 따라 다니면서 욕을 하는데다가 악(惡)한 말들을 연구해서 쉬지 않고, 쏟아놓기 때문에 우리를 견딜 수 없게 만듭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는 가장 어려운 코스 중 하나입니다. 바로 옆에서 귀에 대놓고 하는 말이기 때문에 듣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이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리는 것인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남이 나를 욕하는 말을 귀로 들으면 일단 우리 속에 불이 일어나고 맙니다. Ⅲ.놀라운 반전 우리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자세히 살펴보다가 어떤 전환점(轉換點)을 찾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놀라운 반전(反轉)’이라고 부릅니다. 즉 계속적으로 벼랑 끝으로 몰리다가 더 이상 몰리지 않는 시점이 있는 것입니다.
악(惡)한 자의 공격하는 힘이 좀 약(弱)해지는 것 같은 시점이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손을 대시고 있는 순간입니다. 그 이후로는 급격하게 내 쪽으로 힘이 실리게 되어 있습니다. 57:5-6절)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그들이 내 걸음을 장애(障碍)하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폈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 다윗에게 있어서 놀라운 반전은 언제부터입니까? 사울 왕이 다윗을 빠뜨릴 웅덩이를 팠는데, 결국 그 웅덩이에 사울 왕 자신이 빠진 것입니다. 즉 다윗이 숨어 있는 굴속에 사울 왕이 들어오더니, 다윗 일행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고, 거기서 낮잠을 쿨쿨 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시키시지 않으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다윗은 이 한 가지 사건을 통해서 이미 사울 왕의 힘은 떨어지고 있으며, 이제부터는 힘이 자기 손에 넘어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놀라운 반전의 순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끝없이 맨바닥을 향하여 곤두박질치다가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수평선을 유지할 그때입니다.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의 능력이 나에게 전달되기 시작하는 때요, 그때부터 형편은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최악의 상태에서 갑자기 모든 것이 최고로 바꿔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더 이상 악화되지만 않으면, 일단 고비는 넘긴 것이며, 바로 그 시점이 우리 인생의 반환점인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 한 가지 사건을 통해서 어둠의 시대가 끝나고, 환한 진리의 아침이 올 것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57:7절)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여기서 다윗의 마음이 확정되었다는 것은 이미 어둠의 세력은 물러가고, 복음(福音)의 아침이 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실 사울이 왕으로 있을 때에 이스라엘 안에 진리가 어두워졌고, 불의의 세력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이미 하나님 앞에서는 버림을 받은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감이 떠난 순간부터 그는 이스라엘의 가짜 왕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 왕이 *자기 함정에 빠지는 것을 보고, 이제 이스라엘에 복음의 아침이 오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다른 것은 몰라도 자유 하나는 마음껏 누리고 있습니다. 과거에 일제 강점기와 군사 독재 밑에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신음하고 있을 때는 얼마나 답답했습니까? 지금은 일단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듣지 못하고, 매일 강대상에서 저주와 폭력의 말을 듣는다면, 이것은 정치적인 노예보다 더욱 비참한 종교적 노예가 될 것입니다. 종교적 노예는 모든 것을 강요받고 하는데, 아무런 기쁨도 없이 합니다. 즉 충성하면서도 욕을 얻어먹으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놀라운 반전을 통하여 이제 더 이상 사울 왕은 이스라엘을 속일 수도 없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자신의 의사에 따라서 기쁨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며,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때가 도래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다윗은 담대하게 자기가 외칠 수 있는 복음을 외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알고 있다 해서 다 말할 순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때가 되어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일까? 복음의 위대한 아침입니다. 57:8절)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다윗은 이미 아침이 오고 있기에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면 아직까지 사람들은 복음의 아침이 오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침체의 잠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직 완전한 아침이 온 것은 아니지만, 미리 사람들을 깨워서 새로운 날을 준비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 무엇으로 잠자는 사람들을 깨울까? 대개 큰 종소리를 울린다든지, 아니면 고함을 지르든지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지금 음악으로 잠을 깨우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더 이상 고함 소리에 놀라거나, 욕을 먹으면서 깨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소중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소중한 사람들이 잠에서 깰 때도 아주 기쁘게 기분 좋게 깨도록 하기 위하여 다윗은 비파와 수금으로 그들을 깨우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완전히 딴 세상에서 잠을 깨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누가 이들을 비파와 수금으로 잠을 깨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이제 절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놀라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압제당하지 않을 것이며, 진정으로 존경받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그들을 깨우는 소리로 나타낼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욕과 수치와 부끄러움은 사라졌습니다. 이제 다시는 억울하게 정죄받는 일이 없으며, 죄를 짓지 않았는데, 이스라엘 밖으로 추방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57:9-10절)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께 찬송하리이다.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다윗은 이 복음의 기쁜 소식이 이스라엘 안에서 끝나지 않고, 온 세상과 열방 중에 선포되고, 그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런 자유의 종소리가 울릴 것을 내다보았습니다. 이것이 곧 다윗의 비-전이요,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즉 다윗이 가는 곳마다 죄악의 어둠은 사라지고, 복음의 아침이 오는 것입니다.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칩니다. 이는 주의 인자가 얼마나 큰지 온 하늘을 가득 채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 혜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습니다. 이제 다시는 마귀가 하나님의 진리를 감출 수 없고. 이제 마귀는 더 이상 이스라엘을 속일 수가 없습니다. 57:11절)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이제는 복음의 태양이 높이 떠올랐습니다. 어둠의 세력은 모두 물러갔고, 온 세상은 새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사울 왕 한 사람이 이스라엘에 밤이 오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기 함정에 빠졌을 때, 이미 밤은 물러가고, 아침이 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더 이상 성도들을 속일 수 없습니다. 오직 각자가 자기 신앙 양심에 따라서 최선의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만 남았습니다.아-멘
알 림 ◈4월1일-5월31일 춘계 대심방과 셀 현장 점검을 위하여 장소, 날짜, 시간을 스마트폰으로 신청해야 심방이 가능합니다. ◈6월 30일 셀보고서 결과로 소속이 결정됩니다. ◈리더(leader)는 1단계 *필수과목* 자격증을 취득해야 공동체가 안전하고, 직분도 반드시 *필수과목*을 필하고 *세례를 받아야*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전 천주교인 포함). 그 이유는 연구원 유지 및 신앙성숙을 위해 계속 불통과 불순종하는 비소속은 후반기부터 일방적으로는 차별이 불가피합니다. 딤후3:13-14절)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 상담실 운영 ◐신앙 상담 ☞ 갈등 상처 ◐가정 상담 ☞ 폭력. 이혼. 자살충동. 우울증 등 ◐내방 장소 ☞ 동탄 종합문화센터 옆 펜케이 카페 주소 반송동 117-5 ※ 의심하고 망설이면 평생 후회 할 것입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