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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예배 우리 학생부 친구들이 율동할 때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조금 다른 느낌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이제 강도사님 아이들을 빼면 나머지 친구들은 어쨌든 저희 교회에서 자란 친구들인 거예요. 진짜 갓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 어떤 아이가 이제 교회에 계속 오면서 이제 나이가 자라고 또 제 교회를 섬기는 거 보면 제가 마음이 되게 울컥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다들 감사하고 또 주변에 있는 많은 어린 영혼들이 여러분의 손에 이렇게 잘 양육되어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수고했다고 박수 한번 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중식은 김재영 권사님이 칠순이라고 내셨고 달기는 우리 성경 집사님이 많이 먹고 건강하라고 또 주셨어요. 성경 사이 70 된 건 아니고 두 분 감사한데 박수로 한 번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직 우리가 아주 완전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러분들이 좀 이렇게 이야기하려고 조금 노력하시는 것 같아서 그건 좀 감사하긴 하더라고요. 이야기하다가 약간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또 하지 말아야 될 말을 하는 분도 있고 이런 게 좀 있긴 있지만 그래도 이전보다 좀 더 이렇게 성도들과 대화를 나누려고 하는 그 모습이 감사하고 또 오후 예배 이렇게 참석하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을 보니까 또 한편 되게 감사하더라고요. 그래서 감사의 박수 한 번도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짧게 한 세 가지로 요약이 돼요. 첫 번째로는 하나님은 백성의 그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라는 거예요. 이런 거죠.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우리의 고통과 부르짖음을 외면합니다. 이게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왜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과 부르짖음을 다 들어주시고 왜 사람들은 나의 고통과 부르짖음을 외면할까요?
이유는 힘이 없기 때문인 거예요. 사람이 힘이 없으면 남의 고난이나 고통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를 못해요. 우리가 가만히 보면 나이가 들수록 남의 이야기를 안 듣죠. 보통 이런 말이 하면 막 아멘 하고 이렇게 나와야 되는데 자기는 아니라고 아무도 아멘도 안 하시고 이러시면 안 돼요. 우리가 나비 이야기를 안 들어요. 왜 안 듣냐 하면 남의 이야기를 들을 힘이 나한테서 자꾸 빠져나가는 거예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소화하고 또 그 이야기를 내 안에서 다시 정리해서 필요적절한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에게 아직 에너지가 남아 있다는 의미인 거예요.
그러니까 나이가 들면서 이 에너지가 자꾸 빠져나가니까 육신의 힘이 빠지는 거죠. 그래서 남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그래서 내 이야기만 계속해서 하게 됩니다.
여러분 절제는 힘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절제는 우리가 자꾸 절제가 안 되죠. 그 이유는 힘이 없기 때문인 거예요. 만약에 이 대표적으로 저라면 제가 만약에 절제를 잘 한다면 저는 아직 힘이 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힘이 없으면 절제를 못해요. 그래서 저도 정말 이후에 저의 삶이 겁이 나요 혹은 내가 힘이 없어서 절제하지 못할까 내 입이 막 함부로 이렇게 놀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이 정말 많이 됩니다.
나이가 들면서 친구가 자꾸 없어지죠. 그 이유도 절제하지 못해서인 거예요. 그러니까 친구 사이에도 절제가 필요한데 이 절제라는 것이 딱 제거가 되고 나니까 친구의 관계가 이렇게 끊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절제가 잡아주는 역할을 하거든요. 관계를 잡아주고 나 자신을 이렇게 잡아주는 거.
근데 이 절제는 우리가 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을 절제하지 못해서 말하지 말아야 될 것을 하게 되고 결국 그것으로 인해서 관계가 깨어집니다 하면 관계가 깨어지는 말 마음이 상하는 말을 하게 돼서 결국 사람과 멀어지게 되고 친구가 점점 없어지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과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셨냐 하면 물론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에 하지만 또 한편으로 보면 하나님은 힘이 있는 분이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어떤 부르짐도 거절하지 않을 수 있는 거죠.
저는 누군가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점점 더 거절하는 횟수가 이제 많아지더라고요. 좀 더 젊었을 땐 그래도 도와주려고 했는데 이제는 자꾸 거절하는 횟수가 많아져요. 그 이유는 내게 힘이 없기 때문에 힘이 자꾸 빠져가는 걸 느껴요. 그래서 거절하게 돼요.
하나님이 왜 우리의 부르짖음과 고통을 외면하거나 거절하지 않으시냐 하면 힘이 있으시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가 어떤 걸 부르짖어도 들어주시고 어떤 내용을 하나님께 말해도 소화가 돼요.
여러분 이 천주교에는 고해 성사가 있죠. 이 고해 성사가 정말 애매한 거예요. 하나님께 틀어 놓는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 틀어 놓으니까 그럼 털어놓는 입장에서는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어요. 누군가 내 앞에 앉아 있는 거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건 어쨌든 보이지 않잖아요. 보이지 않게 기도하는 거지만 회개하는 거지만 천주교에서는 어떻든 가리고 있지만 내 앞에 누군가가 앉아 있는 거잖아요. 사제가 앉아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되게 훨씬 더 그러니까 회개하는 사람 입장에는 훨씬 더 좋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러면 그 회개를 듣는 사람은 어떨까요?
죽을 맛이죠. 그래서 아마 정상적인 종교인이라면 진짜 영적인 어떤 탁월함이 있지 않는 한 수리 아니면 못 이겨낼걸요.그래서 어쩌면 어쩌면 그 종교가 술을 하는지도 몰라요. 사제들에게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듣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또 보통 이렇게 신부에게 와서 회개할 때는 고해 성사할 때는 좋은 내용이 어디 다 안 좋은 거잖아요. 누구 사기치고 음행하고 막 다 이런 거잖아요. 여러분 그거 듣고 앉아 있어 봐요. 사람이 제정신이겠어요? 그러니까 사람에겐 그런 걸 들을 힘도 해결할 힘도 없어요. 그때 하나님은 있으세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과 외침을 하나님이 들으셨던 겁니다.
두 번째 하나님은 들으셨는데 그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까요?
안 들었어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과 부르짖음을 들으셨어요. 근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어요.
9절에 보면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니 그들이 마음의 성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니까 긴 400년 간의 노예의 삶 이 기간 동안 백성들은 마음이 상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던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마음이 상하면 사람의 소리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도 안 들려요.
그러니까 끊임없이 상한 마음을 우리의 상한 마음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는 건 우리의 상한 마음이 주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말씀을 듣는 횟수로 따지면 대한민국만큼 말씀을 많이 듣는 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없을걸요. 새벽 기도하는 나라도 거의 드물어요. 거의 없어요. 수요 예배하는 나라도 크게 많지 않고요. 주일 오전 오후를 하는 곳도 크게 많지 않아요. 우리처럼 정말 말씀이 많은 나라가 드물어요. 그러면 우리 안에 말씀의 역사가 강력하게 일어나야 되잖아요. 근데 현실은 아니에요.
왜 그럴까요?
우리의 마음이 상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거죠.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했어요. 하나는 마음이 상했고 하나는 너무 힘든 육체적인 노동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못 들었다는 거죠.
이런 거죠. 영적인 큰 상실감도 하나님 말씀을 못 듣게 하고요. 너무 힘든 육체적인 삶도 하나님 말씀을 못 듣게 한다는 거예요. 실제로는 이것 말고도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 요소가 아주 많아요.
근데 말씀을 집중하려면 이것들을 우리가 이겨내야 되는 아니 마음의 상함도 해결해야 말씀이 들리고 너무 힘든 육체적인 어려움들도 어쨌든 우리가 조금씩 해소해야 말씀이 들린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체력을 잘 길러야 돼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운동을 썩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데 이것저것은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여러분이 알다시피 제가 허리 수술도 한 두 번 하고 또 제가 머리에도 결핍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운동을 하는 게 되게 어려워 누가 뭐 하세요 하면 잘 안 했어요. 잘 이제 좀 젊을 때는 그래도 열심히 하려고 하다가 한 20대 후반부터 거의 50대 중반까지 운동을 거의 잘 안 했어요. 요즘은 제가 운동을 하려고 정말 노력하는데 힘이 있어야 되더라고요.힘이 없으면 마음도 쉽게 상해요.
그러니까 성도들이 하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상하면 제가 어떻게 될까요?
설교를 못하죠 여러분 마음이 상한 목회자의 설교를 들어보셨어요?
아마 한두 번쯤은 저도 상한 채로 설교했으니까 그런 적이 있겠죠. 실제로 마음이 상한 목회자의 설교를 들으면 미칠 것 같아요. 그 설교를 들으면 미쳐요. 듣는 성도들이. 그래서 목회자가 건강해야 돼요. 힘이 있어야 돼요.
물론 지나친 힘이 목회를 방해하기도 하고 목회를 어렵게 하기도 하지만 어떻든 마음이 상하지 않을 만큼의 힘이 있어야 되고 너무 육체적으로 육체적인 피곤을 이겨낼 만큼의 에너지는 있어야 말씀도 전할 수 있고 성도들 입장에서는 말씀을 들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는 뭘까요?
한번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이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을 순종하려고 했다면 이미 우리 안에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어야 될 텐데 우리가 그런 경험이 많지 않잖아요. 그 말은 우리가 말씀을 잘못 들었다는 거예요. 말씀을 잘 못 들었다는 건 말씀을 듣는 걸 방해하는 것이 내게 있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옆사람이 내 말씀 듣는 걸 방해하겠어요 물론 막 옆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막 이상한 행동을 하면 그렇지만 그런 사람이 없잖아요. 예배 중에 그럼 결국 이 말씀을 듣지 못하는 이유가 내 안에 있는 거죠.
여러분 우리 교회에 우리 교회를 과대평가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그냥 많은 교회를 경험했으니까 또 우리 교회처럼 또 예배를 준비하고 또 찬양단이 서고 이렇게 하는 정도면 저는 충분히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은 된다고 여겨요.
저도 설교를 아주 잘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 이 말했다 저말했다 하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자세히 들으면 이해도 되고 또 제가 생모다 사투리를 아주 많이 쓰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사투리 때문에 못 알아듣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따진다면 모든 걸 중간쯤으로 본다면 말씀을 듣지 못하는 요소가 내 안에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은 거죠.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 나를 나의 말씀의 자리를 방해하는지를 찾아내야 돼요.
말씀이 들리는 걸 방해하는 게 뭘까? 그게 체력이라면 운동을 하셔야 되는 거고요. 여러분 말씀 들리지 않는 채 앞으로 남은 20~30년을 사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일까요? 생명과 같은 말씀이 들리지 않는 삶을 사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일까요?
그 말씀을 평생 들으려면 몸을 건강하게 해야 돼. 이미 아파서 너무 힘든 분들은 또 수고해도 더 나지 않는 상황에 처한 분들도 있어요. 그런 분들은 최소한 더 나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애쓰고 그리고 다른 요소들 말씀을 방해하는 다른 요소를 찾아서 해결해서 어떻든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해결해야 합니다. 말씀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을 이겨야 결국 우리는 말씀을 듣는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모세는 또 똑같은 레파토리로 하나님의 명령 앞에 변명을 합니다. 이 변명을 제가 12절을 읽으면 여러분이 이미 이전에도 모세가 했던 변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모세가 여호와 앞에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여러분 사람들의 인생 레퍼토리는 바뀌지 않더라고요. 성도가 교회를 섬기지 못한 이유는 진짜 평생 똑같아요. 그래도 그때그때 교회를 온전히 섬기지 못한 이유가 바뀌면 그나마 그거는 좀 좋은 성도예요.
근데 대부분의 성도들은 교회를 섬기지 못하는 핑계가 평생 바뀌잖아요. 모세가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는 핑계가 안 바뀌죠.
나는 입이 둔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이전에도 그렇게 핑계했고 여기서도 또 그렇게 핑계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인생 레포터리는 진짜 안 바뀌더라고요. 사람 사이에도요. 이 레포터리가 안 바뀌어요. 사람 사이에도 그러니까 아내가 항상 남편에게 잘못했다고 비는 사과하는 내용도 평생 안 바뀌죠. 신혼초의 남편의 사과 내용이나 지금의 남편의 사과 내용이 똑같아요. 표현이 좀 다를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내용은 거의 똑같아요. 그만큼 사람의 인생 레포토리가 바뀌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모세의 불순종의 이유가 또 등장해요. 이미 이전에 등장했고 이미 하나님이 해결해 주셨잖아요. 그런데 또 그 이유를 가지고 또 핑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숙하지 않으면 이 인생 레포토리가 신앙 레포토리가 안 바뀌더라고요. 좀 다른 문제로 내가 예배를 못 드립니다. 내가 좀 다른 문제로 교회를 못 섬깁니다. 내가 좀 다른 문제로 이게 순종하지 못합니다. 이래야 되잖아요. 그런데 20대에 순종하지 못한 이유나 70대에 순종하지 못한 이유가 똑같다면 이게 과연 옳은 걸까요?
근데 우리는 보면 그래요. 여러분 저도 저도 만약에 여러분에게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제가 친구들과 대화할 때 이제 목회적인 이야기를 할 거 아니에요 돌아보면요. 그 내용이 안 바뀌어요. 그러니까 교회만 바뀌고 부목사냐 담임이냐 이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때 제가 핑계하던 것이 지금 여전히 나의 핑계로 핑계가 되고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그런 거죠.
그러니까 모세도 그랬고요.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습니다. 회사에서 사람들이 불평이 많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 불평이 평생 안 바뀌어요. 처음 들어가서 내뱉은 불평이 퇴직할 때의 불평인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직장 레포터리나 인생 레포트이 신앙 레퍼토리는 쉽게 바뀌어지지가 않아요. 그 이유는 우리가 성숙하지 않았다는 거죠. 정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진심으로 노력하지 않았다는 거 정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말 참되게 노력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모든 레퍼토리가 쉽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권면하고 싶은 건 이젠 조금은 바뀌자는 거예요. 조금은 항상 같은 이유로 같은 핑계의 자리에 있지 말자는 거예요. 올해의 핑계가 다르고 내년에 핑계가 좀 더 성숙하고 그다음에 핑계가 조금은 성숙하자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보면 항상 똑같아요. 항상 똑같은 이유인 거예요. 이런 삶은 나도 지겹지만 나를 보는 상대방도 지겹게 하고 하나님도 불편한 거죠. 하나님이 저를 이렇게 보시겠죠 좀 제가 막말로 하면 하나님이 저한테 막말은 하시지 않겠지만 인간이 하는 막말이라 생각하시고 한번 어차피 저한테 하는 거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하는 건 아니잖아요. 기분 안 나쁘죠. 그렇죠 여러분께 하는 막말은 아니니까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막말이니까 지 인간 평생 똑같다고 평생 목회 못하는 이유도 똑같고 평생 순종하지 못한 이유도 똑같고 평생 헌신하지 못한 이유도 똑같다고 하나님이 저에게 하실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조금은 다짐해 봐요. 마음으로 내년에 내년에 내 신앙 레퍼토리는 좀 바뀌어 보자. 내년에 내년에 우리 가정이 하나님께 좀 더 잘 쓰임 받지 못한 이유는 내년에는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이게 이제 제 간절한 마음이고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힘이 있어야 말씀도 들을 수 있고 사람들과 교제도 할 수 있고 하나님이 맡긴 사명도 잘 감당해 낼 수 있습니다. 그 힘은 육체적인 힘도 있지만 영적인 힘이 있어야죠. 이 영적인 모든 힘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에너지인 거예요. 에너지 우리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많이 회복되어서 이 영적 에너지들이 많은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이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여러분께 많았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이 저한테 와서 목사님 이번에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하게 해 주셨어요. 목사님 있잖아요. 내가 말씀을 듣고 제가 최근에 참 감사했던 게 여러분은 잘 모르겠어 모르지만 저한테 말씀하신 그분은 제가 그래서 한 주간에 되게 힘이 됐어요. 새벽 제단 나오는데 너무 은혜가 됐다는 거예요. 평생에 새벽 제단을 많이 다니지도 않으시고 이렇게 교회에 나오면서 말씀에 이렇게 은혜 받아본 적이 너무 없다는 거예요. 지금 은혜 받고 있다는 의미인 거잖아요. 그날 하루인지 그다음 하루인지까지는 제가 점검한 바라서 모르지만 어쨌든 한 번 우리가 할 때 어쨌든 은혜를 받았다는 거잖아요. 우리가 좀 그런 인생 레포터가 좀 바뀌어야 은혜를 얻을 수 있어요. 은혜 못 받은 이유가 똑같으면 우리는 똑같은 이유로 평생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여러분 헌신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정말 온전한 예배를 드려보지 못한 채 이 땅의 삶이 마감된다면 주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볼 수 있을까요?
그래서 여러분이 오늘 말씀을 잘 새겨서 이제는 하나님 앞에 있는 이 인생 레프로터리가 좀 바꿔서 바뀌어져서 하나님께 더 나은 좀 더 나은 핑계가 하나님께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관계도 마찬가지로 좀 더 나은 핑계, 오늘보다 좀 더 발전된 핑계, 가정도 우리보다 조금 더 발전한 핑계 이런 것들이 우리가 이렇게 자리 잡아서 더 나은 교회로 또 더 나은 성도로 더 나은 목회자로 우리가 자라나고 성숙하기를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